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에 있는 양재고등학교는 1월 말쯤 일찌감치 2학년 담임교사를 배정했다. 예년과 비교하면 2주 이상 일찍 정한 것으로 올해부터 '수학여행 지침'이 크게 달라져 서둘러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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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 갈 때 100명 넘지 말아라"
↑ [조선일보]서울시 교육청의 새 지침에 따라 올해부터 서울시 초?중?고교는 100명 이상의 학생이 함께 수학여행을 갈 수 없게 되었다. 사진은 지난해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제주도로 단체 수학여행을 갔을 때의 모습. /이종현 기자
서울시 교육청이 작년 12월에 밝힌 '소규모·테마형 수학여행'으로 학교가 준비하는 수학여행 일정은 빠듯해지고 담당 교사들은 정신없이 바빠졌다. 교육청은 서울시 모든 초·중·고등학교에 학급 단위로 소규모·테마형 수학여행을 가라고 지침을 내렸다. 수학여행은 원칙적으로 학급 단위로 실시하고, 예외적인 경우에도 동아리 또는 탐구 주제별로 묶어 여행인원이 100명을 넘지 못하게 했다.
양재고는 올해 수학여행 후보지를 정하고, 여행업체 입찰 공모를 시행해 개학한 지 일주일 만인 지난 9일 오후 1차 입찰 심의를 마쳤다. 이 학교는 보통 개학한 이후부터 수학여행을 여유 있게 준비해왔고, 여행지 입찰 심의는 3월 말에나 진행했다.
이 학교 2학년생 대부분은 작년에 선배들이 갔던 제주도를 수학여행지로 원했지만 학교는 새로운 지침에 따라 올해는 경상도 2곳·강원도 2곳·전라도 2곳으로 여행지를 분산했다. 양재고 김영근 교장은 "교육청 지침에 따라 학생 모두 제주도로 갈 수 없다"며 "2개 반씩 묶어 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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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 학교 "수학여행 준비 몇 배로 늘어" 보통 수학여행을 가기 전 교통·숙박·음식 등을 알아보기 위해 2명의 교사가 현지에 사전 답사를 간다. 다음 달에 수학여행을 가는 서울시내 한 학교 교장은 "학년별로 12개 반이 있는데 올해부터 답사해야 하는 곳이 1곳에서 6곳으로 늘었다"면서 "선생님들의 수학여행 업무가 6배 늘어난 셈"이라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서울시내 한 중학교 교장은 "우리는 여교사 비율이 80%여서 2개 반씩 가게 되면 주로 여교사들이 따라가게 된다"며 "여교사들이 사춘기 학생들의 음주나 흡연 같은 행동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는지 걱정스럽다"고 밝혔다. 수학여행 일정을 미룬 학교도 있다. 서초고 이성숙 교감은 "작년에는 5월에 수학여행을 갔는데 교육청 지침대로 준비하자니 부담스럽다"며 "10월로 수학여행을 미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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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고려하지 않은 발상"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이번 지침에 대해 "지금껏 학교들이 학년 단위의 대규모 수학여행을 시행했지만 교육 효과와 학생들의 만족도가 떨어졌다"며 "소규모·테마형 수학여행이 학생의 자기주도적 학습능력과 자치능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침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수학여행 비리가 깔려 있다. 지난 1월 수학여행업체 선정 계약 과정에서 뇌물을 받은 교직원 20명이 파면·해직되었다. 그러나 일선 학교들은 교육청의 수학여행 지침이 현실을 무시하거나 제대로 알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수학여행 비리는 계약 액수가 적어
수의계약을 하는 일부 학교의 경우라는 주장이다. 한 학년의 학생 수가 500명이 넘어 계약 액수가 큰 학교에서는 의무적으로 공개 입찰을 해야 하고, 학부모들이 입찰 과정에 참여한다.
서울고의 장천 교장은 "학생들이 모두 함께 가는 단체 수학여행을 좋아했는데 올해부터 행선지를 다르게 바꿔야 해 아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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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흠.....수학여행에 이런 비리가 있었는지 처음알았네요.. 그래도 평생에 한번 있는 추억의 시간인데 학년 모두가 다 같이 가서 장기자랑도 같이하고 반별로 단합대회도 하고 그런 추억을 만들었음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