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에서 기차를 탔다.
기차가 출발하자 신랑은 신이 나서 창 밖 구경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교회 십자가들에 놀란 것 같았다.
나도 기독교인이지만 한국에는 정말 교회가 많은 것 같다.
한국에만 많은 것이 아니라 한국 사람 사는 곳엔 언제나 교회가 많다.
하와이에 사는 한인은 대략 3만 명 정도라고 추정이 되는데 전화번호부에
올라온 한인 교회의 숫자가 40개쯤 된다.
전화번호부에 오르지 않은 작은 교회들이나 미국 교회 건물만 빌려서
따로 한국어 예배를 드리는 교회들까지 계산하며 50개는 쉽게 넘을 것 같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3만 명 인구라봐야 서울의 작은 동 하나 인구 밖에 안 될텐데....
오죽하면 미국에 이민 올 때 중국 사람들은 식당을 차리고
일본 사람들은 전기 제품을 만들고 한국 사람들은 교회를 세운다는
말이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나온다.
하와이가 그 정도이니 한국 사람이 많이 사는 LA의 경우는 더 하다.
몇 년 전에 들은 이야기로는 LA에 한인 교회가 천 개라고 들었다.
지금은 천 개가 훨씬 넘을 것이다.
덕분에 일요일 아침이면 LA 경찰들이 속도 위반 티켓 띠러 한인타운
근처로 모인다고 한다.
예배에 늦은 한국 사람들이 하도 위반을 많이 한다나......
얘기가 옆으로 빠졌군.
어쨌든 신랑은 신나게 구경도 하고 간식도 먹고 그러더니 다시
잠이 들었다.
어떻게 된 게 틈만 나면 잔다.
시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도 얼떨결에 잠이 들었는데 신랑이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일어났다.
담배 연기 땜에 잠을 못 자겠다고 야단이다.
신랑은 개코다.
특히 담배 연기를 병적으로 싫어하기 때문에 금방 반응을 보인다.
물론 담배 가지고 다니는 사람도 귀신같이 찾아낸다.
기차 안에서는 금연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때 옆 칸에서 사람이 들어오면서 문이 열렸다.
열린 문 사이로 기차 칸 사이의 공간에 남자들이 몰려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이 보였다.
신랑은 의기양양하게 저것 보라고 야단이다.
아, 오늘도 즐거운 여행은 틀렸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신랑이 얼마나 담배 연기를 싫어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셔츠를 올려 코와 입을 막고는 일체 말을 하지 않는다.
말을 걸면 셔츠를 잠깐 내려 짧게 대답하고는 다시 얼굴을 파묻는다.
경주까지 오는 동안 신랑은 마치 범죄자처럼 얼굴은 최대한 가리고
대화는 최소한으로 줄인 채 의자에 파묻혀 있었다.
어제 덕수궁에서 본 테러리스트들보다 더 진짜 같았다. (-_-)
경주에 도착해서 호텔 셔틀 버스를 찾으려고 하는데 어디선가
아저씨들이 우르르 우리를 향해 돌진을 해온다.
택시 운전사 아저씨들이었다.
경주가 관광 도시이다 보니 역 앞에서 기다리다가 손님을 잡는
모양이었다.
셔틀 버스 탄다고 말해도 끈질기게 붙는 아저씨도 있었다.
계속 응수를 하다가는 한도 없을 것 같아서 버스를 찾아 막
돌아다니는데 우리가 묶는 호텔의 버스는 없다.
겁이 나기 시작했다.
할 수 없이 버스마다 차례로 물어보고 다닌 끝에 겨우 찾았다.
호텔 이름 좀 크게 써놓을 것이지....
버스에 타서 한숨 돌리는데 신랑이 화가 난 목소리로 묻는다.
신랑: 아까 그 사람들은 뭐야?
니나: 택시 운전사 아저씨들
신랑: 근데 왜 자꾸 따라와?
니나: 관광지는 원래 그래. 손님 잡느라고....
신랑: 싫다고 그래도 그렇게 따라와?
니나: 그런 사람 있으며 대답하지 말고 그냥 도망가는 거야, 알았지?
신랑: 오케이!
호텔에 도착하자 신랑은 기분이 좋아진 듯 하다.
익숙한 방 구조에 맘이 들었는지 침대 위에서 깡충깡충 뛰어보기도 한다.
물론 무릎을 꿇고 앉은 채로 뛰었다.
안 그랬다간 천장에 구멍 뚫린다.
호텔 앞 호숫가를 산책해서 물래 방아까지 가기로 했다.
가다가 보니 커다랗게 기와 담장이 둘러쳐진 상가가 나왔다.
새로 지은 민속촌 쯤 되나보다 하고 들어섰더니 웬걸, 마당을 뺑
둘러싸고 모두 가게와 식당들이다.
평일이고 추운 날씨라 마당을 지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가게와
식당들도 모두 문이 닫혀 있어 을씨년스러웠다.
고적한 분위기를 내며 둘이 상가 안으로 들어서는데 갑자기 우당탕
소리가 난다.
옆을 돌아보니 식당 문이 옆으로 요란하게 열리면서 웬 아줌마가
튀어나온다.
쓸쓸한 분위기에 젖어있던 신랑과 나는 얼마나 놀랐는지 넘어질 뻔했다.
아줌마: 손님, 식사하고 가세요!!!
니나: 아, 저기......
그때 갑자기 신랑이 나를 잡아끌고 뛰기 시작한다.
