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울고 여승은 춤을 추고 남자는 노래를 합니까!!!
고사성어에 “진위시차(眞僞視次)”란 글이 있다. 사람 사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보는 사람의 눈에 따라 달라 질수 있다는 말이다.
대한민국 바로 앞전 역사인 조선역사를 보면 나라를 위해 헌신(獻身)한 애국(愛國) 충신(忠臣)들보다 조선을 위태롭게 하고 헛소문(가짜뉴스)을 퍼뜨린 간신(奸臣)들 이야기가 더 눈길을 끈다.
우리 선조(先祖)들은 헛소문을 퍼뜨려 민심을 나쁘게 하는 소인(小人) 정치인들을 경계한 글로 欲量他人 先湏自量 傷人之語 還是自傷 含血噴人 先汚其口 “남을 헤아리려면 먼저 자신을 헤아려라. 남을 해치는 말은 도리어 자신을 해치는 것이다. 피를 머금어 남에게 뿜으면 먼저 자신의 입이 피로 더럽혀져야한다” 라 하였다.
하바드를 나왔느니 서울대학을 나왔느니 많이 배우고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일수록 진정한 지식인이라면 절실히 깨닫고 조심해할 말이다. 정치인들이 상대방을 악담하고 거짓말하고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하는 말은 이미 자신이 “먼저 잘못되어 있다”라는 표시다.
“백룡어복(白龍魚服)”고사(故事)가 있다. 흰(白) 용(龍)이 물고기의 옷을 입는다는 뜻이다. 중국 서한(西漢)시대의 학자인 유향(劉向)이 쓴 “설원(說苑) 정간(正諫)”편에 있는 글이다.
신분(身分)이 높은 사람이 서민(庶民)의 옷을 입고 일종의 변장(變裝)하고 다니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용(龍)은 신분이 높은 사람이고 어부(漁夫)는 평민을 의미한다.
즉 궁궐에 사는 왕(王)이 백성들이 어떻게 사는지 민심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 서민(庶民) 행색(行色)을 하고 백성들 속에 들어가서 사는 것을 알아본다는 뜻이다.
고대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 오(吳)나라 왕인 부차(夫差)는 평민 백성들과 술을 간혹 마셨다. 이에 오자서(伍子胥)라는 신하가 “전하 백성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면 안됩니다” 라고 간언(諫言)했다.
그리고 옛 고사를 인용하여 왕(王) 부차(夫差)에게 간언하기를 옛날에 옥황상제(玉皇上帝)의 총애를 받은 흰 용(白龍)이 연못으로 내려와 물고기로 변해 뛰면서 같이 놀았는데 예저(豫且)라는 어부(漁父)가 활로 그 용(龍)의 눈을 쏘아 맞췄습니다. 용(龍)은 아픔을 참고 간신히 하늘로 올라가서 옥황상제(玉皇上帝)에게 자신의 눈을 쏜 어부(漁父)를 벌(罰)을 내려 주라고 요청했다.
옥황상제(玉皇上帝)가 말하기를 어부(漁父)는 물고기를 잡는 것이 본업(本業)이다. 물고기 형상(形象)을 한 너를 활로 쏘았다고 해서 어부(漁父)에게 무슨 죄가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지금 많은 백성과 백만의 대군을 거느린 대왕께서 몇몇 백성과 술을 마시는 것은 더 큰 국사(國事)를 잠깐이라도 잊게 되는 것이 온데 그 사이 나라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습니까! 이러고 백성들과 술을 마시려합니까?” 충신(忠臣) 오자서(伍子胥)의 간언(諫言)을 들은 부차(夫差)왕은 그 후로 술을 마시지 않았다.
이 고사(故事)는 왕(王)이 품격(品格)을 지키지 못하고 신분에 맞지 않은 행동을 할 때 신하들이 말리고자 하는 내용이다. 옛 부터 정치를 잘 했다는 성군(聖君)들은 (예를 들어 세종, 효종, 숙종, 정조) 평복(平服)으로 백성들의 삶속에 들어가 백성의 어려움을 잘 파악하여 국정의 방향을 삼기도 하였다.
세종(世宗)에 대한 평복(平服) 미행(微行) 일화 하나를 소개한다. 제목은 “상가승무노인곡(喪家僧舞老人哭)”이다.
평복(平服)으로 변장(變裝)한 세종(世宗)이 밤에 마포나루의 가난한 동네를 찾았다. 한 집 앞을 지나는데 집안에서 노랫소리가 들려 나왔다. 그런데 노래와 함께 곡(哭)소리가 들렸다. 세종이 괴이하게 생각하여 집 안을 들여다보았다.
방안에는 머리를 깎은 여승(女僧)이 춤을 추고 있었다. 상복(喪服)을 입은 젊은 남자가 노래하고 있었다. 노인 한사람은 울고 있었다. 세종은 의아한 마음에 주인을 불러 말을 걸었다.
“어떤 사연이 있기에 노인은 우시고, 여승은 춤을 추고, 남자는 노래를 합니까.”
방 안 사람들은 말을 아꼈다. “손님은 아실 일이 아닙니다. 약주나 한 잔 들고 가세요.” 호기심 많은 세종이 그냥 돌아갈 리가 없다. 간곡하게 사연을 물었다. 노인이 마지못해 입을 뗐다.
“작년 오늘에 아내가 죽었습니다. 오늘은 내 생일이구요. 집안이 가난해 제사상을 차릴 형편이 못됩니다. 며느리가 머리카락을 잘라 팔아 제사상을 차렸습니다. 시아버지인 나를 위로하기 위해 머리카락을 깎은 며느리가 춤을 추고, 상복을 입은 아들이 노래를 하는 것입니다. 이 같은 효도를 받은 나는 마음이 아프고 기뻐서 눈물을 흘린 겁니다”
사연을 들은 세종은 마음이 착잡했다. 세종은 돈을 얼마를 건네며 말했다. “우선 이돈으로 양식을 마련하세요. 그리고 소문에 나라에서 별시 과거를 치른다고 합니다. 아드님이 삼년상을 끝나면 응시하면 그 효성을 하늘이 돕지 않을까요.”
얼마 후 과거별시 공고가 났다. 삼년상을 마친 아들도 응시했다. 과거장에는 시험제목으로 “상가승무노인곡(喪家僧舞老人哭)” 시제가 붙었다. “어느 상가(喪家)에 여승이 춤을 추고 노인이 곡을 한다” 응시생들에게는 전혀 이해가 안 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아들은 거침없이 붓을 휘갈겼고, 장원으로 급제했다. 장원급제한 아들은 임금에게 사은숙배(謝恩肅拜)를 했다. 세종이 말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음으로 나라에 충성하고, 백성을 잘 보살펴라.”
국민을 사랑하는 국정책임자의 마음과 효도(孝道)가 삶의 한 부분인 사회상이 맞물린 설화(說話)다. 이 이야기가 가슴을 아리게 하는 부분은 머리카락을 자른 며느리다. 넉넉지 못한 살림이다. 며느리는 자신의 고운 머리를 잘라 판돈으로 제사상을 차렸다. 그리고 시아버지를 위로하는 마음으로 여승과 같은 모습으로 춤을 췄다. 머리카락은 애달픈 효도이다. 가족애가 담긴 우리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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