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리역, 통리장, 스위치백
며칠전, 통리 5일장을 보러 아내와 묵호역에서 기차표를 끊었다.
그런데, 통리역이 없어지고 동백산역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도계역에서 터널을 뚫어 동백산역으로 직행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그럼, 통리역은 어찌 되는거지? 통리5일장을 봐야 하는데.....”
통리장은 전국에서 제일 높은 기차역이고, 백두대간 산자락에서 동해바다가 내려다 보이고 태백준령을 병풍처럼 거느린 곳에서 열리는, 강원도에서는 북평장 다음으로 큰 장이다.
동해바다에서 올라온 온갖 해산물이 풍부하고, 영동선과 태백선이 만나는 통리역에는 강원도 뿐만아니라 충청도 경상도의 농산물과 임산물이 만나는 곳이다.
풍성한 5일장이 열리는 통리역을 지나치던 과거에, 그곳을 꼭 한번 들려보기로 마음속으로 다짐했었는데 그것을 실행에 옮기려던 차였다.
그리고, 통리역을 굳이 고집했던 한 가지가 더 있었다. 스위치 백,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이 경상도 강원도 충청도 산간 지역에 무궁무진하게 매장되어 있던 검은 황금 석탄을 일본으로 가져가기 위해 영동선 태백선 기찻길을 만들고 두 개의 철길이 통리역에서 만나 태백준령의 경사진 고갯길을 내려와 묵호항에서 배에 싣고 일본으로 도둑질해 갔던 것이다.
그래서 사실, 묵호항은 어항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산업항이었던 것이다.
사람도 살지 않았던 묵호항 주변은 전부 산비탈이었기에 어촌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묵호항(墨湖港)은 한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석탄의 검은 물이 항구를 물들인 모습이 마치 먹을 풀어 놓은 검은 호수 같아서 이름 붙혀진 것이다.
그런, 묵호항 옆에 어항이 생기고, 도시에서도 쫒겨난 가난한 농부와 탄광 광부들이 오징어 배를 타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들어 묵호항 산비탈에 무허가집을 짓고 살았던 것인데, 그곳 산비탈 묵호항 어판장 앞에 나도 고기를 팔기 위해 살고 있는 것이다.
도계역에서 통리역으로 올라가는 비탈길이 너무 세서 만든 철길의 이름이 스위치 백이다.
태백산맥의 경사도는 길다란 기차가 올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본인들이 머리를 굴려서 만들어 놓은 것이 그것이었다.
스위치 백은, 지그재그로 기차의 진행 방향이 순방향 역방향으로 교대를 하면서 올라가는 것이다.
그런 스위치 백 시스템은 전국에서도 이곳 하나 밖에 없는 것이고 세계적으로도 유일한 것이다.
통리 5일장도 유명하지만, 전국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는 통리역과 스위치백은 관광상품으로도 꽤 괜찮은 것이었다.
일본인들은 아마 영원히 한반도를 지배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을 하고, 온갖 기술을 동원하여 태백산맥의 석탄을 도둑질하기 위해 꽤 괜찮은 것을 우리들에게 선물(?)로 남기고 도망을 간 모양이었다.
나는, 스위치 백을 올라갈 때마다 일본인들의 집념에 감탄을 하곤 했었다. 그런 스위치 백과 통리역이 터널을 뚫으면서 영원히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더욱 화가 나는 일은 통리역을 대신했다는 동백산역에 도착하고 나서부터였다.
동백산역에 내리고 역사를 나서기 위해 높은 비탈의 계단을 올라서 기차길을 가로지르는 공중의 연결통로를 지나 개찰구를 빠져나와 다시 급경사의 계단을 내려와 또 다시 기차길을 공중으로 건너기 위해 계단을 오르고,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4차선 도로를 건너기 위해 육교를 또 건너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육교를 내려왔던 그곳은 통리가 아니었다. 4차선 넓은 도로를 자동차만 씽씽 달리는 허허벌판 황량한 곳이었다.
통리역은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것인가. 통리 5일장은 없어진 것은 아닐까.
황당함과 함께 속았다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다시 동백산역사에 가서 확인해 본 결과, 통리역은 동백산 건너편 버스 정류장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네 정거장이나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어디 있는가. 멀쩡한 통리역을 팽개치고 아무도 없고 아무도 이용하지 않는 이곳에 우람한 역을 다시 지어야 한다는 말인가.
동백산역은 아무리 생각해도 주민들이 이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불편함을 감수할 바에야 차라리 태백역에 내려 볼일을 보고 시내버스를 타고 오는 편이 훨씬 수월할 것이다.
게다가 동백산역에서 내려 시내버스를 타기 위해 공중으로 철길을 가로질러 또 육교를 건너서까지 시내버스를 타고자 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일 것이다.
시내버스가 오지 않아 지나가던 택시를 타고 겨우 통리역에 도착했을 때 더욱 화가 나고 말았다.
통리장이 열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날은 9월 10일이었는데, 그럼 5 10 장인 통리장은 틀림없이 열렸어야 했다. 그런데, 10장은 없어지고 열흘에 한번씩 5일 15일 25일 열흘에 한번씩 열린다는 것이다.
게다가 통리역이 사라진 통리면내는 황량하기 그지 없었다. 실제로 주민들의 불만은 말이 아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말인가. 민주공화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주민들의 불편과 의사는 간 곳이 없이 이런 거대한 공사가 벌어진다는 것인가.
도계 동백산 간의 18키로 이상의 터널 공사는 규모가 너무 커서 대우 현대 등 대기업 건설사 4개 사가 10년을 넘게 공사하여 완공한 것이다.
그 막대한 기간과 공사비가 무색하게 주민들은 철저히 무시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내가 그곳을 지나며 그나마 일본인들의 파렴치함을 조금이라도 잊게 만들었던 스위치백과 통리역과 통리 5일장 마저 사라져버렸다니. 그곳 주민들의 삶은 어떻게 되겠는가.
더욱 놀랄만한 소리를 들었다. 공사를 수주한 대기업 건설사 4개사는 하청을 주었는데, 지역업체도 아닌 수도권에 위치한 자신들의 협력업체에 낙찰가의 35프로에 주었다는 것이다.
터널 공사는 그나마 실날 같았던 지역 건설경기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