제204차 목포 뚜벅이 산악회 정기산행
1. 산 행 지 : 전남 화순군에 위치한 만연산(688m) 및 무등산(1,187m) 연계산행
2. 산행일자 : 2016년 1월 17일 일요일 오전 07시 00분
3. 출발시간, 장소 : 역전 6시 30분/ 터미널 07시 출발 / 남악읍사무소 07시 10분
4. 산행 코스
A코스:큰재-만연산-너와나목장-장불재-입석대-서석대-중봉-중봉삼거리-중머리재-용추폭포-용추계곡(4키로)-용연마을- 제2수원지주차장
(도상거리:약13km / 점심식사포함 약 6시 00분)
B코스 : 큰재-만연산-너와나목장-용추폭포-용추계곡(4키로)-용연마을- 제2수원지주차장
(도상거리:약9km / 점심식사포함 약 5시 00분)
5. 다음 산행지 :2016년 2월 21일요일 오전 06시 00분 충북 옥천 마성산(409m) 및 이슬봉(409m) 연계산행
6. 준비사항 : 아이젠,방한장비,스틱, 여벌옷 및 양말 개인장구등 철저한 준비를 요함
식수, 점심 및 간식 개인 의료품
7. 정회원 가입 안내 : 가입비 6만원과 매월 10일 4만원의 자동이체로 월 2회 산행에 참여 하실 수 있으며 모든 산행시 추가 산행비 갹출없이 산행이 가능합니다.
(아주 특별한 상황시에만 추가 갹출 합니다.)
☆ 뚜벅이 산악회는 순수 비영리 동호회로 산행 사고시 모든 책임은 본인에게 있으며
뚜벅이 산악회는 책임을 지지 않고 산행대장 포함 집행부는 산행 코스만 안내 합니다.
○ 뚜벅이 계 좌 번 호 : 농협 (302-0913-3109-11 서 찬 오)
○ 연 락 처 ☞ 회 장 : 양 봉 순 010-8692-5898
산행대장 : 정 명 근 010-9080-8077
총 무 : 서 찬 오 010-8605-9875
버 스 : 송남진 010-4611-0036(초원여행사 전남70자 1236)
○ 특징및 볼거리
♣만연산(666m)
전남 화순군 만연리와 동구리 수만리에 걸쳐있으며 화순군 북쪽에 위치한다. 조선시대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나한산(羅漢山)'으로 기록하고 있다. 만연산 남쪽 사면에 고려시대 창건된 고찰인 만연사(萬淵寺)가 있다. 그리고 선정암과 동쪽 기슭에 만연폭포가 있다. 북쪽 능선은 무등산(1187m)과 이어지며 등산로가 개발되어 있다. 근래에는 자연 치유의 숲으로 알려진
'만연산 오감연결길'이 개발되어 있다. 이 길은 다산 정약용이 독서를 하면 걸었던 길이라고 전한다. 만연산으로 오르는 입구에는 만연산탐방지원센터가 있다.
♣만연사
만연사는 만연 선사(萬淵禪師)가 1208년(고려 희종 4년)에 만연산(萬淵山)[일명 나한산(羅漢山)] 아래에 창건하였다. 만연 선사는 송광사(松廣寺) 16국사 중 제6세인 원감 국사(圓鑑國師) 충지(?止)의 『원감록(圓鑑錄)』에 등장하는 ‘만연 선노(萬淵禪老)’ ‘만연 지공(萬淵之公)’으로 추측된다. 만연사에는 조계산 수선사(修禪社)[현재 송광사]의 창건주 보조 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의
사리탑(舍利塔)과 수선사의 제2세인 진각 국사(眞覺國師) 혜심(慧諶)의 비석과 영각(影閣)이 있었다고 한다.
1286년에 대선사를 승계한 만연사 주지 굉묵(宏默)이 수선사 제5세 자진원오 국사(慈眞圓悟國師) 천영(天英)의 비문을 쓴 것으로 보아 고려 후기에도 만연사는 수선사와의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융성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당시 만연사에는 대웅전·시왕전(十王殿)·나한전 등 세 개의 전각과 승당(僧堂)·선당(禪堂)·동상실(東上室)·서상실(西上室)·동별실(東別室)·서별실(西別室)·수정료(守靜寮)·송월료(送月寮) 등의 전각이 있었다. 고려 말에는 향나무로 삼존 불상·십대 명왕상·십육 나한상을 조성하여 봉안하였다고 한다.
