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이후 대만 음식(cuisine)의 형성: 민난(閩南)과 학카(客家) 음식의 대두
마이클 사오 대만중앙연구원
메이창 진웬과학기술대학
메이-후이첸 중국문화대학
대만 음식의 출현은 대만의 민주화 과정과 1980년대 이래 국가 정체성의 성장과 관련이 깊다. 어떠한 측면에서 대만 음식 의 형성은 중국 본토의 장저(江浙) 음식, 쓰촨(四川) 음식, 광둥(廣東) 음식 체계가 우세한 가운데 대만 내 두 개의 주요 민족 음식, 즉 민난과 학카 음식이 자유화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한족의 음식으로 알려진 민난과 학카 음식이 대만을 대표하는 요리로 급부상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한족이 아닌 원주민 음식은 여전히 대만 음식으로 통합되지 않고 있는 점 또한 주목 해야 한다.
이 글은 대만 음식의 부상이 정치적 변환과 문화적 변화를 뛰어넘는 사회적 산물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민난과 학 카 민족 음식의 소비는 가정의 범주를 넘어 레스토랑에서 볼 수 있는 상품화된 ‘요리’로서 빠르게 자리잡고 있다. 이 글은 민난과 학카 민족 음식의 ‘요리화’와 ‘대중화’의 특징과 변화를 설명하고자 한다. 또한 민난, 학카 음식이 어떻게 ‘표현’되 고, 어떠한 ‘위치’에 있고, 대만 국가 음식으로써 ‘어느 정도’ 역할을 하는지도 주목한다. 결론에서는 민주주의, 민족성, 국 가정체성이 어떻게 연관되어 있고, 이들의 관계가 대만의 현대 음식에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지를 살펴본다.
주제어 대만국가음식,학카민족음식,민난민족음식,원주민음식
I. 서론: 대만 요리의 역사와 정치의 개요
‘대만 음식(Taiwanese cuisine)’이라는 단어가 대만의 음식문화에 포함되기 시작 한 지 단 10년 만인 1990년대부터 대만 요리의 부활과 재현을 위한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는 1898년 ‘대만 음식’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하고, 1903년 일본 식민 정부가 대만 요리를 일본 요리에서 분리하여 인식하기 시작 한 지 90년 만이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중국 국민당 지배하에서 대만 요리는 40여 년간 억압받고 격하되었으며, 대만 요리 문화는 현지 음식으로, 또 는 간단한 음식으로만 여겨졌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함께 ‘대만 음식’이라는 단어의 사용이 금지되었다. 40년 이상 국민당의 중앙집권 체제에 있던 대만 의 당시 고급 요리는 ‘장저(江浙)1 요리’였다. 식민지 일본 통치 아래에서도 대만 음식은 그 고유성을 인정받았으나, 1980년대에 시작된 정치 민주화와 문화정체 성 운동이 발생한 1990년대까지는 암흑기를 겪어야 했다(Hsiao and Lim, 2015). 그 러나 대만 음식의 부활은 사실상 1980년대에 시작된 민주화와 문화토착화 운동 의 부산물이라고 볼 수도 있다.
대만 요리의 부활로 대만 음식의 다문화, 다민족적 특성까지 주목받게 되었 다. 대만 음식에 대한 주목과 함께 많은 음식문화가 발전했고 더욱 육성되기 시 작했는데, 그중 ‘군인 마을 음식(대륙 출신자들의 군대기지 음식)’, ‘민난 음식[남부 푸젠(福 建) 음식]’, ‘학카 음식’, ‘대만 원주민 음식’들이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2000년 이 후 대만 음식문화 세계에서는 음식의 자유화(liberalization)가 발생하였다. 오랫동 안 인기 있었던 중국의 장저, 쓰촨, 광둥, 베이징 음식 외에도 위에 예로 든 군인 마을 음식, 학카 음식, 원주민 음식 등 대만 전통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많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글에서 주장하려는 것은 대만 전통음식의 부상이 실제로 요리의 문화적 요소와 특성에 있어 ‘장르적 본질’을 풍부하게 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실제로 모 든 민족(ethnic) 음식이 대만 요리의 ‘특징적 요소’에 포함되지는 않는다. 이 글에 서 분석한 바로는, 군인 마을 음식이나 원주민 음식과 같이 최근 대두하고 있는 음식뿐만 아니라 학카 전통음식 또한 대만의 주요리에 포함되지 않았다. 오늘날 대만 요리를 구성하는 핵심요소는 민난의 전통음식이다.
번역: 권정화/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석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