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7월 24일 금요일
[(녹) 연중 제16주간 금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백] 성 사르벨리오 마클루프 사제
말씀의 초대
예레미야 예언자는,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주님의 옥좌’라 부르고, 모든 민족들이 주님의 이름을 찾아 예루살렘에 모일 날이 오리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설명하시며,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내가 너희에게 내 마음에 드는 목자들을 보내리니 모든 민족들이 예루살렘에 모일 것이다.>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3,14-17
14 배반한 자식들아, 돌아오너라.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너희의 주인이다. 나는 너희를 이 성읍에서 하나,
저 가문에서 둘씩 끌어내어 시온으로 데려오겠다.
15 내가 너희에게 내 마음에 드는 목자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너희를 지식과 슬기로 돌볼 것이다.
16 너희가 그날 그 땅에서 불어나고 번성하게 될 때, ─ 주님의 말씀이다. ─
사람들은 더 이상 주님의 계약 궤에 대하여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마음에 떠올리거나 기억하거나 찾지 않을 것이며,
다시 만들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17 그때에 그들은 예루살렘을 ‘주님의 옥좌’라 부를 것이고,
모든 민족들이 주님의 이름을 찾아 예루살렘에 모일 것이다.
그러고는 더 이상 자신들의 악한 마음을 고집스럽게 따르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은 열매를 맺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18-2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8 “너희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새겨들어라.
19 누구든지 하늘 나라에 관한 말을 듣고 깨닫지 못하면,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간다.
길에 뿌려진 씨는 바로 그러한 사람이다.
20 돌밭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는다.
21 그러나 그 사람 안에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그는 곧 걸려 넘어지고 만다.
22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
23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다.
그런 사람은 열매를 맺는데,
어떤 사람은 백 배, 어떤 사람은 예순 배, 어떤 사람은 서른 배를 낸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 나오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 대한 글을 찾아 읽다가 다음 글에 멈칫하였습니다. “나는 ‘씨 뿌리는 사람’인 동시에 씨를 받아들여 소출을 내는 ‘밭’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나는 내 안에서 길, 돌밭, 가시덤불을 발견합니다. 그럼에도 나는 실망하지 않습니다. 소출에 장애가 되는 부분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믿음과 희망과 사랑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말할 것 없이 내 안에는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자리하고 계심을 나는 압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장애에도 틀림없이 소출을 낼 것이라고 나는 확신합니다”(정승현, 『마태오 복음의 비유 이야기』, 31-32면).
독일의 신학자인 디트리히 본회퍼 또한 이 비유를 풀이할 때 지나치게 ‘좋은 땅’이 되려는 오류를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자칫 또 다른 율법주의나 경건주의에 빠져서 말씀의 씨를 뿌리시는 하느님이 아닌 나의 상태나 공로에 집중하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모든 장애에도 틀림없이 소출을 내실’ 하느님에 대한 믿음 없이, 그저 좋은 땅을 일구려고 고개를 숙인 채 밭을 완벽하게 가는 데에만 열중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것이 더 큰 실망과 자책으로 이어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리는 줄도 모르고 말입니다. 물론 말씀의 씨앗이 잘 자라도록 마음 밭을 가꾸려는 회개의 몸부림은 우리에게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노력도 하느님의 은총 없이는 소용 없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선물로 받아들일 줄 아는 겸손한 마음이 있어야 비로소 우리는 우리 힘이 아닌 그분의 힘으로 더 많은 소출을 낼 수 있을 것입니다.(백재욱 스테파노 신부)
주님, 들은 말씀을 깨닫게 해주십시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돌아보니 참으로 오랜 세월 말씀을 나누며 살아왔습니다. 사실 첫 출발 때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건강이 좋지 않은 탓에 겨우겨우 신학교를 다녔고, 사제 서품은 받았지만, 제대로 배운 것이 별로 없어 많이 망설였습니다.
