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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고상한 지식
빌립보서 3: 1-9
1.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2.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3.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4.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5.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7.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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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세상을 활기차게 살아가는 이유 가운데 큰 비중이 성취에 대한 도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선한 목표를 정해놓고 그것을 대한 소유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과정이 우리의 삶의 모습입니다. 요즘에 하는 “강연100℃”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 각 분야에 성공한 사람들을 초대해서 자신들의 경험을 이야기함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는 프로인데 많은 유익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거기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 절망적 건강상태에서 회복된 사람도 있고, 직업이 없어서 날마다 고민하다가 시골로 귀농해서 농사를 지어서 연수입이 수억 원씩 되는 사람도 나와서 강연을 하고, 항상 운동을 해서 95세인데도 청년같이 건강하게 사는 할아버지도 나와서 이야기를 했고, 하반신 마비 장애인인데도 불구하고 휠체어를 타고 댄스를 아주 멋지게 추는 사람도 나왔습니다.
우리 기독교의 진리는 절대 세상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금욕종교나 고행종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사랑한 세상을 나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행복하게 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신명기적 진리라는 신학이 있습니다.
신명기에 보면 가장 큰 강조점이 이 지상에서 축복 부분을 많이 말하고 있습니다.
거기 보면 얼마나 복이 많은지 “너희가 그 곳에 가서 살 때에 그곳에는 산에서 시내에서 분천과 샘이 흐르고 밀과 보리의 소산지가 될 것이며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를 네게 주셨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하리라.”
이런 말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가도 복을 받고 들어가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짐승을 들이면 그 짐승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떡을 하면 그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다.”
이런 말로 나와 있습니다.
한 때는 우리 기독교 진리가 오해를 불러온 때가 있었습니다.
기독교인의 경제활동을 위축시켰습니다.
이윤을 남기는 것은 죄라는 신학의 기초를 발표해서 그때의 유럽 경제가 굉장히 어려워졌습니다.
상업하는 경제인들이 교회를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죄인 취급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칼뱅 신학자가 성직 개념에 대한 새로운 신학을 발표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주신 모든 직업은 다 선하다. 농사짓는 것도 거룩한 성직이요 장사를 하는 것도 똑같다. 자기 노력의 극대화를 통한 열매를 자신이 누리는 것은 창세기에 너는 엿새 동안 힘써 나의 모든 일을 하는 하나님의 축복 노동 기초에 충실한 것이다.”
이런 해석을 했습니다.
그래서 유럽의 모든 기독교가 새로워졌고 그 신학에 기초한 경제 부흥이 유럽 서구 국가에서 일어났던 것을 기억합니다.
오늘 성경말씀은 당시 그 사회에서 매우 성공한 롤모델적 인물이 자신이 성취한 모든 소유적 내용을 소개하고 있는 글을 읽었습니다.
여기 소개된 몇 가지 조건들은 유대 사회에서 모든 사람들이 가장 흠모하는 소원들이 나열되었습니다. 빌립보서 이 대목은 아주 유명한 구절이라 설교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는 성경구절입니다.
바울 사도의 가장 훌륭한 성공 성적표이며 가장 화려한 이력서 대목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를 위해서 잠시 그의 이력서를 살피는 것이 좋으리라고 봅니다.
“내가 8일 만에 할례 받은 사람”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이력서를 쓸 때 출생 8일부터 기록하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그것은 유대인의 종교 문화 때문에 그렇습니다.
창세기 17장 14절에 보면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할례 이력서가 있어야 그 사회에서 인격 대우를 받습니다.
그런데 할례도 8일 할례자가 있고, 중간 할례자가 있습니다. 8일 할례자가 최고 인격 대우를 받기 때문에 바울은 자기 이력서를 “나는 8일 할례자요” 이것만 봐도 다른 사람들은 꼼짝 못합니다.
그 다음에 “이스라엘 족속이요”라고 했습니다. 혈통 관계를 가장 지독하게 따지는 사람들이 유대인입니다.
유대인이 보는 비유대인은 어떤 취급인가?
사람으로 취급 안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랜 역사 속에 지금 많이 변한 것입니다.
우리 갈보리교회가 파송한 유대인 제이 선교사가 이스라엘 자기 조상의 본국으로 선교 활동을 하러 갔는데 보고를 하러 왔습니다.
뭐가 제일 장애 요소이냐고 물었더니 한국 여자와 결혼한 거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사진한 장을 보여주는데 어떤 유대 남자가 자기 집 앞에서 괜히 할 일도 없이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저 집에 사는 사람은 유대인 후손인데도 불구하고 한국인 여자와 결혼해서 산다.” 하면서 막 손가락질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진을 저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게 유대인입니다.
