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역사
옛날에는 겨울에 얼음을 수확한 후 이를 저장하는 방식이 활용되었다. 오랫동안 얼음은 엄청난 사
치품이어서 주로 왕실에서 사용되었다. 냉장고의 개발에는 여러 사람들이 기여했으며, 가정용 냉
장고는 20세기 미국에서 출현했다. 당시에 전기 압축식은 가스 흡수식을 물리치고 냉장고의 표준
이 되었다.
최초의 대중용 냉장고로는 1925년에 제너럴 일렉트릭이 출시한 모니터 탑을 들 수 있다. 냉장고의
대중화로 신선한 식품을 편리하게 섭취할 수 있게 되었으며, 질병의 발생률도 크게 낮아졌다.
오늘
날 냉장고는 대부분 전기 압축식에 해당한다. 그것은 압축기, 응축기, 증발기등으로 구성되어 있
다. 압축기는 전기 모터의 힘으로 엄청난 압력을 응축기에 가하는 역할을 한다.
응축기는 냉장고 뒷부분에 작은 파이프의 형태로 구불구불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여기서 냉매 가
스가 열을 발산하면서 액체로 변한다. 액체로 바뀐 냉매는 냉장고의 안쪽에 있는 증발기로 옮겨가
주변의 열을 빼앗으면서 기체로 바뀐 후 다시 압축기로 향하게 된다.
차가운 것에 대한 욕망
냉장고가 발명되기 전에 인류가 사용한 것은 자연 상태의 얼음이었다. 냉장에 관한 기록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는 중국 전국시대에 발간된 예기(禮記)를 들 수 있다. 여기에는 벌빙지가(伐氷之
家)라는 용어가 나오는데, 그것은 겨울에 얼음을 수확한 후 이를 저장했다가 여름에 사용하는 집
안을 뜻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신라 시대에 이미 석빙고(石氷庫)가 있었고, 조선 시대에는 동빙고(東氷庫)
와 서빙고(西氷庫)를 만들어 한강의 얼음을 저장하여 사용했다.
당시에 얼음은 엄청난 사치품이었
다. 주로 궁궐이나 왕실에서 사용되었고, 일부는 고위 관료들에게 하사되었다. 이에 반해 일반 사
람들은 얼음이라고 하면 고된 노동을 떠올렸다.
한강에 있는 얼음을 자르는 것도 큰일이었지만, 이를 빙고까지 운반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좁은 빙고 안에서 무겁고 차가운 얼음덩어리들을 차곡차곡 쌓는 일도 무척 고통스러웠다. 이에 따
라 겨울철이 되면 한강 인근의 장정들은 채빙 부역을 피해 도망을 다니곤 했다.
덕분에 이러한 장정들을 기다리는 어린 부인들을 일컫는 빙고청상(氷庫靑孀)이란 말까지 생겨났
다.
서양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고대 시절에는 산에서 가져온 눈을 뭉쳐 벽 사이에 넣
고 짚이나 흙으로 단열처리를 한 저장고를 만들어 포도주를 차갑게 보관했다고 한다.
알렉산더 대왕이나 네로 황제 등이 발 빠른 사람들로 하여금 알프스 산에 있는 만년설을 가져오게
하여 전투의 승리자에게 주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19세기 중엽 미국의 뉴잉글랜드 지방에서는
수많은 인부들이 호숫가에서 톱으로 얼음을 잘라 배에 실어 호주나 인도로 수출하는 광경이 연출
되기도 했다.
최초의 냉장고를 찾아서
역사상 최초로 인공적인 얼음에 도전한 사람은 영국의 과학자 컬런으로 전해진다. 1748년에 그는
땀이 마르면서 피부의 열을 빼앗듯이, 액체가 기체로 바뀌는 과정에서 주변의 열을 흡수한다는 점
에 착안했다. 컬런은 가장 빠른 속도로 증발하는 물질을 찾던 중 알코올의 일종인 에틸에테르에 주
목했고, 그것을 반진공 상태에서 기화시켜 물을 냉동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는 얼음 덩어리를 만드는 것에 만족했으며, 이를 산업적으로 발전시킬 생각은 하지 않았
다.
냉장고의 아버지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이에 대한 답은 설계, 특허, 작동원
리, 상업화 중 어느 것에 주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미국의 발명가인 에번스는 1805년에 냉장고에 대한 최초의 설계도를 남겼으며, 영국에서 미국으
로 이주한 기술자인 퍼킨스는 1834년에 얼음 기계로 최초의 특허를 받았다. 1851년에는 스코틀
랜드 출신의 인쇄공인 해리슨이 냉매를 에테르로 하고 공기 압축기를 장착한 냉장고를 선보임으
로써 압축식 냉장고의 길을 열었다.
이어 1875년에는 독일의 엔지니어이자 사업가인 린데가 암모니아를 냉매로 채택한 냉장고를 제
작했는데, 그것은 양조장을 비롯한 산업 현장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 냉장고는 가
정에서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최초의 가정용 냉장고로는 미국의 발명가인 울프가 1913년에 개발
한 도멜레가 꼽힌다.
이어 1918년에는 프리지데어와 켈비네이터가 시판되기 시작함으로써 가정용 냉장고 시장에 대
한경쟁이 불붙었다. 그러나 1920년대 중반까지 가정용 냉장고는 널리 확산되지 못 했다. 무엇보
다도 비싼 가격이 문제였다. 예를 들어 가장 많이 팔린 켈비네이터의 경우에도 1920년의 가격은
1천 달러였고, 1925년의 가격은 5백 달러였다.
연간 2천 달러 이하의 수입을 얻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굉장한 부담이었던 것이다.