그래도 용기를 가지고 온라인을 통한 말씀 나눔을 시작했었는데, 그 세월이 벌써 25년입니다. 한없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매일 빼먹지 않고 꾸준히 렉시오 디비나에 충실했고, 그 결과물을 공유했습니다. 돌아보니 하찮고 보잘 것 없는 나눔임에도 큰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분들 덕분에 오랜 세월 말씀 안에 살아올 수 있어, 항상 감사드릴 뿐입니다.
그런 노력 덕분에 보람된 일도 참 많습니다. 여기저기 본당이나 단체에서 초대해주셔서 강의도 참 많이 다녔습니다. 처음에는 낯선 일이라 부담도 컸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연륜이 쌓여 마치 전문 강사처럼 편안하게 다닙니다.
그래도 아직 힘들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쪽에서는 열심히 준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해 말씀을 선포하고 있는데, 저쪽에서는 별 반응이 없는 것입니다. 왜 와있는지 의아심이 들 정도로 심드렁한 분도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프로가 되어 그런지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무척 불편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에게 ‘경청’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누군가의 말을 잘 듣는다는 것, 정말 중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호의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해준다는 것, 그것처럼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매일 선포되는 하느님의 말씀, 때로 어렵습니다. 우리들의 제한된 두뇌로 한없이 크신 하느님의 말씀에 담긴 진의를 찾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때로 그 말씀은 너무나 오묘하고 때로 너무나 함축이어서 건성으로, 적당적당히 들어서는 그 뜻을 파악할 수 없습니다.
선포되는 하느님의 말씀을 보물처럼 여기고, 귀를 쫑긋 세우고, 최선을 다해서, 혼신의 힘을 다해서 들을 때, 거기서 오는 말씀의 은총은 얼마나 큰 것인지 모릅니다.
성찬의 전례가 보다 더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미사가 끝난 후 우리들의 삶 안에서 미사가 지속되어야 합니다. 성찬례의 정신과 영성이 우리들의 생활 안에서 구현되어야 합니다. 나눔과 희생, 봉사와 용서, 사랑의 실천이 일상 안에서 되풀이되어야 하느님께서 더욱 기뻐하실 것입니다.
말씀의 전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의 씨가 우리 마음 안으로 떨어지는 것만으로 끝나버린 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 이 말씀, 이 강론, 이 묵상, 정말 좋다, 그것만으로 끝나버린 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안에 뿌려진 말씀이 보다 많은 결실을 맺도록 하기 위해서는 말씀이 우리들의 삶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복음 선포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생활 안에서 복음이 꽃 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하느님께 한 가지 화살기도를 올려봅니다.
“주님, 당신 말씀을 잘 듣게 해주십시오. 들은 말씀을 깨닫게 해주십시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주일 아침 성당 가는 길이었습니다. 비가 내리고 있어서 단단히 준비했습니다. 우산과 우비를 챙겨서 나갔습니다. 신발도 방수가 되는 걸로 신었습니다. 빗줄기가 점점 강해지면서 방수가 되는 신발에도 조금씩 물이 들어왔습니다. 처음에는 물을 피해서 걸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물이 신발에 들어왔고 이내 편하게 걸어갔습니다. 도저히 물을 피해서 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우산과 우비가 있어서 신발 이외에 다른 곳은 비에 젖지 않았습니다. 비에 젖은 신발을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는 깨진 유리창입니다. 깨지지 않고 깨끗한 유리창에 사람들은 돌을 던지지도, 쓰레기를 버리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깨진 유리창을 보면 돌을 던지기도 하고, 쓰레기를 버리기도 합니다. 이미 유리창이 깨졌기 때문입니다. ‘자포자기’라는 말도 있습니다. ‘불가항력’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마치 길가에 뿌려진 씨앗과 같습니다. 가시덤불에 뿌려진 씨앗과 같습니다. 신앙생활도 그런 면이 있습니다. 어쩌다 특별한 이유 없이 미사에 나가지 않았는데 그것이 습관처럼 되어서 성당에 아예 안 나가는 분을 보았습니다.
