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특집] 안동 지촌종택 종부 이순희씨](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openapi.naver.com%2Fl%3FAAAB2MSQ6DMAxFT2OWyHYIxIssSgX3oJEZ2jKU0lbcvgHp6%2F1h8V8fXXcP1RXEgZRnsOAcVCW4GkSSbV%2FUD2PTafLQ3Rd5KKxDbk3OhrHNwy1kNrPMhSiqJP2qre%2B3bQFzAa6jhrGb9PdOp%2Baraxrm8dziYXQ0LpKR%2BCgUQRLxNEKM2bEjkZAYZsb0vnR%2F0cHvdrEAAAA%3D)
화전<火田>
지은이-지개야 스님,
순돌이 아부지 마씨는
겨우내 노름판에 있다가 봄이 되어 돌아왔다.
그래도 작은 양심은 있는지
돌아오자마자 화전 한때기를 만들어 놓고 왔다.
화전은 산골짜기에 해 풀이 돋기 전에
죽은 겨울 숲에 불을 질러
거기에서 탄 재를
거름으로 이용해 농사를 짓는 것을 말한다.
“이넉키 오늘은 어디다 화전을 장만했니껴?”
“턱 골에 불을 찔러 했는데,
거기는 밭 자리가 좋아서
개간지로 신고하고, 산전으로 해야지.”
“그랬니껴? 애 먹었니더.”
화전 밭에 첫해 농사는, 배추를 심어 장거리를 한다.
화전배추는 무공해라고
장에 가면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가 있다.
어떤 집은 짝퉁 화전배추를 만들어 파는데,
부엌에서 다 탄 회색 재를 뿌리에 묻어 판매하고,
화전배추는 덜 탄 검은 숯 재가 뿌리에 묻어 있어 구분된다.
둘째 해 농사는, 대다수 식량을 위해 조를 심는다.
화전 밭이 가파르지 않고 길목이 좋으면,
계속 농사를 짓는데, 이 밭을 산전 때기라 한다.
“봉구 아바요 산불 단디 하소.”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고 밥이나 버뜩 다고.
점심 먹고 동장 집에 가야 한다.”
우거진 숲에 불을 질러서 밭을 만들면서 산불을 내지 않은지?
화전을 할 곳을 먼저 정하고, 불이 더는 밖으로 번지지 않게,
화전 할 주변경계 지역에 2m 넓이로 말끔하니
죽은 풀을 베어내고 나서 북 데기를 까꾸리로
바닥 흙이 보일 때까지 깨끗이 끌어낸 다음에 불을 지른다.
불은 밑에서 위로 타 올라가는 성질이다.
화전은 바람이 불지 않는 날
제일 높은 곳에서 불을 질러서
위에서 아래로 타내러 가게 한다.
불은 조용하게 천천히 타내러 가나,
그래도 만약을 대비해
산불 진화용 솔가지를 해놓고 불을 지른다.
권씨는, 동장 집에 간다고 집을 나서는
순돌이 아부지 마씨에게
‘봉구 아바이요 동장 집에는 왜 가니 껴?’
“개간 신고 하로 간다.
화전 밭을 개간신고하면, 면에서 밀가루가 나온다.”
박정희 대통령이 국가 최고위원일 때
보릿고개를 없애려고 식량 자급자족사업을 위해
개간 촉진법(1962년 2월)을 만든 지 3년이 되어
가현골에도 법에 혜택을 받을 줄 안다.
가현골 사람은 화전 밭을 개간지로 신고하면
미국 원조 품인 밀가루를 장려품으로 받았다.
면사무소에서 타온 밀가루로
수제비로 보릿고개를 넘는 지팡이로 질리도록 먹었다.
순돌이 보다 8살 많은 형 봉구가
‘어매 오늘 마라톤 하는데 자갈 죽 말고 밥 다고.’
‘아들아 미안하다. 아부지가 내일 장에 보리쌀 사온단다.
하루만 참아라.’ 아침에도 수제비 죽을 끊어 먹었다.
