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冬至歲首說 立春歲首說
1960년 臺灣의 우준민(吳俊民)의 '명리신론'(命理新論) 3권을 기준으로 최근에 대전 모학회 허정(이00씨)가 四柱 세우는 것도 冬至를 기점으로 해서 세수를 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에서, 소위 사주상의 동지세수설이 2000년 넘어 우리나라에까지 번져서, 한때 사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은 이슈.
冬至歲首說
천문00학회 근거문헌
1. 황제내경 영추 (以一日分爲四時朝則爲春日中爲夏日入爲秋夜半爲冬)
하루를 나누어 사계절로 삼으면 아침은 봄이 되고, 정오는 여름이 되며, 저녁은 가을이 되며, 밤중(동지)은 겨울이 된다.
2. 문연각사고전서(文淵閣四庫全書)-주자
朱子曰. 天地間有箇局定底, 如四方是也。有箇推行底, 如四時是也。屬北方便有二義, 如冬至, 前四十五日屬今年, 後四十五日屬明年。子時前四刻屬今日, 後四刻屬明日
천지(天地)의 사이에는 정해진 국(局)이 있으며 사방(四方)과 같은 것이다. 앞으로 밀면서 행(推行)함이 있으며 사시(四時)와 같은 것이다. 북방(北方)에는 곧 이의(二義, 陰陽)가 속(屬)해 있으니 동지 전 45일은 금년에 속하고 동지 후 45일은 명년에 속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자시(子時)전 사각(四刻)은 금일에 속하고 후 사각(四刻)은 명일에 속하는 것이다.(핵심주장 근거)
3. 이허중명서
子爲天正 歲時始于一陽 寅爲地首陽備人興于甲
년(年)의 시작은 11월 동지에 일양과 함께 시작되는 것이라고 한 문헌
立春歲首說
근거문헌
1. 論語 衛靈公編 15장
顔淵 問爲邦 子曰 行夏之時
안연이 나라 다스리는 것을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라의 책력을 행하리라.
夏時謂以斗柄 初昏建寅之月 爲歲首也 天開於子 地闢於丑 人生於寅 故斗柄建 此三辰之月 皆可以爲歲首 而三代迭用之 夏以寅 爲人正 商以丑 爲地正 周以子 爲天正 然時以作事 卽歲月 自當以人爲紀 故孔子嘗曰 吾得夏時焉 而說者 以爲夏小正之屬 蓋取其時之正 與其令之善 而於此 又以告顔子也’ 15)
<하나라 때란 북두성(北斗星) 자루가 날이 처음 어두울 때에 인방(寅方)을 가리키는 달로써 세수(歲首-正月)를 삼는 것이다. 하늘은 자회(子會)에서 열려지고, 땅은 축회(丑會)에서 열려지고, 인물은 인회(寅會)에서 생겨났다. 그러므로 북두성(北斗星) 자루가 이 세 방위를 가리키는 달을 세수(歲首)로 삼을 수 있어서 삼대(三代)가 차례로 쓴 것이다. 하(夏)나라에서는 인월(寅月)을 사용하였으니, 인정(人正)이 되고, 은(殷)나라에서는 축월(丑月)을 사용하였으니, 지정(地正)이 되고 주(周)나라에서는 자월(子月)을 사용하였으니 天正이 된다. 그러나 시(時)로써 농사일을 하니, 그렇다면 세월(歲月)은 마땅히 인정(人正)으로써 실마리를 삼아야 하는 것이다. 이를 天人地 三正이라고 함.
2. 司馬遷 史記
王者歲首 立春日, 四時之始也
왕자 세수란 정치적으로 정한 1년의 시작이며, 그 시작점을 입춘일로 결정했다는 의미다.
3. 백제 (百濟) 원가력(元嘉曆)
백제는 송(宋) 원가력(元嘉曆)을 채택인월(寅月-음력 정월)로 세수(歲首)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일본 서기(書記)에는 ‘백제(百濟) 성왕(聖王) 31년 (553) 6월 왜(倭)의 박사(博士) 교대 요청을 받고, 이듬 해 2월 역박사(曆博士) 고덕(固德) 왕보손(王保孫)을 파견, 전임자와 교대 상주(常住)케 하였다.
