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섭 시인의 시집 『마릴린 목련』
약력 :
정 두 섭
인천에서 태어나 2019년 신라문학상 대상,
2022년《경 남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중봉조헌문학상 대상 등을 수상했다.
E-mail: sd1862@hanmail.net
시인의 말
갈갈갈
환한 북 소리
끼얹대끼
또, 그로코롬
놓아줄 손이 없어
시나브로 여위더니
보소라
알 까고 죽는
목이 쉰 눈보라
2024년 6월
정두섭
우로보로스
병 속에는 쥐가 있고 병 속에는 뱀이 있고 뱀이 된
쥐는 없 고 쥐를 삼킨 뱀만 있고 좁은 병 못 빠져나
와 뱀은 쥐를 뱉고 뱉고
구겨진 몸 다리고 구겨질 몸 걸어놓고 옷걸이 물음
표만 남기고 사라질 때 누군가 어깨를 툭 쳤다, 먼
저 온 후회였다
슈퍼맨의 바깥 빤쓰
푸른 멍 출근부에 용감무쌍 적어놓고
어순을 뒤집으면 공포도 고소하다
가진 건 몸뚱어리뿐, 곁불 쬐는 슈퍼맨
못 박힌 손바닥을 드럼통에 툭 던지고
비계를 기어오른다, 망토가 사라져서
엄마야 지구
땀 절은 무용담이 하마터면 골로 갈 뻔
안전 고리 구름 고리 여기저기 허방다리
왕창 지린 오줌도 한 바람에 마르지만
아들아
빤쓰는 속에 입어라, 지구는 내가 지킨다
노피곰 도다샤
텅 비고 꽉 찬 저걸 옴시레기 품고 싶어 둥그러미
탐스러운 열사흘 날을 잡아 잡것들 죄 물리치고
불사르는 가마에 갔어
꼬박 지샌 사흘 밤낮 유백 설백 두리둥실
빚은 건 보름인데 구운 건 초승인가
쨍그랑 사금파리가 칼날 같아 속을 베데
깰 거면 저 주세요 얼금뱅이 다물리는 사기막 장
도리질 대 낮 지나 깜깜할 때 갸우뚱 항아리 한
점 기우뚱 달도 한 점
마릴린 목련
애지중지 호롱불은 멋 부리다 얼어 죽고
제멋대로 화톳불은 까무룩 새까매져서
할마시 쪼그려 앉아 사람 볕에 손 녹일 때
힐끗힐끗 살바람이 못 참아 더는 못 참아
백목련 치맛자락 들춰보고 저리 내빼네
그늘도 화색이 돌아 잇몸 만개 이빨 두개
굳이 또 찾아와서 겸상하는 다시 봄에
여벌의 수저 한 짝 내어주고 오물오물
낡삭은 개다리소반 무게를 덜고 있네
나랏말싸미-중화교회 입당예배
어미야 누이야, 다 부질없는 한낱
새파란 싹수가 십 년 만에 샛노란 싸가지로 돌아
왔다. 청상이 무논을 버리고 소작으로 깃들었으
나, 여심이 홍상을 벗고바지로 갈아입었으나・・
・・・・ 동포인력사무소 아래 열우물 다방아래
목마르뜨 호프 아래 한낱 지하에 더 낮은 데가 없
어 거기 바닥에 얼기설기 십자가를 매달아 놓았다.
어린 백성이니르고져 훓배이셔도 제 뜨들 시러펴
지 몯핧노미 헤이룽장성지린성 랴오닝성 나라도
나랏말싸미도 다른 타관바치들을 끌어모아 나는
중화(中華)라 읽고 싸가지는 쭝화라 읽는다. 황락
(黃落)을 뒷바라지한 처갓집 헛수고들은 당최 무
슨 글자인지 모르지만 말인지 막걸리인지 짜장
인지 짱개인지 모르지만, 끝내! 라는 말 무시하
고 끝끝내 강단을 버리고 공단에 처박힌 변두리
목자의 신도가 되었다. 애초부터 하나님의 뜻이
었음을 수긍하였으므로 반 박자 늦게 손뼉 치다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없어 한 박자 늦게 입을 모
아 찬미했다. 할렐루야! 집안의 부흥은 진작에 물
건너갔으나 신도 신도가 있어야 신, 부르튼 맨발
로 척박을 개척하는 싸가지의 부활을 위해 사람
마다 해여 수비니겨 날로 쑤메 뻔한퀴 눈치껏 앉
고 일어나라 코치하며 할렐루야, 할렐루야! 어쩌
면 이게 다 불공이 부족했기 때문인 것도 같아
무조건 미안한 마음으로 기꺼이 주여, 아멘!
해설
불온한 골계의 시학
이병국(시인· 문학평론가)
정두섭 시인의 첫 시집 『마릴린 목련』은 유쾌한 재담 이면에 실적 고통을 배치하여 그 실감을 우리 삶의 공통감각으로 확장하여 펼쳐 놓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시인의 시적 언어가 품고 있는 말맛의 유쾌는 어딘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이를 불쾌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지만 기형적인 삶의 실재를 마주한 것만 같아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불편 의 감각은 김수영 시인이 시 「거대한 뿌리」(1964)에서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라고 한 것처럼 삶의 진창과 마주하고 그것을 직시함으로써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긍정하는 한편 삶에 내재한 인간의 존엄과 고투를 신뢰하고자 하는 정두섭 시인의 시적 수행으로 말미암는다. 바로 그 지점에서 정두섭 시인의 시는 기형적인 삶을 강제하는 세계의 부조리함을 향한 비판과 죽음을 전유한 생의 욕망을 현시함으로써 인간을 긍정하고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 기형적 구조를 전복하려는 불온함으로 충만하다. 시인이 불온함을 위한 시적 장치로 사용하는 것은 골계(滑稽)이다. 알다시피 골계란 익살이나 우스꽝스러움, 농담과 유머 등의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는 미적 범주의 하나로 숭고와 비장, 우아와 함께 예술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미적 가치라할 수 있다. 일찍이 조동일은 자신의 문학 연구 방법론을 명시한 여러 저서를 통해 문학작품에는 있어야 할 당위와 있는 것으로서의 현실이 서로 융합하거나 상반함으로써 조화와 갈등의 관계를 이루어 각각의 미적 범주(우아미, 비장미, 숭고미, 골계미)를 결정한다고 했다. 이중 골계미는 당위보다 현실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우아미와 유사한 속성을 지니지만 조화보다는 갈등과 대립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비장미와 친연성을 지닌다고 보았다. 덧붙여 조동일은 골계를 해학에 해당하는 부드러운 골계와 풍자에 해당하는 사나운 골계로 구분하면서 전자는 인간성에 대한 긍정으로 나아가고 후자는 경화된 규범의 파괴로 나아간다고 설명했다. 해학은 자기 부정을 통해 자기 긍정을 지향하는 것으로 대상을 배척하지 않고 관조적인 자세로 감싸 안는 너그러움에 초점을 놓지만, 풍자는 불합리한 권력이나 체제를 공격하기 위해 날카롭고 노골적인 공격 의도를 감추지 않는다. 화해와 포용이든 갈등과 전복이든 해학과 풍자의 골계미가 지닌 주요 특징은 웃음을 도구로 삼는다는 데 있다. 웃음을 유발하는 재담과 우스꽝스러움이 정두섭 시인의 전부는 아니지만, 시집을 통어하는 주된 장치임은 분명하다. 또한 이러한 시적 장치가 비루한 현실을 긍정하며 섣부른 화해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유의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