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18일 온고을교회 주일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예수 믿게 하기
살전 2:7~12
<하나님께 질문하기>
전립선암 진단을 받고 3년째 병원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3개월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피 검사하고, 약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간구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합니다.
처음 진료 받을 때, 서울의 대형 병원에 가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갔습니다. 그 병원에서는 “우리는 공격적인 치료를 합니다.”라고 의사가 말했습니다.
그리고 정밀검사를 다시 하겠다고 했습니다.
또, 신약 시험에 응하기를 권유했습니다.
서울에 다녀와서, 다니던 지방의 국립대부속병원 의사에게 보여줬습니다.
“이 약은 병세가 한 단계 더 악화 되었을 때 쓰는 약입니다.
정말 악화 되면 그때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렇게 온몸을 구석구석 정밀검사를 하여 다른 곳까지 전이된 것을 찾아내면요?”
의사의 말은 지금 발견된 것을, 우선 잡기에도 바쁘다는 뜻입니다.
저는 다니던 병원 의사를 믿기로 했습니다.
그 의사와 환자인 저와의 사이에 ‘라뽀’가 형성된 것입니다.
치료가 진행되면서 우울감이 찾아왔습니다.
함께 병원에 다니던 친구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나도 장담 못 한다”는 생각에 우울해졌습니다. ‘친구처럼 나도 갑자기?’
그래서 의사에게 징후를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의사가 말합니다.
“그렇게 안 죽으니 염려 마세요!”
저는 의사의 말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분별하고 믿기로 했습니다.
하나님은 담당 의사를 통해서 저에게 말씀해 주고 계셨습니다.
이렇게 치료를 받고 있는데, 요즘 하나님께 당돌한 질문을 하나 했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건강하기를 바라세요? 제가 이 병을 이기고 낫기를 바라십니까?”
하나님이 뭐라 대답해주셨을까요?
<하나님의 응답>
하나님의 응답은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나는 네가 건강하기를 바란다!”
최근 이 응답을 확인하고 하나님과의 교제가 한층 더 깊어졌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잖아, 아예 병을 싹 고쳐달라고 하지?”
사실 기독교인 중에는 그렇게 기도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 병에 걸렸습니다. 제발 이 병에서 건져주세요!”
하나님이 전능하시다 해도,
① 과식하는 사람의 위장은 하나님이 책임질 수 없습니다.
② 과음하는 사람의 간장을 하나님이 책임질 수 없습니다.
③ 과로하는 사람의 생명을 하나님이 책임질 수 없습니다.
이 정도는 알아야 합니다. 무조건 “하나님이 고쳐주실 거야!” 하고 매달리는 것,
이것은 믿음 좋은 것이 아닙니다. 무식한 거지요!
제가 받은 응답은 “하나님은 내가 건강하기를 바라신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내가 건강하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하나님, 그러면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담당 의사 말 잘 듣고, 처방에 충실해라!”
운동하라 하니, 운동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안 죽으니 염려말라 하니, 염려 안해야 합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합니까, 하라는 운동은 하기 싫고, 하지 말라는 염려는 자꾸 합니다.
하라는 것을 안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을 자꾸 하면?
하나님도 책임지실 수 없습니다.
저는 이것이 믿음이고, 이것이 신앙이라고 생각합니다.
☞ 저를 포함해서 오늘 예배하는 여러분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예배하면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살았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영접했습니까?
☞ 오늘 본문이 이 대답에 답변합니다.
<한 사람을 예수 믿게 하기까지>
어떤 한 사람이 예수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예수님을 자기의 주인으로 섬기는 삶을 산다는 것,
이것 참 보통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거듭난다”는 표현을 씁니다.
우리가 예수 믿었다는 것은 “거듭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오늘 본문에 보면, 한 사람이 예수 믿기까지,
그 뒤에서 얼마나 많은 수고와 희생이 있었는지, 매우 잘 드러납니다.
살전 2:7~12에서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예수믿게 하려고 두 가지로 헌신합니다.
첫째, 어머니가 젖먹이를 키우듯 했습니다.(7절)
둘째, 아버지가 자녀에게 하듯이 했습니다.(11절)
※ 요즘 전도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어떤 한 사람을 전도한다는 것, 너무 힘이 들고 어렵습니다.
엊그제 예수 안 믿는 고등학교 동창 친구와 진솔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 친구가 직장에서 어려움을 당하고, 직장을 그만두었는데, 어떤 보살이 찾아왔답니다.
절에서 기도하는 할머니인데, 그분이 집에까지 찾아와서,
“당신이 지금 어렵고, 혼자 일어서기 힘들 것 같은데, 내 얘기를 들어보시겠습니까?”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나를 한번 따라와 보십시오!”
그래서 그 보살이 기도하는 암자에 갔는데, 생면부지인 자기를 위해 굿판을 벌였더랍니다.
한눈에 봐도 돈도 꽤 들었고, 정성도 보통 정성이 아닌 것 같은 굿을 해 주었대요!
암튼 고맙다고 했더니, 대구에 있는 한 절의 법사를 소개하면서 찾아가보라고 했대요!
그때 여러 가지로 힘들어서 전주에서 대구까지 명함 들고 찾아갔답니다.