4. 夏. 殷. 周 3국 歲首
가. 하(夏) 인월(寅月) 입춘 정월(立春 正月) 하정(夏正) 음력 정월(陰曆 正月) 양력(陽曆) 2월 5일경
나. 은(殷) 축월(丑月) 대한 정월(大寒 正月) 은정(殷正) 음력 12월(陰曆 十二 月) 양력(陽曆) 1월 20
일 경)
다. 주(周) 자월(子月) 동지 정월(冬至 正月) 주정(周正) 음력 11월(陰曆 十一 月) 양력(陽曆) 12월22
일경)
5. 진한 시대(秦漢 時代)
진(秦)나라에서는 10월을 세수(歲首)로 하였고, 한(漢)나라에서는 처음 10月을 세수(歲首)로 했다가 나중에 하정(夏正)인 인월(寅月)로 고쳤다. 한(漢)나라 이후에는 태음태양력(太陰太陽曆)을 써 왔으니까 최근 세태양력 사용時 까지 하정(夏正)인 인월(寅月)을 세수(歲首)로 해 왔던 것이다.
6. 우리나라에서의 세수(歲首)
백제(百濟)에서는 송(宋) 원가력(元嘉曆)을 사용하여 인월(寅月)로 세수를 삼았다는 기록이 분명하므로 의문의 여지가 없고 고구려나 신라를 비롯하여 고려를 지나 조선 말기까지 태음태양력을 써 왔으니까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고종(高宗) 32년 (1895) 음력 9월 9일에 내린 조칙(詔勅)에 의하여 1896년부터 양력 1월 1일을 세수로 정하였다. 이듬해인 건양(建陽) 2년 국호(國號)를 대한제국(大韓帝國), 연호(年號)를 광무(光武)로 고치고, 이어서 역명(曆名)도 명시력(明時曆)이라 하여 독립국가로서의 민심을 일신(一新)시키는 한편, 태양력의 보급에 박차(拍車)를 가하였다.
융희(隆熙) 4년 (1910) 4월 1일 오전 11시를 12시로 고침으로써 일본과의 시차를 없앴으며, 경술국치(庚戌國恥) 다음 해인 1911년부터는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 관측소에서 조선민력(朝鮮民曆)이라는 이름으로 역(曆)을 편찬했고, 1913년부터 한국과 일본 사이에 음력일(陰曆日)을 일치시켰다. 그리고 1940년부터는 역면(曆面)에서 음력일(陰曆日)을 없앴다.
4281(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헌법 공포, 8월 15일 정부 수립, 9월 25일 국회의 결의에 의해 연호(年號)에 관한 법률이 다음과 같이 공포되었다.
☞ 법률(法律) 제4호(第4號) 연호(年號)에 관(關)한 법률(法律)
대한민국(大韓民國)의 공용연호(公用年號)는 단군기원(檀君紀元)으로 한다.
부칙(附則) 본법(本法)은 공포일(公布日)로 부터 실시(實施)한다.
1961년 12월 2일 국가재건최고회의(國家再建最高會議)에서 연호(年號)에 관한 법률을 공포하여, 1962년1월 1일부터 서력기원(西曆紀元)을 쓰게 되었다.
☞ 법률(法律) 제775호(第775號) 연호(年號)에 관(關)한 법률(法律)
대한민국(大韓民國)의 공용연호(公用年號)는 서력기원(西曆紀元)으로 한다.
冬至 立春 歲首에 대한 의견
1950년대 소련의 초고대문명 연구 학자 '알렉산더 고르보프스키'는 고대의 달력이 시작되는 해를 계산하여 모두 BC.11,650년으로 추정하였는데, 인도의 태양력이 시작되는 해는 BC.11,652년 그리고 마야에 달력이 시작되는 해는 BC.11,653년 이집트 달력에 시작은 BC.11,542년 시리아 달력에 시작은 BC.11,542년 이었다고 주장하였다. 지금 우리나라는 서기 2014년을 기준으로 1만 9백 51년 전(BC.8937)을 '상원갑자원년'으로 정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것은 간지(干支) 60주기를 1갑자로 하여 상원갑자, 중원갑자, 하원갑자를 거꾸로 역산출한 것이다.
