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우렁 더우렁 살자
내가 글을 쓰거나 시를 쓰거나 서예를 한다는 것은 생각해 본적이 전혀 없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너무 잘알기 때문이다 붓을 잡기에는 가지고 있는 재량이 턱없이 부족할뿐만 아니라 이렇다 하게 남에게 보여줄만한것도 자랑할만한 것도 또 누구에게 훈수할수 있는것도 전혀 없으니 역시 나는 부족함이 너무 많음을 안다
남들은 어려움에서 용케도 빠저 나오고 획기적인 순간도 있었으며 무無에서 유有를 캐내는 재주가 있지만 나에게는 전혀 그런 재주가 전혀 없다 뿐만 아니라 타고난 분지복分之福조차도 지지리도 없다
어쩌다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벌써 수십년이나 되였다
일기라기 보다는 단순히 그날그날에 있었던 일을 메모하는데 불과한 가계부 적는식이였다
매일같이 다람쥐 체바퀴돌듯 하는 지극히 평범한 생활에서 일기를 쓰는 흥미조차도 느끼지 못했다
일상 똑같이 반복되는 일을하고 늦게야 집에 돌아오는 생활이 연속되다 보니 무의미 하게 느끼었다
그러나 그나마 하지 않으면 내생활은 아무런 보람이 없다
일기 쓸거리를 찾기 위하여 곧장 오던길을 애둘러 샛길을 택하고 지름길을 찾는다 공연히 일없이 두리번거리는 습관이 생기였다
남의 시도 마음에 들거나 쓸만한것은 표절도 해보고 좋은 문장이나 신문쪽지도 스크랩해본다
자신이 두번 세번 읽어봐도 이해하지 못하는 글을 시詩라고 써보기도 한다
오랜세월이 지난 지금에와서 수십년간 하루도 걸르지 않고 써내려온 일기를 읽느라면 미소도 나오고 실소도 나오고 안타까운 생각도 든다 겨우 이것을 남기려고 했나하는 생각이 들어 버리려다 다시 주춤하고 또다시 버리려다 마음을 접는다
타고난 약체때문인지 병원과 약국을 단골삼아 내집처럼 드나든 세월을 뒤돌아보면서 마음이 아프기도 하지만 우연이라도 내 아이들이 알게 될가봐 은근히 주저하기도 했다
우연이랄가 유전적이랄가 아버지의 약체를 이어 받았는데 내아이 들이 또다시 이어 받을가싶어 불안스럽기도하다
오래전의 일기를 들여다보면 흐려쓰고 건둥건둥 쓰고 갈겨쓰고 멋대로 쓰고 도대체가 마음에들지 않는다
어떤것은 의미가 불분명하고 무엇을 쓰려했는지 이해가 가지않는 부분도 있다
마치 쓰레기장이나 휴지통같이 느낌이 난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지저분하다
버려야지 버려야지 하면서 마음과 행동이 접점을 찾지못하고 평행선을 계속 그리고 있다
한장 한장 읽다보니 그날의 현실이 나타나고 그날의 아픔도 따라 나온다
즐거웠든일은 가믐에 겨자씨이고 생각하기싫은 추억은 온통 산더미같다
버리기에는 이제껏 써내려온 세월이 아깝고 담아두기에는 지저분하고 너무나 초라하기도하다
2003년도 스크랩되였던 평범한 글을 보면서 [꼭 그래야 했나 ]를 써보고 2005년도 어느날에서 [영원은 없다 ]
라는 글을 만들었다 유행가 가사처럼 [나 혼자 만이] 의글이다
초라하지만 성취감도 느끼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함을 알면서도 글쓰기를 경험했다
시한줄도 이름모를 어느 누구의 모작같은 부끄러운 한편을 써본다 시는 누군가의 감동을 얻기에는 힘들다는것도 알았다 수없이 많은 이들이 많은시를 써왔지만 사라지지않고 숨쉬는글은 그리 많지 않은것 같다
서예도 그렇다 어느누구에게도 신은 같이해 주지 않았다 단지 한 인간이 썼을 뿐이였다 나도 인간이다
서예는 책상속에 일기처럼 가두어 둘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지나고 알았다
같이 공유하고 같이 나누고 같이 품평 받아야 하는게 서예인것 같다
모르는 사람도 알수있도록 같이 하는게 바로 서예의 매력이다
선배로 부터 50여년이나 붓을 잡고서도 단 한점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100장이 넘는 글을 썼다는 말을 들었다
1000자루의 붓이 몽당붓이 되고 10개의 벼루가 구멍아 났다는 서성書聖도 있는데 단 몇자루의 붓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버렸다
어차피 어우렁 더우렁 사는 세상 나도 따라 어우렁 더우렁 살고 있으니 무얼그리 안타까워할가
글도 시도 서예도 여기에 목숨건것도 아닌데 그냥 어우렁 더우렁 하면 될것을 왜 집작하는 것일가
수십 수백 아니 수천개의 글이라도 숨쉬는 글이 아니라면 허수아비에 예쁜 옷을 입힌것에 무엇이 다르랴
그냥 어우렁 더우렁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