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6.18. 스물다섯 번째 주. 설교문
묵상 우리는 하나님 앞에 모두 장님입니다.(1장)
신앙고백
찬송 23 만 입이 내게 있으면
기도 조용림 권사(549)
성경말씀 빌레몬서 1:1~7
찬양 샤론 중창단
설교 너로 말미암아
찬송 469 내 영혼의 그윽이 깊은 데서
광고 가족방문–이정석 집사 셋째 아들, 김복순 권사 따님, 손녀, 임명화 권사 며느님 외
정구섭 장로님 원대병원 입원
찬송 356 성자의 귀한 몸
축도 아프니까 그만하세요. 주님도 아프고, 나도 아프잖아요.
사람 일이란 알 수 없습니다.
8개월 전인가 됩니다.
채송화 같은 정봉임 권사님이 계셨습니다.
싫다는 말 한마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불평하는 말도 한 번도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우리 요양원에서 목사님과 4년여 함께 살았습니다.
코로나19 끝 무렵이었습니다.
열이 38도를 오르내렸습니다.
그래서 우리 직원이었던 큰 따님께 전화했습니다.
그래도 우리 요양원서 견디어 볼 테니 그리하게요.
예, 알겠습니다.
그러고 2시간 여만에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형제들이 병원으로 모시고 싶다고 합니다.
그래서 두말없이 119 응급차를 불렀습니다.
그때가 밤 8시경이었습니다.
저는 119 응급차 뒤를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삐용삐용 산란하게 달리던 응급차가 멈춰 서서
소방대원이 제 차 곁으로 오는 겁니다.
원대병원 응급실에 전화했더니 환자가 많아서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북대 병원에 전화해 보겠습니다.
전북대 병원에서도 2시간여를 대기해야 된다는 답변입니다.
그렇게 산업도로 갓길에 정차해 두고 오락가락하는 사이에
원대병원에 다시 전화를 해 보더니 치료받은 이력이 있다며 오라는 것입니다.
급히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내장이 괴사 되었습니다.
아뿔싸~ 가족들이 얼마나 속상했겠습니까?
차라리 모르고 천국 가셨더라면~
내장이 다 썩어 문드러지도록 아프다는 소리 한 번도 없었다니.
우리 정봉임 권사님이 이런 분이었습니다.
묵묵히 수녀처럼 사신 분입니다.
그래서 경찰 가족 앞에서
장례 예배를 성심을 다해 드렸습니다.
1절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2절, 자매 압비아와
우리와 함께 병사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노니
3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4절,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5절,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6절,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느니라
7절,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노라
지금 사도바울의 옥중 서신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골로새서에 이어 빌레몬서입니다.
바울이 사도바울일 수 있었던 것은
동역자들을 잘 만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홀로 살 수 없습니다.
그 누군가의 숨은 기도와 사랑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목사인 까닭도
우리 어머님의 골방 기도 때문입니다.
땡볕에서 머리에 수건 뒤집어쓰고 땀 찔찔 흘리며 콩밭을 매고
해지면 집에 터덜터덜 돌아오셔서 저녁밥 지어 자식들 먹이시고
늦은 밤에는 골방에 무릎 꿇고
눈물 흘리며
가슴을 치며 기도하셨기 때문입니다.
1절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2절, 자매 압비아와
우리와 함께 병사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노니
우리 교회에도
목사님이 사랑하고 목사님을 사랑하는
조용림 권사님, 백춘자 권사님, 김복순 권사님,
임성례 권사님, 박영수 집사님, 우리 유유순 집사님
그리고 눈물도 많으신 박연순 집사님
그리고 따님께서
늘 우리 엄마 오래 살게 해 주세요 하는 신용례 성도님
살아있다고 늘 매미 울음소리 내시는 이순희 집사님
목사님 간식을 끊임없이 대접하는 우리 진교희 권사님
기도의 용사 김정수 권사님, 임명화 권사님
못 배운 것이 서러워
글씨만 보면 떠듬떠듬 읽는 영특한 심재례 집사님~~
겁쟁이 강성자 권사님 때문에
엊그제도 소동이 있지 않았습니까?
거기에
수간호사 격인 믿음직한 강혜원 전도사까지 걱정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장선자 집사님이 객혈을 했다고
혹시 폐결핵이면 어떻게 하냐? 이것입니다.
그래서 늦은 밤, 성경을 읽다 말고
장선자 집사님을 태우고
부랴부랴 응급실로 달렸습니다.
응급실 앞에 도착하여
목사님 차에서 휠체어로 갈아 태우려는데
땅바닥에 주저앉은 것입니다.
얼마나 살이 쩢는지 바위덩어리였습니다.
도대체 움직여지질 않는 것입니다.
아이고 ~ 왜 이리 꼼짝도 않는다냐.
하다 하다 못해서 응급실 직원을 불렀습니다.
장선자 집사 아들놈은
네 어머니 객혈로 응급실 가야겠다.
그 뒤로 전화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래서 우리는 홀로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집에서 홀로 사시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여기가 천국인 줄 아시기 바랍니다.
1절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2절, 자매 압비아와
우리와 함께 병사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노니
사도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을지라도
사도바울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사도바울 곁에는
모범생 디모데, 큰형같이 듬직한 빌레몬
빌레몬의 아내? 압비아
우리 임성례 권사님의 자랑인 연대장 아들 같은
용감한 아킵보도 빌레몬의 아들?이었다지요.
