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장맛비가 이어져 산골에 갇혔습니다. 비가 많이 오면 개울과 이어지는 낮은 쪽 산길에 물이 불어 잦아질 때까지 한동안 통행이 어렵지요. 산쪽으로 비상용 임도가 있긴 하지만 낙석이 떨어져 가급적 이용을 자제합니다. 남쪽 지방엔 폭염주의보, 북쪽에는 호우주의보라니 성질 급한 사람들이 복작대며 모여 사는 사연도 많은 나라답게 좁은 땅덩어리에 날씨도 다양하네요. 물질문명의 발달, 인구증가에 따른 대기 오염과 환경변화로 지구별에 기상이변이 속출하면서 우리 땅에도 봄, 가을은 짧아지고 춥고, 더운 계절만 늘어난다지만 그래도 아직은 혹한의 겨울 끝에 맞이하는 봄날의 풋풋함과, 만추의 정취를 가슴에 듬뿍 담을 수 있으니 생각해보면 금전으로 살 수 없는 고마운 축복이지요.
큰비 덕분에 집에서 머물며 빈둥거리다 낮에 인터넷 소식을 보자니, 여수에서 괴상한 물고기가 잡혀서 누리꾼들 사이에 화제가 되는 모양이네요. 머리 부분은 도미 모양을 하고 있고 턱 밑과 등 쪽에 곤충 더듬이 모양의 2개의 지느러미가 나있고 꼬리 쪽은 부챗살 모양을 하고 있는 기괴한 모습의 사진이 함께 소개가 되어 있더라고요. 문득 어린 시절, 어린이 신문이나 학생잡지에 U.F.O며 외계인에 관한 것 등 신기한 이야기들이 실리면 솔깃해서 호기심 있게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생각이 납니다.
믿거나 말거나 같은 이야기지만, 프로레슬링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그 시절 즐겨보던 학생잡지에 해외의 전설적인 유명 레슬러들을 소개하는 연재기사가 있었는데 반은 사람이요 반은 물고기의 피부와 형상을 한 기괴한 레슬러의 이야기가 실렸던 것을 기억합니다. 예고 없이 어쩌다 한번씩 경기장에 나타나서 인간의 언어가 아닌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을 부르짖으며 초인적인 힘으로 금세 상대를 눌러버리고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는 줄거리였지요. 또 지금의 인류가 살기 전, 대서양 어딘가에 있었다는 잃어버린 제국 아틀란티스나 태평양 상의 거대한 문명국가 무어 제국 이야기도 어린 시절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신비한 대상이었고요. 피라미드의 전설이나 티베트 어느 사원 아래에 입구가 있다는 지하세계에 관한 것도 생각나네요.
학창 시절 교과서를 보면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라고 나와 있는데, 그런저런 신비한 이야기들을 접하노라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말고도 끝도 없이 드넓은 저 별나라들 중에 어찌 인간보다 발달한 생명체가 없을까하고 갸우뚱대기도 했었지요. 세상이 어지럽다 보니 지구멸망설을 주장하는 이들이 드물지 않지만,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한 자연의 진통이요 정화작용이 아닐까하는 것이 제 믿음입니다. 우주의 지배자가 있다면 탐욕스럽고 시끄러운 쓰레기 천지, 지구라는 이름의 작은 별 때문에 골치깨나 아프겠네요.
산골에서 생활을 하다보면 보이는 것이 풀, 나무요 구름, 햇살, 달과 별이다 보니, 시시때때로 변하는 자연의 모습에 눈길 주고 귀 기울이게 마련이지요. 새날이 되면 일어나 맞는 새벽녘의 이슬부터 한밤의 적막이며 밤바람 내음새까지 어느 하나 같은 것 없이 새록새록 변하는 하늘 아래 모든 것들에 눈길을 주노라면, 참 세상은 볼 것도 많은 축복의 놀이터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린 아이처럼 팔자 좋은 소리만 했나요? 누가 보면 솔잎이나 먹고 신선놀음이나 하는 사람인줄 알겠네. 하기사, 뭘 모르고 벙벙할 때가 많으니 세상사에 둔감하고 속 터지는 일이 적을런지.
한해 두해 나이테가 늘수록 새롭고 신기한 일보다는 보통스럽고 평범한 주변의 것들에 시선이 많이 갑니다. 일상의 흔한 것들. 공기며 물이며 가족들, 자주 보는 주변 사람들이나, 마을 풍경, 산그림자며 하늘빛, 바람소리, 새소리, 햇빛 내음.. 깊은 산 속에서 자라는 산삼이나 귀한 약초들도 좋겠지만 가까이에 널려있는 쑥이나 칡, 질경이, 민들레, 소나무, 참나무, 싸리나무, 느티나무들도 갈수록 정이 갑니다. 잡초라 불리는 흔한 들풀들도 그렇고요. 세상에 뜻 없는 것은 없고 흔하디 흔한 것일수록 무언가에 필요해서 태어난 것이라는 것이 저의 믿음이지요. 사람이 다 몰라서 그렇지.
마당가 고야나무가 제 열매 무게에 못 이겨 가지가 휘어졌습니다. 매해 장맛비가 한창일 즈음이면 익어서 비바람에 반쯤은 떨어지지요. 아까운 생각이 들어 지나면서 더러는 효소 발효용으로 쓸까하고 줍기도 합니다만, 달린 자식들마다 모두 거둘 수는 없어 약한 열매는 떨어뜨리는 어미 나무의 아픈 생존법이기도 하겠습니다. 개울가 접시꽃이 며칠 전 비바람에 쓰러져 안쓰럽더니 오늘은 생기를 되찾은 듯 휘어진 대궁이에 새로 피는 커다란 꽃이 싱그럽네요. 생의 고난을 예감하면 식물은 온힘을 기울여 자손을 퍼트릴 준비를 서두르지요. 혹은 먹고 사는 일로, 혹은 개인적인 성향 때문에 아기를 갖지 않으려는 오늘날의 사람 세상과는 다르게.
