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의 중심이 예루살렘 교회에서 안디옥 교회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없는 탁월성이 안디옥 교회에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고난을 불행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스데반의 순교로 환란이 일어난 불행인데 흩어져 복음을 전하면서 부흥이 되었습니다. 축복입니다. 불행과 행복은 공존하고 평탄함과 어둠도 함께 존재합니다. 성도는 조건을 가지고 판단하는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최종 승리를 주셔서 협력하여 선을 이루심을 믿는 자들입니다. 믿음의 태도는 과거에 대해선 기억하고, 미래에 대해서는 기대하며, 현재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며 충성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해나 납득이 돼야만 받아들이려 하는데 초등학생들에게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역학을 설명한다고 알 수 없듯이 다 이해하지 못해도 믿고 가면 믿음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충성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이 충성하게 된 이유는 그 바탕에 신뢰가 있기 때문입니다. 해석하려 하지 않고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핍박 때문에 흩어진 사람 중 몇이 안디옥에서 헬라인에게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랬더니 수많은 사람이 주께로 돌아와 믿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고난을 불행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심이 있다는 것을 믿고 충성했습니다(19-21). 그랬더니 하나님 함께 하셔서 역사하시더라는 것입니다.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안디옥 교회는 디딤돌 역할을 하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베드로의 보고를 받고 하나님의 뜻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인 줄 알면서도 그 사건이 일회성이라 생각하고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신앙생활이란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되면서 변화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반응들이 나오는 것은 믿음과 충돌하며 내 뜻이 강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 나라의 일에 걸림돌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고넬료의 사건을 통해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안디옥 교회에 작은 불씨 하나를 주시니 즉시 순종하여 디딤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란 예수님이 하시는 모든 일들을 믿는 것입니다(요6:28,29). 안디옥 교회는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들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이 고향에서 많은 표적을 행하지 못했던 것은 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오래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변화가 없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은 반응이 나쁘고 주님의 일을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선교하고 전도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기뻐하는 성도들이 있으면 좋은 교회입니다. 그럼 디딤돌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일은 주님이 하시는 일을 보고 기뻐하는 것입니다(23,24). 안디옥 교회를 하나님이 사용하신 것은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이었기 때문입니다.
안디옥 교회 특징은 장벽을 넘어선 것입니다. 사람의 장벽, 환경의 장벽, 상식의 장벽을 넘어섰습니다. 바나바는 사람의 장벽을 넘어서서 사울을 동역자로 불러옵니다. 자기중심인 사람들은 자기 안에 머물러 있기에 장벽을 넘지 못합니다. 장벽을 넘는다는 것은 중심이 하나님 중심, 이웃 중심이 될 때 가능합니다.
유대 기독교인들은 사울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사울은 유대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고 스데반을 죽였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 사람은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라는 기억이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인들과는 합력이 안 되고 받아 주는 이가 없으니 다소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바나바는 사울을 이방인에게 최고의 전도자가 될 수 있는 동역자로 본 것입니다. 그는 언어가 되고 헬라 문화에 대한 이해와 깊이가 있으며 성경에도 능통하고 자신이 개종자입니다. 이방 전도에 있어서 이렇게 완벽한 사람이 없습니다. 바나바는 그걸 보는 눈이 있었기에 사울을 데려와서 1년 동안 함께 사역했습니다. 사울이 바울로 쓰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의 능력과 바나바의 착함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이 사람을 살리고 생명을 공급합니다(25,26). 사울과 바나바가 함께 사역하니 한 사람은 말씀을 잘 전하고 한 사람은 돌봄을 잘하니까 서로 보완이 되어 큰 부흥이 있게 되어 장벽을 뛰어넘는 단단한 교회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이때 비로소 처음으로 크리스찬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는 스스로 부른 이름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부른 이름입니다. 이들은 장벽을 뛰어넘어서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한 사람들이라는 이미지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세 번 나오는데 전부 벽을 깨는 사람들이라는 늬앙스가 있습니다(행26:28,29 ; 벧전4:16).
이들은 환경의 장벽을 뛰어넘습니다. 환란을 불행이라고 말하지 않고 그것을 축복이라고 말하는 존재가 크리스천입니다(고후4:7-10). 어떤 환경도 이겨내는 불굴의 신앙.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끝이 좋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사방으로 우겨 쌓임을 당하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상식의 장벽을 뛰어넘습니다. 원래 상식은 모교회가 지교회를 돕지만 안디옥 교회는 큰 흉년에 본인들 어려움에도 유대 형제들을 돕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더 주시면 그냥 하면 됩니다. 상식을 뛰어넘는 것을 기적이라고 합니다. 그게 안디옥 교회 모습이었습니다(29,30). 안디옥 교회는 잘하는 것이 많았습니다. 우리에게 이같이 섬기는 게 상식이 되는 교회가 되라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주어진 힘이 다 다릅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각각 그 힘대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원리를 따라가며 순종할 수 있는 것이 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