간지(干支) 60주기의 시작을 세수(歲首)라 하는데, 신시본기(神市本紀)에서 세수(歲首)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갑자(甲子)가 아니라 계해(癸亥)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갑자(甲子)가 시작되기 한해 전인 계해(癸亥)가 60주기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계(癸)는 계(啓)요, 해(亥)는 핵(核)이니, 일출(日出)의 뿌리가 된다.
계(癸)를 소라(蘇羅)라하고,
갑甲은 청차이(淸且伊)
을(乙)은 적강(赤剛)
병(丙)을 중림(仲林)
정(丁)을 해익(海弋)
무(戊)를 중황(中黃)
기(己)를 열호수(烈好遂)
경(庚)을 임수(林樹)
신(辛)을 강진(强振)
임(壬)을 유부지(流不地)
해(亥)를 지우리(支于離),
자(子)를 효양(曉陽),
축(丑)을, 가다(加多),
인(寅)을, 만량(萬良),
묘(卯)를 신특백(新特白),
진(辰)을 밀다(密多),
사(巳)를 비돈(飛頓),
오(午)를 융비(隆飛),
미(未)를 순방(順方),
신(申)을 명조(鳴條),
유(酉)를 운두(雲頭),
술(戌)을 개복(皆福)이라 한다.
☞ 癸에 대한 서술
<계(癸)는 계(啓)요, 해(亥)는 핵(核)이니, 일출(日出)의 뿌리가 된다. 그러므로 계(癸)를 소라(蘇羅)라 한다.>
소라(蘇羅)는 천축 실담어로 '수라 sula'를 말한다.
'수라 sula' 또는 '수리라 surila'는 "태양을 잉태하여, 태양을 인도하다, 태양을 열다." 등의 뜻이다. 또 왕, 영웅의 뜻도 있고, 신성하다는 뜻도 있다. 영어 Sun(태양)의 어원도 실담어 '수라 sula'이다.
옛말에 어동지 일양시생 일성계 이보춘풍(於冬至 一陽始生 一聲鷄 已報春風)이란 말이 이와 같다고 볼 수 있다. 동지 때가 되면 양의 기운이 처음 생겨나고, 새벽 첫닭 울음소리에 이미 봄이 오는 것을 알리는구나. (해설: 실담어 전문 강상원 박사)
오늘날 사용하는 60갑자(甲子)의 원조는 60계해(癸亥)를 세수(歲首)로 하였던 것이다. 갑자, 갑술, 갑신, 갑오, 갑진, 갑인 등 육갑(六甲)이 아니라 계해, 계유, 계미, 계사, 계묘, 계축 등 육계(六癸)였던 것이다. 이것은 양의 기운이 처음 잉태되는 순간부터 曆法이 시작되는 것을 의미.
東夷族은 과연 태양을 숭배하던 민족이며 광명족 이었던 것이다. 설날의 어원도 천축 실담어로 '수라 sula'이며 설날은 바로 冬至가 시작되고 처음으로 맞이하는 태양의 날을 기념하는 것이다.
간지(干支)는 천지(天地)를 뜻한다. 간(干)은 바로 줄기간(幹)에서 글자가 간소화 되면서 표기 된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우주에서 기(氣)가 내려오는 것을 하늘의 줄기로 보았다. 하늘의 줄기가 사람이므로 사람은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것으로 보았다.
사요취선(史要聚選) 권일(卷一) 제왕편(帝王編)에서는 간지(干支)의 작용을 해설하고, "초춘천기조신시(初春天氣早晨時)"라 하였다. 이 모두는 이른 새벽과 이른 봄을 맞이하기 위한 천기(天氣)의 작용이다.
천기의 작용을 천간지지(天干地支)로 나타내었고 이를 曆法으로 정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간지는 '천기의 작용'을 말한다.
신시본기에 "육계(六癸)는 신시씨(神市氏)가 신지(神誌)에게 명하여 제정(制定)된 것으로 계(癸)를 첫해가 시작하는 세수(歲首)로 한 것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신시씨(神市氏)때 신지(神誌)는 발귀리(發貴理) 선인(仙人)이다.
