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작가 "허진웨이" 현실의잔광
허진웨이展 / he jinwei / 何晋渭 / painting 2010_0321 ▶ 2011_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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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진웨이_현실의 잔광_캔버스에 유채_250×500cm_2009
초대일시_2010_0321_일요일_04:00pm_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세미나_2010_0321_일요일_02:00pm_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2층 전시장내 북경중앙미술대학 왕춘천(wang chunchen)박사 ,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김윤섭
주최_Scola Art Center 주관_한국미술경영연구소 후원_블랙다이아몬드클럽 , 중국 국영방송 CCTV 학술고문_서성록(한국), Heiner Georgsdorf (독일),Wang Chunchen(중국) 기획_ Wang Chunchen (왕춘천) 전시계획_한준욱(스콜라아트센터 큐레이터)
2010_0321 ▶ 2010_0331 관람시간 / 11:00am~08:00pm / 3월 29일 휴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HANGARAM ART MUSEUM 서울 서초구 서초동 700번지 Tel. +82.2.580.1300 +82.2.580.1300 www.sac.or.kr
2010_0503 ▶ 2010_0531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인천아트플랫폼 INCHEON ART PLATFORM 인천시 중구 해안동1가 10-1번지 Tel. +82.32.760.1002 +82.32.760.1002~6 www.inartplatform.kr
2011_0501 ▶ 2011_0510 관람시간 / 09:00am~05:00pm / 오후 4시까지 입장가능
중국 상해미술관 Shanghai Museum 325,Nan Jing Road(w),Shanghai 200003 China Tel. +86.21.63274025 +86.21.63274025 / +86.21.63272829 +86.21.63272829 www.sh-artmuseum.org.cn
허진웨이, 우울한 아이들의 초상 ●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의 유화 「사춘기」(Puberty, 1894)는 침대가에 걸터앉은 소녀가 겁에 질린 듯한 표정으로 앞을 주시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그림에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이 깃들여 있다. 불안을 더욱 가중시키는 것은 오른쪽 뒤 벽에 비친 괴물같이 흔들리는 그림자인데 우악스러운 손길을 뻗쳐 소녀를 짓누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죽음이라는 극한 상황과 맞서 싸우는 소녀의 가련한 모습이 안쓰러움을 더해준다. 필자는 허진웨이(何晋渭)의 그림을 보는 순간 불현듯 뭉크의 「사춘기」가 떠올랐는데 그것은 뭉크가 낭만적인 우울함을 그림에 담았듯이 허진웨이 역시 자아의 불안감을 그림에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허진웨이의 그림은 한결같이 깊은 우울로 점철되어 있다. 화면의 색조는 어둠속으로 침륜되어가고 무기력한 인물 역시 침울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희망은 먼 옛날의 이야기 혹은 기억에서나 희미하게 가물거리는 추억이 되고 말았다. 허진웨이가 그리는 현실은 구원의 밧줄이 내려지지 않은 세상이고 아무도 거닐지 않는 삭막한 거리의 가로등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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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진웨이_먼곳을 바라보다_캔버스에 유채_200×180cm_2009
이런 우울과 불안을 전달하기 위해 허진웨이는 무대예술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극적인 연출법을 동원한다. 역광을 받고 있는 소년들이 황토빛 대지를 쳐다보고 있거나 허공을 올려다본다. 인체를 비추는 약간의 밝은 면을 제외하고는 인물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거대한 장벽이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시계가 불투명하여 앞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소년이 등을 돌리고 있거나 등장인물이 마치 사진을 찍듯 정지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도 그림을 위해 연출된 것임을 암시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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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진웨이_소년_캔버스에 유채_150×130cm_2009
그의 작품에서 불안을 증폭시키는 요소는 풀죽은 소년들에게서도 엿볼 수 있다. 불길한 어둠의 그림자는 배경뿐만 아니라 소년들의 얼굴까지 새까맣게 뒤덮고 있다. 아이들은 대체로 정지된 모습으로 눈을 감고 있다. 그들에게 어떤 활기나 웃음기를 찾아볼 수 없다. 한창 친구들과 뛰놀고 재잘거려야할 소년들에게서 낙담스런 표정과 그늘진 모습을 보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도 없을 것이다. 흡사 빅토르 위고(Victor Hugo)의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1862)에서 굶주린 가족의 배를 채우기 위해 거리를 전전하다 결국 남의 빵을 훔치는 장 발장(Jean Valjean)의 불우한 처지를 연상시킨다. 허진웨이의 그림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산업화의 과정에서 소외된 가족의 일원이며 ‘행복’과는 거리가 있는 인물들로 묘사되어 있어 경제발전 뒤에 가려진 사람들의 이면을 증언해주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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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진웨이_창문앞_캔버스에 유채_200×180cm_2009
고도성장의 사회일수록 그러한 문제가 표면화된다는 것을 한국사회는 이미 체험했고 지금도 그 진통을 앓고 있는 중이다. 물질적으로는 이전보다 풍족해졌지만 개인주의나 물질주의, 치열한 경쟁, 신빈곤층의 대두 등의 문제를 겪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문제를 작품을 통해 감지하게 되는 것도 결코 우연한 일은 아닐 것이다. 작가는 빈민가의 아이들을 자신이 겪은 유년 시절과 결부시킨다. 다시 말해 고도성장의 사각지대와 국가 사회주의 이념 하에 뒤엉켰던 자신의 유년시절을 오버랩시켜 대상의 존재론적 현존 및 주관의 객관적 서술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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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진웨이_서광_캔버스에 유채_200×180cm_2010
허진웨이의 작품에 나타나는 아이들은 이중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아이들은 미래사회의 ‘새 싹’이라는 의미에서 희망을 상징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의식적으로, 물질적으로 소외되어 있다는 점에서 피폐함을 상징하고 있다. 소년들은 망연자실해 있거나 한결같이 핏기마저 잃어버려 아이들이 위기에 직면해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그의 작품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빛은 물리적인 광선 이전에 아이들을 지탱해주는 강력한 기반 또는 동경의 대상으로 해석된다. 저녁의 석양이 아이들을 비추어주는가 하면 무지개로 떠오르기도 하고 때로는 창을 통해 아이들 곁으로 다가서기도 한다. 이렇듯 그의 작품에선 희망과 피폐함이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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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진웨이_다마장_캔버스에 유채_180×200cm_2006
허진웨이는 이렇듯 집단초상화를 통해 오늘날 중국사회의 문제를 날카롭게 파헤치고 있다. 리얼리즘의 강점인 인간성의 회복을 바탕에 깔면서 겉으로는 아무 일없이 평탄해 보이나 내막에 있어서는 어두운 사회현실에 대한 비판을 은연중 내포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작가는 구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와 캐테 콜비츠(Kathe Kollwitz)의 리얼리즘에 그 맥이 닿아 있는 데 다만 허진웨이의 경우 인물의 심리묘사가 두드러지고 주제전달에 있어 상징성이 농후하다는 점은 특기할만하다. 문화혁명 이래 중국미술이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얽매인 경향을 보였다면, 허진웨이는 사회문제를 건드리면서도 인간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 이채롭다. 그리고 이것이 허진웨이의 작품을 주시하고 기대를 걸게 하는 주된 이유가 된다. 허진웨이의 작품이 한국의 미술애호가들에게 중국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를 진작시키는 데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 ■ 서성록
Vol.20100314a | 허진웨이展 / he jinwei / 何晋渭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