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식 뉴스 소비 / 노원명
"차제에 포털의 모습을 획기적으로 바꿔 구글 방식으로 초기화면을 아름다운 백지로 한다면 한국인의 갈등과 조급한 정치적 분쟁성이 눈 녹듯 사라질 수도 있다." 내게는 대선배가 되는 매일경제 김세형 고문이 9일 온라인에 올린 칼럼 '드루킹, 네이버 무엇이 惡인가'를 그날 퇴근길에 읽으며 마음이 정화되는 경험을 했다. 좋은 글은 정신을 맑게 한다. 백지의 네이버 초기화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속이 다 후련해졌다.
이 글을 발견한 건 네이버 초기화면에서다. 네이버는 이렇게 좋은 글을, 더구나 스스로에는 별로 도움 될 것 같지 않은 글도 노출시킨다. 참 쿨하다. 그러나 댓글을 보기 전까지만 그렇다. 이 기사에 달린 수십 개 댓글은 기사를 지지하는 쪽이든, 비판하는 쪽이든 거의 악다구니에 가깝다. 김 고문이 지적한 '한국인의 갈등과 조급한 정치적 분쟁성' 딱 그대로다. 댓글은 차치하고 네이버가 선별하는 기사가 다 좋은 건 아니다. 개인적인 느낌을 말하자면 대부분 뉴스는 몰라도 아무 상관없을, 오히려 읽지 않았다면 '정신적 품위 유지'에 도움이 됐을 그런 기사들이다. 누가 읽으랬냐고? 그래서 습관이 무섭다는 거다. 나는 담배를 끊지 못하는 것과 정확히 똑같은 이유로 네이버 뉴스를 끊지 못하고 있다.
과거에 뉴스를 읽는다는 것은 개인의 가치관과 판단이 개입되는 의식적 행위였다. 인터넷 시대의 기사 읽기는 점점 무의식적 습관에 가까워지고 있다. 매체 신뢰도, 참·거짓, 중요도에 대한 그 모든 판단을 포털에 일임한 채 어떤 판단도, 경계도 없이 네이버 첫 화면의 뉴스를 마구 들이켜고 삼킨다. 그게 개인의 정신과 집단의 공론에 어떤 변이를 일으킬지는 아무도 모른다.
대안이라면 본인이 선호하는 뉴스 채널에 직접 들어가는 방법이 있다. 팩트 검증, 게이트키핑 능력을 갖추고 사회적 의미를 기준으로 의제 설정을 하는 매체 중에서 택하면 된다. 단 개인 선택에 맡겨서 될 일은 아니다. 네이버 뉴스가 습관처럼 건재하는 한은 어렵다. 네이버는 위대한 기업이지만 네이버 뉴스는 그렇지 않다. 앞서 인용한 칼럼은 네이버에 '사악해지지 말자'고 청하고 있다. 같은 생각이다. 백지처럼 비워지고 열린 네이버 화면을 꿈꾼다. *
[노원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