조선 초기인 1407년(태종 7) 전국에 공인 사찰 242개소를 7개종으로 통합하고 나머지 사찰은 폐사하였다. 거기서 누락된 사찰 89곳을 자복사(資福寺)로 추가 지정하였는데, 만연사는 총남종(摠南宗) 소속의 자복사로 지정되었다. 그 후 16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17세기 중반 제작된 『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 18세기 중엽에 제작된 『여지도서(輿地圖書)』, 19세기 후반에 제작된 『호남 읍지(湖南邑誌)』에 만연사를 유존 사찰로 기록하고 있어 폐불(廢佛)이 끊임없이 논의되던 조선 시대에도 보존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병자호란 당시 『창의 일지(倡義日誌)』에 의하면 만연사 승려 지삼(智森)·지환(智環)·경훈(景勳) 등이 종이 10속(束)을 바쳐 「군중 일지(軍中日誌)」를 만드는 데 도움을 주었고, 의병장 조수성(曺守誠)에게 장(醬)·마른 나물·쌀·산나물·신발 등 각종 물품을 지원해 전쟁을 도왔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그러나 1793년 큰불이 발생하여 사찰이 소실되자 1794년부터 법당(法堂)·노전(爐殿)·선당(禪堂)·승당(僧堂)을 중건하였고, 보조 국사 지눌과 진각 국사 혜심의 진영을 중수하였다. 경내에는 설루(說樓)·사천왕문(四天王門)·삼청각(三淸閣)·광한전(廣寒殿) 등이 있었고, 지속적으로
사세도 확장되어 학당암(學堂庵)·침계암(枕溪庵)·동림암(東林庵)·연혈암(燕穴庵) 등의 부속 암자를 거느리고 있었다.한말에는 이동백(李東伯)·이날치(李捺致) 등의 명창이 만연사에서 활동했으며, 정광수(丁珖秀)·임방울(林芳蔚)과 같은 명창들도 이곳에서 소리를 가르쳤다. 일제 강점기 태고사법(太古寺法)에는 만연사가 대흥사(大興寺)의 말사(末寺)로 기록되어 있다.
1950년 7월 북한군이 화순에 진격하여 만연사를 대대 본부로 사용하였고, 절 입구에 있는 제각은 병원으로 사용했으나 11월경에 대부분 소실되었다. 1978년부터 주지 철안(徹眼)이 중수를 시작하여 2000년에 대웅전이 새로 건립되었다.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때에는 화순 경찰서에서 빼낸 무기 300여 정을 만연사에 숨겨 두었는데, 만연사 입구에 표석을 세워 그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현재 산내 암자로는 선정암(禪定庵)과 성주암(聖住庵)이 있다.
♣만연폭포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유천3리에 있는 폭포. 화순읍 북쪽을 감싸고 있는 만연산 동쪽 기슭 수만리로 넘어가는 고개 아래에 있다. 10여m 높이에서 떨어지는 폭포수는 예로부터 신경통 환자들에게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수량이 많아 소리만 들어도 더위가 가실 만큼 물소리가 우렁차다. 폭포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무등산1,187m
광주광역시(북구,동구)와 전라남도(담양,화순군)에 위치하고 있는 무등산.무등산이란 명칭은 서석산과 함께 고려 때부터 불려진 이름으로, 비할 데 없이 높은 산 또는 등급을 매길 수 없는 산이란 뜻이다. 무등산에는 수많은 볼거리가 많이 있는데, 어떤 것은 멀리서도 바라볼 수 있도록 우뚝 솟아있는 것도 있지만, 어떤 것은 가까이에 가서야 볼 수 있는 것도 있다. 무등산은 전체적인 산세는 산줄기와 골짜기가 뚜렷하지 않고 마치 커다란 둔덕과 같은 홑 산이다. 무등산의 특징은 너덜지대인데 천왕봉 남쪽의 지공너덜과 증심사 동쪽의 덕산너덜은 다른 산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적인 경관이다.
우리나라 100대명산으로 선정되어 인기 41위를 차지하고 있는 무등산은 천태만상의 암석들이 정상인 천왕봉을 중심으로 널려 있어 그 웅장함으로 인하여 도민의 신앙대상이 되어온 신산으로 알려 졌다. 특히 서석대, 입석대, 규봉의 암석미는 대단하다. 무등산의 삼대 절경인 입석대, 서석대, 광석대를 일컬어 무등산 삼대석경이라 부르기도 한다. 봄의 철쭉, 여름의 산목련, 가을의 단풍과 겨울의 설경등 변화가 많은 자연경관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1972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2013년 3월 4일 국립공원 제21호로 지정되었다.
제204 전남 화순군에 위치한 만연산(688m) 및 무등산(1,187m) 연계산행













첫댓글 수고 하셨어요 대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