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함께한 여행
- 소년에서 노년까지
평소의 삶에서 잠시 떠나 또 다른 삶 속으로 들어가 새로운 것을 맛보는 것이 여행이다. 여행이란 늘 즐겁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내 삶에서 여행을 떠올려본다. 내 삶에서 수많은 여행이 있었다. 혼자 떠나는 여행, 둘이 떠난 여행, 그리고 여럿이 함께 떠난 여행, 수학여행, 졸업여행, 신혼여행, 해외여행 등등 수없이 떠났던 여행, 그 여행에서 많은 것을 얻기도 했지만 잃은 것도 있었다. 2008년 제주도로 떠났던 수학여행은 교통사고로 두 명의 제자를 가슴에 묻고 온 여행이기에 가슴 아픈 여행이었다.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하고 오는 것이 여행이다. 어쩌면 우리 삶이 여행인지도 모른다. 멕시코 여류화가 프리다 칼로는 자신의 마지막 일기장에 ‘이 여행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이라고 적었다. 어쩌면 자신의 힘든 삶을 여행에 비유하여 표현한 것인지 모른다.
매사가 아름다운 꿈과 낭만으로 보이던 고등학생 시절, 친구들과 설악산으로 떠났던 고2 때의 수학여행은 나에게 많은 변화를 준 여행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낯선 곳으로 전학을 온 나는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남 앞에 서는 것 자체가 두려움이었고 친구들도 제한적으로 사귀게 되었다. 그러던 내게 새로운 삶을 찾도록 한 것이 고등학교 2학년 때 다녀온 수학여행이었다.
학교 운동장에서 광주고속버스 열두 대에 나눠타고 설악산을 향해 출발했다. 내 자리는 안내양이 있는 출입문 쪽 자리였다. 그 자리를 서로 앉으려 했지만, 운이 좋게 내가 그 자리에 앉게 되었다. 안내양 이름이 아마 김미숙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주머니에서 아카시아 껌을 꺼내 건네주며 말을 붙이기 시작했다. 안내양은 서너 살 연배라 사촌 누님 정도라 생각하고 거리낌 없이 말을 주고받았다. 남자들만 모여있는 남학교라서 모두 안내양에게 한마디씩 건네느라 경쟁이 붙어있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당시 순천고에는 금녀의 지역처럼 모두 남자들만 있었다. 선생님들도 모두 남자들이었다. 여자라고는 행정실 여직원 한 명이 있어 남자들만 있는 세상에 홍일점이었다. 그러니 버스 안내양을 보고 불나방처럼 달려들어 수작을 부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뒷전이고 오직 안내양과 말을 붙이는 게 즐거움 중의 으뜸이었다. 물론 그 신선한 설렘은 오래가지 않았지만 수학여행을 떠나는 들뜬 마음에 안내양과의 동행은 기폭제 역할을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속리산을 거쳐 설악산 숙소까지 가는 오랜 시간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새로운 풍경과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여학생들에게 손을 흔들며 우리의 존재를 알리려 모두들 들떠 있었다. 당시에는 펜팔이 유행했다. 한 친구의 제안으로 여행 기간 내내 여행지에서 산 그림엽서에 밤새 ‘펜팔 원함’이라는 글을 정성껏 쓰고 짤막한 자기소개와 주소를 적어 차창 밖으로 여학생들이 지나가면 엽서를 전단처럼 뿌렸다. 나도 그 중 하나였다. 그렇게 뿌린 엽서에 효과를 발휘한 친구가 있었다. 답장이 온 것이다. 그러나 난 한 달이 넘게 기다려도 편지 한 통 오지 않았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내가 적은 주소가 문제였다. 고지식하고 엄한 아버지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알고 지낸 다른 학교 친구집 주소를 적은 것이 문제였다. 하필이면 그 친구 자취방이 지금은 금강 아파트가 들어선 봉화산 아래 무허가촌이 즐비한 둑실 마을 쪽이었다. 그곳은 주소 하나에 서너 집이 몰려 사는 곳이었다. 하필 그 주소를 받다니 운명의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설령 편지가 왔어도 내 이름을 모르니 그 편지는 주인을 잃고 떠돌거나 수취인 불명으로 되돌아갔을 것이다.
내 성격을 완전히 바뀌게 한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수학여행 마지막 밤, 내 생애 처음으로 맛본 캠프파이어를 하던 밤이었다. 친구들은 모두 모닥불 주변에 모여 흘러나온 음악에 맞춰 당시 유행하던 고고 춤을 추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배정된 방에서 우두커니 앉아 바깥을 살필 뿐 그들의 향연에 끼어들지 못했다. 마지막 밤이니 맘껏 즐기자는 친구들의 재촉에 어쩔 수 없이 끌려 나가 친구들과 어울려 고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고고 춤의 스텝은 단순하여 경험이 많지 않은 나도 금방 그 리듬에 맞춰 온몸에서 땀이 나도록 고고 춤을 출 수 있었다. 주변 친구들이 손뼉을 치며 내 흐느적거리는 춤 동작에 응원을 보내주었다. 친구들의 환호성과 응원에 힘입어 내성적이던 나는 나 스스로 만들어 나를 가둬둔 내 견고한 틀을 부수고 서서히 다른 세계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미친 듯이 스텝을 밟으며 내 고등학교 2학년 수학여행의 마지막 밤을 하얗게 불살라버렸다.
