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옛날 이야기
홍승현
술 취한 겨울밤, 토요일 해운대를 걸었다.
해운대 구 시장을 거쳐 지나며 노점에 쌓인 사이다 병들을 스쳐 바라본다.
‘킥’ 하고 웃으며 문득 옛 친구 삥촐이를 떠올렸다.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있어도 꼬푸가 없으면 못 묵습니당~"
"숭구리당당 궁당당!"
"앗싸가오리!"
"버들잎 쭉쭉 늘어진 빨래터에서 이불 빠는 아가씨야! 올해 몇이냐! 열여섯이냐! 열여덜이냐! 나 보기에 딱 좋을 때다......"
구전 가요를 지겹게 시도 때도 없이 쳐 불러대던 나의 친구.
그 노래를 부르며 부산극장 구둣방 골목에서 처자들을 잘도 꼬시던 나의 친구 삥촐이!
죽일놈!
그 친구 생각하니 입가에 ‘풋’ 하고 웃음이 지어진다.
달력!
예나 지금이나 외투에 찬바람이 마지막 밑천처럼 불어댈 때쯤이면 새 달력이 나온다.
70년 후반,
장면은 부산 남포동 구두빵 꼴목.
어느 구두점인가는 가물거리지만 내 기억으론 지금의 “K제화” 쯤이라고 짐작이 간다.
병아리 눈물 같은 월급을 타서 쪼개고 모아서 구두 한 켤레 샀던지, 보너스로 주는 선물을 얻은 피조개 같은 그녀가 성질 급하게 제화점을 나오자마자 길거리에서 새로 나온 달력을 뜯어 열심히도 보고 있었다.
내 친구 삥촐이 대뜸 다가갔다.
"어이 바라, 니 뭐보노?"
"옴마야!, 아저씨 와그랍니까?"
"뭐라카노? 보는거 같이 보자꼬"
"싫어예"
"싫다꼬! 세상 니 혼자 사나?"
“가스나야! 가치 쫌 보자? 느그 집에 가서 봐도 될 껄, 와 요서 똥폼 잡고 보고 있노?
내가! 니 뒷모습에 뿅 갔다이가? 그라이 책임지야 될꺼 아이가?“
“먼 책임예?”
큰 소리로 그렇게 떠들어 대니 자나가는 사람들이 힐끔 거린다
“야이 가스나야! 니 쪽 팔래, 따라 올래? 퍼떡 결정해라!”
그녀는 말도 안 되는 억지에 드뎌 거의 울먹이는 얼굴로 싱싱한 늑대 두 마리에게 견인됐다.
남포동 자갈치 쪽에 “종다방” 이란 음악다방이 있었다.
그 놈의 전용 견인 장소였다.
불안 초조 쪽팔림으로 점철된 꾸들꾸들한 표정의 그녀를 데리고 범죄의 재구성을 위해 들어섰다.
당시의 정서로는 소화하기 힘든 이브닝 드레스로 섹스가 어필했던 “여성 뚜엣 바카라” “예스 시어 아이 캔 부기”가 흐르고 있었다. 앨범 쟈켓이 파격적이었다.
커피 한 잔씩 시키고 침을 꼴깍거리던 우리의 삥촐이는 온갖 잔대가리와 통밥을 굴리며 조서를 받기 시작 했다.
“와! 우리랑 동갑이네. 없던 걸로 하고 우리 친구하자 으잉? 헤헤...기념으로 커피 값 니가 내라!”
그리하야! 부산여상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감만동 부산빠이쁘 경리과에 근무하며 “열씨미 살자”의 인생 극복형의 쌤플 같은 그녀였다.
형질 검사를 꼼곰하게 해보니 이뻐 보였다.
못생겼지만 보면 볼수록 베리베리 귀여운 세숫대를 가졌었다.
다방을 나와 헤어진 후, 그 놈의 첫마디!
“삿치기! 삿치기! 사뽀뽀!"
“으헤헤..켁! 켁!”
“아까라까 칩!”
“아까라까 칩!”
“아까라까! 아라까! 칩촙칩!”
“장깸뽀!”
“장깸뽀!”
“아나 용갑아 !
“땡꽁 한 차리!”
“삥촐이! 껀수 불황에서... "심봤따"!
고함을 질러 댔다.
그날 이 후! 삥촐이!
송도 혈청소, 서면 고고장, 남포동, 광복동, 파도소리 흐드러지는 해운대 백사장 등에서 그녀를 쪼매 오래 만나 묵었다.
but!
그러던 어느날!
“가시나 그거 아인나! 찰싹 달라 붙어가꼬 빡 돌아 삐겠다"
"야! 내 아인나! 가시나 그거 인자 안 만날 난다! 커흠!"