자갈 죽을 먹지 않겠다고 떼를 쓰는 아들 봉구와
먹고 학교 가라고 타이르는 엄마 사이에 봉구 아부지가
“먹고 가, 안 먹고 학교 가면 갔다 집에 오지 마라.”라는
협공 성 고함에 겁에 질린 봉구는
자갈 죽 한 대지비를 다 먹고 학교로 갔다.
죽어도 먹기 싫은 수제비가 생긴 모양이 자갈인데다
맛도 자갈같이 아무런 맛이 없다고 해서
가현골 사람은 수제비를 자갈죽이라 한다.
가현골 사람은 음식 중 제일 싫어하는 것이 자갈 죽이다.

지금도 가현골 출신은 자갈 죽에 대한
이야깃거리로는 해도 사 먹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자갈 죽에 물린 홀아비 묵이는 밀가루를 넣고
송구 떡에다 갱죽을 쑤어 먹기도 한다.
먹어서 죽지 않는 것이라면 무엇으로든지 배를 채웠다.
죽지 않으려고 갈라산에 죽을 힘을 다해
화전으로 목숨을 이어가는
가현골 사람들은 조상덕에 쌀밥이라고
제삿날이 아니면 일 년이 가도 쌀밥 구경을 못한다.
가현골 아가씨가
시집갈 때까지 쌀 3되를 못 먹고 시집간다.

아랫마을 내리골에 제일 부잣집
마점순네 상할매가 세상을 등졌다.
초상난 마점순네는 눈물이 날지 몰라도,
가난한 마을 사람은 내심 부잣집에서 초상이 났으니
소고깃국 밥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어 반겼다.
순돌이네는,
꿈에도 먹어보기 어려운 소고깃국 밥을
먹을 수 있는 초상이 목천마씨 같은 집안에서 났으니,
초상집인들 어떻고, 공동묘지래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소고깃국 밥만 먹는다면 이유와 장소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초상집 간 순돌이 어매 권씨는
문장 어른 할배께 인사를 드린다.
“할배님요, 가현골 봉구애미시더,”
“봉구어마이 왔나, 잘 왔다.
앙 그래도 고복을 누가 하노, 하고 걱정하던 차에 잘 왔다.”
권씨는 속으로 ‘고복은 한 번도 해 본 적도 없고
귀신이 따라오면 어떻게 하노, 하는 걱정이 무섭이 앞섰다.’
“할배요 지는요 할 줄로 모르니더.”
“누구는 알아서 하나,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할배요 그래도 그렇지”
“여기 누가 할 사람이 있노, 니 아이고는,”

할배가 고인이 된 상할매 입던 저고리를
권씨한테 주면서 무어라 시킨다.
순돌이 어매 권씨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저고리를 받아 들었다.
‘고복’은 김소월 시에서 말하는 ‘초혼’이다.
고복은 남자가 죽으면 지붕 위에서 남자가 하고,
여자가 죽으면 마당에서 여자가 한다.
권씨는 동쪽 마당으로 가서
“해동 대한민국 경상북도 안동군 남선현
가현골 임동 장씨 말분 “복!복!복!
부르고는 저고리를 내려놓았다.

순돌이는, 어매 하는 것을 먼발치에서 보다가
“어매 뭐라꼬 혼자 지끼디 무슨 말을 했는데,”
“아 그 말은 죽은 할매 본관하고
이름을 열매대왕한테 불러 주었지,
열매대왕이 데리고 갈 사람이 맞는지
안 맞는지 마차 보라고,”
“안 맞으면,”
“죽은 사람이 살아나지 뭐,” 고복
고복은 ‘사람이 죽었을 때,
발상하기 전에 죽은 사람의 혼을 부르는 일’ 이다.
초혼을 부르고 또 불러 3번이나
불러도 혼이 돌아오지 않으면,
죽음으로 인정한 후부터 머리를 풀어헤치고 운다.

이는 이웃에
초상이 났다는 것을 알리는 전달 수단이기도 하다.
옛 법에는 죽음이란
슬픔 앞에서도 함부로 발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고복을 한 후에야 문장이 울음을 허락해야 울었다.