발귀리(發貴理)는 복희씨와 동문이라고 하였으므로 어릴 때부터 같이 공부하였던 동기생이란 말이다. 두 사람은 천문(天文)을 깨우치고 도(道)를 통하였던 대학자이시다. 오늘날 천문도학(天文道學)은 복희씨와 발귀리 선인께서 상고시대 때부터 전해져 오던 천문도학(天文道學)을 계승하여 새롭게 만든 것으로 오늘날 인류가 사용하는 모든 曆法의 원조가 되었다. 이른바 환역과 주역, 음양 오행의 뿌리는 복희씨(伏羲氏)와 발귀리(發貴理) 선인(仙人)께서 완성한 것이다.
신시본기(神市本紀) 발췌
" 神市之世有七回祭神之曆一回日祭天神二回日祭月神三回日祭水神四回日祭火神五回日祭木神六回日祭金神七回日祭土神盖造曆始於此然舊用癸亥而檀君邱乙始用甲子以十月爲上月是謂歲首 六癸自神市氏命神誌所製而以癸爲首癸啓也亥核也日出之根故癸爲蘇羅甲爲淸且伊乙爲赤剛丙爲仲林爲海?戊爲中黃己爲烈好遂庚爲林樹辛爲强振壬爲流不地亥爲支于離子爲曉陽丑爲加多寅爲萬良卯爲新特白辰爲密多巳爲飛頓午隆飛未爲順方申爲鳴條酉爲雲頭戌爲皆福 "
" 신시(神市)에는 칠회제신(七回祭神)의 책력(冊曆)이 있었다. 첫째 일요일에는 천신(天神)에게 제사 지내고, 둘째 날에는 월신(月神)에 제사(祭祀)를 지내고, 셋째 날에는 수신(水神)에 제사(祭祀)를 지내고, 넷째 날에는 화신(火神)에 제사(祭祀)를 지내고, 다섯째 날에는 목신(木神)에 제사(祭祀)를 지내고, 여섯째 날에는 금신(金神)에 제사(祭祀)를 지내고, 일곱째 날에는 토신(土神)에 제사(祭祀)를 지냈다. 대저 책력을 만듦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옛날 신시에는 60갑자의 세수(歲首)를 계해(癸亥)를 썼지만,
단제구을(檀帝邱乙)이 처음으로 갑자(甲子)를 세수(歲首)에 써서 10월을 상달이라 하고, 이를 한해의 시작으로 하여 세수(歲首)라 했다.
육계(六癸)는 신시씨(神市氏)가 신지(神誌)에게 명하여 제정(制定)된 것으로 계(癸)를 첫해가 시작하는 세수(歲首)로 한 것이다. 계(癸)는 계(啓)요, 해(亥)는 핵(核)이니, 일출(日出)의 뿌리가 된다. 그러므로 계(癸)를 소라(蘇羅)라하고, 갑甲은 청차이(淸且伊)라 하고, 을(乙)은 적강(赤剛)이라 하고 ,병(丙)을 중림(仲林)이라 하고 정(丁)을 해익(海?)이라 하고, 무(戊)를 중황(中黃)이라 하고, 기(己)를 열호수(烈好遂)라 하고, 경(庚)을 임수(林樹)라 하고, 신(辛)을 강진(强振)이라 하고, 임(壬)을 유부지(流不地)라 한다. 해(亥)를 지우리(支于離), 자(子)를 효양(曉陽), 축(丑)을, 가다(加多), 인(寅)을, 만량(萬良), 묘(卯)를 신특백(新特白), 진(辰)을 밀다(密多), 사(巳)를 비돈(飛頓), 오(午)를 융비(隆飛), 미(未)를 순방(順方), 신(申)을 명조(鳴條), 유(酉)를 운두(雲頭), 술(戌)을 개복(皆福)이라 한다. "
이상은 '환단고기'에서 발췌한 干支에 대한 기록이다. 중국사에 나오는 기록과 조금 차이가 있다.