“야! 그라믄 울고 짜고 그랄꺼 아이가? 임마! 니 그라지 말고, 그냥 만나주라 가 불쌍타이가?”
“싫다 쨔슥아!”
며칠 후!
일방적인 삥촐이의 프로젝트에 말려들어 거사일 및 장소 결정!
운명의 프로젝트 거사일 저녁!
안소니 퀸 주연의 “25시” 간판을 보며 대한극장 근처에서 헤이그 밀사처럼 달달달 떨리는 마음으로 삥촐이와 접선!
나와바리를 벗어난 전문 견인소가 아닌 서면 “돌고래 다방”에서 만났다.
“얌마! 니 않있나!
눈만 지긋시 감꼬, 인상을 야리꼬리하게 하고 무게만 빡 잡고 있어라이”
“조디! 달 싹 하믄 니 죽는다이”
“아라따!
“커피는 마시도 되제!”
“내껏도 마시뿌라! 자슥아!”
그러면서 내 빵모자까지 뺏어 쓰고 야전잠바의 깃을 세우고 구석자리에 마주 앉았다.
삥촐이 메모지에다 "켄사스의 더 스트 인 더 윈드" 랑 "최백호의 입영전야" 를 끌쩍꺼려 음악 신청을 했다.
그 때, 우와!
진짜 절묘하게 그녀가 백호 아이씨의 심드렁한 목소리 "아쉬운 밤 흐믓한 밤"하는 신청음악이 나오는데 진짜 흐믓한 미소를 띠고 그녀가 그림처럼 나타났다.
갑자기 삥촐이가 천재 같아 보였다.
삥촐이 개 폼 빡 잡고 “바흐의 무반주 첼로” 같은 저음으로 주디를 열었다.
첫 마디에 때린 “꽁!”
"내 아인나 , 군대간다"
차이코프스키의 1812" 서곡 같이 시작 된 술판!
장송곡“레퀴앰”의 분위기로 바뀌며 대선 쏘주를 팍팍 들이키는데, 그녀는 눈동자가 풀려서 하염없이 앉아 있었다.
“삥촐아! 나 우짜면 좋노”
“삼년을 우째 내 혼자 있어야 되는데... 그래도 안 가믄 안되는거제?”
“가시나야! 짜지 말고 꽁상 거리지 마라! 쪽 팔리구로... 니! 아직또 이 머슴마의 뜨거븐 마음이 파악이 안되나?”
‘안다 머스마야!.."
“국방은 의무 아이가! 사나이 다 같이 가는 한 길이란 말이다!”
“삥촐아! 미안하다...마음 약한 소릴 해가꼬!”
“삥촐아! 근데...니 한테 한 가지만 묻고 싶따!”
"근데, 안있나..내... 내 안있나! 니가... 내 좋아 한다꼬, 한마디...한마디 만... 해주는거..듣꼬 싶따아이가!"
울었다. 울고 있었다.
수정처럼 빛나게 울고 있었다.
그렇게 울면서 손가락으로 석 삼년을 손 꼽아보는 그녀 앞에 나는 죽고 싶도록 죄스러워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승현씨! 고개 들고 술 한잔 해예!”
“승현씨도 삥촐씨 군대 간다니까 어깨가 축 쳐짓네예”
“아!.. 아임니다”
나는 켁하고 술 사래가 들렸었다.
마음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삥촐이 이 짐승 같으 놈아! 니는 마 인간 새끼가 아이다!”
찔끔찔끔 눈물 찍어 대는 그녀.
모일 모시에 동네역에 꼭 배웅 나온다는 그녀에게 또 다시 무게 잡힌 사기꾼 같은 목소리로
"내 니한테 눈물 보이기 싫타! 기다리라! 편지하꼬마!"
세월이 흘렀다.
3개월 후,
장발이 강풍에 휘날리는 남포동 구둣빵 골목 구루마에서 둘이, 오뎅 국물을 쪼잔하게 홀짝거리고 있었다.
그 때 저만치에서 빵모자와 굵은 목도리로 얼굴을 뒤감은 어떤 여인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야! 야! 삥촐아! 저...저기...또라이 같은기 우리를 무단이 째리보고 있다!
...어! 어! 어!...야! 얌마! 삥촐아! 조떼따!”
“삥. 촐. 이. 사끼꾼아!”
"머꼬! 이..머꼬? .......아아아아아악!
이....이.....이---잉간아! 오늘 세상 다 살았다!, 니 죽고 내 죽자아!"
...삥촐이 썩을 잡놈!..... 아!.. 무기여 잘있거라! <옮겨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