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인연
1988년 8월의 대구의 늦더위는 대구 출신인 성훈에게도 더웠다.
대구의 사립대학교를 입학하고 바로 휴학계를 제출하고 군입대를 한 성훈은 이제 제대를 하고,
막 복학하기 위해 등록을 마치고 교문을 나섰다.
두 살 터울 형이 대학을 다니고 있었고 두 살 터울의 동생도 있어 농사 지어 공부 시키는 집안
의 넉넉치 않는 형편에 아들 둘을 동시에 대학 공부를 시킨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고 또한
재수까지 해서 입학을 한 터라 입학과 동시에 휴학을 했다. 제대를 하고 복학을 한 지금도 집안
형편은 조금 좋아지긴 했지만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빨리 졸업하여 직장을 갖
는 것이 좋다는 생각에 추졸(秋卒)을 생각하고 바로 복학을 결정했다.
아무도 모르는 새로운 사람과 더구나 1학년 1학기도 하지 않고 바로 1학년 2학기부터 시작되어
지니 걱정이 앞서기도 하면서도 마음가짐을 굳게 다졌다.
성훈의 학교생활은 단순했다, 수업과 도서관을 가는 쳇바퀴 생활의 연속이었다. 학업이 남들보다
반 학기 뒤처져 있었기에 남들보다 배의 노력이 필요했다.
형이 졸업을 하였지만 아직 사회 초년생이고 집안 형편으로 성훈은 장학금을 받아야만 했다
그래서 나이 어린 후배들과, 같은 예비역들과 관계도 소홀히 할 수 없었지만 그들과는 조금 다른
생활이 되어야만 했다.
그런 생활이 한 달을 이어 갈 무렵 그 날도 성훈은 수업을 마치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성훈은 매일 앉던 구석진 창가의 자리에 앉아 토플 책을 꺼내고 친구에게 빌린 S사 미니 카세트
플레이어에 토플 강의 테이프를 넣고 이어폰을 귀에 꽂을 때 맞은 편 너머로 들어오는 한 명의
여학생을 보았다.
키는 160cm 정도로 단발머리보다 조금 긴 까만 생머리, 화장 끼 전혀 없는 하얀 피부의 작은 얼
굴을 가진 그녀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선녀가 들어 오는 듯이 주변이 빛나고 있었다.
어깨에 카키색 가방을 메고 가슴에는 두꺼운 책을 안고 있었는데 “OO간호학” 이라 쓰여 있기에
간호학과라는 것만 추측 할 수 있었다.
성훈은 한참이나 집중 할 수 없었다. 카세트테입은 돌아가는데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정신
을 가다듬는 데는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그녀와의 첫 만남의 강렬함은 성훈의 가슴
에는 아주 강하게 남았다.
그 이후로 성훈은 도서관에 오면 어느새 눈은 도서관 전체를 훑어보는 습관이 생겼다. 이름도 모
르는 그녀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는 습관이 생겨 버린 것이다.
어떤 날은 나타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찾을 수 없었다. 보이는 날 보다 보이지 않는 날이 더 많
았다. 그녀는 자주 연두색 계열의 옷을 즐겨 입었다. 옷만 바뀌었을 뿐 비슷한 색상의 계열의 옷
을 입었다. 그녀를 본 날은 왠지 성훈은 흐뭇하게 웃음 지으며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고 만나지
못한 날은 궁금증에 공부에 집중하지 못함을 알게 되었다. 성훈은 그녀를 향한 짝사랑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런 생활의 반복이 중간고사 시험기간 일주 전까지 이어지고 도서관에 자리를 잡기 위한 전쟁
은 시작되었다. 집과 학교가 비교적 멀고 첫차를 타더라도 도서관의 자리를 잡는 것은 엄두도 나
질 않았던 성훈은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학교에서 충분한 자리를 만들어 주었으면 좋지 않
을까 성훈은 생각했다. 다행히 다른 대학을 다니지만 고등학교 친구인 호진의 집이 학교 옆에 있
어 호진이 부모님께 허락을 받고 호진이 방에서 시험기간 동안만 같이 지내기로 했다.
호진이는 고등학교때도 많이 붙어 다닌 친구로 탁구도 같이 치고 서로 집에서 같이 자고 목욕도
같이 가고 여행도 같이 가고 군입대 할 때도 군복무 중 휴가 나와서 입영장까지 따라 와 주었던
친구 그리고 자기 쓰던 미니카세트도 토플 카세트 테이프도 빌려 준 친구다
새벽이면 일어나 새벽 5시면 문을 여는 도서관으로 가서 호진이와 함께 자리 번호표를 받아 옆자
리에서 시험공부를 했다. 아침시간 6시면 호진이는 자기 학교로 돌아갔다. 그런 일상이 시험기간
막바지에 다다를 때까지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성훈은 그녀에 대한 보고픔이 커져 갔고, 눈 앞의 시험이 중요하여 시험공부에 매진하였지만 그
녀의 생각은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다.
일주간의 중간고사 하루를 남겨둔 전 날, 시험 첫 시간이 끝나고 2번째 시험은 오후에 있어 도서
관으로 향했다. 열람실 문을 열고 항상 앉던 좌석으로 가는데 누군가 성훈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긴 검은 생머리, 연두색 상의 바로 그녀였다. 그녀가 성훈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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