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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나치의 광장민주주의를 어떻게 극복했는가? 나치 정권은 독일의 광장 민주주의가 만들어낸 최악의 작품이다. 1919년 탄생한 바이마르 공화국은 최초로 의회민주주의를 도입하고 복지제도를 갖춘 역사상 가장 민주적인 체제였다. 대통령제와 의회내각제의 혼합 형태인 바이마르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은 사민당의 대부 프리드리히 에버트였다. 에버트 총리는 1925년 임기 동안 공화국을 성공적으로 통치했다. 하지만 1929년 뉴욕 증시가 폭락하며 세계 경제가 침체의 늪에 빠졌다. ‘검은 목요일’로 유발된 세계 경제 위기는 곧바로 독일 경제에 치명타를 날렸다. 해외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이자는 급등했다. 기업이 연쇄적으로 파산했고 거리에는 실업자들이 넘쳤다. 산업생산이 급감했다. 철강생산은 한 해 65%나 급감하는 상황이었다. 사회복지비용의 급증했고 은행, 보험 등 금융기관이 도산했다. 대중은 분노와 좌절에 빠졌다. 불법시위와 집회, 정치적 활동이 난무하며 의회 시스템마저 붕괴했다. 의회는 나치제국당과 공산당에 의해 장악되었으며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춘 히틀러의 등장이 예고되었다. 히틀러는 대중을 매료시켰고 대중은 히틀러에게서 희망을 봤다. 이성은 마비되었고 광장의 소리가 모든 것을 지배했다. 유대인은 물론 장애인, 국적 없이 떠도는 집시족들이 광장의 박수 속에서 사라져갔다. 유대인 600만, 장애인 수십만 명, 100만의 집시족 들이 죽어나갔다. 무엇보다도 고리대금업 등 장사에 능했던 유대인들이 광장의 먹잇감이 되었다. 일본 관동대지진 때 조센징을 살해하던 수법 그대로였다. 홀로코스트! 독일은 지금도 나치 시대 지식인이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던 것을 매우 수치스럽게 생각한다. 독일은 홀로코스트로부터 법치주의의 소중함을 배웠다. 이 교훈이 1949년 기본법에 담겨 있다. 기본법 20조는 “국가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규정과 함께 “국민은 선거를 통해 행정, 입법, 사법 등 삼권을 창출해 권력을 행사”하도록 정하고 있다. 국민이 권력을 삼권에 위임한 것이다. “조중동이 신문이면 우리집 화장지는 팔만대장경”(?) 최근 광화문 광장에 대중이 몰려들고 있다. 광장에는 선동 문구가 넘쳐난다. “민족의 반역자 박근혜를 처단하라”며 단두대도 등장했다. “이석기를 석방하라”, “박근혜는 하야하라”는 목소리가 넘쳐난다. 고등학생들도 등장했다. “박근혜를 물리치고 혁명 정부를 세우자”는 현수막이 들려 있다. 철부지 어린아이들은 김무성, 이정현, 김기춘의 형상을 한 공을 만들어 밟고 걷어차며 기뻐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입을 강제로 벌려 사약을 먹게 하는 모습, 수의를 입은 대통령의 모습도 눈에 띈다. 광장의 반란이다. 언론이 가관이다. 히틀러의 나팔수인 괴벨스를 뺨친다. 선전선동의 달인 괴벨스에게 대중은 하나의 수단에 불과했다.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누구든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는 말이 그것을 대변한다. 맞다. 깨어 있지 못한 대중은 권력의 밥이다. 광우병 조작으로 이명박 정권을 무릎 꿇린 언론이 또 다시 그 유혹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종편 TV는 광화문 시위를 생중계하다 시피하고 있다. 조중동은 1면 톱으로 “100만, 200만 촛불 민심”이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한다. 특종 경쟁을 하며 확인되지 않을 소문들을 실어 나르고 있다. ‘민중총궐기투쟁본부’라는 주최 측이 부르는 대로 받아 적는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이 최순실 작품이라고 해도 그대로 받아 적을 판이다. 언론은 국제적으로도 망신을 떤다. 트럼프의 연설이라는 “여성 대통령의 끝을 보려면 한국의 여성 대통령을 보라”는 코미디는 물론 “주한 미국대사관도 촛불 시위 때 소등했다”는 보도, 주한 미국대사관의 “최태민은 한국판 라스푸틴” 보도 모두 허위다. 미용 2000억, 정유라 박근혜 자녀설, 최순덕 성심여고 동창설 등등 막장 드라마 보다 재밌다. 한 독자는 “조중동이 신문이면 우리집 화장지는 팔만대장경이다” 라고 조롱하고 있다. 2010년 서울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에 참석했던 오바마의 기자회견 풍경은 더 가관이다. 