다른 하나는 ‘목적지’입니다. 비록 신발에 물이 들어왔지만 ‘성당’이라는 목적지를 알았기에 물살을 헤치고 성당으로 걸어갔습니다. 목적지가 없었다면 거센 빗줄기를 보면서, 신발에 물이 들어오는 걸 느끼면서 아마 다시 사제관으로 돌아갔을 겁니다. 내비게이션을 보면서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목적지가 입력되면 비록 잘못된 길을 갈지라도 내비게이션은 곧 다른 길을 알려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밀과 가라지’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밀과 가라지는 품종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깨진 유리창이 된다면 밀이었던 우리의 마음은 곧 가라지가 됩니다. 우리의 마음이 내비게이션이 된다면 그래서 목적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면 가라지였던 우리의 마음은 곧 밀이 됩니다. 우리의 삶에 언제나 꽃길만 펼쳐져 있지는 않습니다. 날씨가 변화무쌍한 것처럼, 우리의 삶에는 때로 흐린 날도, 천둥과 번개도 있기 마련입니다. 좋은 밭에 뿌려진 씨가 되기를 바라지만 때로는 길가에, 돌밭에, 가시덤불에 뿌려지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목적지’입니다. 먹구름 뒤에는 밝은 태양이 있다는 믿음입니다.
꽃길만 걸었던 성인과 성녀는 없습니다.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꽃길만 걷지 않으셨습니다. 좋은 밭에만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라는 가시덤불도 만났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던 군중’도 있습니다. 믿었던 제자의 배반도 있었습니다. 그 길이 너무 힘들어서 세 번 넘어져야 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목적지’를 잃어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죽음의 강을 건너 부활의 땅으로 갈 수 있으셨습니다. 마디가 없는 대나무는 없습니다. 나이테가 없는 나무도 없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복음을 전하면서 평탄한 길을 걷지 않았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에게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다섯 차례나 맞았고, 채찍질을 세 번 당했으며, 돌에 맞아 사람들이 죽은 줄 알고 도시 밖에 버릴 정도의 고난도 겪었습니다. 또한 세 번이나 파선을 당했고, 하루 밤낮을 깊은 바다에서 지내기도 했습니다. 감옥에 갇히고, 굶주리고, 목마르고, 추위와 헐벗음에 시달렸으며, 때로는 거짓 형제들과 동료들의 배신으로 마음의 상처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바오로 사도는 복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고난을 실패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고난 속에서 그리스도의 은총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 바오로 사도에게 중요한 것은 비에 젖은 신발이 아니었습니다. 깨진 유리창처럼 무너진 마음도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목적지였습니다. 그 목적지는 그리스도였고, 하느님 나라였고, 복음이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내 마음에 드는 목자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너희를 지식과 슬기로 돌볼 것이다.” 참된 목자는 양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목적지를 알려주는 사람입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길이 막히고, 신발이 젖어도 하느님께로 가는 길을 함께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목자는 양들에게 꽃길만 약속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험한 길에서도 주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나게 합니다. 마음이 깨졌을 때 다시 주님의 은총으로 회복될 수 있다고 말해 줍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의 마음 문 앞에 서서 두드리고 계십니다.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으리라.” 주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이 길가처럼 굳어졌다고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돌밭처럼 뿌리가 얕다고 버리지 않으십니다. 가시덤불처럼 세상의 걱정에 눌려 있다고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다시 문을 열기를 기다리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다시 좋은 땅이 되기를 기다리십니다.