3절입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우리 박영수 집사님 연세가 85세가 될 겁니다.
그런데도 목사님 막내 동생처럼 응석을 부리곤 합니다.
그러면서도 목사님께만은 매우 헌신적입니다.
우리 요양원 잔디밭이 400평입니다.
그 잔디밭에 잡초가 하나 없습니다.
목사님이 잔디밭을 사랑한다고 그렇게 지극정성을 드립니다.
잡초 하나하나를 뽑아내는 것입니다.
그 땡볕에
뒤 목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입니다.
그리고 잡초를 엮어서 목사님 보란 듯이 나무에 걸어 두었습니다.
잡초 하나에 100원이랍니다.
그리고 우리 박영숙 집사님은
목사님께 매일 아침 양파즙을 가져옵니다.
그래서 목사님도 혼자가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3장 9절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라.
빌레몬이 골로새 교회 목사이셨든지 간에
목회자의 기본 덕목은 은혜와 평강입니다.
4절입니다.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5절,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이것 또한 목회자의 덕목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사도바울은 참 좋은 동역자를 만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기도할 때마다
그를 생각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랬으니
빌레몬 목사는 성도들에 대한 믿음과 애정이 충만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떻습니까?
꼭 누구를 닮은 듯하지 않습니까?
그분이 누구겠습니까?
바로 우리 목사님 아니겠습니까?
박영숙 집사님, 우리 목사님이 어떤 분입니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사랑스런 목사님이시지요?)
목사님, 사랑합니다. 크게 외쳐 보세요.
그래서 목사님이 삽니다.
목사님도 여러분들을 목숨처럼 사랑합니다.
그렇지만 목사님 가족에게는 많이 인색합니다.
그래서 옛말에 남에게 잘하는 놈
가족에게 잘하는 놈 없다지 않습니까?
이것이 목사님의 허물입니다.
그래서 가족들에게 항상 미안하기만 합니다.
6절입니다.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느니라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의심의 여지없이 서로서로 믿고 사랑하는 세상.
그러나 부자지간에도 믿지 못하고
목사 성도 간에도 믿음이 없는 교회니,
국민이 대통령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더군다나
윤석열 대통령이 하는 꼬락서니도 문제지 않겠습니까?
정말 대한민국의 대통령인지 묻고 싶습니다.
일본이 핵 폐수를 바다에 방류한다지 않습니까?
그래서 소금 사재기로 난리가 났습니다.
전남 신안까지 소금 사러 간다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대한민국 대통령은 일본을 응원합니다.
얼마 전에도
한덕수 국무총리는 핵 폐수를 마실 수 있다고 장담했습니다.
마치 일본 사람 같았습니다.
제기랄!
속상하니까 정치 이야기는 그만두겠습니다.
어제가 토요일입니다.
종일 성경을 읽으며 주일 예배 준비를 하는 것은
목사님의 행복입니다.
그러면서 목사님도 촉촉한 눈을 닦으며 위로받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허락해 주겠습니까?
서울에 큰일을 벌여 놓았지.
논산 강경에도 일 벌여 놓았지.
신경 쓰는 일이 한두 가지겠습니까?
입에 모래알 씹히듯 밥을 한 술도 못 먹었습니다.
거기에 우리 장선자 집사님이 또 객혈한다는 전화를 받고
원인 규명을 하려고 원대병원 응급실로 급히 달렸습니다.
아들놈은 지 엄니가 객혈로 응급실에 간다고 하니
죽든지 말든지 내버려 둬요.
병원도 가지 마세요.
목사님이 차를 타고 가면서 아들놈과 전화하는 소리를 듣고서
엄마인 장선자 집사께서
목사님, 그냥 요양원으로 돌아가시지요.
저, 하나도 아프지 않아요.
이 말씀에 눈물을 콱 쏟을 뻔했습니다.
이런 빌어먹을 놈의 세상.
살아서 뭐 하겠습니까?
이럴 때
목사님도 살고 싶은 생각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복잡 복잡한 심사 가눌 길이 없었는데.
7절입니다.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노라
빌레몬 목사는 결코 성자가 아닙니다.
빌레몬의 노예였던 오네시모는 도망쳐서 이렇게 말하지 않겠습니까?
마태복음 25장 24절입니다.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사람~
이렇듯 노예 오네시모의 입장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목사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님은 성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종로서 뺨 맞고 한강에 화풀이도 합니다.
때론 변덕스럽게 삐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목사님을 미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옹졸한 죄인입니다.
이럴 때마다 Who am I? 묻습니다.
그래서 살고 싶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죄송합니다.
우리 권사님들 앞에서 못하는 말이 없습니다.
목사님이 화려하게 사는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냥 콩나물국밥 좋아하는 털털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빌레몬처럼
우리 성도님들께 칭찬받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7절입니다.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노라.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제 마음을 후벼 파는 슬픔도 있었지만
사도바울처럼
사랑 때문에
울어야 했고
그러다 약해져서 심장이 울렁거리기도 했습니다.
어제도
불쌍한 우리 장선자 집사님을 원대병원 응급실에서 모시고 오면서
가슴이 많이 울렁거렸습니다.
우리 장선자 집사님은 눈이 보이질 않습니다.
아들놈에게 녹내장 수술하자고 했더니
들은 척도 안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데도 내 자식이 최고입니다.
슬프게도 이것이
우리가 사는
일그러진 자화상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