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神들의 숲에 들다 / 최영옥
당숲*이 빗장을 엽니다
서낭당 금줄 늑골 사이에 하도롱빛 소원 하나 접어 두고 오솔길을 따라 오릅니다
바람이 오는 방향에서 흘러나오는 복자기나무 초록 숨결이 오래된 숲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오래전 세웠던 나라와, 오래전 살았던 사람들과, 오래전 사라진 사랑 이야기가 청록빛으로 풀풀풀 풀려나오자 새들이 푸릇푸릇 날아오릅니다
아마도 오래된 영혼들이 숲속을 떠돌다 떠돌다 파랑새 되어 터를 잡고 사는 것 같습니다
피안의 세계를 넘나드는 새들은 정말로 천상의 행복 누리고 있을까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신갈나무 널찍한 이파리를 펴서 들여다봅니다
자동차도 없던 시절, 얼마나 많은 푸른 잎들이 짚신에 몸 누이고 적멸에 들었을까 생각하다가 넉살 좋은 사위질빵 상앗빛 너스레에 그만 웃음을 터뜨립니다
뎅, 뎅, 뎅, 당숲이 벌써 빗장 걸 시각을 알립니다
이제 곤비한 영혼들이 사는 마을로 되돌아가기로 합니다
헌데, 숲을 벗어나는 길이 낯설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요?
마음이 멈칫거리며 자꾸만 뒤를 돌아다봅니다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성황림(천연기념물 제93호).
*출처: 2020년 시집- 『고요의 뒤꿈치를 깨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