비에 젖은 신발은 말라 버립니다. 깨진 유리창도 다시 고칠 수 있습니다. 길을 잘못 들어도 내비게이션은 다시 길을 알려줍니다. 우리 신앙도 그렇습니다. 잠시 흔들릴 수 있습니다. 때로 넘어질 수 있습니다. 마음이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목적지를 잃지 않으면 다시 걸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목적지는 하느님 나라입니다. 우리의 목적지는 주님과 함께하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인내하며 걸어가는 사람은 마침내 열매를 맺습니다. 어떤 사람은 백 배, 어떤 사람은 예순 배, 어떤 사람은 서른 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의 마음이 깨진 유리창이 아니라 주님께 길을 묻는 내비게이션이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가라지가 아니라 밀알이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길가와 돌밭과 가시덤불을 지나 좋은 땅이 되면 좋겠습니다. 비가 와도, 신발이 젖어도, 길이 험해도 주님께서 기다리시는 목적지를 향해 다시 한 걸음 내딛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오롯한 하나>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다. 그런 사람은 열매를 맺는데, 어떤 사람은 백 배, 어떤 사람은 예순 배, 어떤 사람은 서른 배를 낸다.”(마태 13,23)
믿음께서 뿌리신
믿음을 품어
믿음이다
희망께서 뿌리신
희망을 품어
희망이다
사랑께서 뿌리신
사랑을 품어
사랑이다
기쁨께서 뿌리신
기쁨을 품어
기쁨이다
참됨께서 뿌리신
참됨을 품어
참됨이다
선함께서 뿌리신
선함을 품어
선함이다
고움께서 뿌리신
고움을 품어
고움이다
굳셈께서 뿌리신
굳셈을 품어
굳셈이다
빚음께서 뿌리신
빚음을 품어
빚음이다
섬김께서 뿌리신
섬김을 품어
섬김이다
살림께서 뿌리신
살림을 품어
살림이다
이룸께서 뿌리신
이룸을 품어
이룸이다
오늘의 성인
성 사르벨리오 마클루푸(Charbel Makhlouf)
신분 : 신부, 은수자
활동지역 : 레바논(Lebanon)
활동연도 : 1828-1898년
같은이름 : 마클루프, 사르벨리우스
성 사르벨리우스 마클루푸(Sarbellius Makhlouf, 또는 사르벨리오 마클루푸)는 1828년 5월 8일 레바논의 베카아 카프라(Bekaa-Kafra)에서 노새를 끄는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나 요셉 자룬 마클루푸(Josephus Zaroun Makhlouf)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는 3살 때 아버지를 잃고 삼촌에 의해 양육되었다. 어려서부터 신심이 깊었던 요셉에 비해 그의 삼촌은 그렇지 못했다. 소년 시절 그가 가장 좋아한 책은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의 “준주성범”이었다.
23살이 되었을 때 요셉은 집을 빠져나와 비블로스(Byblos) 북쪽에 있는 동정 성모 마리아 수도원에 입회하였다. 1853년, 2년간의 수련을 마친 그는 안나야(Annaya)에 있는 성 마로 수도원으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그는 첫 서원을 하며 2세기의 순교자 성 사르벨리우스의 이름을 자신의 수도명으로 선택했다. 그는 1853년 장엄 서원을 하고 1859년에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모범적인 수도승으로 살았지만 그가 꿈꾼 것은 고대 사막의 교부들과 같은 삶이었다. 그래서 1875년부터 죽을 때까지 23년 동안 5세기의 수도원장 성 마로(Maron, 2월 14일)의 모범을 따라 은수자로서 매우 엄격한 삶을 살았다. 그의 성덕에 대한 명성이 커지자 점점 많은 사람들이 상담이나 축복을 청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그는 또한 성체성사에 대한 위대한 신심을 갖고 있었다. 가끔 수도원장이 인근 마을에 가서 성체성사를 집전하도록 했을 때 그는 매우 기쁘게 이를 받아들였다. 그는 기도 중에 몸이 공중에 뜨는 은총도 받았다.
성 사르벨리우스 마클루푸는 1898년 12월 24일, 예수 성탄 대축일 전날 늦은 오후에 안나야에서 선종하였다. 그의 사후 몇 차례의 치유 기적이 일어나면서 그의 무덤은 레바논 사람이건 아니건, 그리스도인이건 아니건 수많은 사람들의 순례하는 장소가 되었다. 그는 1965년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77년 10월 9일 같은 교황으로부터 성인품에 올랐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종종 교회는 두 개의 허파(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를 갖고 있는데, 우리는 그 둘로부터 호흡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성 사르벨리우스 마클루푸 같은 성인이야말로 가톨릭 교회의 다양성과 일치의 참된 가치를 깨닫게 해주는 좋은 예이다. 사르벨 마클루푸(Charbel Makhlouf)로도 불리는 그의 축일은 12월 24일에 기념하기도 한다.