지금도 그런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아마 세상에서 어느 나라에도 그런 일은 안합니다.
그런데 유대인은 합니다.
“지붕 위의 연주자”라는 제목의 유대인 중심의 영화가 있어서 제가 보러 갔습니다.
외국에 살고 있는 유대인 가정에서 딸이 그 나라 청년을 사랑했습니다.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그 아버지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자기 딸을 쳐다보지도 않으려 합니다.
제가 한번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성지순례는 한국 사람들이 제일 많이 갑니다.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는데 우리 한국 사람들은 먹을 것을 좀 싸가지고 다니는 버릇이 있습니다. 깻잎, 김, 멸치 볶은 것을 꺼내놓고 먹습니다. 그래서 빈 접시를 달라고 해서 거기에 그 반찬들을 놓고 먹으니까 그것을 본 종업원이 그 접시를 빼앗아 그 자리에서 집어던져 박살을 내었습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왜 우리 거룩한 나라의 접시에 더러운 이방인의 음식을 담느냐?” 그런 뜻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순수 이스라엘의 혈통성을 “나는 이스라엘 족속이다.” 그런 문화에 사는 사람이 그것을 밝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6장에 예루살렘 초대교회에서 헬라파, 히브리파가 갈라졌습니다.
교회가 큰 시험에 빠졌습니다.
히브리파는 누구이냐?
순수 이스라엘 족속입니다.
헬라파는 누구이냐?
혼혈 내지는 헬라 문화권에서 살다가 온 사람입니다. 그렇게 같은 족속인데도 갈라져서 성경에서도 싸우지 않습니까? “나는 순수 이스라엘 족속이다.”
그 다음에 여기 베냐민 지파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족속은 야곱의 열두 아들 이름을 따라 행정 구역을 정했습니다. 신정 통치 국가에서 왕정 통치 국가로 전환될 때 이제는 왕을 세워야 됩니다. 초대 왕을 선출했는데 사울이라는 사람이 왕이 되었습니다. 그 지파가 베냐민 지파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왕지파라고 우대했습니다.
이 같은 역사는 우리 한국인들에게 쉽게 이해가 됩니다.
고려 500년, 조선 500년 왕족들이 얼마나 권세를 부렸는지 압니다.
누구도 건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바울은 내가 그 지파라고 말을 합니다.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라고 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바울과 같은 사람을 보고 말하는 것입니다.
문화적으로 이스라엘 족속을 히브리인이라고 말을 합니다.
같은 이스라엘 족속인데도 이 사람은 아주 뛰어난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봤습니다.
훌륭한 목사님을 보고 “저 분은 목사 중에 목사입니다.”
예수님을 보고도 표현한 말이 있습니다.
성경에 예수님을 왕이라고 표현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세상에는 왕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왕 중 왕, 만왕의 왕” 그런 표현을 쓰는 것입니다.
“나는 히브리인 중에 뛰어난 사람이었소.”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율법은 유대인에게 생명 그 자체입니다.
최고의 권위적 학문인데 일반 학문과 같은 권위가 아니고 영적, 종교적 권위라서 절대권을 가지고 있는 학문입니다.
율법을 가장 잘 지키는 사람들이 유대 사회에서 바리새파였는데 사도행전 22장에 바울은 자신이 율법에 있어서는 가말리엘 문하생이라고 밝히지 않습니까?
그리고 “나는 거기서 엄한 교육을 받았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상급으로 해석을 하는데 최고의 율법 선생 이름이 가말리엘입니다.
그래서 선별된 그의 문하생들은 출세가 다 보장됩니다.
그보다 더 권위 있고 유식한 사람들은 유대 사회에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바울은 얼마나 훌륭하게 살았는가?
“율법의 의로 나는 흠이 없는 자다.”
그가 절대적으로 인정을 받아 그렇게 젊은 나이에 빠르게 출세한 것은 다른 바리새인보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특이한 점이 뭐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받게 한 사람이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어떤 바리새인들보다도 점수가 더 주어졌는데 이유가 오늘 성경말씀에 이렇게 나옵니다.
“내가 그렇게 특이하게 영웅 칭호를 받은 것은 교회를 핍박했기 때문이다.”
행동하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초대교회에 핍박 사건이 처음 일어났을 때 스데반 집사가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그 사건 기록이 사도행전 7장, 8장에 나와 있는데 그 기록에 다른 사람 이름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사울이라는 청년 이름 하나가 기록되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가 제일 열심히 스데반을 죽이는데 앞장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거기서 신이 나서 국가 공문서를 발급받아서 체포 영장을 가지고 병사들을 거느리고 유대 땅이 아닌 수리아 영토인 다메섹까지 가서 예수 박해 작업을 했지 않습니까?
