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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리남중12회 원문보기 글쓴이: 이화구
문학 기행 - 鄕愁(향수)의 시인 정지용 선생의 생가를 찾아서 나는 퇴직을 하면 해보고 싶었던 일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강원도 정선이나 경남 밀양 그리고 전남 진도 등 아리랑의 고장을 찾아 답사여행을 하는 것과 문학기행 등 테마기행을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생각과 달리 집에서 쉬면서 환경이 바뀌다보니 감정의 변화가 생겨 퇴직한지 한 달이 다되어가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이제는 갑작스럽게 결정하여 다녀왔다. 예전에는 “아리랑 기행”을 먼저 하고 싶었으나 갑자기 떠나려니 아리랑의 고장은 멀어서 준비하기에 시간이 필요해서 먼저 문학기행을 떠났다. 내가 먼저 문학 기행의 장소로 “향수(鄕愁)의 시인 정지용 선생"의 생가가 있는 충북 옥천을 선택한 것은 일단 거리상으로 당일에 다녀올 수 있는 비교적 멀지 않은 지리적 요건과 예전에 내가 읽은 자료 중 정지용 시인의 ‘향수(鄕愁)’라는 시가 미국의 어느 시인의 시를 모방하여 쓴 시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꼭 한번 다녀오고 싶었던 것도 한 요인이었다.
어제 하루 나의 일상을 카메라 앵글에 담아 그림일기로 올려본다. 【아래 그림】우리나라 모든 국민의 애송시인 ‘향수(鄕愁)’로 잘 알려진 정지용 시인의 생가(生家) 【아래 그림】정지용 선생의 생가를 찾아가는 길은 울긋불긋 꽃대궐을 이룬 “고향의 봄”을 연상시키는 서정적인 모습이었다.
♪♪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
【아래 그림】발길 닿는 곳마다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아래 그림】철길 위로는 고향열차가 달려가고 【아래 그림】‘옥천(沃川)’이란 도시의 이름에서 풍기는 느낌은 “아름다운 강과 산의 조화로 만들어낸 기름진 황금들판의 풍요로움”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아래 그림】옥천에는 산이 높지 않으며 골이 깊지도 않은 능선 형태의 ‘일자산(一字山)’이 많다. 【아래 그림】옥천에는 기름진 문전옥답(門前沃畓)도 많다. 【아래 그림】이곳 정자를 지나다 보니 이곳은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고 누워서 엷은 졸음에 겨우셨을 것” 같은 서정적인 분위기다. 【아래 그림】이곳은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을 연상하게 한다. 【아래 그림】정지용 선생이 다녔던 초등학교 옆으로도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아래 그림】길가엔 정지용 선생의 시비(詩碑)가 서있는데 ‘고향’이란 시가 새겨져 있고 시의 내용이 최갑석 선생이 부른 가요 “고향에 찾아와도”란 노랫말과 분위기가 비슷하다.