성 글렙 (Gleb)
활동년도 : +1015년
신분 : 순교자
지역 : 러시아(Russia)
같은 이름 : 글레프
러시아의 첫 번째 신자 왕자였던 성 블라디미르 1세(Vladimir I) 대공이 1015년에 죽자, 그의 맏아들인 스비야토폴크는 자신의 위치를 염려하여 아버지의 다른 형제들인 성 보리스(Boris)와 글렙을 제거하려고 기회를 엿보다가 삽시간에 이 형제들을 살해하였다. 형으로부터 제거의 위협을 받게 된 계기는 부당한 방법으로 정권을 탈취하려는 형에 대하여 정의를 요구하면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는 등의 말을 했기 때문이지, 장자의 권리에 반기를 든 것은 아니었다.
이 때문에 러시아인들은 이들 두 사람을 ‘자발적으로 고난을 받은 자’로서 공경하였다. 이들의 축일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교회에서 엄수되고 있다. 성 보리스와 성 글렙은 러시아 이름이고, 신자명은 로마누스(Romanus)와 다윗(David)이다. 보리스는 모스크바의 수호성인이다.
성녀 쿠네군다(Cunegundes)
신분 : 수녀, 왕비
활동지역 : 폴란드(Poland)
활동연도 : 1234-1292년
같은이름 : 구네군다, 구네군데스, 구네군디스, 쿠네군데스, 쿠네군디스, 킨가, 킹가
마걀 이름으로 킹가(Kinga)로 불리던 성녀 쿠네군다(Cunegundis, 또는 구네군다)는 헝가리의 국왕 벨라 4세의 딸이자 성녀 엘리사벳(Elisabeth, 11월 17일)의 조카딸이었다.
쿠네군다는 궁중에서 ‘라틴어와 하느님 두려워하는 법을 배우면서’ 자랐고 16세 때 폴란드 국왕 볼레슬라우스(Boleslaus)와 결혼하였다.
그녀는 비록 결혼에는 동의하였으나 결혼한 밤에 왕에게 정절을 지키겠다고 말하였다.
이에 대하여 왕은 1년 동안만 지키자고 동의하였다.
그러나 이 기간이 다 끝나기 전에 왕과 왕비는 크라쿠프(Krakow)의 주교 앞에서 평생 동정을 서약하였다.
쿠네군다 왕비는 궁중의상 아래에 허름한 옷을 입고 엄격한 생활을 하였고, 수시로 병자와 가난한 이에게 음식을 날라다 주었다.
1279년에 남편이 서거하자 그녀는 나라를 다스리라는 귀족들의 청을 물리치고, 자신이 스타리 사치(Stary Sacz)에 세운 클라라 봉쇄 수녀원에 들어가서 여생을 지내다가 1292년 7월 24일 선종하였다.
그녀는 수많은 성당과 병원을 지었으며, 작은 형제회를 위해 많은 경비를 지출했다고 한다.
만년에는 그녀 주위에 수많은 기적과 초자연적인 현상이 일어나서 그녀의 출중한 덕행이 더욱 빛났다고 한다.
성녀 쿠네군다에 대한 공경은 이미 1690년 교황 알렉산데르 8세(Alexander VIII)에 의해 허락되었고, 1715년 교황 클레멘스 11세(Clemens XI)는 그녀를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수호자로 선포하였다.
1998년 7월 3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그녀를 복자품에 올렸고, 이듬해인 1999년 6월 16일 폴란드를 방문하여 스타리 사치에서 그녀에 대한 시성식을 집전하였다.