권씨는 순돌이를 데리고 부엌으로 들어가니,
부엌에 있던, 문중 아지매가 순돌이 어매 권씨를 보고
“봉구야 애 먹었다. 야 하고 어서 밥 먹어라.”
“야 이름이 뭐로”
“순돌이시더”
“야가 순돌이라 벌써 이캐 많이 컸나, 니 몇 탕년이고”
“사학년이시더.”
“야야 니 오늘 학교는 왜 안갔노”
“어제부터 여름 방학이시더.”
순돌이 어매 권씨 “순돌아 인사해라. 실건이 아지매다.”
“안녕하시니껴?”
순돌이는 인사를 하면서도
눈은 부헌 이밥으로 가 침을 삼킨다.
원래 초상 난 날은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은 밥을 못 얻어먹고,
일만 해주고 가야 한다.
순돌이네는
누구도 하지 않으려는 고복을 했다고 주는 밥이다.
순돌이네 목천마씨는 동장이 사는 내리 마을에 반 정도이다.
목천마씨 문중에 초상이 나면
순돌이 부모님은 매일같이 내리으로 내려와 허드렛일을 한다.
가현골이나 내리에 초상이 나면,
내리 마을 사람들과 가현골 사람이 초상을 같이 치른다.
내리 마을 집 반, 가현골 집 반,
각각 둘로 나뉘어 초상 때마다 돌아가면서 상여 일을 한다.
순돌이 어매 마씨가 순돌이 손을 끌면서
“순돌아 밥 먹자.”
“헝님네들은 밥 잡샀니껴?”
“그래 우린 먹었다. 어서 먹어라”
“며칠 장이껴?”
“우리가 뭐 아나? 문중 할배님 말씀을 들었는데
아흐레 장이라고 카드라만, 잘 모르지 뭐.”
초상은 부잣집이면 9일장이고, 보통 5∼7일장을 한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만은 3일장을 한다.
실건이 아지매 “봉구야 버뜩 먹고 사자밥 갖다 놓고 온나?”
“어매 사자밥이 뭔데”
“시끄럽다. 밥이나 버뜩 먹어라.”
쌀밥이 얼마나 맛이 있었으면,
입에 밥을 넣으면, 반찬을 먹기 전에 밥이 넘어가 버린다.
막 이밥 뒤를 따라온 반찬이
“방금 들어온 밥 어디 갔소” 묻다가,
다시 밥이 들어오니,
반찬이
“이녁 앞에 들어온 밥은 어디가 가고 이녁이 들어 왔소”
밥이 “내 앞에 들어간 밥은 벌써 똥 되었소.
반찬 이녁은 어디 갔다 이제 왔소
그만 나하고 같이 갑시다.”
양푼에 담은 밥을
두 모자간에 단 참에 다 먹어 치우고,
“순돌아 너는 초하고 술 주전자 들고 따라 온나”
권씨가 들고 간 저승사자밥상을 지껄에 놓고,
초에 촛불을 붙이고,
빈 술잔 3개에 술을 붓고,
밥 옥시기 3개에 나무 절을 꼽고,
두 손으로 무어라 중얼거리며 빌고는 그냥 두고 들어왔다.
“어매 사자밥이 뭐고 또 뭐라고 빌었는데”
“사자밥은, 염라대왕의 명을 받고
우리 할매 데리러 온 저승사자 3분한테
밥 세 옥시기, 술 석잔, 문종이 한권, 명태 3마리,
짚신 3켤레, 동전 3닢으로
싸우지 말고 똑같이 나뉘어 잘 대접했다.
그리고 우리 할매 조심해 잘 모시고 가 달라고 빌면서 부탁했다.”
저승사자 말만 들어도 무서운 이름인데
그 저승사자에게 밥을 주는 일은 누구도 하기를 싫어하는 일이다.
죽은 지 사흘째 되는 날 대렴을 한다.
그날부터 성복제 지낼 장보러 가고
한쪽에는 반찬을 담아 낼 가방을 만든다.
부잣집에서는 큰일 끝날 때까지 먹을 소도 이날에 잡는다.