♪♪ 고향에 찾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려뇨 두견화 피는 언덕에 누워 풀피리 맞춰 불던 옛 동무여 흰구름 종달새에 그려보던 청운의 꿈을 어이 지녀 가느냐 어이 새워 가느냐~ ♪♬ 【아래 그림】선생이 다녔던 초등학교 담장 옆으로는 청초한 제비꽃이 낯선 이의 방문에 수줍음을 타는 것 같았다. 【아래 그림】선생이 다녔던 죽향초등학교(예전 옥천공립보통학교) 교정에는 라일락꽃 향이 날리고 있다. 사람들은 라일락 향이 좋아서 봄을 기다리는지도 모르겠다. 【아래 그림】선생의 생가를 찾아가는 길에 아담한 한옥이 있어 들여다보니 음식점 같다. 【아래 그림】한옥 담장 안으로는 명자나무가 붉은 꽃을 피워내고 있다. 바닷가에는 빨간 해당화(海棠花)가 있으며 산에는 장미처럼 예쁜 산당화(山棠花)가 자란다. 예로부터 명자나무를 울안에 심으면 그 집안의 아녀자들이 바람난다는 속설 때문에 옛 사람들은 명자나무를 울 밖 집 가까운 곳에 심어두고 꽃을 즐겼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래 그림】옥천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약 40여분 걸어서 정지용 선생의 생가에 도착하였다. 【아래 그림】선생의 생가에 도착하여 제일 먼저 동으로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는지부터 확인해보니 선생 생가 앞으로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있었다. 【아래 그림】선생의 생가 뒤쪽을 보니 일자산(一字山)에서 흘러나온 물이 실개천을 이루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래 그림】정지용 시인의 생가는 鄕愁(향수)를 자아낼 만한 시골 고향집의 모습이다. 【아래 그림】선생의 생가엔 우물도 있고 【아래 그림】정지용 선생 생가 방 안을 들여다보니 서랍이 여럿 달린 한약방에서 사용하던 약장이 놓여있다. 아마 선생의 아버님께서 한약방을 하셔서 그렇지 않나 싶다. 【아래 그림】나도 먼 길을 달려왔으니 인증삿(shot) 하나쯤 남겨야 하지 않겠는가! 【아래 그림】이곳에도 명자나무가 장미처럼 예쁜 산당화(山棠花)를 피워내고 있다 【아래 그림】정지용 선생 생가 옆으로 동상과 현대식 건물의 문학관이 세워졌다. 【아래 그림】문학관 건물 옆으로도 인공으로 실개천을 만들어 ‘향수(鄕愁)’라는 시의 내용에 맞게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아래 그림】풍수상으로 보면 선생 생가 뒤로는 주산(主山)인 일자산이 자리하고 있고 【아래 그림】선생 생가 앞으로는 안산(案山)이 자리하고 있다. 【아래 그림】나도 선생님을 모시고 양 옆에서 인증삿(shot)을 남기고(문학관에서 해설하시는 분께서 양쪽에 앉으라며 사진을 찍어 주었고 이곳은 사진 촬영이 금지된 곳은 아니다) 【아래 그림】문학관 내부에 전시된 자료들 【아래 그림】아래 내용은 어느 대학교수님께서 발표한 정지용 시인의 ‘향수(鄕愁)‘에 대하여 모방과 관련한 비평자료를 근거로 요약하여 올려본다. 문학 작품의 표절시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심심찮게 나왔으며, 베스트셀러 작품도 짜깁기한 것이 발견되어 독자에 의해 고발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남의 것을 이용하되 결과를 달리하는 ‘모방’과 남의 것을 그대로 베끼는 행위인 ‘표절은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격언처럼, 모방은 또 다른 창조를 전제로 해야 한다. 세상이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공자님께서도 “성인(聖人)이나 나면서부터 알고(生而知之), 다른 사람들은 배워서 알거나(學而知之) 애를 써서 안다(困而知之)”라고 했다. 모방과 표절은 있을 수 있는 문제라고 본다. 그러나 단순한 모방이나 표절은 문제가 많으며 그것을 빌어 또 다른 창조를 이루어낼 때에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즉 창조적인 모방이 바로 그것이다. 정지용 시인의 ‘향수’와 이 작품이 모방한 것으로 짐작되는 트럼블 스티크니의 ‘추억’을 비교해 본다. 미국의 시인 트럼블 스티크니(Joseph Trumbull Stickney)는 1874년생으로 희랍 문학과 산스크리트 문학을 공부한 사람으로 1902년에 한 권의 시집을 출간하고, 1904년에 30세의 나이로 아깝게도 뇌종양으로 죽고 만다. 【아래 그림】다음은 그의 대표 작품인 ‘추억’이란 시이다. Mnemosyne(추억)
A-① It"s autumn in the country I remember(지금은 가을이 오는 내 추억의 고향)
B-① How warm a wind blew here about the ways!(따사로운 바람결은 길모퉁이 스치고 ) ② And shadows on the hillside lay to slumber(향그러운 태양의 긴 여름날) ③ During the long sun-sweetened summer-days.(산마루엔 그림자 누워 졸던 곳) ④ It"s cold abroad the country I remember.(지금은 추운 내 추억의 고향)
C-① The swallows veering skimmed the golden grain (날씬하게 기울은 제비 날개) ② At midday with a wing aslant and limber;(한낮에 유연하게 황금물결 박차고) ③ And yellow cattle browsed upon the plain.(누런 소 넓은 들에 풀 뜯던 곳) ④ It"s empty down the country I remember.(지금은 비인 땅 내 추억의 고향)