그것은 화하족과 동이족간에 천문을 보는 차이가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즉, 복희씨께서 팔괘를 창안한 이후 東夷族과 화하족간에 천문을 이해하고 인간의 사유체계를 영유하는 방식이 서서히 다르게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의미이다. 요(堯)님금은 사사로이 오행설을 만들어 천문의 본뜻에 어긋나게 행동하였고, 유호씨가 크게 꾸짖었으나 결국 요(堯)는 환국을 배반하고 세상을 미혹 속에 빠지게 하였다. 또 하(夏)나라의 우(禹)는 요(堯)와 뜻을 같이하여 끝까지 환국에 맞서다가 동이의 나라에서 기꺼이 갈라져나갔다. 그 무렵 복희씨(伏羲氏)의 팔괘를 오해한 사주법이 생겨나 민심을 미혹시키고, 천문이라는 구심점을 잃어버린 은(殷)나라는 갑골을 이용한 점술이 성행하게 되었으므로 천문을 대하는 화하족들의 심성은 나날이 황폐해져갔다. 그 내용은 부도지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음.
유학수지 (幼學須知) 본문 24쪽
盤古首出御世天地初分 天皇澹泊無爲干支始建 而俗自化制 干支以定歲 而民始如天地所向矣 獨斷干幹也, 其名有十亦曰十母是也. 支枝也其名有十二亦曰十二子
반고씨가 이 세상에 처음으로 나타나 천지를 열고 나라를 세워 다스렸다. 그 후 천황은 담박하고 욕심이 없으므로 간지(干支)를 처음 세웠다. 간지로서 년월일시(年月日時)를 정하여, 백성들이 처음으로 하늘과 땅의 움직임을 알게 했다. 간(干)은 하늘을 뜻하며 줄기와 같다. 그리고 그 이름은 열(十)이 있는데 십모(十母)라고 한다. 지(支)는 땅 즉 가지를 뜻한다. 열둘(十二)이 있는데, 십이자(十二子)라고 한다.(원문 생략)
사요취선 (史要聚選) 권일(卷一) 제왕편(帝王編)
天皇氏盖取, 天開於子之義, 一姓兄弟十二人, 亦曰成鳩氏, 是曰天靈, 澹泊無爲始制干支, 蓋十母十二子之名以定歲之所在,
甲曰 閼逢 言萬物剖甲而出,
乙曰 旃蒙 言萬物之軋軋,
丙曰 柔兆 言陽道著明,
丁曰 彊圉 言萬物丁壯,
戊曰 著雍 言萬物之固也,
己曰 屠維 言陰氣穀物,
庚曰 上章 言陰氣庚萬物,
辛曰 重光 言萬物辛氣方生,
壬曰 玄黓 言陽氣壬養於下,
癸曰 昭陽 言萬物可揆度,
子曰 困敦 言混沌,
丑曰 赤奮若 言陽氣奮迅, 萬物若其性,
寅曰 攝提格 言萬物承陽而起,
卯曰 單閼 言陽氣惟萬物而起,
辰曰 執徐 言伏蟄之皆勅徐而起,
巳曰 大荒落 言萬物皆大出而荒落,
午曰 敦牂 言萬物盛壯之意,
未曰 協洽 言萬物和合,
申曰 涒灘 言棄萬物吐之兒,
酉曰 作噩 言萬物皆起之兒,
戌曰 閹茂 言萬物皆淹冒,
亥曰 大淵獻 言大獻萬物於天陽氣深藏於下也,
初春天氣早晨時.
천황씨는 묻혀져 있던 것을 다시 열기 시작했다. 이 말은 간지(干支)와 오행(五行)을 다시 하늘 아래 개방하여 쓰기로 했다. 성씨(姓氏)는 한 일(一)자 성이었으며, 형제는 12명이었다. 천황씨를 성구씨(成鳩氏)라고도 했으며 천령(天靈)이라고도 했다. 천령은 마음이 담백하고 깨끗했으며 탐욕이 없었다. 그러기에 묻어두고 덮어둔 간지(干支)를 다시 발굴하여 학문화하는데 전념했다. 그것은 10모(十母:甲 乙 丙 丁 戊 己 庚 辛 壬 癸)와 12자(十二子:子 丑 寅 卯 辰 巳 午 未 申 酉 戌 亥)의 이름이며, 이것으로 연월일시(年月日時)의 때를 정한 것이다. ( 律坤 先生 註釋)
"천황씨는 묻혀져 있던 것을 다시 열기 시작했다." 이 말은 중요하다. 간지(干支)를 만들기 이전에도 간지(干支)력이 있었으며 오랫동안 뭍혀 두었던 것을 다시 발굴해서 사용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것은 선천시대의 역법을 간지(干支)로 다시 계승한 것이며 역사는 돌고 돌면서 흥망성쇠를 되풀이한다는 뜻도 있다.