잡은 소 껍질과 머리로 버역과 애구를 만든다.
살코기를 꼬지 고기와 육회로 초상 영가와 손님상에 쓴다.
소 버역을 눌리는 일은 큰일 중의 큰일이다.
오랜 날 소 버역과 애구 만드는 일은,
누른 북촌이와 영양이 어른 둘이서 한다.
‘북촌’이나 ‘영양’이란 택호는
소처이호(所處以號)로 처가 곳에서 따온 택호다.
결혼을 하면 총각 때 부르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택호를 지어서 부른다.
소 껍질과 소머리를 가마솥에
곰으로 소머리는 완전히 풀어지고,
소가죽은 형체가 없을 때까지 장작불을 피운다.
“어이 북촌이 다 익었는가?”
“예 거-지방 다 익었니 더”
“그러면 암반에 가지고 와서 깨끗이 씨 놔라.
내 버지기하고 삼베보자기 가지고 올캐”
북촌이는, 마당에 볏짚을 깔고 그 위에 암반을 갖다 놓았다.
볏짚을 까는 이유는,
작업하다가 고기가 땅에 떨어져도
흙이 묻지 않아 다시 사용하려고 함이다.
영양이는 암반 위의 항아리 안에 삼베보자기를 펴 놓았다.
곰 된 고기를 푸면서 북촌이는,
“준비 다 됐니껴, 칠기는 갔다 낳니껴”
“아 맞다. 칠기하고, 버역 눌릴 돌삐하고,
널빤지하고 안 갖다 놨다.”
“애구 물 받을 양푼이도 가지고 오소”
"그래, 북촌이 소머리뼈는 막카 건져서 국솥에 여라“
“다 건져 엿니더”

버역과 애구는 곰한 소머리와 소 껍질로 만든다.
삶은 소고기를 항아리 안 삼베자루에 붓고,
삼베자루 밖에 삼배 보자기 두 겹으로 단단히 싸맨다.
항아리는 땅에 내려놓고,
싸맨 삼배 보자기를 항아리 놓았던 암반 중앙자리에 놓고
삼배 보자기가 터지지 않게
칡으로 쫀쫀하게 여러 번 둘러 묶는다.
참기름 짜듯이 널뛰기하는 널빤지로
묶은 삼베 보자기를 눌리고
그 위에 돌로 밤새도록 눌러 놓는다.
이로 소고기 삶은 물은 삼배 보자기 틈새로 빠지고
삼베보자기 안에 있는 삶은 고기만 남는데,
이를 벗역이라고 하고,
삼베보자기 밖으로 흘러내린 소고기 삶은 물을 애구라 한다.
애구는 소고기 삶은 물을 서늘한 곳에 오래 두면
겔 상태로 엉킨 것을 말한다.
버역과 애구는 손님상에 내 놓는 반찬과 술안주로 쓴다.
잡고기와 뼈다귀, 내장 등으로는 소고기 국밥을 끓인다.
소는 살아서는 농사일에
죽어서는 소털과 똥만 먹지 않지 그 외에는 다 먹을 고기를 준다.
성복 장을 봐오면 성복제를 지내고 나서부터
상주들은 아침저녁으로 곡을 하면서 문상객을 받는다.
이날부터 장례가 끝날 때까지
권씨는 부엌일을 하고, 마씨는 밖에서 궂은 일을 한다.
순돌이 어매 권씨 “순돌아 밥 주거던 버떡 먹고,
집에 가 덕자네 꼴 해주고, 저녁에 다시 온나”
“오늘도 덕자네 소꼴 해주어야 하나? 밥도 안 얻어먹는데”
“그래야 담에도 소꼴해주고 밥 얻어먹지”
“알았니더,”

권씨가 순돌이를 데리고, 가는 것은
순돌이 동생들은 너무 어려서 데리고 가면
혼자 놀지 못하고 형 봉구나 누나들은 너무 커서
데리고 다니기가 멋쩍고
순돌이는 그냥 데리고 가도 좋을 나이다.
순돌이도 어매 따라가는 것을 좋아한다.
