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열여섯 번째 날(카트만두 → 광조우)
네팔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사실 어제 작가들 작품 발표를 하면서 이번 여행의 큰 줄기는 끝난 것이다. 오늘은 가벼운 마음으로 카트만두 시내 관광을 하고 한국에서 온 일행들은 밤 비행기로 떠나고, 외국 작가들은 각자 일정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다들 며칠 정도만 더 머무르다 네팔을 뜬다는데, 요코는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 트레킹을 간다고 한다. 중국쪽에서야 차 타고 휑 하니 갔다 왔지만, 여기서는 15일간이 소요되는 트레킹 일정이다. 하여튼 요코 대단하다! 저 조그만 체구에 카메라 짐이 많아 배낭도 앞뒤로 메고 다니던데 또 15일간의 고난의 행군을 하려 하다니...
짐을 다 싸서 호텔 로비에 맡겨놓은 후 우리는 시내로 들어간다. 그런데 헨릭은 그대로 호텔에 남는다. 몸살이 났단다. 세미나까지 마치고 나니 긴장이 풀린 것일까? 하긴 5,200m의 그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현지인들과 그렇게 미니 축구를 하였으니, 아무리 강인한 헨릭이라도 긴장이 풀리면서 몸살이 날만 하지. 사실 오늘 가고자 하는 곳은 나로서는 전에 이미 가보았던 곳이고, 따라서 여행기로 기록을 남긴 곳이다. 그래도 간단하게라도 훑으며 지나가자.
스와얌부 나트 사원은 3년 만에 다시 왔어도 원숭이들도 여전하고, 아침마다 신자들이 정성들여 싸온 음식을 불상에 공양하고 바르는 것도 여전하구나. 언덕 위에 있는 사원이라 시원하게 카트만두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것도 여전하고... 아주 오래 전 역사 시대 이전에 이 카트만두 분지는 호수였다고 하지. 그 때는 이 사원이 있는 동산은 호수 안의 섬이었을 테고...
이번에는 사원 안으로 들어가본다. 정면에 보이는 불상 앞에는 달라이라마 사진도 놓여 있다. 티베트에서는 사진을 절대 못 찍게 하더니 여기서는 관대하네. 심지어는 스님들이 공부하시고 있는 푸자 홀에 카메라를 들이대어도 제지하지 않는다. 옆에 안내문에는 사진 찍을 때 주의사항과 함께 기부금은 얼마든지 받는다고 되어 있다.
사원을 나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하누만도카 더발 광장으로 간다. 이곳도 쓰레기 풀풀 날리던 건기 때보다는 사정이 좋구나. 예전에 보았던 단사 사원, 쿠마리가르, 가디 바이탁 등을 보며 지나가는데, 한 건물에서 지난 번 보지 못했던 것을 보았다. 머리를 위로 하여 처마 밑을 보는데, 처마 밑의 남녀 나무 조각들의 자세가 이상하다. 자세히 보니 한창 성행위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 정상적으로, 뒤에서, 다리 하나 들어올리고... 아니 이건 뭐야? 여자 하나를 두고 남자 둘이 앞뒤에서 하네. “햐아! 이건 X 등급보다도 한 단계 더 높은 등급 아닌가? 어제 우람하게 발기한 남자만 보아서 좀 아쉽더니만, 여기서 드디어 진한 것 보았네.” ^.^;;
그러나 이는 단순히 육체적 쾌락만 생각하는 덜떨어진 중생들의 생각. 섹스도 상대를 욕망의 덩어리로 보지 않고, 오직 섹스 그 자체에만 순수하게 몰입하다 보면 문득 깨달음이 온다고 하지 않는가? 저 건물도 종교적 건물인데, 설마 저기에 성적 욕망을 표현했겠는가? 그러나 나 같은 범부에게 보이는 것은 겉에 보이는 성적 쾌락뿐이니...
또 한곳엔 네모난 단에 사방 벽면을 돌아가며 작은 불상들이 들어가 있는데, 오래된 나무 하나가 자기 뿌리를 뻗쳐 이 단을 감싸 짓누르고 있다. 벌써 한쪽은 찌부러지고 모퉁이가 떨어져 나갔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언젠가는 이 단은 그대로 붕괴되고 말 것 같은데, 특별히 유적을 보존하기 위한 조치는 보이지 않는다.
하긴 이대로 붕괴 과정을 보여주는 것도 나름대로의 문화재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렇게 붕괴되는 단의 사면을 돌아가며 보니, 한쪽 면의 움푹 들어간 공간에는 두 발만 있다. 원래 두 발만 있던 것일까, 아니면 단이 짜부러지면서 불상이 부서져나가며 발만 남은 것일까?
방선생님은 어제 행위예술 할 때와 입었던 가운을 그대로 입고 광장을 어슬렁거리면서 퍼포먼스를 펼친다. 당연히 사람들의 눈길은 방선생에게로 몰리고, 관광객들 상대로 장사하기에 여념이 없던 네팔 사람들도 방선생에게 집중하면서 웃는다. 퍼포먼스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더라도 이렇게 사람들에게 웃음과 즐거움을 주는 것만으로도 방선생이 펼치는 행위예술은 예술로서 성공한 것 아닐까?