그 아래 해설은 爾雅(이아) . 釋天(석천)에서 밝힌 것과 같은 내용이다. 좀 더 설명을 하자면 爾雅(이아) . 釋天(석천)에서는 태세(太歲), 세양(歲陽)이란 설명이 나온다. 세양(歲陽)이 있으면 세음(歲陰)이 있는 것은 당연하므로 세양(歲陽)이라 표한 구절 다음절이 세음(歲陰)이다.
爾雅(이아) . 釋天(석천)
(상략)
太歲在甲曰閼逢,在乙曰旃蒙,在丙曰柔兆,在丁曰強圉,在戊曰著雍,在己曰屠維,在庚曰上
章,在辛曰重光,在壬曰玄黓,在癸曰昭陽.(歲陽)
태세재갑왈알봉,재을왈전몽,재병왈유조,재정왈강어,재무왈저옹,재기왈도유,재경왈상장,재신왈중광,재임왈현익,재계왈소양.(세양)
太歲在寅曰攝提格,在卯曰單閼,在辰曰執徐,在巳曰大荒落,在午曰敦牂,在未曰協洽,在申曰涒灘,在酉曰作噩,在戌曰閹茂,在亥曰大淵獻,在子曰困敦,在丑曰赤奮若.(歲陰이란 설명이 빠져 있음)
태세재인왈섭제격,재묘왈단알,재진왈집서,재사왈대황락,재오왈돈장,재미왈협흡,재신왈군탄,재유왈작악,재술왈엄무,재해왈대연헌,재자왈곤돈,재축왈적분약. (하략)
" 태세(太歲)가 갑(甲)에 머무르는 것을 알봉(閼逢)이라 한다. 태세(太歲)가 을(乙)에 머무르는 것을 전몽(旃蒙)이라 한다." 이런 해설이다. 그러면 태세(太歲)와 세양(歲陽), 세음(歲陰)이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다.
태세(太歲)와 세양(歲陽), 세음(歲陰)
오성(五星)이라 함은 토성, 목성, 화성, 금성, 수성을 가리킨다. 더불어 해와 달을 추가하여 칠정(七政)이라 한다. 밤하늘에 별들의 움직이란 바로 이들 오성(五星)이 움직이는 것을 말하며 상고시대에 맨눈으로 관측 가능한 것 중에서 오성(五星) 이외에 움직이는 것은 해와 달 뿐이었다. 그야말로 행성(行星)이라는 것은 움직이는 별을 말하며 그밖에 붙박이별들을 항성(恒星)이라 한다. 항성(恒星)은 태양계 밖에서 태양보다 더 밝게 스스로 빛을 내는 별로서 이들도 태양처럼 많은 행성을 거느리고 있다. 그리고 항성(恒星)들은 오행성 보다 더 멀리 떨어져 있어도 오로지 밝게 보이는 별이다. 반면에 오행성은 그 자체가 빛을 내지는 않는다. 태양으로부터 빛을 받아 반사하고 있기 때문에 밝게 보이는 것이다. 태양계에는 오행성 외에 천왕성, 명왕성, 해왕성이 더 있지만 상고시대에 사람의 눈으로 관측하는데 한계가 있으므로 이들의 존재는 알려지지 않았었다.