가면 이밥을 실컷 먹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초상집에는
순돌이 또래 마병동, 마도동, 마순자, 마정수가 와 있었다.
아이 다섯이 모였으니 그냥 있을 턱이 없다.
장깨이를 해서 숨바꼭질을 했다.
숨바꼭질을 하느라 분주하게 떠들다가
문중 할배 “야들아 갈구 친다. 나가 놀아라.” 하는데도
말을 듣지 않고 숨바꼭질을 계속하다가 문중 할배가
“정지에 누가 없나, 이로 온나 보자.”
권씨 “예” 하고 달려가니
“내일부터는 누구든지 일 하로올 때,
아-들은 데리고 오지 마라.
잔칫집도 아닌데 아-들 웃음이 담장을 넘는다.”
“예 할배님”
그런 일이 있고부터
순돌이는 권씨를 따라다닐 수가 없었다.
대신에 순돌이는 막냇동생 끝순이를 젖먹이로 데리고,
가서 소고기 국밥을 얻어먹고 온다.
시집갈 나이가 된 큰 누나만 제외하고
서로 끝순이를 업고 권씨한테 젖 먹이러 가려고 한다.
이는 소고기 국밥을 얻어먹기 위해서이다.
문상객이 제일 많은 날은 발인 전날이다.
이날을 드는 날이라고도 한다.
드는 날 저녁밥과 발인 날 아침밥을 얻어먹으려는
주변 거지들이 다 모이는 날이다.
마을 청소년들이
소고기 국밥을 얻어먹으려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고인의 맏사위 형달이가
“야들아 나가라, 이느마들이 부조도 안 하고
걸베이 떼처럼 뭐 얻어먹으려고 쭉 왜 들어 오노?”
“우리가 왜 걸베이니껴?”
“걸베이 아이만 왜 밥을 얻어먹을라꼬 카노”
“밥 먹고 심부름 좀 해 줄라고 카니더”
“야야 니 성이 뭐로”
“밀양 박가시더,”
“우리 목천마씨만 해도 되고 남는다.
자꾸 씨부렁거리지 말고 복잡하니 나가라”
마당에 서 있던 6-7명의 청소년이 밖으로 나가서
초상집 담장을 지나면서 한 사람이
“홍당불렀네.” 한 다음에는 큰 소리 합창으로
“애씨 홍달불렀네, 홍단불렀네”
하는 소리 뒤로 도망가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모처럼 부잣집 초상 덕에
소고기 국밥 한 그릇 얻어먹으려고
마을 청소년들이 왔다가 쫓겨났다.
부잣집 초상 드는 날은 마을 사람은 물론
인근 거지들이 다 모여 소고기 국밥을 얻어먹는 날인데,….,
![[대구/경북]안동 ‘큰바위 양반탈’이 떴다](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openapi.naver.com%2Fl%3FAAAC2MyQ6DMBBDv2ZyRMNAljnkUCr4DxoNSyuWUtoqf9%2BAKlm2%2FCz5%2BZYteqivwBqcg7oC1wDzSQxwfpAKgZ3a4yp%2BnNpe1EOityZY7ZC6wlBB2JlwC6UuNZFlQWE1bNL5Yd9XKC5ATdI49bN8X9ncfmTLwjKdLB2mRMLkhOiOwsly%2BwfIuU0zZfe1%2FwHJ2G8XsAAAAA%3D%3D)
배가 불룩 나온 형달이는
안동에서 포목상회를 하는 부자이나
지독한 왕구두쇠로 소문이 났다.
이를 본 순돌이가 ‘소고기 국밥이 저렇게 많은데
한 대집이 주어도 얼마든지 되는데,
모자라면 국물만 더 부으면 되지,
형달이 저 사람 나쁜 사람이다.
나는 나중에 어른이 되어 우리 아부지 죽으면,
동네 사람 누구든지 다 소고기 국밥을 실컷 주어야지’
손님이 많이 드는 5시 반부터
봉구 시야는 손님방에 음식 판을 날라주고,
순돌이 큰 누나와 작은 누나는 부엌에서 일했다.