셔틀 버스에서 도망가자고 얘기하던 것이 떠올랐다.
순식간에 가게들을 지나치는데 문 닫은 줄 알았던 가게들은 우리가
막 뛰어지나갈 때마다 차례로 문이 열리며 사람 얼굴이 튀어나온다.
뛰고 있어서 그런지 튀어나오는 얼굴들이 갑자기 무서워졌다.
어떤 아줌마는 가게 밖으로 나와 마당까지 우리를 쫓아오기도 했다.
마리오가 되어 오락 속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_-)
한 달음에 달려서 상가 밖으로 나왔다.
신랑은 뽀글뽀글 볶은 머리를 한 부류의 사람들에게 점점 더 공포를
느끼는 것 같았다.
멀리서도 금방 알아보고 "아프로‚" (아프리카 사람을 줄여서 부르는
말입니다)가 온다, 하며 떨었다.
니나: 아프로라고 하지마.... 아줌마야.... 결혼한 여자란 뜻이야
신랑: 아줘마?
니나: 그래
신랑: 그럼 너도 아줘마야? 결혼했으니까?
니나: 음.... 결혼했다고 다 그런 건 아니....
신랑: 아줘마구나? 아줘마다!!!!! 아줘마, 아줘마...
그 후로 신랑이 내게 놀릴 때마다 써먹던 숏다리 라는 말에
아줘마라는 말도 더해졌다.
물래 방아 앞에서 사진을 찍고 근처에 있는 "반용" 이라는 찻집에
들어갔다.
경주에 오기 전에 이수미라는 분이 만든 경주 관광 홈피에서 추천한
찻집이었다.
(경주에 가실 일 있으면 이분 홈피에 들러보세요. 아주 괜찮거든요.
http://wwwk.dongguk.ac.kr/~leesm/who/frame1.htm)
신랑은 별로 내키지 않는 척 하더니 할 수 없이 따라온다.
신랑은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차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그런데다가 무지하게 짠돌이기 때문에 찻값에 돈 쓰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쓰다보니 우리 신랑이 참 별종이란 생각이 자꾸 든다.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고 커피나 차도 안 마시다니....
소다도 다이어트만 마신다.
어쨌든 별로 생각 없다구 괜히 비실대며 따라 들어오더니 문을 열자
마자 우와~ 하고는 입을 다물지 못한다.
한국처럼 인테리어에 목숨 거는 찻집이 거의 없는 미국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구조였다.
듣는 바로는 주인이 미술가라든가.
신랑은 춥다고 해서 유자차를 시켜주고 나는 파르페를 시켰다.
신랑은 파르페를 보더니 또다시 입을 다물지 못한다.
장식이 너무 거창해서 놀랐나보다.
꼭대기에는 조그만 미키 마우스 종이 인형까지 꽂혀있어서 더욱
반가와 하는 것 같더니 결국 뽑아서 미국에 올 때 가지고 왔다. (-_-)
그냥 참자고 하는데 기어코 사진도 찍겠단다.
신랑이나 빨리 한 장 찍어주고 말려는데 뒤 배경이 좋아야 한다며
홀 중앙에 설 테니 찍어달랜다.
한국에 온 이후로 얼굴 들고 다니기가 힘들다. (-_-)
그래도 다른 손님이 별로 없어서 후다닥 한 장 찍어주었다.
그랬더니 둘이 같이 찍은 것도 있어야 한다며 웨이터에게 부탁을
하라고 야단이다.
할 수 없이 부탁했더니 웨이터가 이곳은 사진 촬영이 금지라고
알려주었다.
사진 찍기가 싫었는데 괜히 그 말을 듣고 보니 신랑이 실망할 것 같아서
오히려 내가 열불이 났다. 웨이터를 잡고 늘어졌다.
니나: 한 장만 찍어줘요, 네?
웨이터: 저기 쳐다보고 계신 분이 주인이시라서....
니나: 이 찻집 방송에도 나왔다면서요
웨이터: 저기 저 분이 주인이신데.... 저는 여기 아르바이트 생이구요
니나: 미국 가서 자랑하려구....
웨이터: 저기 저 분이 주인.....
니나: 알았어요, 알았어! 사진 한 장 찍는 거 가지구...
신랑: It's ok.... Calm down....
신랑이 내 팔을 잡고 만류하자 웨이터는 미국 사람은 알아듣고
오히려 점잖게 있는데 이 여자는 왜이래, 하는 표정으로 돌아갔다.
난 원래 사진 찍지 말자고 그러고 있었는데....
서둘러서 찻집을 나왔다.
저녁을 먹고 방에 올라와서 샤워를 하려고 가방을 뒤지는데 속옷
가방이 보이질 않았다.
아니, 이럴수가.... 신랑 속옷도 같이 넣어놨는데 보이질 않는다.
니나: 속옷 가방 없어. 빼먹었나봐.
신랑: 뭐?
니나: 어떡하지?
신랑: 야한 잠옷도 두고 왔어?
니나: 앗! 그럴 수가....
서둘러서 짐을 뒤져보니 야한 속옷은 귀중품 가방 안에 잘 들어
있었다..... -_-
속옷을 잊어버리고 가져오지 않는 바람에 2박 3일 동안 우리는 밤마다
속옷을 빨아서 널어놓고 아침에 대충 마르면 입고 다녀야 했다.
신혼 여행의 환상이 왜 자꾸 깨지나.....
카페 게시글
서울살사
니나의 신혼 일기[4-경주도착]
김모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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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1.03 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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