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20여 일이 지난 어느 날
근무 후 직장에 회식이 있어 귀가 시간이 늦어 11시쯤 집에 돌아온 경숙은 집안 분위기가 이상함을 느꼈다.
현관문을 열어주신 어머니는 많이 피로해 보이며 얼굴에는 눈물 자국이 확연하고 집에 계시면 퇴근하는 딸을 누구보다 반갑게 맞아 주시는 아버지는 안 계시고 누나가 들오는 소리를 들으며 슬그머니 나와 인사를 하는 동생의 얼굴도 눈물 자국이 있고 무척 풀이 죽어 있다.
이상하게 생각한 경숙이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아직 안 오셨어요?”
하고 보이지 않는 아버지가 궁금하여 아버지의 안부부터 묻자.
“경숙아 이 일을 어쩌면 좋으냐?”
어머니가 다시 눈물을 흘리며 경숙의 손을 잡는다.
깜짝 놀란 경숙이
“어머니! 왜 그러세요? 무슨 일이 있는 거예요?”
하고 되묻자.
“아버지가 경찰에 잡혀가셨다.”
하시며 어머니는 힘겨워하시며 주저앉으시고 어머니의 대답에 다시 깜짝 놀란 경숙이 얼결에 주저앉는 어머니를 부축하며
“아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버지가 경찰에 잡혀가시다니. 아버지가 왜요?”
“아버지 밑에 직원이 횡령을 했데. 그래서 아버지에게 배임죄가 있다며 경찰이 와서 아버지를 연행해 갔어.”
어머니의 눈물 대답이다.
“아니 언제요? 얼마나 됐어요?”
경숙도 터지는 눈물을 참으며 묻는다.
“아버지가 들어오셔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T.V를 보시며 쉬고 계실 때에 경찰이 들이닥쳤어.”
어머니는 울음을 그치지 못 하신다.
옆에 동생도 눈물을 훔치고 있다.
“아니 어떻게 그런 일이---”
어머니의 설명을 들은 경숙은 눈앞이 노래지며 천정의 형광등이 회전을 하며 요동을 친다. 그것도 모르고 직원들과 회식이 끝난 후에도 2차, 3차를 하며 놀다 늦게 집에 돌아오다니
“그래서 지금 아버지는 어디에 계셔요?”
“화순 경찰서에 계셔. 내가 9시까지 있다가 왔다.
그 말을 듣고 경숙은 일어나 현관으로 향한다.
“너 어디 가려고 그러니?”하고 어머니가 잡으신다.
“아버지한테요. 아버지한테 가서, 아버지 말씀을 들어볼래요.”
“지금 가서 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까 내가 나올 때 면회시간 끝났다고 돌아가라고 해서 경찰서를 나왔는데. 내일 고모부 오시면 같이 가자. 경찰서에서 전화를 드렸더니 오늘은 회사의 급할 일 때문에 못 오신다고 내일 아침에 집으로 오시겠다고 하셨다. 아버지 말씀은 아버지는 전연 모르는 사실로 관련이 없으니 곧 풀려날 것이라고 걱정말라고 하시더라만 모르겠다. 어떻게 될지.”
“아버지께 다녀오겠어요.”
이대로 가만히 내일까지 기다릴 수가 없다.
아버지의 성품으로 보아 전연 가당치 않은 일이라고 무엇인가 잘못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예상치 못한 충격에 쓰러질 것 같은 자신을 억지로 자제하며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긴 것인지 정말 아버지가 잘못 하신 것인지 조금이라도 빨리 아버지를 만나서 확실한 사정을 알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말하고 집을 나온 경숙은 택시를 잡아타고 화순 경찰서로 향했다.
택시 안에서 경숙은 점점 더 떨리는 몸을 정신력으로 버티며 운전 기사에게 빨리 좀 가자고 재촉을 한다.
밤늦게 택시를 잡아타고 다른 곳도 아닌 경찰서로 가자는 젊은 여자가 가늘게 몸까지 떨고 있어 이상하게 생각하는 운전기사가 자꾸만 빽미러로 힐끔거려도 경숙은 개의치 않는다.
그런 것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을 정도로 마음이 당황하고 조급한 것이다.
우리 아버지가 배임죄로 경찰서에 들어가시다니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누가 아버지 몰래 횡령을 했단 말인가?
정말 아버지는 관계가 없으신가?
그렇다. 우리 아버지는 절대 관계가 없을 것이다. 우리 아버지는 청렴한 분이니까.
그럼 왜 붙잡혀 가셨나?
농협의 장으로 부하의 감독을 잘 못 해서인가?
아버지는 얼마나 놀라셨고 어머니는 얼마나 충격을 받으셨을까?
앞으로 우리 집안은 어떻게 되나?
택시가 도로를 달리는 동안 경숙은 별생각이 다 든다.