순돌이는 막내 동생 끝순이를 업고,
남동생 영덕이와 그 밑에 6살인 봉자를 데리고
소고기 국밥을 얻어먹으러 내려왔다.
“순돌아 어서 밥 많이 먹어라. 끝순이는 이리 주고.”
“어매 끝순이 오줌 싸서 내 등따리 다 젖었데이-,”
“그래 알았다. 버뜩,
저녁 먹고 집에 가서 농에 옷 꺼내 갈아입어라.”
“알았니더.”
“먹고 적으맨 더 달라 그래라.”
약간 붉은 색깔에 기름이 동동 뜨는 국밥에는
무와 고사리도 들어 있고 간혹 소고기도 있었다.
순돌이가 동생들한테
“흘리지 말고, 먹어라.”
그 말에 아무도 대꾸도 하지 않고
뜨거운 소고기 국밥 먹기에 바쁘다.
순돌이는 며칠 전에 소고기 국밥을 얻어먹었지만,
영덕이와 봉자는 태어나고 처음 먹어보는 것이다.
소고기 국밥 그릇은 방자 놋그릇인데.
크기로 말하면, 지금에 식당 밥그릇 3배가 넘었다.
요즘 어른들이 3명이 먹어도 남을 양의 밥을
눈 깜빡할 사이에 다 먹어 치웠다.

순돌이가 “봉자야 니 더 먹을래.”
“오빠야 더 안 먹어” 하고 대답하는 봉자 입으로
뱃속 밥알 몇이 역류하고 있었다.
얼마나 맛이 좋았으면, 밥알이 역류할 때까지 먹었을까?
봉자뿐만 아니라,
순돌이와 영덕이도
모두 너무 많이 먹어서 밥알이 역류하고 있었다.
역류한 밥알을 다시 씹어 넘긴다.
한 톨에 이밥이라도 아까워서,….,
그렇게 많이 먹고도 소화제를 먹지 않아도
아무 탈 없이 소화만 잘 된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 천한 아이기 때문일 거다.
순돌이 어매 권씨는,
“순돌아 이거 가지고 아들 데리고 집에 가거라.”
반찬과 떡을 남몰래 손수건에 싸 가지고
끝순이를 업혀주면서 포대기 속에 감추어 넣어 주었다.
작년 가을에 순돌이네 할매가 돌아가셨을 때는,
소고기 국밥을 못 끓이고
돼지고기 국밥으로 3일장을 했기 때문이다.
“순돌아 아-들 데리고 천천히 집에 올라가거라.”
“봉자야 작은 오빠 따라 집에 가거라.
어매는 일 더하고,
큰 오빠야, 큰 언니, 작은 언니, 아부지하고 좀 있다 밤에 간다.“
봉자는 “나도 큰 오빠야 하고 갈께”
“야가 뭐라 카노. 큰 오빠야는 일해야 한다.
버뜩 작은 오빠야 따라 집에 가라.“
“응”
“순돌아 가다 놀지 말고 쪽빠로 집에 가거래이”
“그래, 알았데이.”
순돌이는, 소고기 국밥을 많이 먹었는데
끝순이를 업느라고, 포대기 띠를 졸라매어서
배가 아프기만 한 것이 아니라,
밥알이 연방 입으로 나와
씹어 넘기면 또 나오고, 씹어 넘기면 또 나왔다.
그때마다 소 되새김질하듯이 씹어 넘겼다.
집에 도착해서 끝순이를 내려놓고 나니, 살 것 같았다.
‘옛말에 남의 제를 보려면 삼 년 상을 보라고’
마점순네 큰일은 내년에 소상, 그다음 해가 대상이므로,
앞으로 2년간은 약속된 소고깃국 밥이다.

고인의 맏사위인 형달이가
소고기 국밥을 얻어먹으러 온
청소년들을 쫓아냈다는 말은
삽시간에 마을에 퍼진 후부터,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가현골과 외천 마을 아이들은
살찐 참개구리를 ‘형달이’라고 불렀다.
가현골 아이들은
초등학교 일 학년이면 여름에 개구리를 잡아먹는다.