관광객이 몰리는 거리이다 보니 기념품을 파는 가게가 많은데, 구르카 용병이 자랑하는 쿠크리 나이프를 파는 가게가 보인다. 칼날이 보통의 단도처럼 똑바로 되어 있지 않고 휘어져 있는데, 2차 대전 때 구르카 용병이 소리 없이 적진에 들어가 적병의 목을 따올 때에 저런 휘어진 칼이기에 더 위력을 발휘했던 것일까? 구르카 용병의 용맹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영국이 네팔을 점령할 때부터이다. 영국군은 네팔을 손쉽게 점령하리라 생각했는데, 구르카족의 용사들 때문에 애를 많이 먹었다. 그래서 영국은 네팔을 식민지로 만든 후 이들의 용맹함을 높이 사 구르카족의 용사들을 용병으로 고용하였다. 이후 구르카 용병은 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거치면서 세계에 그 용맹을 떨쳤지.
가난한 네팔에서 구르카 용병으로 고용된다는 것은 부와 명예를 얻는 것이기에 지금도 구르카 용병을 뽑을 때는 수많은 지원자들이 몰린다고 한다. 이렇게 지원자가 몰리니 용병이 되려면 25kg의 돌무더기를 매고 산악지대를 55분 내에 주파하는 것은 기본이라 한다. 이러한 구르카 용병의 용맹에 끌려서인지 방선생님과 이교수님이 이 쿠크리 나이프를 사셨다. 글쎄 저게 한국 들어갈 때 과연 통관될 수 있으려나... 결국 인천공항에서 두 분의 칼은 압수되고 기념으로 칼집만 갖고 집에 가야만 했다는군. 쯧~쯧~~
다음으로 힌두교의 파슈파티나트 사원에 들르니 여전히 사원 앞 강가에서는 오늘도 현생의 삶을 마감한 사람들의 시신은 불길 속에 재가 되고 있고, 강가에서는 여전히 사람들이 혹시라도 시신에서 나오는 귀금속이라도 있을까봐 강물을 뒤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티베트에서 망명온 티베트사람들이 주위에 집단 거주지를 이루며 살고 있는 보다나트 사원을 들른 후 네팔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즐기기 위해 호텔 앞 식당으로 들어선다. 몸살로 호텔에서 쉬던 헨릭도 핼쑥한 모습으로 식당으로 온다. 이제 이 마지막 만찬을 끝내고 나면 그 동안 운남의 차마고도를 거쳐 티베트를 통과해오면서 정들었던 외국 작가들과 헤어져야 한다.
네팔 소주 락시가 나오고, 무희들이 나와 네팔 전통의 춤을 추면서 분위기는 무르익는다. 처음 만날 때는 언어의 장벽으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기 힘들어 어색한 면도 있었지만, 같이 16일을 매일 부딪치며 같이 다니다보니 정이 들었다. 서로가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피부와 언어, 국가가 다르지만 그래도 사람의 정이라는 것은 다 같은 것. 공항으로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오면서 이별의 아쉬움도 더해간다. 드디어 이제는 일어나야 할 시간. 우리는 서로들 얼싸안고 진한 이별의 감정을 나눈다. 서로 연락하자 만나자 하였지만 나로서는 언제 또 이들을 만날 수 있을까? 이들을 만나기 위해서 내년에도 나인드레곤헤즈의 행사에 참여할까? 식당을 나와 우리를 공항으로 데리고 갈 버스 앞으로 간다. 다시 한 번 이별의 악수를 하거나 포옹을 한다. 그리고 우리는... 떠난다...
공항에 도착하였다. 나는 이미 우리나라 시골 공항 같은 카트만두의 공항을 몇 번 겪었지만, 처음 겪는 분들에게는 이런 공항도 있나 조금은 낯설었을 수도 있겠다. 분명 엑스레이 검색대를 통과했건만 또다시 가방 검사를 한다. 이교수님이 등산 지팡이를 넣어 둔 기타를 기내에 갖고 들어가려다가 등산 지팡이가 문제가 되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승무원이 보관하였다가 내릴 때 주겠다고 하겠지만 여기서는 위험물이라고 압수한단다. 그러면서 이교수님에게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옆에 있는 나에게 귓속말로 달라를 좀 주면 그냥 보내주겠단다.
그러나 이교수님이 이런 엉터리 같은 놈들에게 굴복할 분인가? 이교수님은 압수하라면 하라며 지팡이를 포기하고 비행기로 오르신다. 3년 전에 내가 화석을 기념품으로 사서 비행기에 오를 때에도 마찬가지로 달라를 요구하여 네팔의 이미지를 구겨놓더니 지금도 여전하구나. 이런 것이 자기의 얼굴에만 똥칠하는 것이 아니라, 네팔의 전체 이미지를 흐려놓는다는 것을 왜 모를까? 우리나라도 네팔과 같은 수준의 나라였을 때에는 마찬가지였을까? 자! 이제 그만 잊어버리자. 어두운 밤하늘에서 하루를 넘기면 우리는 광조우에 내린다.
첫댓글 그날의 기억이 생생...글 쓰느라 밤잠 못주무실 것 같은 양변호사님께 감사..
후후! 알아주시니 더욱 감사!
연일 게속되는 송년모임에 묘한년을 보내는차 연재되는 양변호사님 기행문에 다시 되뇌이게 되는 차마고도 지난여정......감사!:이병욱
저는 연일 계속되는 송년모임에 새해 시작부터 몸살하며 시작했네요. 통과의례라고나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