경찰서에 도착하여 처음 오는 곳이고 더욱이 밤이라 어디로 가야 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지 몰라 걱정을 하며 현관을 들어가다가 마침 밖으로 나오는 경관을 만나 사람을 면회하러 왔는데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하고 물었다.
“이 시간에 누구를 면회하려고 하시는 데요?”
“경찰이 우리 아버지를 데리고 가서---.”
집에서 아버지를 만나러 올 때는 아버지를 만나 보아야겠다는 조급한 생각에 씩씩했던 경숙이 막상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는 경찰서에 혼자 와서 경찰과 이야기하자니 그것도 깊은 밤에 하자니 겁이 났다.
그래서 이렇게 우물 주물 말했다.
그리고 동생이라도 데리고 올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그 사람이 당직실을 가르쳐주고 그곳으로 가보라고 하며
“너무 늦어서 면회하기가 어려울 것인데요.” 한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그 경찰이 가르쳐 준 대로 당직실을 찾아가서 당직을 서는 경찰에게 먼저 현관에서 만난 경찰에게 말한 것과 같이 경찰이 우리 아버지를 데리고 와서 아버지를 면회하러 왔다며 면회를 하게 해 달라고 했다.
현관에서 경찰을 만나 이야기해 본 경험이 경숙을 조금은 용감하게 했다.
“지금 12시가 넘어서 오늘은 늦어 면회가 안 되니 내일 오세요.”라는 것이 당직 경찰의 말이다.
“꼭 만나야 해서 왔으니 만나게 해 주세요.”
“구치소 사람들이 모두가 잠들어 있는 지금은 안면방해가 되고 또 규칙상 21시 이후에는 면회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내일 다시 오세요. 내일 아침 9시부터 면회가 됩니다.”
경찰의 구치소라는 말이 경숙의 귀에 송곳처럼 박힌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재판을 받아 형이 확정되기 전까지 들어가 있는 곳
전에 언제 한 번이라도 자기 가족 중 누가 구치소에 들어가리라 생각이나 했을까? 가족 중 누구도, 하다못해 도로를 무단 횡단한 죄로라도 경찰서에 와본 적이 없었는데
“그래서 빨리 오려고 택시를 탔어요. 어떻게 면회가 되도록 해 주시면 안 되겠어요.”
경숙이 울상이 되어 부탁을 한다.
“면회 시간이 밤 9시까지라고요. 지금은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간입니다. 규칙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면회가 안 되니 내일 다시 오세요.”
“내일 뵈도 될 것 같으면 이렇게 밤늦게 오겠어요.”
“그 아가씨 참 끈질기네. 아가씨, 사정은 알겠는데, 그래도 지금은 안돼요. 다른 사람도 생각해 주어야죠. 규칙이 또 그렇고요. 그러니 내일 오세요. 아가씨!”
하고 귀찮은 것을 피하려는 듯 경찰이 자리를 뜬다.
혼자 우두커니 섰던 경숙은 할 수 없이 경찰서를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경숙은 온몸에 힘이 빠져 걷기도 힘들다.
시간이 늦어 버스가 없을 뿐 아니라 버스에 흔들리며 갈 자신도 없어 다시 택시를 잡았다.
달리는 차창에 지나치는 밤 풍경이 어제만 해도 운치가 있어 보였는데 오늘은 삭막하고 칙칙하다.
마음이 써늘한 것이다.
아버지는 구치소에서 오늘 저녁을 어떻게 보내실까?
잠이나 제대로 주무실까?
혹시라도 아버지가 못 나오시면 우리 집은 어떻게 되나?
다시 별생각이 다 든다.
집에 도착하니 어머니와 동생은 자지 않고 경숙을 기다리고 있다.
“생각보다는 일찍 왔구나. 그래! 아버지 면회를 하고 오는 거냐?”
어머니가 물으신다.
“늦었다고 면회를 안 시켜주어서 못 했어요.”
“그러냐? 내가 나올 때도 곧 면회 시간이 끝난다고 그만 가라고 해서 왔다. 내일 고모부 오시면 같이 가보자.”
어머니는 많이 침착해 지셨다.
아버지가 안 계시는 동안엔 어머니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시고 억지로라도 침착함을 찾으시려고 노력하시나 보다.
어머니가 자리에 드시는 것을 보고 동생을 다독여 놓고 자기 방으로 돌아와 경숙은 대강 씻고 자리에 들었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제발 아버지에게 아무 일 없으셔야 할 텐데.
혹 아버지의 일로 어머니가 병이 나시면 어쩌나?
동생은 지금 고3인데 이 일로 충격을 받아 잘 못 되면 안 되는데.
또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문다.
첫댓글 즐~~~~감!
즐감
감사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무혈님!
감사합니다.
대보름 49님!
반갑습니다.
이제야 가을 맛이 나는 근요
그런데 어제 비가 많이 왔습니다
비 피해는 없으셨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