성녀 크리스티나 (Christina)
활동년도 : +연대미상
신분 : 동정 순교자
지역 : 볼세나(Bolsena), 투스카니, 이탈리아
같은 이름 : 끄리스띠나, 크리스띠나
이탈리아 반도 중부의 라티움(Latium)의 볼세나에서 성녀 크리스티나를 공경하는 전설은 너무 단순하여 그 내용을 조금이라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역사성은 희박하지만 유명한 재판과 기적에 관한 전설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볼세나에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무덤들이 남아 있으나 그곳이 순교자 크리스티나가 묻힌 곳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볼세냐의 성녀 크리스티나(St. Christina of Bolsena, 7월 24일) 하늘 천사들의 친구, 아버지에게 고문 당하다 화살 맞아 순교 3~5세기경, 이탈리아 볼세냐 지역에서 순교.
성녀 크리스티나는 어린 나이에 갖은 고문으로 고통을 당했다. 몇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그때마다 하느님께서 기적을 베풀어 살아날 수 있었다.
성녀는 부유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성녀 아버지는 우상숭배를 좋아하는 이도교인이었다. 성녀 아버지는 황금으로 만든 조각들을 집안 곳곳에 놓아두고 기도하곤 했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성녀는 어느 날 황금 우상 조각들을 부숴버리고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줬다. 이를 알아 챈 성녀 아버지는 성녀를 지하 감옥에 가두고 하인들을 시켜 불에 달군 꼬챙이로 성녀를 고문하라고 시켰다. 그 와중에도 성녀는 한 번도 신앙이 흔들린 적이 없었다.
성녀 아버지는 딸을 죽이려고 마음 먹고 성녀 목에 무거운 바위를 매달아 볼세냐 호수에 빠뜨렸다. 그때 하늘에서 천사들이 내려와 성녀를 구해준 것으로 전해진다. 성녀는 그 후에도 몇 번씩이나 감당하기 힘든 고문을 당했다. 성녀는 결국 목에 화살을 맞아 순교했다.
성녀의 무덤은 19세기 때 볼세냐 지방에서 발견됐고 성녀 유해는 현재 시칠리아 팔레르모 지방에 모셔져 있다.
한편 7월 24일은 '놀라운 사람'으로 알려진 성녀 크리스티나(St. Christina the Astonishing, 1150~1224) 축일이기도 하다. 벨기에에서 태어난 성녀는 천국과 연옥, 지옥을 경험한 것으로 알려졌다.
복녀 루도비카 (Louise)
활동년도 : 1462-1503년
신분 : 과부
지역 : 사보이아(Savoia)
같은 이름 : 루도비까, 루이즈
상류사회의 우아한 귀부인이던 루도비카(Ludovica)는 클라라 회원이 될 은혜를 미리 하느님으로부터 받았던 것 같다. 그녀는 사보이아 공국의 공작인 복자 아마데우스의 9세(Amadeus IX, 3월 30일)의 딸로 태어났다. 아홉 살 때에 부친을 여의었지만 어머니에 의하여 훌륭히 자랐으니, 특히 뛰어난 영적 지위에 있었다. 18세 때에 그녀는 위고 드 샬롱과 결혼하였는데 남편은 열렬한 그리스도인이었으므로, 그들의 집은 마치 수도원처럼 거룩하였고 부부생활은 사랑으로 가득하였다. 그녀는 최초로 자선함을 설치한 인물로 기록된다. 자선함에 모인 기금으로 그녀는 고아와 과부 특히 나환자들을 돌보았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남편과 사별한 그녀는 이제 완전히 세속과 결별하였다. 그녀는 재속 프란치스코회의 수도복을 입고 성무일도를 바쳤으며, 밤중에 일어나 새벽기도를 바치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그녀는 오르베(Orbe)의 클라라 수녀회에서 살게 되었다. 비록 귀족 출신이었지만 그녀는 수녀원 내의 부엌일을 비롯하여 온갖 집안일을 도맡아 하였다. 이처럼 그녀는 철저히 겸손하고 거룩한 삶을 살다가 1503년 7월 24일 “우리 사부 성 프란치스코여, 하느님의 자비를 빌어주소서” 하며 선종하였다. 그녀에 대한 공경은 1839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6세(Gregorius XVI)에 의해 승인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