이러한 열심도가 그 사회에서 영웅 취급을 받고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유대 나라를 다스리는 최고의 법적 기구인 산헤드린 공의회 72명 회원권을 젊은 나이에 가지고 출세한 사람입니다.
이 청년의 이력서는 그 나라 안에서 최고라고 해서 여기 이렇게 쓴 것입니다.
왕의 자리에만 못 갔지 그 다음 된 이력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성경에 아주 세밀하게 밝히는 행운아 중의 행운아였음을 밝히는 것입니다.
사실 그의 이름이 사울이라고 한 것은 초대 왕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야심작품입니다.
‘나도 그렇게 될 수 있다.’ 지금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말씀의 골자는 그렇게 좋은 이력서를 가장 더러운 오물로 취급해서 집어던져버렸다는데 말씀의 뜻이 있습니다.
왜 버렸는가?
그러면 오늘 우리들도 출세를 버려야 하는가?
국가 권력 기관은 가지 말아야 하는가?
가말리엘 학문은 하지 말아야 하는가?
그런데 바울이 이렇게 설명을 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그것을 버린다.” 그런 뜻입니다.
예수를 믿고 사도가 되는데 그것이 나에게 방해가 될 때 그 이유는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지금 바울의 인생철학은 인간의 최고 행복 조건이 뭐냐?
“참 진리를 발견했을 때이다. 모든 진리서 가운데 최고의 진리가 있는데 인생 문제이며 영생의 문제이다.”
그런데 바울은 자기가 지금 그것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우리가 이것이냐, 저것이냐 양자택일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하기 위해서 방해가 될 수 있는, 내가 이미 얻어서 성취한 이 모든 조건들을 다 배설물로 집어던져버리겠다.” 그런 뜻입니다.
여러분! 기독교 역사에 순교란 무슨 뜻입니까?
예수를 믿는 그 가치 하나를 소유하기 위해서 생명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생명까지 버려가면서 그 소유를 지켰지 않습니까?
그게 순교입니다.
지금 우리는 바울과 똑같이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함부로 버릴 수 없는 문화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직업도 필요하고 가족 부양의 책임도 있고, 국가적 의무도 이양해야 되고 적당한 소유도 필요하고 성취를 미덕으로 취급하는 현대인의 사상도 벗어나지 못하는 문화에서 살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뜻은 인생의 가장 귀한 영생의 진리를 얻기 위해서는 그것을 방해하는 세상의 어떤 것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것을 희생시킬 필요가 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도 뭐라고 하셨습니까?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결국 이 세상에 대한 탐욕의 문제가 영생 진리의 소유에 방해되는 경우는 이 양자택일의 문제가 나타나는데 그때에는 나는 이것을 버리겠다.”
이런 문제가 오지 않는 평생을 살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기도하기를 평안한 생애를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십시오.
세상을 향한 탐욕의 문제가 얼마나 많이 나옵니까?
롯의 처는 세상에 대한 미련과 탐욕 때문에 소금기둥이 되었다고 성경에 나와 있지 않습니까?
아간은 전쟁 중에도 탐욕 사건 때문에 견디지 못하고 무엇을 훔쳤다가 즉결 심판으로 사형 당했다고 했습니다.
돈에 대한 애착이 너무나 강했던 가룟 유다는 마침내 예수님까지 인신매매해서 돈을 주워들고 그 탐욕의 결과로 재앙을 받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십계명에 “네 이웃을 탐내지 말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이것이 장애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쉽게 예를 들면 저 같은 사람은 교인들 가정을 늘 심방 다닙니다.
요즘에 한국 주택 문화가 매우 고급화 되었습니다.
쓰이는 재료도 너무나 고급스럽고 디자인도 너무나도 편리하고 아름다워서 황홀할 정도입니다.
이제는 우리나라 주택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아름답고 잘 꾸며지고 있습니다.
옛날 임금님들도 누리지 못하는 것을 지금 누리고 살아갑니다.
어느 집은 심방 가서 화장실에 들어가 보니까 화장실이 아니라 미술관 같습니다. 너무나 화려해서 볼 일이 도저히 안 봐집니다.
그래서 한번 계산해보니까 제가 목회한 50년의 모든 교회에서 받은 월급을 다 합쳐도 그런 집은 살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 집에서 우리 교인들이 살고 계십니다.