그 열기는 다음날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이어져 잠시 앉아있을 여유도 없이 목이 쉬도록 유행가를 목청껏 따라 부르고 그 열기로 버스가 지구를 떠나 먼 우주 속 블랙홀로 빨려 들어갈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알을 깨고 나온 아프락사스처럼 새로운 세상으로 다가가는 나를 발견하던 순간, 내 성격은 서서히 변하고 있었다. 누군가 나를 알아주길 기다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나를 알려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 수학여행을 계기로 더욱 친해진 친구들이 고등학교 3학년 때는 각각 다른 반으로 흩어졌지만 헤어짐이 아쉬워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일곱 명의 친구들이 ‘디딤돌’이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79년 1월 1일을 모임 출발점으로 삼고 사진관에서 마지막 교복을 입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 친구들과 최루탄 속에서 80년대를 보내고 살아남아 대학교 졸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도 변함없이 부부 동반으로 지금까지 모임을 하고 있다. 회갑, 진갑을 넘기면서도 건강하게 모임을 유지하는 친구들이 고맙다. 1년에 한두 번 국내 여행이든 해외여행이든 다녀오자고 회비를 모았다. 국내 여행뿐만 아니라 해외여행도 몇 차례 다녀왔다. 2011년에는 제주도를 다녀왔고, 2015년 설명절을 전후하여 그동안 고생한 부인들에게 선물을 주자는 의미로 집안의 핀잔을 감내하며 여자들만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을 보내주기도 했다. 2017년에는 중국 계림 여행을 다녀왔고 2024년 올해는 일본 도야마, 알펜루트 여행을 다녀왔다. 일본의 가을 여행지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일본의 알프스'라고 불리는 도야마 알펜루트 단풍을 보기 위해서였다.
이번 여행객 40명 중에 우리 팀 열 네 명이 포함된 '참좋은여행사' 패키지여행이었다. 내 학교 근무 날을 피해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다녀온 여행이었다. 아세아나 전세기로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도야마 공항에 도착 후, 도야마 시내로 이동하여 ‘후간 운하 환수공원’을 둘러보고 쿠로베로 이동하여 쿠로베협곡 도롯코 열차에 탑승하고 우나즈키에서 네코마타까지 왕복 운행하는 코스였다. 협곡을 따라 창문이 없는 도롯코 열차가 달렸다. 발아래 계곡이 아찔하다. 관광을 마친 후 숙소가 있는 가나자와 하얏트 하우스 호텔로 이동하여 짐을 풀고 일본에서의 첫 밤을 보냈다. 호텔은 신축건물이라서 넓고 깨끗했다. 이 호텔에서 2박을 했다.
둘째 날은 아침 식사 후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시라카와코 합장 마을’로 이동했다. 이곳에 도착했을 때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이 그곳 집들의 지붕이었다. 뾰족하게 솟은 지붕 모양이 기도할 때 두 손을 모은 형상을 하고 있어 합장촌이라 불린다고 한다. 이곳은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려 지붕의 경사가 뾰족해졌다고 한다. 그래서 겨울 풍경이 절경이란다. 여행 중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는 곳이 있다. 쇼핑센터다. 쇼핑센터 도착하기 전부터 가이드는 열심히 약을 팔기 시작했다. 누구나 들으면 귀가 솔깃하여 안 살 수가 없는 것들을 미리 소개한다. 일본에 가면 나또를 먹을 수 있다. 나또를 먹을 땐 발효된 콩을 먹는 게 아니고 일흔일곱 번을 휘저어 만들어진 거미줄 같은 효소가 약효가 있단다. 바쁜 시간에 일흔일곱 번을 저어 나또를 먹어야 하나 귀찮다는 생각에 포기하려던 순간, 가이드가 약장사가 되어 제대로 약을 팔기 시작한다. 일흔일곱 번 젓는 것이 귀찮은 사람을 위해 캡슐로 만든 나또 키나제가 나왔다고 소개한다. 하루 두 알 잠자기 전에 먹으면 나이들어도 혈관 막힐 걱정 없다고,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은 꼭 사가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약을 판다. 거기에 넘어가 만만치않은 가격이지만 1년분이 120만 원이래서 나는 6개월분을 60만 원 결재하고 구매했다.