닭장 가에 모여 사는 돼지감자 이파리들도 장맛비에 스러져 볼품없더니 다시 하나 둘 기운을 차리고 힘을 냅니다. 누가 돌봐줄 이 없으니 삶을 이어가려면 스스로 일어나야겠지요. 그래도 자기들의 영역을 구축하고 모여살면 외롭지도 않고 큰 도움이 될 듯 싶네요. 큰 벌이 침입하면 서로 몸을 단단히 붙여 진을 치고 적에 대항하는 꿀벌의 모습이 그러하듯. 보이게 보이지 않게 저마다의 치열한 삶에 하루가 바쁩니다.
이 비 그치면 햇살 다시 비추겠지
작열하는 태양이 대지를 달구고 나면
여름의 끝, 이파리들 하나 둘 빛을 잃고
길을 묻는 자에게 가을바람이 답을 하리
- 영월 송이골에서 산중낙서
* 블로그 "송이골 편지"에서(blog.daum.net/intonature/7861432) 글, 사진: 보리피리
첫댓글 잘 계시지요?
네, 소리님도요.
다음 주에 한양에 갈 일이 있을 듯한데
비오는 날 파전에 막걸리라도 하면서
반가운 얼굴들 뵜으면 좋겠네요.
연락 드리겠습니다.
반갑습니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보리피리님!..장마에 피해는 없으신지요.
지루한 장마도 이번주로 꺾이고 나면 주말부터 8월 한달 본격적인 찜통더위가 전국을 달구게 될테지요.
자연의 오묘한 법칙속에 순응하며 오늘도 신의가호에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 하지요.
이젠 인생의 후반기에 큰욕심 없이 건강 체크해가며
오늘도 무사히..
평범한 일상의 삶이..
즐겁고 편안함.. 만을 추구 하는 이기심이 생기는건 어쩔수없는 세월 탓일까?..
보리피리님 !. 습도가 높다보니 칩칩한 여름날의 한가한 오후를 보내고 있네요 ..
장마와 삼복더위 잘보내시고 늘 건안 하시길 바랍니다.~~~
연일 이어지는 큰 비로 땅이 물러져 언제 무슨 사태가 일어날지 모르는 게
장마철 산마을의 모습이긴 하지만, 한편으로 넘치는 계곡물에 산안개 낀 우중
정취를 누리는 호사도 있으니.. 그렇고 그렇게 이 여름도 때가 되면 가겠지요.
사임당님도 복중에 너무 기운 쓰지 마시고 몸과 마음 두루 편안하시기를.
이번 장마는 예전에 비해 많은양에 비를동반한 국지성호우라고하네요~~
영월 송이골은 피해가없는지요?
간간히 소식 주시여 송이골 근황을 알지만서도 시간 되실때 얼굴도 보여주시는 여유를 같길 바랍니다 ..^^*
길에 큰 나무가 쓰러지거나 낙석이 떨어져 통행에 지장을 준다든지 하는
정도는 있지만 아직 이렇다할 피해는 없이 그렁저렁 넘어가고 있지요.
진짜 피해는 초가을의 태풍 때가 위험이 크답니다. 그렇지 않아도 다음주에
한양에 올라가는데 뵐 기회가 있었으면 합니다. 고맙습니다. 늘 편안하세요.
아직 피해가 없으시다니 다행 이시네요
그려요 오시거든 뵙시다~~^^*
그렁저렁 집중폭우는 피해갔으니 다행이지요.
어지간한 문제가 생기면 어디선가 어련히 알아서 해결해주는
사람 많이 모여사는 도시와 달리, 한적한 곳에는 공기 좋은 대신
불편함도 크지요. 세상 모든 것을 다 누릴 수는 없는 일.
조만간 뵙지요. 고맙습니다.
비그치면...
먹거리가 지천일텐데...
가본다하면서도..
영 쉽지가 않네..ㅎ
여름가기전에 가볼수 있으려나..ㅎ
이리저리 바쁜 세상에 어디 마음 먹는 일이 쉬운가?
다음 주초에 한양에 가려하니 그때 볼 수 있을지...
보리 피리친구님 산좋고 물 맑은 영월
좋은곳에서 사는군요
영월 장릉에 소풍도 가곤해서
비피해가 없다고 하니 다행입니다
아직은 그럭저럭 큰 일이 없으니 다행.
남쪽 지방에는 연일 가뭄에 불볕 더위로 고생이 많다는데,
마중물님의 공력으로 마른 하늘펌프에 물 한바가지 부어주시지요 ㅎ
셜엔 비가 많이 와서 농작물??? 엉망에다가 고라니가 잎을 다 따먹는 텃밭~~!??? 죽입니다~~ㅋㅋㅋ
영월엔 시원하죠~~? 지인이 그쪽 산다는데 가본다하며 차일피일 미룹니다~~나이드니 자연이 맴에 들어선지 산과 들을 자주 찾네요~~ㅎㅎㅎ
동서울 터미날에서 7분거리에 사는데도~~~휙~~떠나기가 만만찮네요~~~
밤부터 내내 폭우가 와서 산길이 엉망입니다.
아침부터 군에서 보내준 굴삭기가 길을 대충 내놓고 내려갔는데..
마침 내일 서울 번개를 제안해 놓은 터라, 빗줄기 좀 그치면 길을
만들어서라도 어떻게든 올라가야지. 잠실에서 만나는데 철이님도
시간 되시면 얼굴 뵙도록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