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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10년후의 미래사회
» 스티브 잡스가 2007년 1월9일 첫 아이폰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유튜브 갈무리
10년도 안돼 세상을 확 바꾼 아이폰
그는 긴장한 듯, 잠시 말을 끊고 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 그리곤 돌아서서 객석의 청중들을 향해 말을 이어갔다. “오늘은 내가 2년반 동안 손꼽아 기다려왔던 날입니다. 살다 보면 획기적이고 혁신적인 제품이 우리 모두의 삶을 바꿔 놓습니다. 누구든 이런 혁신적인 제품을 하나라도 만들어낸다면 정말 운이 좋은 거지요. 오늘 나는 이런 제품을 무려 3개나 선보이려 합니다. 그 첫번째는 터치로 조작할 수 있는 와이드스크린 아이팟입니다. 두번째는 혁신적인 휴대폰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번째는 획기적인 인터넷 통신기기입니다. 뭔지 감이 오세요? 이것은 각각 3개의 제품이 아닙니다. 단 하나의 제품입니다. 우리는 이 새로운 제품을 아이폰(iPhone)이라고 부릅니다. 오늘 애플이 휴대폰을 재발명합니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2007년 1월9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맥월드 2007에서 아이폰을 공개하던 순간의 모습이다. 6개월 후인 6월29일 아이폰은 마침내 시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로부터 꼭 10년이 지났다.
» 이 모든 것들이 스마트폰 속으로 들어갔다. 토머스 프레이 블로그(futuristspeaker.com)에서 재인용.
아이폰 저편에서 역사속으로 퇴장하는 것들
10년이 지난 오늘 스마트폰은 인류의 생활 플랫폼으로 굳건히 자리잡았다. 우리는 이제 손안의 기기로 남들과 대화하고 사진 찍고 이를 저장하는 것은 물론, 음악·영상을 감상하고 필요한 정보를 찾고 쇼핑·결제를 하고, 여행 경로를 묻고, 음식점 추천을 받고, 공부도 한다. 그때 아이폰이 오늘날처럼 생활을 뒤바꿔 놓을 줄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전세계 수백만개의 모바일 앱은 10년 전엔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이다.
크라우드펀딩, 공유경제, 소셜미디어 마케팅, 앱 개발자, 데이터 채굴, 동작 제어, 챗봇, 가상현실, 3D 프린터, 드론 등도 지금은 웬만한 사람들이라면 익숙하지만 당시엔 아주 변방에 자리잡고 있던 것들이었다. 그러나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는 법이다. 스마트폰이 뜨는 사이 이후 카메라, 유선 전화기, 녹음기, 시디, 데스크톱 컴퓨터, 신문, 비디오 카메라, 지도책 등은 무대 뒤로 사라져갔다.
» 3D 프린팅으로 만든 세계 최초의 사무실. 아랍에미리트연합의 수도 두바이의 두바이미래재단에 설치됐다. 아랍에미리트 혁신위( UAE Innovation Committee)
한 미래학자가 그려본 '10년 후 기술'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요즘의 신기술 가운데 아이폰처럼 10년후 세상의 중심으로 떠오를 것들이 있을까? 아마도 미래학자들이 단골로 받는 질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들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미래 전령사를 자처하는 미국의 퓨처리스트 토머스 프레이(Thomas Frey)를 통해 그들의 상상력의 한 자락을 들춰보자.
그는 10년후 생활의 중심이 될 기술로 3D 프린팅, 가상현실, 드론,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등을 주목한다. 우선 3D 프린팅을 보자. ‘적층가공제조’라고도 불리는 이 기술은 이미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 속도다. 그는 “10년 후엔 3D 프린터가 오늘날의 종이 프린터보다 훨씬 일반화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그가 상상하는 10년후 3D 프린팅 세상의 일단은 이렇다. “3D 프린터에 얼굴을 갖다 대면 소비자가 선택한 화장 패턴에 따라 정밀하게 화장을 해준다. 아주 작은 로봇들의 군집체인 ‘스웜봇’이 3D 프린팅으로 건물이나 각종 구조물을 만든다. 옷이나 신발 가게에선 3D 프린팅이 고객의 몸과 취향에 맞는 의류와 신발을 즉석에서 제작해준다. 예비 엄마들에게 태아의 3D 프린팅 모델을 제작해주는 사업이 번창한다. 경찰은 용의자의 DNA로 그의 상반신이나 전신 모습을 3D 프린팅으로 재현해 현상수배령을 내린다.”