마고시대는 정음정양(正陰正陽)의 시대였으며 약 1만 4천 년 전이었다. 그때 일 년은 360일이었고 달이차고 기우는 현상은 볼 수 없었다. 그 기간은 1천년 정도 지속되었다고 본다. 부도지 제 9장에 대홍수 이후 " 지계(地界)의 중심(重心)이 변하여, 역수(曆數)가 차이가 생기니, 처음으로 삭(朔)과 판(昄)의 현상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니 역수(曆數)의 차이가 생긴 시기가 기원전 11,000년 전 후이며 그 이후 간지를 연구하고 만들었을 때, 세월이 많이 흘렀으므로 지축이 약간 기울어져 일년의 날 수는 361일이었다고 보는 것이다. 앞서 소개한 '알렉산더 고르보프스키'는 고대의 달력이 시작되는 해를 계산하였는데 모두 BC.11,650년으로 추정하였다. 그것은 아마도 틀리지 않은 듯하다. 인도의 태양력이 시작되는 해는 BC.11,652년, 마야 BC.11,653년, 이집트 BC.11,542년, 시리아 BC.11,542년, 천황씨 BC. 8937년 이다. 그러므로 지축이 정립한 시기에 지구의 공전주기가 360일이었을 때 처음으로 간지력이 만들어졌던 것으로 보아야 한다. "천황씨는 묻혀져 있던 것을 다시 열기 시작했다." 이 말은 마고시대에 있었던 태초 달력으로부터 약 2,700년 간 대혼란의 시기가 지나가고, BC. 8937년에 천황씨는 묻혀져 있던 간지력을 다시 발굴하여 열었다는 뜻이다.
지구의 세차운동을 연구한 학자 '밀루틴 밀란코비치'는 지구의 자전축은 회전하는 팽이처럼 움직이면서 약 26,000년마다 한 바퀴 세차운동을 한다고 하였다. 한편 지구 타원 궤도의 축도 반대 방향으로 훨씬 서서히 회전하므로 이러한 운동들은 춘분점과 추분점을 23,000년 주기로 서서히 이동시킨다. 또한 황도면에 대한 지구 자전축의 경사는 41,000년을 주기로 21.5º에서 24.5º 사이를 오르내리는데 현재의 각도는 23.44º이며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고 하였으며 이러한 것들이 모두 합쳐져 지구 공전 궤도 이심률과 자전축 경사의 변화, 세차운동이 지구의 기후 변화 패턴을 결정한다는 수학적인 가설을 세웠다. 밀란코비치 이론이 1950년대에 발표되었지만 과학자들은 아직도 그 가설을 반박하지 못하고 있다. 어렴풋이나마 밀란코비치 이론은 부도지에 기록한 역수(曆數)의 차이가 생기게된 원인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지구는 광대한 우주공간에서 먼지와도 같은 아주 작고 힘도 없고, 스스로 빛도 내지 못하는 소박한 별인 것이다. 우주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는 별이다. 그리고 큰 변수인 대재앙이 따랐다. 그 시기는 마침 빙하가 녹기 시작한 때였으며 더불어 가장크게 지구 변화에 영향을 미친 것은 시베리아에서 1천 년간 지속된 화산 활동과 해빙으로 인한 홍수, 대지진 등이었다. 그것은 모든 가능성들이 폭동한 대재앙의 시기였다.
B.C.8937년 반고지갱(盤固地鏗)께서 간지(干支)를 발표하였을 때는 세수(歲數)가 정확했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못했던 것 같다. 아무튼 간지를 다시 열은 후 찾아볼 수 있는 기록은 앞에서 소개한 신시본기의 기록과 복희씨가 팔괘를 처음으로 그렸다는 기록 뿐이다. 천문을 다스린다는 것은 곧 神이 하는 일이므로 지금 사람들은 복희씨가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고 있다. 복희씨 때가 되면 일년의 날 수가 늘어나 있었으므로 오늘날과 같은 365일이 되었다. 그런 사실을 알았던 복희씨는 팔괘를 그리고 천수(天數)를 바로 잡았지만, 후대로 내려올수록 천문을 보는 도력이 약해져 그것을 알고 실천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漢나라 때 까지 태세(太歲)가 전해져 왔다.
십천간(十天干)을 세양(歲陽)으로 하고 십이지지(十二地支)를 세음(歲陰)으로 한 것을 태세(太歲)라 한다. 태세(太歲)는 해(歲)를 세는데 기준이 되는 것이므로 세(歲)중에서 으뜸이 되는 것이며 시계로 말하면 시침과 같은 역할을 한다. 분침의 역할을 지구가 태양 주위를 1년에 한 바퀴 도는 것으로 생각했을 때, 시침은 목성의 위치가 되는 것으로 이를 태세(太歲)라 한다.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면서 때로는 목성의 위치가 태양 뒷편으로 숨어 확인되지 않을 때는 토성의 위치를 확인한다. 그렇게 하여 하늘을 보면 언제든지 년월일시(年月日時)를 알 수 있었다. 그야말로 하늘이 시계였으며 12년치 달력이었던 것이다. 사람은 12년을 주기로 다섯번의 태세(太歲)를 자기가 태어난 년월일시(年月日時)와 만나며 비로소 천수(天壽) 1년을 산 것으로 하였다. 그것이 60갑자(甲子) 1주기이다.