그 법사 역시 굿을 해 주고, 달마대사 그림, 부적을 주어서 받았는데, 그 법사가
“사무실은 서쪽으로 이전하고, 집은 서남쪽으로 이전하라” 그러더래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전주에 와서 사무실은 서쪽으로, 집은 서남쪽으로 옮겼답니다.
그랬더니 거짓말처럼 사업이 술술 풀리고, 돈이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대박이 났답니다.
딱 10년 동안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또 10년이 지난 지금 어떠하냐? ~ 다시 고난의 인생길, 산전수전~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심지어 감옥에도 한 1년 갔다왔다고 합니다.
친구의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으로 착잡했습니다.
☞ 내가 만일 ‘이 친구를 전도하여 구원받게 하고 싶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합니까?
<첫째 젖먹이 키우는 어머니처럼 해라>
(7절)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엊그제 그 친구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가 묵상한 구절입니다.
“야 이 친구야~ 내가 목사 아니냐, 그러면 내 말을 들어야지!” 해야 합니까?
친구 사무실에는 아직도 달마대사의 그림이 한 켠에 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여자 보살이 굿을 해 주고, 대구까지 가서 만난 법사가 “서쪽으로 이사해라!”
그대로 했더니, 10년간 대박이 터졌는데, 그 친구에게 예수 복음이 들어갈 틈새가 있을까요?
☞ 묵묵히 들으면서 사도 바울을 생각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사도로서 권위를 주장하지 않았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했다고 말합니까?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했다고 했습니다.
젖먹이를 키우는 어머니가 그 아이를 다루듯 했다는 뜻입니다.
과연 그렇게 하면, 그 친구가 예수 믿을까요?
나이가 저하고 동갑이니, 예순아홉인데, 그 친구에게 복음이 들어갈 틈새가 있을까요?
☞ 사도 바울은 어떻게 했습니까?
사도로서 마땅한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젖먹이를 키우는 어머니처럼 했습니다. 8절은 한술 더 뜹니다.
(8절)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자기 목숨까지도 줄 각오를 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텐트를 만드는 기술자였습니다. “텐트메이커”였습니다.
전도하려는 사람들에게 신세 지는 것을 바울은 극도로 피했습니다.
텐트 만드는 일로 돈을 벌어서 먹고, 자고, 쓰면서 전도했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10절)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하였는지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 한 영혼 구원하는 일, 이렇게 어렵습니다.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해야 합니다.
<둘째, 아버지가 자녀 대하듯 하라>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이 예수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일에,
첫째는 젖먹이 키우는 어머니같이 했다.
둘째는 자식 키우는 아버지같이 했다.
(11절)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나는 데살로니가에서 전도할 때, 어머니처럼 했다. 아버지처럼 했다” 바울의 고백입니다.
참 대단하지요? 우리는 이렇게 할 수 있을까요?
바울은 참으로 대단한 인물입니다.
교회사에서 바울을 따라갈 만한 인물이 없습니다.
예수님 이후에, 사도 바울이 으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바울이 전도하면서 나는 어머니처럼 했다. 나는 아버지처럼 했다. 요지는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든 없든 간에 어머니처럼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아버지처럼 하는 것은 또 어떤 것인지, 그것이라도 알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요?
<어머니처럼>
어머니처럼 한다는 것은, 전도하려는 사람에게 목숨까지도 내놓기를 기뻐했다.(8절)
말로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한 것 너희도 잘 알고 있지 않으냐?”
우리가 너희에게 어머니처럼 사랑해 준 일, 우리가 수고하고 애쓴 일,
“너희가 알고, 하나님이 알고 있다!”(10절)
<아버지처럼>
어머니처럼 한 것으로는 한 영혼을 구원하기에 부족합니다.
거기에 아버지처럼 해야 합니다. “아버지처럼” 어떻게 했습니까?
☞ 11절에 보면, 3가지를 했다고 바울이 말씀합니다.
① 권면했다.
② 위로했다.
③ 경계했다.
권면, 위로, 경계를 할 때 어떻게 합니까? 마치 아버지가 자녀에게 하듯, 자애롭게!!!
엊그제 저의 친구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세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권면하자, 위로하자, 경계하자!
☞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가 한 영혼을 구하고자 한다면,
그들에게 다가가서,
어머니처럼 하자, 어떻게요? ~~ 목숨까지 내놓기를 기뻐하는 사랑으로~
아버지처럼 하자, 어떻게요? ~~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자!
제가 그 친구에게 전도해야겠다고 딱 부러지게,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말씀드린 것과 같이 미신, 불교, 부적을 10년간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 친구가 자기 인생에서 있었던 그 10년을 새롭게 해석하도록 할 수 있을까요?
복음이 그 친구 인생에 파고들 수 있을까요? 참 난감합니다. “난감하네~”
☞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은 이렇게 어렵고 힘든 일이다.
☞ 또 하나 알아야 합니다.
구원받은 나, 구원받은 우리,
우리를 위해서 누군가가 우리에게 ~~ 어머니처럼 희생하고, 헌신하고, 봉사했다.
우리를 위해서 누군가가 우리에게 ~~ 아버지처럼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했다.
오늘 나의 신앙이 저절로 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하셨지만, 주님은 누군가, 어떤 사람을 들어쓰심으로 내가 구원받았습니다.
내가 받은 이 구원, 누구에겐가 흘려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