우리 언론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개최국에 감사해 한국 기자들에게 우선권을 주고 7차례나 질문을 요청을 했지만 침묵만 흘렀다. 심지어 오바마는 통역이 있으니 한국어로 질문해도 좋다고 까지 했다. 그래도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자 중국 기자가 나섰다. 오바마가 제지하자 한국 기자에게 질문권을 위임하란다. 치욕이다. 이런 언론이 광우병 사태, 문창극 낙마, 사드 조작에 이어 최순실 조작에 나서고 있다. 살인범을 현장에서 잡아도 재판 전에는 처벌하지 못할진대 언론이 조작해낸 광장의 요구라며 대통령을 파면하려 한다. 인민재판이다. ‘카더라’ 언론, 기레기들의 반란에 지나지 않는다. 대통령이라 해도 법적 절차에 따라 책임을 묻고 범죄행위가 있다면 합당한 처벌을 받도록 하라는 것이다. 광화문 광장에 대중을 불러 모으는 일의 주체는 ‘민중총궐기투쟁본부’다. 그리고 이들의 배후에는 문재인, 안철수, 박지원, 박원순, 이재명 등 야당 정치인들이 있다. 투쟁본부는 민노총의 주도 하에 노동자 연대, 민권연대, 범민련, 청년좌파,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53개 단체가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통진당 해산을 반대했던 단체와 대법원에서 이적단체 판결을 받은 단체도 포함되어 있다. 투쟁본부가 조작한 100만, 200만 명의 진실은 무엇일까?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에서 남대문까지 면적이 대략 9만2000평방미터다. 여기에는 청계광장, 시청광장도 포함되어 있다. 넉넉하게 잡아 1평방미터에 3명이 들어간다 해도 그 숫자는 27만여 명에 불과하다. 미 국방부가 위성사진을 통해 집계해보니 11만3374명이다. 대한민국 언론은 이 숫자와 함께 그 수명을 다하고 말았다. 분단국의 운명 “건전한 사회는 보수와 진보, 양날개로 날아야 한다.” 옳다. 하지만 이념적으로 분단된 나라에게는 ‘독’이다. 진보와 종북이 구별되지 않는다. 이 말은 종북세력의 방패막이요 온상이다. 통진당은 민주당을 숙주로 정치권에 입성했다. 통진당원이 더불어민주당의 도움으로 20대 국회에 무소속으로 진출한 것도 사실이다. 서독과 베트남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분단국이었다. 두 나라 모두 민주주의 국가였으며 동독이나 월맹에 비해 경제적으로 부유했다. 하지만 독일은 서독의 주도 하에 자유민주통일을 이뤘고 베트남은 적화통일되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분단국 베트남의 민주주의가 헌법을 수호할 의지와 제도적 장치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베트남과 서독의 차이다. 베트남의 여린 민주주의는 헌법을 수호하고 법치주의를 지킬 만한 역량이 결여되어 있었다. 서독은 국가의 위기 때마다 헌재와 헌법수호청이 나섰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1974년 서독은 브란트의 동방정책으로 평화무드에 빠져 있었다. 안보는 뒷전이었고 ‘접근을 통한 변화’가 대동독정책의 주류였다. 이런 가운데 헌법수호청과 검찰은 총리실에서 암약하던 귄터 기욤을 체포했다. 브란트는 안보 무능을 인정하며 총리직에서 사퇴했다. 대한민국은 분단국이다. 주요 이슈들이 북한과 연계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다. 헌법을 수호하고 법치주의를 회복하는 일이 그 한계를 극복하는 유일한 길이다. 박상봉 독일통일연구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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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라의 앞날이 정말 걱정스러워 깊은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우리나라가 월맹을 뒤쫓지 말고 독일을 배워 진정한 법치국가의 면모를 갖추기를 기도합니다.
최근 몇달간의 상황들이
이해가 잘 안되는 정세이지만
박대통령께서 이루신 업적을 분석해서
비교 유추 해보면 탄복하실 겁니다
믿고 따르면 곧 장막이 걷히고 봄이 옵니다
우리들 서로 좋은인연에도 감사하며
대한민국 화이팅 입니다!!!
공감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정말 감사합니다.
침묵하는 다수를 그들이 잊지 말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