그러면 저는 심방을 가서 “우리 교인이 이렇게 좋은 집을 가지고 사니 이 얼마나 좋은 축복인가?” 너무나도 기뻐서 “집사님! 축하합니다. 너무 좋습니다.”
인사하는데 별안간 탐욕의 마귀가 내 영혼을 괴롭힐 수 있습니다.
‘이 집이 내거였으면 좋겠다.’
그러면 그 순간부터 나는 괴로워지는 것입니다.
내 것이 될 수 없지 않습니까?
송두리째 기쁨을 빼앗아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가 됩니다.
바울은 지금 그런 남들이 부러워하는 모든 것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탐욕 때문에 하나님을 믿고 사도의 역할을 하는데 방해가 되니까 이것을 내버렸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물 가운데 제일 아름다운 작품이 무엇입니까?
사람입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것이 있어도 거기 사람이 함께 있어야 돋보이지 사람이 빠진 아름다움은 빈껍데기 같습니다.
사람을 보면 반갑고 아름답고 즐겁습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이 아름다운 사람을 선발하는 문화까지 생겼습니다.
미스코리아, 미스유니버셜 이런 것들이 다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의 아름다움을 발표하는 것입니다.
거기 나온 사람들 보십시오.
어쩌면 사람들이 저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그러면 우리는 감탄합니다.
TV에서 몇 시간씩 보여줍니다.
그런데 거기 나온 사람들이 무대에서 노래를 부른다든지 어떤 연기를 해서 즐겁게 해준다든지 그게 아닙니다.
아무것도 안합니다.
그냥 나와서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서있으라면 서있고 가라면 가고 그럴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몇 시간씩 다들 쳐다보고 있습니다.
왜 그럽니까?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별안간 탐욕의 마귀가 나에게 들어올 수가 있습니다.
‘저것들이 다 내 아내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 순간 아름다움은 마귀로 변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탐심을 물리치라. 탐심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수 없나니”
바울 사도는 모든 사람이 탐욕을 부리고 있는 자신의 소유 조건을 말하고 그 탐욕도, 내가 이미 소유한 그 모든 조건들도 하나님의 나라 확장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방해 요소가 되기 때문에 배설물로 똥과 같이 취급을 해서 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목사의 탐욕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제가 어느 교회 설교 초청을 받아서 갔는데 대한민국에서 본당이 두 번째로 크다고 자랑을 합니다.
8천석 정도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날 거기서 제가 설교를 했습니다. 규모도 크고 교인수도 수만 명이고 목사실도 들어가 보니까 어마어마하고 너무 좋고 웅장했습니다.
저는 그때 ‘대한민국의 영적 축복이다. 이제는 대한민국 교회가 온 세계 어느 나라에 대보아도 떨어지지 않는 이런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 이런 교회에서 내가 오늘 저녁에 설교를 하니 얼마나 기쁜가?’
그런데 탐욕의 마귀가 내 영혼을 치고 들어올 수가 있습니다.
‘내가 이 교회 담임목사이면 좋겠다.’
그 순간부터 나는 괴로워집니다. 이 탐욕의 문제는 모든 것을 빼앗아 갑니다.
천국에서 주님이 천국 오는 사람들을 맞아주셨답니다.
농촌교회 교인도 얼마 안 되는 교회 목사가 천국에 오니까 주님이 반가워서 막 뛰어나가서 끌어안아주고 “너 정말 수고했다. 착한 내 종아, 교인도 몇 명 없는데 가서 끝까지 그 교회를 지키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느냐?”
그러면서 막 칭찬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선교사가 오니까 더 반가워하시는 것입니다.
뛰어나가셔서 “네가 그 외로운 땅에 가서 얼마나 고생했느냐? 참 수고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좋아하셨습니다.
그 다음에 대형교회 목회자가 천국에 왔다고 합니다.
그 사람을 보더니 주님이 깜짝 놀라서 그에게 달려가는 게 아니라 반대 방향으로 100미터 달리기 하는 것처럼 막 달려가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척 앉으시더랍니다.
그러니 좀 이상해서 “주님! 왜 이렇게 하시는 겁니까?”
“쟤가 오면 이 자리를 빼앗을 거 같다.” 그러시더랍니다.
오래 전에 미국에 있을 때 한국의 대형교회 목사님이 저희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강사로 오신 목사님 점심 대접을 좋은 데 가서 대접하기 위해서 캘리포니아 바닷가에 모시고 갔습니다.
그 바닷가 상점에서 인공 진주를 팝니다.
