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닮은 고장난 벽시계
우리 집 벽시계도 나를 닮았나 보다
내 집 벽에 걸린지 40년이 넘은 벽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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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이면 양담배 얻어 피다 단속원한테 들켜 몇 만원 벌금 물건 말건 내 알바 아니지만 해외에 나갔다가 귀국할 때 자랑스럽게 건네 줄 수 있는 선물은 기내에서 살 수 있는 양담배 두세보루면 흡족했다.
지금도 몇 십만원이 훨씬 넘는 금장 라이터나 호화판 응접테이블용 재떨이 셋트를 선물하면 기막힌 금상첨화격 개업 또는 이사 축하 선물이 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보다도 그 중 대중적으로 취급된 개업 또는 이사 축하 선물로는 대형 거울이나 벽시계가 주류였던 시절인
80년대에 새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이사 축하 선물로 친구 J가 갖다 준 벽시계가 열흘 전에 40년을 채 못다 채우고 멈추어 버렸다. 웬만큼 흔들어만 주어도 짹각 짹각 잘 가던 시계가 도무지 요지 부동이다.
우리 집에 있는 40년이 다 된 전자기기로는 옛날 "대우전자"의 전자레인지가 무탈하게 고장을 모르고 벽시계와 함께 작동하고 있던 참이었다.
지금은 거의 볼 수 없는 구닥다리 벽시계였지만 TV시보나 핸드폰 시간에 절대 뒤지 않든 정확성을 자랑하고 있었고 집안 곳곳에 비치 된 몇 개의 시계보다 우선 표준이 되는 시계였었다
식사 중이건 TV를 시청 중이건 외출하기 위해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면서도 얼핏 쳐다 볼 수 있는 벽걸이 시계가 멈춰버린 것이다.
내 팔목에 찬 팔목시계를 보는 것보다 벽시계를 보는 것이 훨씬 익숙하고 믿음직했고 습관적으로 몸에 배어 있었다.
"여보! 우리 나이가 몇이요. 간혹 동네 사람들이나 친지가 보면 무던히도 해묵은 시계네라며 은근히 비아냥대던 시계였는데~"하며 아쉬워하던 아내의 탄식도 당연하듯이 유독 자기 소장품을 간직하기 좋아 하는 나에게는 더욱 더 아플정도로 아쉬웠다.
수 십년간 올려다 보고 쳐다 보던 버릇이 고장난 열흘 내내 더 빈번하다. 방마다 비치된 작은 벽시계를 옮겨 걸었지만 도무지 성미에 맞지 않는다, 틈만 나면 시계를 들고 시침을 돌려 보고 흔들어 보고~
시계의 메카니즘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결국은 시계를 뜯어 보기로 했다. 옛날부터 기계라면 괜시리 잘 뜯어보다 고장내거나 잘 못 되어 버린 적도 많았지만 기왕에 고장 나 버릴 것이라면 여한이나마 없게 뜯어 보기로 했다.
외출하기로 한 계획도 팽게친채 쭈그리고 앉아 분해 했다. 별 이상도 없는 것 같은데 제대로 작동할 기미가 없다. 버리더라도 제대로 조립은 해서 버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몇 시간 낑낑대다 조립은 했지만 몇 초정도 가다가 멈추고 만다.
결국은 세월 탓인 것 같다. 이 세상 살대로 다 산 주인이 그랬던처럼 數 白萬 分, 數千萬 秒를 달렸으니 고장난다는 것이 무리도 아닐 것이다
80년을 다 산 주인이 대장암에 화들짝 놀래 수술하고 여생을 연장하듯이 고장 난 벽시계를 좀더 관리해 주었더라면~하고 후회하지만 내 세월과 벽시계 세월이 다른 것도 아니었다.
시중가요 중에 누군가가 부른 "고장난 벽시계"가 생각난다.
고장난 벽시계는 멈추었지만 내 청춘 내 세월은 아득히 멀리 가버렸다고 말이다.
마지막 조립단계에서 내 심술이 발동했다. 시계의 무브먼트(Movement ; 기계작동장치)를 180도 거꾸로 조립해서 시계바늘을 끼어 다시 벽에 걸었다.
"엉? 시계가 움직인다!"
시계를 거꾸로 비틀어 조립했을 뿐인데~"
고장 났던 벽시계는 일주일 째 무탈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움직인다.
시계수리에 왕문외한이 분해하여 거꾸로 조립했을 뿐이지만 반년 전에 우정어린 주변의 설득에 대장암을 수술받고 여생을 넘보고 사는 주인을 딱 닮은 것 같아 묘한 감흥이 일지만~
고장 난 시계에 빗대어 멀리 간 세월을 탓하는 어리석음을 비웃는 내가 대견해서 하는 말이다.
피가로의 결혼 중 편지 이중창<
- 글 / 쏠 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