D-① I had a sister lovely in my sight:(내가 보아도 사랑스러운 내 누이는) ② Her hair was dark, her eyes were very sombre;(검은 머리에 수심 짙은 눈망울을 하고) ③ We sang together in the woods at night.(밤이면 숲 속에서 노래 부르던 곳)
④ It"s lonely in the country I remember.(지금은 쓸쓸한 내 추억의 고향)
E-① The babble of our children fills my ears,(어린 자식들 도란거리는 소리 내 귀에 가득한데) ② And on our hearth I stare the perished ember(난로 속 남은 재 응시하면) ③ To flames that show all starry thro" my tears.(눈물 속에 별인양 불꽃이 반짝이던 곳) ④ It"s dark about the country I remember.(지금은 어두운 내 추억의 고향) 시의 제목인 "Mnemosyne"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뮤즈신의 어머니이자 "기억의 여신"이다. 이 시는 이미지보다는 운율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음송 형식의 시이며 우리말로 그 운율을 살려 번역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가을에 생각나는 고향의 서정적인 모습을 느끼기에는 충분하리라 생각된다. 특히 마지막 두 행에서 질화로에 재가 식어서 불씨만 남았을 때 눈물에 비친 불씨를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로 묘사한 장면은 얼마나 다사롭고 눈물겹게 만드는 표현인가! "And on our hearth I stare the perished ember To flames that show all starry thro" my tears." 【아래 그림】정지용 시인의 향수 정지용 시인은 1902년생으로 태어난 곳은 실개천이 지즐대며 흐르는 농촌마을이었다. 지금은 산업화와 문명의 혜택을 받아 현대 도심마을로 변해가고 있으나, 그 당시로는 소박하고 인정미 넘치는 그런 마을로 온통 전설의 바다를 이루어 출렁이고 있었던 마을이었다. 선생은 12세 때에 혼인을 하여 이곳에 살았고, 옥천공립보통학교(현 죽향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한학을 배우며 이곳에서 살았다. 그리고 휘문고보를 거쳐 동지사대학을 마치고 모교인 휘문고보에 교사로 취임하여 실제는 14세 이후 고향을 떠나 객지의 고달픈 삶을 영위했다. 선생은 휘문고보시절 1등을 할 정도로 성적이 우수했으며, 특히 영어와 작문에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었으며 휘문고보 시절에는 문우회의 학예부장을 맡았다. 휘문고보 졸업하고 일본 경도에 있는 동지사대학 영문학부에 진학한다. 그리고 선생의 대표작인 ‘향수’는 1927년에 발표되었다. 鄕愁(향수) / 정지용 Ⅰ-① 넓은 벌 동쪽 끝으로 ②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③ 얼룩백이 황소가 ④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⑤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Ⅱ-①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② 비인 밭에 밤바람소리 말을 달리고, ③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 ④ 집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⑤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Ⅲ-① 흙에서 자란 내 마음 ②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③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④ 풀섭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든 곳, ⑤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Ⅳ-① 傳說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②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누이와 ③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④ 사철 발 벗은 아내가 ⑤ 따가운 해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⑥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Ⅴ-① 하늘에는 성근별 ②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③ 서리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④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⑤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우리 가요의 노랫말로 쓰일 정도로 친숙해 진 이 시에서 