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여행작가’로 불리는 김수남(49)·변윤자씨(50) 부부는 마을 어귀 하얀 벚꽃길을 걸으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선운산 아래 자리잡은 전북 고창군 심원면 연화리, 김씨 부부가 마을을 여행하다 정착한 곳이다. 부부는 이곳에서 툭툭 터지는 하얀 벚꽃처럼 새로운 마을 이야기를 하나씩 틔워내고 있다.
# 마을여행하던 부부, 시골 마을에 정착하다
서울에서 20년 가까이 여행작가로 활동하던 김수남·변윤자씨 부부가 농촌으로 삶터를 옮긴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농촌체험 등 체험여행 컨설팅을 하고 글을 쓰면서 농촌에 한쪽 발을 담근 채 도시생활을 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김씨는 마을에 관심을 갖고 <여행의 재발견, 구석구석 마을여행>(팜파스)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귀농·귀촌에 대한 꿈을 키우던 부부가 고창에 짐을 푼 것은 2011년. 하고많은 마을 중에서 고창을 택한 이유는 뭘까?
“막연한 끌림이라고 할까요. 고창엔 산과 바다, 갯벌이 있어 마음에 들었어요. 사실 농촌마을과 관련된 일을 하다 보니 오라는 데들이 여럿 있었어요. 하지만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서 홀가분하게 시작하고 싶었지요.”
처음 1년 동안은 빈집을 얻어 놀았다. 부부는 “놀았다”고 말하지만, 실은 ‘모색기’였다. 농촌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어떤 작물을 키울지 시험 재배를 하며 적응기를 가진 것.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때의 여유가 농촌 정착에 큰 도움이 됐다. 놀다 보니 뭔가를 해야겠다는 의욕이 샘솟았고, 조바심 내지 않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고.
# 귀농인들 모아 글과 사진으로 마을과 소통
그렇게 1년을 보낸 뒤, 부부가 시작한 일은 여행작가로서의 경험을 살린 마을사업이었다. 우선 지역의 문화예술활동을 위해 ‘선운산여행문화원’을 설립했다. 이어 2013년엔 문화체육관광부·전북도·고창군의 지역특성화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에 공모해 ‘마을을 여행하는 귀농인 여행작가’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지난해에는 ‘귀농인 마실가는 날’로 이름을 바꿔 진행했다. 이 프로그램에는 고창 지역의 귀농인 18명이 참여해 매주 저녁 김씨 부부에게 글쓰기와 사진 촬영 기법에 대해 배우는 한편 고창의 한 마을을 정해 수시로 여행을 다녔다. 2013년엔 심원면 두어리, 2014년엔 아산면 용계리가 그 대상으로, 이들은 마을 곳곳을 돌아보며 역사와 현황, 주민들의 이야기를 글과 사진으로 표현했다. 또 장수사진을 찍어주는가 하면 여름이면 모정에서 팥빙수를 만들어 대접하기도 했다. 람사르습지로 지정된 운곡습지를 품은 용계리에는 횡단보도에 개구리 등의 그림을 그려주는 한편 생태밥상도 개발해줬다.
프로그램이 끝날 때에는 그동안 쓴 글과 사진을 모아 문집을 펴내고 주민들과 함께 축제를 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성과는 귀농인들이 지역민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운 것이다.
“귀농인들을 전문 작가로 만들려는 게 아니에요. 글과 사진은 지역민들과 소통하는 수단일 뿐입니다. 귀농인들과 지역민들이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 귀농인들이 소통방법을 배워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거지요.”
김씨는 올해 공모사업에 선정되진 않았지만, 귀농인들과의 모임을 지속하면서 다양한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또 민간단체들과 함께 고창의 람사르습지를 테마로 한 ‘람사르관광네트워크’ 구성도 준비중이며, 한국여행작가협회 감사로서 고창의 관광자원을 알리는 일도 하고 있다.
# 건강한 먹거리에 마음을 내려놓다
농촌에선 먹거리를 빼놓을 수 없는 법. 귀농 이후에도 여행을 테마로 활동하는 김씨와 달리 먹거리에 관심이 많은 변씨는 이곳에서 새로운 테마를 찾았다. 바로 조청이다. 어릴 적 할머니집에서 먹던 조청의 건강한 단맛을 되살리고 싶어 전통방식으로 조청을 만든 것. 마을 주민들이 생산한 쌀로 만든 조청에 복분자·칡·오가피 등을 넣어 맛과 효능을 더했다.
지난해 가을 ‘선운도원’이라는 식품업체를 세우고 본격적으로 조청사업을 시작한 부부는 올 들어 조청고추장·조청강정 만들기 체험까지 운영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제 멀리 여행은 안 다니냐고요? 지금도 여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여러 곳을 넓게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한곳을 깊게 여행하는 거죠. 귀농하면서 느낀 것 중 하나가 마음을 내려놓는 거예요. 이것저것 다 하고 싶어 두리번거리기보다는 하나를 정해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조청도 그렇고 여행도 그렇고.”
돌아가는 길에 다시 만난 마을 어귀의 하얀 벚꽃길. 부부의 마음은 이 길 어디쯤에 놓인 것일까.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부부를 대신해 흩날리는 꽃잎들이 이들의 이야기를 품고 멀리 여행을 떠난다. ☎070-8299-2061.
고창=김봉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