가상·증강현실도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온다. “무엇보다 테마파크 놀이기구들이 가상현실과 일체화한다. 주요 스포츠 경기들은 스타디움에 가지 않고도 가상현실 방송을 통해 실제 현장에 있는 것처럼 관람할 수 있다. 여행과 데이트도 가상현실 속에서 충분히 즐길 수 있다.”
» 수백여개의 드론이 펼치는 불꽃 놀이. 디즈니월드 제공
드론,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의 화려한 약진
드론이 가져올 변화도 현란하다. “드론 불꽃놀이가 대중화한다. 불꽃놀이의 방식과 예술성이 극적인 변화를 겪는다. 수확철 들판의 새들을 내쫓고 목장의 가축을 관리감시하는 것도 드론의 몫이다. 콘서트장에선 1000개가 넘는 스피커 드론이 홀 사방에서 360도 입체화음을 낸다. 불특정 사람들에게 불특정 물건을 갖고 날아가 그들의 반응을 찍어 보내는 장난꾸러기 드론이 오락용으로 등장한다.”
자율주행차가 가져올 변화는 자동차 발명보다 클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지금의 주차장 대신 자율주행차 대기소가 생겨난다. 사람들은 이제 차를 소유하지 않고 택시를 부르듯 앱으로 자율주행차를 부른다. 자율주행차 안의 디스플레이는 각종 광고판 역할을 한다. 자율주행차 운영비를 상쇄하면서도 승객을 성가시게 하지 않는 선에서 균형이 맞춰진다.”
모든 물품은 사물인터넷으로 연결된다. “스마트 의자, 침대, 베개가 몸의 압력을 받는 지점을 제 스스로 조절해 최적의 휴식과 수면을 유도한다. 옷에 내장된 센서는 몸 상태를 수시로 체크해 기록해 놓는다. 스마트 접시와 그릇, 컵은 나의 식습관을 기록해 적절한 코치를 해준다. 휴지통이 꽉 차면 스스로 쓰레기 수거차량을 부른다. 우리가 소유하는 모든 것이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물건들의 가치가 어떻게 변하는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 인공지능이 대본을 쓴 단편영화 <선스프링>의 한 장면.
다양한 신기술이 융합할 보건의료 부문
모든 디지털 시스템에는 인공지능이 장착된다. “인공지능이 쓴 소설이나 전기 등이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법률문서 작성은 인공지능이 맡는다. 인공지능이 골라준 메뉴를 집에서나 음식점에서 즐긴다. 인공지능이 기분과 취향, 그리고 등급에 따라 각자에 맞는 영화나 방송 프로그램을 선택해 보여준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인공지능이 집안 온도와 조명, 소음, 산소 농도, 냄새 등 모든 환경 요인을 제어해준다.”
이런 기술들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질 대표적인 분야 가운데 하나로 그는 보건의료 부문을 꼽는다. 예컨대 “3D 알약 프린터가 개인별 맞춤 의약품을 만들어준다. 센서가 들어 있는 데이터 수집기를 알약처럼 삼키면 이 수집기가 몸 안의 건강상태를 체크해 보고해준다. 의수족은 인공지능이 제어해주고, 실시간 혈액 스캐너가 등장한다. 건강보험은 일대일 맞춤형으로 설계된다. 의사와 약속을 따로 잡지 않고도 직접 검진받는 것과 같은 검진이 이뤄진다. 동네 약국에선 즉석 인공지능 진단기를 갖춰놓고 고객이 원하면 즉석에서 신체건강 상태를 체크해준다. 자가 치과 검진을 위한 스마트폰용 구강 카메라가 나온다.“
» 대안미래학에선 미래를 성장, 붕괴, 변형, 지속가능이라는 네 가지 이미지로 그려볼 것을 권한다. 그림은 2030년의 한국 사회의 네 가지 이미지.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삼성공화국(성장), 한강 대홍수(붕괴), 다문화코리아(지속가능), 바이오코리아(변형) 시나리오의 이미지 컷이다. 손현주 박사 제공
기술은 세상을 어떻게 바꿀까
누가 승자고, 누가 패자가 될까
그것은 바람직한 미래사회일까
이런 예측들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미래예측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오늘의 선택을 결정하는 틀거리다. 사실 인간의 의식적인 행동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예측에 기반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예측 내용에 따라 미래에 벌어질 일들이 달라진다. 프레이는 예측을 접하면 거기서 머물지 말고 생각을 전개시켜 나가라고 주문한다. 감시기술의 발전으로 10년 후엔 거의 모든 범죄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고 치자. 그런 식으로 범죄가 해결될 가능성에 동의하는가? 그렇게 된다면 감시산업은 얼마나 커질 것인가? 사생활 침해 논란은 이런 흐름에 얼마나 영향을 줄 것인가? 범죄 예방률이 90%에 이르면, 얼마나 많은 경찰과 판사, 변호사들이 일자리를 잃을까?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이것은 바람직한 미래인가? 이는 더 공정한 정의 시스템,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오히려 더 무시무시한 사회를 만드는 것일까? 대안미래학을 개척한 짐 데이터는 기술변화 등이 가져올 미래 사회를 네 가지 형태의 이미지로 나눠보라고 말한다. 그 네 가지는 지금의 상태가 계속 이어지는 ‘성장’, 지금의 시스템이 몰락하는 ‘붕괴’, 새로운 규칙으로 붕괴를 예방하는 ‘지속가능’, 전혀 새로운 시스템을 창조하는 ‘변형’이다. 그는 이 네 가지 범주의 적절한 배합 속에 바람직한 미래상이 있다고 말한다. 손현주 전북대 교수(미래학)는 덧붙여 각각의 이미지 범주에서 미래 승자는 누구이고 패자는 누구인지 살펴보라고 권한다. 그러는 순간 미래 상상은 곧 행동의 준거틀이 된다.