우리는 선생의 고향을 그리는 마음과 함께, 선생이 그리워했던 평화롭고, 사랑스럽고, 정겨운, 향토적인 고향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시 전편에 유년 시절의 추억이 담겨져 있으며, 한가로운 시골의 모습과 함께 아버지, 누이, 그리고 아내와 가족들이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행복한 고향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서경과 서정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하는 이 시는 선생 개인만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마음의 고향이라 할 만큼 우리들의 정서와 부합되는 작품이다. 【아래 그림】미국 시인의 ‘추억’과 선생의 ‘향수’의 비교 트럼블 스티크니의 ‘추억’과 선생의 ‘향수’는 많은 유사점을 갖고 있다. 먼저 선생의 생애와 관련하여 휘문고보 시절부터 일본 동지사대 영문학부에 수학하던 시기에 당시 문학도로서 많은 영미시를 접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트럼블 스티크니는 1900년대 초에 활동한 대표적인 시인으로 당시 젊은이들에게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었으며 선생은 영어에 능통하고 문학적 소양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향수’를 쓰기 이전에 스티크니의 ‘추억’을 읽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게 된다. 이러한 추측은 ‘추억’과 ‘향수 두 시의 구조 및 기법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스티크니의 ‘추억’은 형식면에서 전체 내용을 아우르는 한 행(A)을 독립된 하나의 연으로 처리하면서 전체를 5연으로, 한 연은 3행과 후렴구 형식의 1행으로 구성하고 있다. 이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유행했던 음송시의 전형이다. 매 연의 끝에 나오는 후렴 형식은 It"s로 시작하여 항상 remember로 끝난다. 게다가 B연에서는 1행의 ways와 3행의 days, C연에서는 grain과 plain, D연에서는 sight와 night, 그리고 E연에서는 ears와 tears를 통해 매 연마다 1행과 3행의 각운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행 구분과 동음어의 반복을 통해 정형시 혹은 음송시의 전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선생의 ‘향수’ 역시 전체 5연으로 구성된 하나의 정형을 이루고 있다. 스티크니의 ‘추억’처럼 시 전체 내용을 아우르는 독립된 연은 없다. 그러나 매 연마다 4~5 행으로 묘사하고 있는 고향의 모습은 모두 ".....는(든) 곳"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후렴구 형식의 1행은 그러한 고향의 모습을,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로 반복된다. 따라서 ‘향수’의 전체적인 시 형식은 ‘추억’의 한 변형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시의 내용을 보면 ‘추억’의 전체적인 내용은 시인이 기억하는 고향의 가을은 이러이러한 곳(춥고, 텅 비어있고, 외롭고, 어두운) 곳이라는 것이다. 즉, 과거 기억 속의 고향과 현재의 고향이 대조를 이루며 흔히 가을이란 이미지가 주는 쓸쓸함을 더해주고 있고 ‘추억’속의 고향은 다사롭고 눈물겨운 곳이란 예기다. 그리고 선생의 ‘향수’는 바로 ‘추억’에서 서정적 자아의 기억에 내재하는 고향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고 있다.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황소가 게으른 울음을 울고, 질화로에 재가 식고, 아버지가 졸고 있고, 검은 머리 누이, 아내, 따가운 햇살, 하늘의 별, 흐릿한 불빛, 도란거리는 소리, 이 모두는 ‘추억’의 고향 모습과 다를 것이 없다. 바로 이러한 소재와 이미지의 모방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소재 혹은 이미지가 유사한 것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Ⅰ-⑤ 꿈엔들 잊힐리야. A-① I remember Ⅰ-② 휘돌아 나가고 B-① blew here about the ways Ⅰ-③ 황소 C-③ yellow cattle Ⅱ-①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E-② the perished ember Ⅱ-② 비인 밭에 C-④ empty down Ⅱ-③ 엷은 조름 B-② lay to slumber Ⅳ-②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D-② hair was dark Ⅳ-② 누이 D-① a sister Ⅳ-⑤ 따가운 해쌀 B-③ the long sun-sweetened Ⅴ-① 별 E-③ starry Ⅴ-③ 우지짓고 지나가는 C-① veering skimmed Ⅴ-④ 흐릿한 불빛에 E-② the perished ember Ⅴ-④ 도란도란 거리는 E-② babble 【아래 그림】한 편의 시에서 이렇게 많은 유사점을 