“덕수야 형달이만 잡아 온나”
“형달이가 그캐 많지 않타”
"그래도 형달이가 맛이 제일 좋다, 형달이만 잡아라“
아이가 풀에 숨은
참개구리를 찾으려고 막대기를 툭툭 칠 때마다
“형달이” “형달이” 하면서 친다. 큰 참개구리가 발견되면
“형달이다” “형달이다” 하고 잡으러 가고,
잡았을 때도 “형달이” “형달이” 한다.
참개구리를 잡아먹기 위한 모든 행동에서는
“형달이” “형달이” 3/4박자로 노래를 부르면서 한다.
가현골에는 영양실조에 걸려
배만 볼록하게 나온 아이가 많았다.
요즘 텔레비전에서 본 방글라데시의 어린이와 똑같았다.
영양실조로부터 아이를 구출하기 위해
어른이 여름 동안에 참개구리를 잡아서
삶거나 구워 먹여서 단백질을 보충시켜 준다.
겨울준비로 여름에 참개구리 뒷다리를 많이 빼서
햇볕에 말려두었다가 겨울에도 먹이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영양실조 배 볼록이 병을 고쳐 주었다.
여름이면 아이들이 놀 거리는 많아도
먹 꺼리라고는
딸기와 참개구리를 잡아먹는 것밖에 뿐이었다.
초등학교 여름방학이면
아이들은 참개구리 뒷다리를
야외서 구워 먹거나 아니면
깡통에 삶아 먹는 것을 간식으로 했다.
그때는 농약사용을 하지 않던 때라
지천으로 널린 것이 참개구리였다.
그렇게 여름을 지난 어린이들은
가을 가정실습을 맞이한다.
가을 가정실습은 원림국민학교 앞들에
가을 추수가 한창일 때 한다.
가을 가정실습이면,
‘밀레의 이삭줍는 여인’처럼
추수가 끝난 가을 들녘에
아이는 이삭줍기로 하루를 보낸다.
타작마당에 흩어진 콩알에서부터
들녘에 떨어진 알곡식 하나라도 다 줍는다.
그렇게 바쁜 가을 추수가 끝나면
안동 김씨네가 소분하려 온다.

안동김씨네는 선조 묘 12기가 가현골에 있는데,
소분 날을
매년 상강 일로부터 11일째 되는 날로 정해졌다.
다른 문중에 비해 문중 토지가 많다.
같은 안동 김씨인 가현골 김병문네는 문중 토지를 소작한다.
소작료는 소분을 차려준다. 소분 하루 전날이면
백 고무신을 신고 선비 가방에 갓 탕관을 한
문중 어른 10여 명이 찾아온다.
그때 백 고무신은 대단한 신발이었다.
가현골에서는
백 고무신이 있는 집은 덕자네 아부지 형제간만 있다.
까막 고무신을 신고 농사일을 하다가
외출 시에는 흰 고무신을 신는다.
병문이 아부지는 찾아오는 문중 어른마다
삽지껄까지 나가서
두 손을 하단전에 공손히 포개어 허리를 깊숙이 인사한다.
문중 어른을 방으로 안내하고
뒤따라가 다시 공손한 큰절 인사한다.
문중 어른이
하루 전날 오는 이유는 거리가 멀기도 하지만,
하루 전에 모여서 문중 회의도 하고
산지기한테 임금님 대접을 받고 싶어서다.
안동김씨 문토를 소작해 생명을 유지하는 병문네는
같은 안동 김씨라도 꼼짝 못하는 하인일 수밖에 없다.
이날 오신 문중 어른들에게
잘 보이려고 병문네 아부지는 닭 잡고,
소고기 육회로 술안주를 내는 등,
밤새도록 임금님과 하인 관계로 지낸다.
이들 대접을 잘못하면,
소작권을 빼앗길 수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소분 날은 병문이 아부지와 6학년인 병문이하고
떡 고리를 지고 12기 묘소를 따라다닌다.

또 다른 한 사람은
나이가 50살이 넘었는데도
장가도 못 간 지체 장애인인 묵이가
떡 고리를 지고 따라다닌다.