점심을 먹고 일본 3대 정원 중 하나인 ‘겐로쿠엔’을 둘러보았다. '겐로구엔'과 더불어 미토의 '가이라 쿠엔'과 오카야마의 '고라쿠엔'이 일본 3대 정원이란다. 그 중 하나를 보게 되었다. 일본 정원을 맛보기로 본 셈이다. 그리고 해가 질 무렵 가장 일본다운 거리 ‘히가시차야 전통 거리’를 둘러봤다. 이곳은 에도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고 한다. 과거에는 일본 기생 '게이샤'들이 춤과 악기를 연주하는 가게가 있었는데 현재는 거의 사라지고 찻집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일본의 옛 정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거리였다. 거리를 둘러보고 주차장으로 가서 차를 타고 호텔로 이동하려고 주차장을 빠져나오다 우리를 태운 관광버스가 승용차와 접촉사고가 났다. 가벼운 사고지만 일단 사고가 나면 일본에서는 경찰까지 출동하여 매우 복잡한 상황이 벌어진단다. 무작정 차에서 기다릴 수 없어 가이드의 제안으로 4명씩 조를 짜 택시로 숙소까지 이동하기로 했다. 한창 바쁜 저녁 퇴근 시간에 10대의 택시를 잡는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다행히 저녁 식사 시간은 자유 식사 시간으로 배정되어 택시를 잡아타고 호텔로 갔다. 택시비도 운전자에 따라 제각각이었다. 우리 일행은 인근 대형쇼핑센터 식당에서 메뉴를 골라 저녁 식사를 하고 호텔로 돌아와 둘째 날 밤을 보냈다.
셋째 날은 여행 주 목적지인 다테야마 알펜루트를 가기 위해 아침 일찍 출발했다. 버스로 1시간 40분을 달려간 일본의 북알프스라 불리는 고산지역 이었다. 산악관광 루트로 케이블카, 버스, 트롤리버스, 로프웨이, 도보 이동 등으로 86킬로미터를 이동하는 장정이었다. 버스를 타고 맨 처음 도착한 곳이 해발 1,000m에 위치한 분지로 60여 종의 원생림이 자생하는 '비죠다이라'를 걸어보며 우리나라 백두산 천지 같은 칼데라호를 볼 수도 있었다. 또한 버스 이동 중에 차창 밖으로만 볼 수 있었던 350m 높이에서 쏟아지는 일본 최고 낙차의 '쇼묘 폭포'를 스치듯 만나고, 일본 3대 영산 중 하나인 다테야마의 최고 봉우리 '다이칸보'를 관람하고 코스의 중심이 되는 지점인 무로도에서 다테야마의 절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일본 알프스 최고의 절경을 만날 수 있는 다이칸보에서 쿠로베 다이라 까지는 약 7분간 로프웨이를 타고 내려와 댐 수문 위를 걸었다. 높이 186m 너비 492m의 거대한 아치형의 댐은 쿠로베 호수에 있는 쿠로베 댐이다. 이 댐은 해발 1,500m에 건설된 일본에서 가장 높은 댐이란다. 그 댐 건설에 관한 역사를 사진으로 관람하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바쁜 여정을 마치고 우리는 마지막 3일째 숙소로 가기 위해 버스로 1시간여를 달려 '하쿠바 그린 프라자' 호텔로 이동했다. 이 호텔은 나가노 동계 올림픽 때 선수들의 숙소로 이용한 것을 새로 단장하여 호텔로 사용하고 있단다. 호텔의 밤 풍경이 동화 속 성처럼 느껴졌다. 호텔에 도착하여 뷔페식 저녁을 먹고 유카타 옷으로 갈아입고 온천욕을 즐겼다. 아침에 일찍 눈이 떠져 호텔 주변을 산책했다. 호텔 뒤쪽으로는 스키장이 넓게 펼쳐져 있고 한적한 곳이라 공기도 깨끗한 곳이었다. 단점이라면 호텔 비용이 다른 곳보다 비싸다는 게 단점이라 하겠다. 주변에 호텔이 없으니 폭리를 취해도 할 말이 없단다. 마지막 날은 숙소에서 버스로 한 시간 이상을 달려 도야마 공항까지 가야하기에 아예 관광은 할 수 없었다. 도야마 공항에서 인천공항으로 이동하고 공항열차로 서울역까지 이동한 뒤 KTX로 순천역까지 이동하여 저녁을 먹고 집에 도착하기까지 꼬박 하루가 걸린 셈이다.
3박 4일간의 친구들과의 여행, 더 나이가 들면 이렇게 함께 여행하고 싶어도 누군가가 빠지면 포기하게 되고 좀처럼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울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다녀오자는 마음들이 서로 통하여 이번 여행을 알차게 다녀온 듯하다. 여행은 누구랑 함께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행 기간 내내 우리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1970년대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청춘의 뜨거운 열정을 일본 여행에서 발산하고 왔다. 이번 여행을 통해 고등학교 2학년 때 인연을 맺은 친구들이 소년에서 노년으로 늙어가는 동안 단 한 명의 낙오자 없이 모두 건강하게 살아 여행을 다녀왔다는 것이 무엇보다 즐거운 일이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