찾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향수’가 ‘추억’을 모방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시의 구조와 기법을 빌었을지언정 그 주제와 감흥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특히 서정적 자아의 모습이 전혀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미국시 ‘추억’에서 미국 시인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고향의 모습은 평화롭고, 아름답고, 따뜻한 곳인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을씨년스럽고, 공허하고, 외롭고 어두운 곳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러기에 다사로우면서도 눈물겨운 모습이다. 그러나 ‘향수’는 과거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음에도 이를 현재와 대조시키지 않는다. 서정적 자신도 고향이 아닌 타향에 있다. 타향에서 고향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서정적 자아의 기억 속에 살아있는 고향의 평화롭고, 아름답고, 정겨운 모습들만을 생생하게 그리면서 이를 현재까지 지속시키는 것이다. 두 작품의 발표 연대와 선생의 생애로 미루어 시를 쓰기 시작한 습작기에 트럼블 스티크니의 ‘추억’을 접했고, 선생은 이 시를 매우 감명 깊게 읽은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선생은 분명 이 시를 염두에 두고 ‘향수’를 썼을 것이다. 시의 형식이나 소재 그리고 이미지를 빌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더욱 분명한 것은 선생은 이를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자신의 고향의 서경과 서정에 맞게 재창조한 것이다. ‘향수’에는 ‘추억’에서 읽을 수 있는 cold, empty, lonely 그리고 dark와 같은 춥고, 공허하고, 쓸쓸하고, 어두운 가을을 찾아 볼 수 없다. 언제 읽어도 정겹고 따뜻한 고향이 머리 속에 그려지는 것은 비록 형식이나 내용 면에서 모방을 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통해 우리나라에 어울리는 서경과 서정을 창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창조적인 모방인 재창조를 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생의 천재성이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다. 【아래 그림】선생 생가 인근에는 예전엔 벌판이었을 만한 곳들이 많다. 【아래 그림】나는 시간이 좀 남아 인근에 있는 육영수 여사 생가를 찾았다. 가는 길가엔 왕벚나무가 만개한 꽃을 피우고 있다.
【아래 그림】육영수 여사 생가
【아래 그림】육영수 여사 생가는 그 규모나 웅장함이 여느 궁궐 못지않았다.
【아래 그림】집안엔 연못도 있고
【아래 그림】집안엔 대나무 숲도 있고
【아래 그림】집안의 뒤뜰과 담장은 궁궐과 비슷하다.
【아래 그림】집안의 뒤뜰 대나무 숲엔 진달래가 만발하고
【아래 그림】집안 뒤뜰의 담장은 이중으로 되어 잇는 것 같다.
【아래 그림】옥천 향교, 향교와 서원은 공통적으로 선현에 대한 제사와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육기관이지만 설립주체가 향교는 국가에서 지방교육을 위해 세운 관학이고, 서원은 사림양반이 세운 사학이라는 점이 큰 차이다. 요즘으로 따지자면 향교는 공립 중고등학교고 서원은 사립 중고등학교다.
【아래 그림】홍살문을 들어서면 교육공간인 명륜당이 있다. 明倫堂은 “인간의 도리를 밝히는 집”이란 뜻이다.
【아래 그림】육영수 여사 생가 인근 마을의 일자산은 보기에도 산이 크거나 험하지도 않으며 약하지도 않고 아담하며 빼어나 보인다. 그리고 이곳 주위는 산들이 담장을 두른 것처럼 빈곳이 없는 주밀명당이다. 명당이 주밀하면 기가 왕성하여 진혈을 결지하게 되어 인물을 많이 배출한다는 속설이 있다. 특히 이 지역은 일자산(一字山)이 계속되다 육여사 생가 뒤에서 솟아오른다. 그래서 육여사 생가 터가 명당이란 말이 나오는 것 같다.
【마치면서】 퇴직 후 집에서 쉬다보니 답답하여 갑작스럽게 답사여행을 떠났다. 모든 여행이라는 것이 준비를 하고 떠나야 하는데 대중교통에 대하여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떠나는 바람에 고생을 한 면이 있었던 것 같다. 다음 아리랑 기행은 준비를 철저히 해서 떠나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나도 정지용 시인의 ‘향수와’ 미국 시인의 ‘추억’이 비슷하다는 자료를 처음 보았을 때 전혀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관련 자료를 여러 번 읽다보니 그럴 수 있게 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은 분들은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보면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화구 올림 |
첫댓글 저두 5년전에 다녀 왔는데 추억이 새롭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