“목사님! 이 진주 필요하시면 하나 사드릴게요.” 그렇게 이야기를 해드렸더니 “이 보석이요? 필요 없습니다. 내가 이야기 좀 하지요.” 그러시더니 그분 교회에서 평소에 알지도 못하는 여신도 한 분이 찾아오셨다고는 것입니다.
조그만 궤짝을 목사님께 내려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이거 목사님이 처리해서 하나님 사업에 처리해주세요.”
“이게 뭡니까?”
열어보니까 보석이었다고 합니다.
다이아반지, 금반지, 목걸이, 팔찌…. 사실 그런 처리는 목사도 망설이게 됩니다.
잘못하면 큰일 나지 않습니까?
자기가 처리해서 헌금하면 되는데 이걸 목사더러 팔아달라는 것 아닙니까?
그분의 말은 “목사님, 죄송합니다. 나는 지금까지 하나님 섬긴다고 했지만 하나님 안 섬겼습니다. 이 궤짝 섬기고 살았습니다. 약간의 병적인 현상으로 보석만 보면 참지 못했습니다. 남이 가진 것만 보면 속이 상하고 어떡하든지 사야하고 보석상 지나갈 때는 저것을 다 사야 하는데 샘이 나고 그래서 돈만 있으면 능력대로 구입해서 이 궤짝이 모셔놨는데 예수님께는 제가 문안 기도를 안 드려도 하루에 한번씩 이 궤짝에는 늘 가서 문안드렸습니다. 없어졌나 살펴보기 위해서입니다. 여행을 가도 궤짝 생각만 나고 전기 고치는 사람, 수도 고치는 사람이 들어와도 도둑놈같이 보이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내가 제 정신이 왔습니다. 궤짝 보고 네가 뭔데 왜 내 주인 노릇을 하느냐? 이 배설물 같은 것아! 그래서 그동안 신경 쓴 것이 억울하고 창피하고 하나님께 죄송해서 내 손으로 처리하는 것보다 목사님께 부탁하는 것이 가장 내 영혼에 평안이 될 거 같아서 부탁드립니다.” 목사님이 그런 부탁을 받은 적이 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여러분! 우상 숭배하지 말라 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람마다 우상 숭배를 합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어디까지 단호한 말씀을 하셨습니까?
“아버지, 어머니도 나보다는 더 사랑하지 마라. 그가 네 영혼을 조절할 수 없다.” 그것입니다.
“네 아들과 딸일지라도 그렇게는 하지 마라. 그들이 네 영혼의 주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관계는 절대로 우상숭배 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 외에는 주님과 같은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게 우상 숭배입니다.
여러분! 요새 보십시오.
북한의 김일성 주체사상이 10대 종교라고 이미 종교 사상가들이 오래 전에 발표했습니다.
얼마 전에 뉴스 나왔습니다.
리설주가 은하수 악단으로 있을 때 같이 재미나게 놀았다고 누가 말해서 관계자 9명이 다 총살당해 죽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은하수 악단이 해체되었습니다.
“리설주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마라. 그는 절대 존엄이니라. 그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끊어버렸지 않습니까?
“전능하사 천지를 다스리시는 어버이 수령을 내가 믿사오며 그의 아들 김정일은 민족의 태양이시며 삼위일체 김정은 동지는 삼년 안에 통일의 신천지를 창조할 위대한 영도자임을 내가 믿노라.”
이게 지금 북한의 종교입니다.
1923년 시카고 에드워드 비치 호텔에서 당시 미국에서 최고 성공한 사업가 9명이 부호 클럽을 만들었습니다. 성공한 재벌끼리 교제하고 자녀들을 교제시켜 사돈을 삼고 피차 도와서 부와 명성을 유지하려는 뜻이었습니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어느 날 시카고 신문에 “부호클럽 9명의 그 후 소식” 기사가 보도되었습니다. 철강업자 찰스 슈워츠는 파산했고, 가스회사 사장 하워드 홉스는 치매환자로 지금 정신병원에 있고, 최대 밀 도매업자 아더 카터 씨는 변사했습니다. 뉴욕 증권사장 리처드 위트니 씨, 그리고 장관 출신 앨버트 윌 씨는 둘 다 감옥에 있습니다.
사무엘 엔서르 씨는 행방불명이 되었고, 세 명은 자살했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 방해되는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겨서 버렸습니다.”
당시 그 사회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의 신앙 고백서를 오늘 우리가 봤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우상으로 섬기고 사는가?
주님의 가장 귀한 영적인 축복을 정말 축복으로 믿고 사는가? 잘못 가는 길을 여러분은 회개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 삶의 푯대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