안동 김씨는 묘사를 지낼 때마다 소분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흩어진 11기에 묘사를 다 지내고 난 후에,
마을 뒷산에 있는
묘소를 마지막으로 끝낼 때는 해가 서산에 걸린다.
운복은 묘사에 참석한 안동 김씨마다 몫을 따로 놓는 한편,
동네 아이들에게 소분한다.
이날은 가현골 아이들 누구나
다 안동 김씨 소분을 받으러 간다.
갓 태어난 아이가 아니면 젖먹이 동생이라도 있으면
업고 가서 떡을 한 몫이라도 더 받으려고 한다.

동생이 없는 집 아이는
옆집에 아이를 빌려 업고도 간다.
소분 받으러 데리고 갈 아이가 형이 없고,
어린 아이를 데리고 갈 능력은 있는데
자기 동생이 없는 집 아이와 짝을 짓는다.
이웃집 아이를 빌려 업고 간 아이는,
아이 몫 반은 아이 집에 주고,
그 반은 아이를 업고 간 아이가 더 가져간다.
옛날에 안동 김씨네가 시사를 왔다가
소분 받으러 온 아이는 많고,
떡은 적고 해서 떡이 없다고 하면서,
아이들을 그냥 돌려보낸 일이 있다.
소분을 못 받아 격분한 아이가
안동 김씨 묘소마다 묘 꼬리에
나무 말 목을 박아 묘에 코를 끼고 말았다.
묘소에 코를 꿰면 후손이 잘 안 된다는 말이 있다.
이를 안 안동 김씨네가 가현골에 와서
묘소에 코를 꿴 아이들을 찾았지만, 쉽사리 찾지 못했다.
그 후부터는 안동 김씨네는 묘소에 코를 꿰일까 봐
소분 날은 떡과 고기를 많이 나누어준다.
안동김씨 소분 날은 가현골 아이들 잔치 날이다.
순돌이는 어매 권씨한테
“떡 받을 수건을 2개 다고”
“2개는 왜 하나면 되지!”
“아니다. 내하고 끝순이 하고 같이 받고,
영덕이하고 봉자하고 같이 받고
두 편으로 농게서 받아야 한다.
작년에 보니 네 사람 몫을 달라고 카니
한 몫은 안주는 때가 항정 없이 많더라.
영덕이 니는 봉자데리고 가고 나는 끝순이 업고 가마”

2살 난 끝순이를 업고 앞장선 순돌이를 따라,
영덕이가 봉자를 데리고 소분 받으러 내복재로 간다.
앞에 가는 춘자는 중학이는 앞세우고,
영학이는 업고, 소분을 받으러 간다.
그 시절에는 떡 조각이라도 먹다가
누가 오면 먹던 떡을 등 뒤로 감추었다.
먹던 떡이라도 누가 달라고 할까….,
등 뒤에 감춘 떡이라도 알면,
아이가 손을 내밀면서 조금만 달라고 조르는 경우가 많다.
작년 가을에 순돌이는 떡을 먹다가
춘자가 와서 떡을 등 뒤로 감추었는데
춘자가 “순돌아 떡 손톱만큼만 다고,
그러면 우리 제사 지내면 나도 좀 줄게”
다른 아이 같으면 주지 않는데
춘자니 어쩔 수 없이 손톱만큼만 주었던 가난한 시절
배고픈 소나타 바장조가 연주되던 시절 이야기다.
![[옛길기행] (49)안동 유교문화 길](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openapi.naver.com%2Fl%3FAAAC2NwQ6CMBBEv2Y5ku22pe2hBzHwGwabpaApIlYNf29DTCYzk3eYeb552z10Z3AWXHsUDdZC14Ltwbkq7yv7OQ2Rqzvv3jTBaIs0yoYk4diEa1BaaSLjGNlV08ajn3JeQZ6A%2BqI5xYW%2Fr3oZPrzV4ZEOVgZLYrminlCIEodJ%2FAMhJF7QKoMKEevbGn%2FIjvtirQAAAA%3D%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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