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만 있어준다면』(작사 양희은, 작곡 김영국)은 2006년 발매된
「양희은」35주년 기념 앨범에 수록된 타이틀 곡 중의 하나입니다.
「양희은」은 대한민국 포크 계보를 잊는 청명한 목소리에 감성이
묻어있는 가수입니다. 청소년 시절에 서울 YMCA가 운영하는 쉼터
"청개구리"에서 만난 '김민기'가 바로 그녀의 음악 삶에서 중요한
영향을 만든 인물이라고 합니다. 이후 그녀는 "상록수", "한계령",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등 수많은 명곡 들을 탄 생시킨 국민
가수가 되었습니다
「양희은」의 가족으로는 여동생이 있는데,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배우
'양희경'이죠. 「양희은」 과 남편 조중문의 결혼 생활은 참 묘합니다.
두 사람의 사랑에는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는 거 같네요. 불꽃 같은 사랑
부터 은은한 황혼 빛 같은 사랑까지... 첫 만남에서 불과 3주만에 결혼을
결심했고, 또 묘하게 둘이 한 번씩 불치병을 앓게 되지만 서로를 버리지
않았고, 평생을 서로를 위해 주고, 의지하면서 같이 늙어갑니다.
두 사람을 보면서, 진정한 사랑 이란 무엇인 지를 어렴풋이 알 것 같습니다.
「양희은」 (1952년생)은 서강대학교 사학과 졸업한 후 1971년 당시
"아침 이슬로 가수로 데뷔했습니다. 「양희은」 1집과 20주년 기념앨범은
각각 67위와 91위로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선정되었습니다.
어릴 적 「양희은」 은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아버지가 서북
청년 사건 때 '진남포'에서 단신으로 남하한 '양정길'이었는데, 육사 4기
포병 장교를 거쳐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였고, 육군 대령으로 예편
이후 병(病)으로 요절(夭折)합니다. 어머니 '윤순모'는 서울예대 성악과
출신의 디자이너였습니다.
「양희은」 은 3자매 중에서 장녀였고, 여동생이 바로 유명 배우 '양희경'
이고 '양희경' 노래 실력 또한 수준급이죠. 그런데 아버지가 외도(外道)를
하고 새 엄마가 들어오게 되면서 그녀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가슴속에
품습니다.그 후 「양희은」 이 13살 무렵 아버지가 39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뜨고, 가세(家勢)가 기울게 되죠.
이후 「양희은」 친어머니가 가장(家長) 역할을 하는데, 어린 「양희은」 역시
맏이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19살 때부터 직업 가수의 일을 시작합니다.
「양희은」 이 '송창식'에게 일자리를 부탁했고, '송창식'은 명동의 맥주집
에서 자신의 공연 시간 중 일부를 떼어주어서 어린 「양희은」 이 돈을
벌 수 있게 해줬다고 합니다. 대학 시절 「양희은」 은 끼니는 물론이고
교통비 조차 없어서 걸어 다녔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먹고 살기 위해
노래를 해야만 했고 공부하면서 돈을 벌어야 했기에, 대학 졸업하기까지
8년이 걸립니다. 그렇게 「양희은」 은 집안의 빚을 갚기 위하여 자신의
20代를 다 바치는데, 30代가 되자 큰 병 (病) 에 걸립니다.
바로 난소암(卵巢癌)이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다시 자리를 털고 일어
나긴 했으나 병(病)의 후유증으로 이후 불임(不姙)이 됐습니다.
「양희은」 이 난소암으로 투병중일 때, 1983년에 "하얀 목련"을 내고
다시 활동한 적이 있는데 그 이유가 난소암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일 당시,
청계천에 「양희은」 의 앨범이 날개 돋힌 듯 팔리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고
이에 「양희은」 이 수소문해 알아보니 당시 꽤 유명한 음반 도매상이
"양희은 난소암 판정, 전집 판매" 현수막을 걸고 음반을 팔고 있었던 것...
이에 화가 난 「양희은」 이 "사람이 아픈걸 홍보 수단으로 쓸 수 있냐고?!
이럴 수가 있냐?!" 고 따졌더니 그 도매상이 "억울하면 신곡 발표 하든 가"
라고 응수하자 "하얀 목련" 으로 다시 복귀한 것이라고...
원래는 다른 가수에게 갔으나 거절당한 노래에 가사를 다시 붙혀서 발표
했다고 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난소암을 극복하고 다시 가수로 복귀한 「양희은」 은 우연히
1987년 뉴욕의 한 교회에서 성경공부를 하다가 남편을 만나게 됩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날 당시 「양희은」 은 36살, 남편은 39살 이었다고 하네요.
이렇게 첫 만남 후에 두 사람은 불과 3주만에 결혼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결혼한 이후 「양희은」 은 미국에서 평범한 주부 생활을 합니다.
남편이 자신이 운영하는 슈퍼마켓에서도 「양희은」 이 절대 일하지 못하게
한 것이죠.그렇게 신혼 생활을 보내던 「양희은」 은 1988년 다시 난소암이
재발하고 맙니다 자녀도 없는 미국 생활은 많이 권태로웠고, 「양희은」 의
몸 안에는 가수의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결국 남편은 아내를 위해서
1993년 미국에서의 사업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귀국합니다.
평범한 가정 주부로 지내던 「양희은」 이 다시 가수로 복귀하게 된 것이죠.
그렇게 한국에서 행복하게 살던 중, 이번에는 남편에게 몸도 꼼짝할 수 없는
'류마치스' 라는 병마(病魔)가 찾아옵니다. 다행히 관절염의 권위자 만난 후,
남편의 류머티즘 증세는 크게 호전이 됩니다. 혼자 걸을 수 있고 혼자 변기
에도 앉을 수 있게 된 것이죠. 비록 「양희은」 부부 사이에 자녀는 없지만,
누구보다도 더 행복한 것 같습니다.
「양희은」 은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돌이켜보면서 남편에 대한 소원을
하나 갖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39살에 돌아가셨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린
나이다. 이 남자에게 바라는 건 끝까지 함께 가는 거다. 나중에 35주년 기념
음반에 『당신만 있어준다면』 은 그래서 나온 노래다. 그러다 보니 삶의 가치,
결혼, 이 남자의 의미를 돌아보게 됐다." 면서 또한 「양희은」 은 늘그막에
그렇게 원망했던 아버지의 외도를 용서하게 됩니다.
그녀는 "아버지 나이를 넘기고 나서 부터는 서른아홉의 남자를 보면 예사로
보이 질 않아요. 아버지는 저 때 돌아가셨는데 너무나 어린 남자더라고요.
진짜 철없이 딴 여자를 좋아할 수도 있고 곁 눈질 할 수도 있고, 그런 어린
남자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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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부귀영화도 세상 돈과 명예도
당신, 당신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죠
세상 다 준다 해도 세상 영원 타 해도
당신, 당신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죠
아무도 모르는 둘만의 세월
이젠 알아요 그 추억 소중하단 걸
가진 건 없어도 정말 행복했었죠
우리 아프지 말아요 먼저 가지 말아요
이대로 도 좋아요 아무 바램 없어요
당신만 있어 준다면 당신, 당신,
나의 사람 당신만 있어준다면
아무도 모르는 둘만의 세월
이젠 알아요 그 추억 소중하단 걸
가진 건 없어도 정말 행복했었죠
우리 아프지 말아요 먼저 가지 말아요
이대로 도 좋아요 아무 바램 없어요
당신만 있어 준다면 당신, 당신,
나의 사람 당신만 있어준다면 당신, 당신,
나의 사람 당신만 있어준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