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가 끝난 절망의 시간(Garbage Time)
스포츠는 개인종목도 있지만, 팀 경기도 있다. 나는 과거 개인종목과 단체 경기인 기계체조를 전공했다. 성경에서도 인생을 스포츠 경기에 비유한 구절이 많이 있다. 달음박질, 선한 싸움, 면류관, 경기하는 자의 규칙 등에 관한 인간의 존재 방식이 압축된 무대로 비유되곤 한다. 그래서 "그 사람을 알려면 그 사람과 경기를 하라"는 말이 회자된다. 경기는 단순히 승패를 가르는 행위가 아니라, 한 사람의 내면과 인격을 드러내는 장이기 때문이다. 스포츠의 훈련 과정 속에는 인내와 성실, 충성과 절제, 규칙과 관계, 위계와 배려, 경쟁과 협력, 승리의 영광과 패배의 쓰라림, 실패와 성공이 끊임없이 교차한다. 그 모든 과정은 인생이 경험할 수 있는 총체적인 희로애락을 압축해 보여준다. 수많은 반복과 훈련 속에서 자신을 다스리고 절제하는 법을 배우고, 단순히 기술의 습득이 아니라, 한 인간을 다듬어가는 삶의 도가니라고 할 수 있다.
스포츠는 몸으로 쓰는 인생 교과서다. 스포츠는 인격이 총체적으로 드러나고 훈련되는 과정이며, 오래 버티는 법을 먼저 배우게 하며, 박수보다 침묵에 더 익숙해지고, 환호보다 고독한 반복 속에서 자신을 세우게 한다. 스포츠는 이기는 법을 먼저 배우는 것이 아니라, 지는 법을 먼저 배우고, 남을 넘어서기 전에 자신을 꺾도록 훈련하는 가장 정직한 인간 수련의 장소가 된다. 운동은 기록을 남기고, 승부를 가르지만, 스포츠는 결국 사람을 만든다.
1. garbage time(소모되는 시간)
스포츠에서 garbage time이라 불리는 순간이 있다. 점수 차가 너무 커서 승부가 이미 결정된 후, 그저 남은 시간을 소화하는 경기의 마지막 구간, 관중의 시선은 이미 흩어지고 중계진도 담담하게 시간을 흘려보낸다. 그러나 그 순간을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 벤치에서 묵묵히 기다리던 신인 선수다. 그는 결과를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경기장에 들어서는 그 몇 분을 위해 온 몸을 던진다. 왜냐하면 그 시간은 그의 첫 기록이자, 새로운 역사의 첫 페이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에도 garbage time이 있다. 계획이 무너지고, 기회의 문이 닫히고, 세상이 말하길 "쟤 끝났다" 하는 시기, 남들이 보기에는 더 이상 뒤집을 수 없는 상황, 그러나 하나님은 그 시간에도 우리를 부르신다. 사람들이 '의미 없는 시간'이라 부르는 바로 그때가, 하나님의 손에서는 새로운 창조의 시간이 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시기 직전, 제자들은 도망쳤고, 군중은 조롱했고, 세상은 패배라 불렀다. 그러나 그 마지막 순간, 예수님은 옆에 있던 한 강도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세상의 눈에는 이미 패배가 확정된 garbage time 같았으나, 하나님의 눈에는 영원한 구원의 문이 열리는 결정적 순간이었다.
하루의 일상에서도, 인생의 후반부에도, 혹은 한 시절의 마지막 모퉁이에도 garbage time처럼 보이는 시간이 있다. 그러나 믿음은 그 시간에 무릎 꿇고, 손을 들고, 작은 순종의 씨앗을 심는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쓰레기처럼 버려진 시간을, 영원한 이야기의 첫 장으로 바꾸실 수 있기 때문이다. 끝남의 시간, 사람들이 패배로 단정한 그 시간에도 하나님이 베푸시는 결정적 시간이야말로 인생의 최종적이고도 궁극적인 승리를 가져오는 구속의 시간이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쓸모없고 끝장난 시간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시선은 그 시간을 새 창조의 출발점으로 역사하시는 golden time이 되게 하신다. 골든타임은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작점이다. 그리고 그 시작점에서 믿음은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2. Hustle Play(기록에 없는 승리)
경기를 보다 보면, 기록에는 남지 않지만 팀의 분위기를 단숨에 바꾸는 장면이 있다. 흘러나오는 공을 끝까지 쫓아가 몸을 던져 살려내는 선수, 관중석을 향해 달려가 파울볼을 잡는 선수, 수비로 전력 질주해 상대의 확실한 득점을 막아내는 장면, 이런 순간을 사람들은 hustle play라고 부른다. hustle play는 기술이 전부가 아니다. 그 속에는 헌신, 열정, 그리고 몸을 사리지 않는 마음이 있다. 코치가 시켜서가 아니라, 팀을 사랑하기 때문에 나오는 행동이다. 스포츠맨 중에 그런 신뢰를 주는 사람이 많이 있지만, 대표적으로 나는 영국 맨체스터에서 활약했던 박지성 선수가 생각난다.
경기장에서 hustle play가 팀의 승부를 바꾸듯,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한 사람의 전력질주가 공동체의 영적 분위기를 뒤집을 수 있다. 누군가를 용서하는 순간, 이웃을 돕기 위해 시간을 내는 결단의 발걸음이 바로 그 플레이다. 이런 헌신은 때로 기록에 남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약속한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6:4). 우리 인생 복음의 경기장에서, 우리 모두는 각자의 포지션에서 팀을 위한 hustle play를 할 수 있다. 기록보다 중요한 것,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아시는 것, 그것이 우리를 달리게 한다.
3. 희생 번트와 희생 플라이
야구에는 기록보다 더 소중한 순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을 희생하면서 팀을 위해 한 발짝을 내딛는 순간이다. 희생 번트(sacrifice bunt), 희생 플라이(sacrifice fly) 타자는 스스로 아웃을 감수한다. 자신의 이름을 드높이는 대신, 오직 한 사람, 아니 팀 전체를 위해 방망이를 든다. 스포트라이트는 없지만, 그 한 번의 희생은 경기의 흐름을 바꾼다. 희생 번트, 희생 플라이는 자기 기록은 낮아지고, 박수는 받지 못할지라도 팀을 위한 보이지 않는, 승리를 쌓아가는 고귀한 모습이다.
나는 이 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생각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인류를 위한 희생 번트, 희생 플라이를 남기신 분이다. 오늘, 나의 작은 선택 하나가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작은 번트가 되기를 소망한다. 오늘, 나의 조용한 희생이 하늘의 큰 승리를 준비하는 첫걸음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첫댓글 이렇듯 스포츠에 비유하니 마음속으로 쏘~옥 들어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