1925년에
제너럴 일렉트릭이 출시한 전기 압축식 냉장고인 모니터 탑은 역사상 최초의 대중용 냉장고로 평
가되고 있다. 모니터 탑은 작동 부품이 냉장고의 꼭대기에 위치한 원형상자에 설치되었기 때문에
붙여졌던 이름이다. 제너럴 일렉트릭은 오디프렌의 특허를 매입한 후 8년 동안의 노력 끝에 모니
터 탑을 개발할 수 있었다.
모니터 탑의 첫 출시 가격은 3백 달러였으며, 매월 10달러를 받고 모니터 탑을 대여해 주는 제도
도 생겨났다. 모니터 탑은 1929년 한 해 동안 5만 대가 팔려나갔으며, 1931년에는 누적 생산량
이 1백만 대를 넘어섰다. 가정용 냉장고 시장이 확대되면서 제너럴 모터스, 웨스팅하우스 등과
같은 대기업도 냉장고 사업에 가세하였다.
냉장고는 왜 윙윙거릴까?
흥미로운 점은 전기 압축식 냉장고가 성공한 이면에는 가스 흡수식 냉장고의 실패가 있었다는 사
실이다. 20세기 초만 하더라도 냉장고 전문가들은 전기 압축식보다 가스 흡수식의 우세를 점치고
있었다. 전기 압축식에서는 압축기라는 별도의 전기 펌프가 냉매의 기화와 응고를 조절했다.
반면 가스 흡수식은 냉매가 가스 불꽃에 의해 가열되고 물에 흡수되면서 농축되는 매우 간단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전기 압축식에서는 압축기로 인하여 윙윙하는 소리가 심하게 났지
만, 가스 흡수식의 경우에는 작동 부품이 거의 없었고 정비도 용이하였다.
그렇다면 가스냉장고는 왜 실패했는가? 이에 대하여 유명한 여성 기술사학자인 루스 코완은 기술
적 이유가 아니라 경제적·조직적 이유 때문에 가스냉장고가 적절한 개발의 시기를 놓쳤다고 분석
한 바 있다. 전기냉장고 제조업체들은 전기산업의 성장을 배경으로 탄생한 대기업들로 냉장고의
개발과 판매에 막대한 자원을 투자하였다.
또한 대기업들 사이의 생산적인 경쟁과 전기설비회사들의 적극적인 지원은 전기냉장고에 대한 후
속 혁신과 시장의 팽창을 용이하게 하였다. 이에 반해 가스냉장고 제조업체들은 대부분 중소기업
이어서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적시에 공급하지 못했고, 도중에 사업을 포기하는 업체가 많아서 건
전한 경쟁이 유발되지 않았다
또 보수적인 가스설비회사들은 전기서비스의 도전에 자신을 방어하기에 급급하였다.
제너럴 일렉
트릭을 비롯한 전기냉장고 제조업체들이 기발한 판촉 활동을 벌였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
다. 전기냉장고 제조업체들은 “가스는 구시대, 전기는 신세계”라는 이분법을 활용하여 시대의 흐
름이 전기냉장고에 있다고 선전했다.
전기설비가 없는 오래된 형태의 부엌에서 주부가 지쳐있는 모습과 냉장고가 설치된 부엌에서 여성
이나 아동이 즐거워하는 모습이 대비되기도 했다. 전기냉장고를 선전하는 데에는 당시의 유명 인
사들도 동원되었다. 예를 들어, 1931년에는 특별 라디오 방송을 통해 백만 번째 모니터 탑이 근대
화의 상징적 인물인 헨리 포드에게 기증되었다.
1935년에는 <코미디와 로맨스를 능가하는 완전한 전기 부엌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컬러
필름이 제작되었는데, 그 영화의 배역은 할리우드의 주연급 스타들이 맡았다.
냉장고의 혁신과 영향
냉장고의 혁신은 계속되었다. 제너럴 일렉트릭은 1926년에 세계 최초로 밀봉된 냉장고 압축기를
생산했고, 1939년에 냉장실과 냉동실이 구분되어 있는 냉장고를 선보였다. 또한 1930년에는 제
너럴 모터스에 근무하던 미즐리가 안전하고 독성이 없는 냉장고용 냉매로 염화불화탄소를 합성했
다.
제너럴 모터스는 거대 화학업체인 듀폰과 연합하여 프레온이라는 상표명으로 시판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에 들어와 프레온 가스는 오존층 파괴의 주범으로 밝혀졌고, 이후에는 프레온 가스를 대
체할 수 있는 물질에 대한 탐구가 이어지고 있다.
냉장고의 대중화로 현대인은 신선한 식품을 섭취
함으로써 건강한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가정주부들이 매일 시장을 볼 필요도 없어졌고, 식료품 장수들은 계절에 관계없이 시원한 제품을
판매할 수 있었다. 냉장고는 질병의 발생률을 낮추는 일등공신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냉장고가 대
중화되면서 현격하게 줄어든 질병으로는 식중독과 설사병을 들 수 있다.
이와 함께 백신을 효과적으로 생산하고 저장할 수 있게 됨으로써 아동의 사망률도 크게 줄어들었
다.
우리나라에서는 1965년에 금성사(현재의 LG전자)가 첫 국산냉장고인 눈표냉장고(모델명 GR
-120)를 출시했다. 이어 대한전선과 삼성전자가 냉장고 사업에 뛰어들었고, 1980년대가 되면 거
의 모든 가정에 냉장고가 보급되는 양상을 보였다.
초기의 냉장고는 크기도 묵직하고 소리도 심하게 났지만, 점점 기술적으로 뛰어나고 감각적으로
세련된 냉장고들이 잇달아 출시되었다. 최근에는 와인색이나 하늘색과 같은 컬러판 냉장고가 등장
하여 ‘백색가전’이란 말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글/세상을 바꾼 발명과 혁신/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