우리가 미래를 상상하는 이유는 앞으로 생길지도 모를 위험을 피하고 새로운 기회, 더 나은 삶의 실마리를 잡기 위해서다. 손 교수는 “그러나 경제적 가치나 효율성 차원에만 치우쳐서는 안된다”며 “역사로부터 지혜를 배우듯 미래 상상을 통해 ‘공동체 지향의 미래상’을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기술 자체가 세상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기술 변화는 그로부터 이득을 얻는 사람과 손해를 보는 사람을 낳는다. 각자는 각자의 편에서 변화를 준비하고 대응한다. 어떤 이는 변화에 앞장서고, 어떤 이는 변화에 저항한다. 그런 힘들은 때론 충돌하고, 때론 결합하고, 때론 절충하며 세상을 바꿔간다. 이 모든 것의 시작점이 바로 미래 상상은 아닐까?
2007년 스티브 잡스의 첫 아이폰 발표 현장
미래를 생각하는 세가지 방법
미국의 미래학자 겸 컨설턴트 아리 왈라크(Ari Wallach)는 어떤 사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장기적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우리는 오늘날 문명 차원의 거대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는 단기적 시각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다. 단기주의로는 국가적 인프라에 과감히 투자하기 어렵다. 지금과는 다른 미래를 원한다면 길게 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어떤 사안을 길게 바라보는 방법으로 세 가지를 추천한다.
첫째는 세대간 사고(Transgenerational thinking)다. 세대전환적 사고는 예컨대 조용한 식사를 위해 아이에게 내 스마트폰을 주고 게임을 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대화하거나 종이를 가져와서 함께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후자는 전자보다 어렵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당장은 나와 아내를 이어주고, 이는 나중에 아이와 교류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둘째는 미래적 사고(Futures thinking)다. 잠깐 눈을 감고 10년이나 15년 후의 세상을 떠올려 보라. 아마도 많은 새 기술들이 떠올려질 것이다. 가난이나 기후변화, 암 같은 세계적 문제를 생각할 때 우리는 해결책으로 낙관적인 기술유토피아를 떠올린다. 그것이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 방식으로 미래를 바라봐서는 안 된다. 하나의 미래가 아니라 여러 개의 미래를 이야기해야 한다. 자신을 열어 모든 가능한 시나리오와 해법을 생각하라.
셋째는 텔로스적 사고(Telos thinking)다. 텔로스는 그리스어에서 온 말로 ‘궁극의 목표나 목적’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바로 “어떤 결말로 이어지는지”를 묻는것이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 우리는 문제 해결 뒤 무엇이 올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패러다임 혁명’을 주장한 토마스 쿤은 “사람들은 옮겨가고자 하는 그 무엇에 대한 비전이 없으면 옮겨가려 하지 않는다”( People don’t shift unless they have a vision of what it is they’re shifting to.)라고 말했다. 마틴 루터 킹의 “나에겐 꿈이 있어요”(I Have a Dream)라는 말도 이런 사고에서 나온 연설의 힘이다. 그는 현재의 문제와 현안 리스트를 살펴본 뒤 그의 꿈이 무엇이고 그 다음엔 무엇이 올지에 대해 강하게 설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