세양(歲陽)
甲 乙 丙 丁 戊 己 庚 申 壬 癸
閼逢 旃蒙 柔兆 强圉 著雍 屠維 上章 重光 玄黓 昭陽
알봉 전몽 유조 강어 저옹 도유 상장 중광 현익 소양
세음(歲陰)
寅 卯 辰 巳 午 未 申 酉 戌 亥 子 丑
攝提格 單閼 執徐 大荒落 敦牂 協洽 涒灘 作噩 閹茂 大淵獻 困敦 赤奮若
섭제격 단알 집서 대황락 돈장 협흡 군탄 작악 엄무 대연헌 곤돈 적분약
* 여기서 寅은 정월에 해당하므로 爾雅(이아) . 釋天(석천)에서는 맨 앞으로 정했다.
상고대에는 현재의 간지로 날짜를 기록한 것이 아니다. 위 도표에서 보듯이 태음 태세의 명칭을 干支대신 기록했다. 예를 들어 갑자년(甲子年)이면 태세재(太歲在) 알봉곤돈(閼逢困敦), 병인년(丙印年)이면 태세재(太歲在) 유조섭제격(柔兆攝提格) 등으로 기록하였다. 즉, 하늘의 별자리 위치에 맞추어 간지를 기록하였다. 아래에 '간지 태세와 세음 세양 도표'를 그려보았다.
아래 그림에서 관측자는 지구에 있다. 해마다 세성(歲星 . 木星)이 보이는 곳을 기준으로 천구의 적도 위에 표시를 하니 12년이 지나서 하늘이 12구역으로 나누어졌다.
곤돈 적분약 섭제격 단알 집서 대황락 돈장 협흡 군탄 작악 엄무 대연헌
(困敦 赤奮若 攝提格 單閼 執徐 大荒落 敦牂 協洽 涒灘 作噩 閹茂 大淵獻)이름을 붙이고 이를 세음(歲陰)이라 하였다.
같은 방법으로 토성의 위치를 30년간 표시하여 세양(歲陽)을 정했다. 아직 천문학이 발달하지 못한 단계이므로 오늘날과 같은 복잡한 천문도는 없다. 이렇게 하여 60년간 오행성이 완전히 돌아서 제자리에 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하늘의 별을 보며 날짜를 알아내는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던 시대였다. 그들은 천문학자였으며 도인(道人)이었다.
동이(東夷)는 천문을 관측하여 간지법(干支法)을 완성한 최초의 천문학자였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러 복희씨 이후에 천문현상이 사주법(四柱法)과 관계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게 되었다. 이른바 오행(五行)의 재앙이 시작되었다.
상고시대의 干支는 후세의 오행설과 비교하면 너무나 많은 오차가 생기기 때문에 현재의 사주법(四柱法)과 점성술(占星術)은 모두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엉터리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부도지에서 밝히고 있다. 무엇보다도 분명한 사실은 상고시대 盤古天皇께서 천수(天數)를 따져 사람의 일생을 점치는 학문은 만들지도 않았고, 전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의 간지는 천수(天數)와 많은 오차 있어 사용하지도 못하는 것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모르고 덤비면 오히려 화(禍)만 자초할 뿐이다. 간지는 천문력(天文曆)이지 절대로 사주법(四柱法)이 아닌 것이다.
立春歲首說과 冬至歲首說에 대한견해를 가지고 인기에 편승하여 본인 자신의 주가를 좀 오려 보려는 얄팍한 상술에 지나지 않으므로 참으로 이러한 문제들을 가지고 논설한다는 자체가 개탄스럽지 그지없다 할 것이다. 학문을 연구하는 學者는 學者다운 면모로서 그 뜻을 펼치는 것이 후학들에게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