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분 기도 764. 용서(230818)
민요세비
(일부는 인용했습니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마태오 16-22) 한다
주일학교생들에게 사형제도에 대한 의견을 토의하게 한 후 투표를 했다. 결과가 50:50 정도로 나왔다. 그래서 물었다. 왜 반대하느냐? 고, 그랬더니 사형보다 더 심한 벌을 주어야 한다고 답하더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의 잘못에 대해 엄격하다.
심리적으로는 그 죄인보다 내가 깨끗하다는 상대적 우월감을 가지기에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묻지마 범행에 대해 사형제도 이야기가 논의되고 있다.
왜 예수님은 일곱 번이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말씀 하셨을까?
노르웨이 학교 노론모임에서 통기 난사로 76명이 사망한 일이 있었다. 그에게 그나마 최고형인 21년 형이 내려졌다.
당시 총리가 한 추모사에서 인간의 가치를 논했다. 복수를 한다고 죽은 아들이 자녀가 돌아오지는 않는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역설하며 복수가 사랑보다 우월 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이대봉씨는 사재 200억을 서울 아트센터에 기부했다. 용서는 가장 숭고한 승리임을 말하며 사재를 털어 모순과 잘못투성이인 서울예고를 인수하여 아트센터를 건립하는 기부를 한 것이다. 리어카 상으로 시작하여 1975년 동아 항공을 모태로 ‘참빛’ 그룹의 수장으로 20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항공업계의 거장, 1987년 아들이 서울예고 성악2학년 때 선배의 구타로 죽었다. 아들이 폭력으로 죽자 그는 목소리가 잠겨 제대로 나오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그런 가운데서도 복수 대신 용서를 택하였고, 아들을 때린 상급생을 풀어달라고 검사에게 탄원서를 내며 다양한 장학 사업을 펼치며 서울예고 등에도 많은 기부를 했다고 한다.
추모가 아픔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복수보다 큰 승리가 용서인 것이기에 상처를 치유 받기 위해서도 용서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용서하며 살고 있는가?
내가 우월 해서 용서를 하는걸까? 그가 회개하기를 바래서, 회개할 것을 믿어서 용서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