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d Korea
Elizabeth Keith & Elspet K. Rebertson Scott
일제 치하
3.1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해인 1919년 3월 말 한국을 처음 방문한 이래 수차례 방문하여
우리의 문화와 일상을 그렸으며, 1919년 겨울 도쿄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을 소재로 한 그림을 전시했고, 1921년 서양인 화가로는 처음으로 서울에서 전시회를 열었으며, 1934년에도 열었다는 엘리자베스 키스. 한국 소재 그림을 가장 많이 남겼고, 그 작품들로 화가로 안정받았다는 점에서 키스와 한국은 특별한 관계라 할 수 있다.
엘스펫 키스 로버트슨 스콧
키스의 언니로 남편인 존과 1915년 도쿄에 와서 출판사를 운영하며 편집인으로 활동. 그림과 그림 설명은 주로 엘리자베스, 본문 글은 엘스펫이 썼다. (사진과 글, 본문 인용)
엘리자베스 키스 초상화
서울
아름다운 한국 여성들
뼈대가 작으며 얼굴 표정은 부드럽다. 온순하기만 한 것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완고한 구석이 있다. 가령 ~~ . 그러므로 한국 여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오직 한국 풍습을 존경하며 끈기와 친절로 대해야 한다
한국의 풍속
지난 십수 년간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문화적 유산을 귀중하게 여기면서 잘 간수해야 마땅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깊이 살펴보면 볼수록 한국의 문화는 존경하고 보존해야 할 아름다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골 결혼 잔치
신부 행차
신부
결혼식 하객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며
정월 초하루 나들이
어느 양반
인상적인 한국의 풍경
에카르트는 한국의 건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상황에 맞추어 단순하면서 우아하고 더욱 절제된 형태로 발전시켜 한국 특유의 건축 문화를 만들어냈다." 건축에 일가견이 있는 어느 일본인은 나의 건축물 판화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한국 지붕의 선은 중국이나 일본 것과도 다르고 독특한데, 당신은 그것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군요."
독립 선언의 날
두 자작
김윤식 초상화
선비와 양반
다양한 한국 사람들
총독
사람보다 식민지 제도와 한국인을 경멸하는 일본의 관료제도가 잘못된 것이었다. 총독이 준 명함은 나중에 도움이 되었다. 한국 사람들의 핍박상을 묘사한 나의 글과 엘리자베스의 그림을 일본 관헌에게 추궁당하지 않고 도쿄로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창씨개명은 법적인 것이 아니고 권고만 하는 것이라고 일본 정부는 발표했지만, 그 형식적 권고의 위력은 대단하다. (중략) 이런 '권고' 덕분에, 정부는 몇 달 후에 약 팔십 퍼센트가 이름을 바꾸어 둥록했다는 통계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
한국의 아이들
두 한국 아이
1919년 처음 제작, 1925, 1935년에 인쇄되었다. 1940년 크리스마스 실의 도안으로도 사용되었는데 거기에는 일제 탄압에 얽힌 일화가 있다.
선교사 셔우드 홀은 크리스마스 실을 만들어 팔아 결핵퇴치운동을 하고 있었다. 매년 실 제작을 해오면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유독 이 해에 인쇄까지 다 마치고 배부하기 직전에 일본 경찰이 들이닥쳐 압수해 간 것이다. 알아보니, 그림에 산이 너무 높아 군사 법에 어긋나며, 서기 1940년이라고 연도를 쓰면 안되니 일본 정부의 연호를 쓰라는 등 일제의 억지 트집에 불과했다. 원화를 그린 키스에게 저간의 사정을 이야기하자, 키스는 화가 많이 났지만 좋은 일을 위해서 참고 다시 그림을 그렸다. 금강산을 생각하고 그린 산은 대문 속에 집어넣었고, 서기 대신 '구 년째 발간ninth year'라 써넣었더니 일제가 허락을 했다.
연 날리는 아이들
키스는 선교사 로제타 홀과 가까운 사이로 서울에 올 때면 그 집에 유숙하곤 했다. 그 아들 셔우드 홀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폐결핵 환자 요양원을 해주에 설립하고 운영할 때 모금을 위해서 크리스마스 실을 만들어 팔았는데, 키스가 그 도안을 세 번이나 해주었다. 그림은 1936~1937년 크리스마스 실로 사용되었으며, 엽서와 포스터 등으로도 만들어졌다. 왼편 하단 '기덕'은 키스의 한자 이름
이순신 장군(추정)
하와이 한국인들
앨리스 아펜젤러 박사 (Dr. Alice Appenzeller). 한국에 갔던 선교사의 딸, 서울 태생. 이화여전 교장으로 거의 20여 년을 활동했던 그녀가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에 대해서 쓴 글. "내 한국 친구들은 독립적이고, 늘 유머가 있으며, 친절하고, 오래된 것을 사랑하지만 새 것을 쉽게 받아들인다. 그들은 이 하와이 섬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다. 언젠가 한국이 다시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 불리는 그날. 그들은 반가운 인사 알로하를 널리 전할 것이다."
첫댓글 일제 치하, 3.1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1919년 3월 말 한국을 처음 방문한 이래 수차례 방문하여 우리의 문화와 일상을 그렸고 세계에 알렸던 영국 여성화가와 그 언니의 그림과 글. 많은 배움이 있었습니다.
꼭 읽어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