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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하는 날 아침에 숙소 주변
다른 곳을 갈 시간이 없어서 같은 장소를 또 찍게 된다.
이번 아프리카여행에서 탄자니아를 거쳐서 가는 목적은 킬리만자로산과 잔지바르를 들러 가기 위해서이다.
킬리만자로산을 등정하지도 못하지만 아프리카에서 제일 높은 산을 보고 간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잔지바르가 유양지로도 유명하지만 노예매매를 했던 곳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역사적 현장을 눈으로 보기 위해서 그곳을 거쳐서 가게 된다.
그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면 하루 종일 버스를 타고 어렵게 가는 것이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
우리가 여행을 하는 것은 그 곳의 경치나 그 곳의 역사(歷史)와 문물(文物)을 보기 위해서이다.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것이나 킬리만자로 산을 들러서 가는 것도 그곳에 킬리만자로 산이 있기 때문에 들르는 것이고 킬리만자로 산이 특별하기 때문에 그곳을 들러 간다.
그런 것에 특별(特別)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면 사실 여행은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요즈음은 안방에 앉아서 초고화질인 UTV로 세계의 곳곳의 경치를 볼 수 있고 그곳의 역사나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다 볼 수가 있다.
지금은 증강현실(增強現實, 영어: augmented reality, AR)을 통해서 긴간과 건강 그리고 경제적 뒷받침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행을 하지 않고도 편안하게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닐 수 있는 시대가 도래되었지만 그래도 여행을 하려는 사람들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여행을 하게 되면 자신이 가는 곳이 어느 대륙에 있는 어떤 나라인지 그 나라의 역사와 자연은 어떤지 그리고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세세콜콜한 것까지 다 알 필요는 없지만 대강의 내용은 아는 것이 여행을 하는 사람의 자세일 것이다.
그래서 그 나라의 간단한 내용을 간추려서 여행기에 올리기도 하는데 ‘여행기에 왜 이런 것을’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 나라에 대해서 상식적으로라도 알아 두는 것이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해서이다.
여행을 하다가 보면 정말 아무런 생각 없이 여행을 하면서 어디를 다녀 온 것을 목적인 사람들을 보게 되는데 참으로 한심한 생각이다.
사실 아프리카 같은 곳은 동물 사파리와 나이아가라 폭포 구경을 빼면 사실 볼 것은 별로 없는 곳이다.
아프리카 대륙의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 지를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면 사실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갈 곳이 못되는 곳이다.
앞으로 아프리카를 가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본인이 왜 아프리카를 가야 하는지를 몇 번이고 생각해 보고 가야 할 것이다.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남미도 마찬가지이고 어디라도 다 마찬가지이다.
왜 그곳을 가고 싶은지 왜 가야 하는지 타당한 이유를 스스로 찾고 난 다음에 떠나는 것이 올바른 여행을 하는 사람들의 자세일 것이다
오늘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일정
우리가 여행하고 있는 탄자니아는 정식명칭이 탄자니아연합공화국으로 1961년 영국에서 독립한 탕가니카와 잔지바르가 1964년 통합하여 두 나라의 이름을 합하여 이렇게 만들어졌다.
이 나라의 수도는 좀 더 내륙에 있는 도도마이지만 실질적인 수도역할을 하는 곳은 해안가에 있는 다르에스살람이다.
두 나라의 국기가 합쳐져서 현재의 국기 모양이 되었다...그러나 탄자니에서 잔지바르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비자를 별도로 받아야 하고 통관도 거쳐야 한다.
국토의 면적은 947,303km²로 한반도의 4.3배 정도가 되며 인구는 58,400만 명이고 국민소득은 900달러 정도로 가난한 나라이다.
국가를 구성하는 부족의 수는 120개 부족이나 되며 종교는 기독교가 30% 이슬람이 35% 토속신앙이 35%로 되어 있지만 초대대통령인 니에레레라는 사람이 종교갈들의 문제점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 종교의 자유를 철저하게 보장하였기 때문에 기독교와 이슬람교 간에 종교 갈등은 거의 없다고 한다.
언어는 부족이 많고 다양하지만 스와할리어가 공용이며 영어도 공용어로 사용한다고 한다.
내륙지방은 사바나와 스텝지역이지만 해안지방은 열대우림이며 내륙의 중앙에는 비옥한 땅들이 많아서 경작을 많이 한다고 한다.
이나라는 영국으로 독립을 하면서 아프리카적인 마르크스주의를 도입하면서 북한과 수교를 먼저 하였고 잔지바르에는 북한의 김일성이 지어준 체육관이 있을 정도로 북한과 가까운 나라였으나 집단농장체제의 실패로 경제가 파탄에 이르러 식량부족에 시달리게 되자 시장경제체제로 변경하였다고 하며 우리나라와는 1992년에는 수교를 하여 교역량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이 독재나 부족 간의 내전 등으로 발전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반해서 이 나라는 정치적으로 안정이 되어 있어서 매년 경제성장율이 7%가 되는 나라라고 한다.
그리고 이 나라는 세렝게티와 킬리만자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넓은 빅토리아호수와 세게에서 두 번째로 큰(담수량) 탕가니카호와 칼람보강의 칼람보 폭포, 전세계에서 홍학이 가장 많이 살고 있다는 죽음의 호수인 나트론 호수 등 관광자원이 많은 나라로 최근에는 관광객 유치에 힘을 쓰고 있다고 한다.
나트론 호수...이 호수에는 오로지 홍학만 살 수 있는 죽음의 호수로 유명한데 호수가 붉은 색이 나는 것은 붉은 색을 띠는 조류 때문으로 이 조류를 먹고 살기 때문에 홍학이 된다
그리고 탄자니아에는 올두바이 협곡(The Olduvai Gorge)이라는 곳이 있는데 인류의 발상지로 여겨지는 곳으로 이 협곡에서 여러 종류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화석을 비롯한 초기 인류의 화석이 출토된 곳이며, 그 뿐만 아니라 선캄브리아대(48억~6억 년 전으로 지구에 생명체가 번성하기 전)부터 구석기 시기까지 각 시기 별로의 화석과 퇴적층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어 지구의 온갖 흔적이 남아있는 지구의 박물관이라고 불리는 곳이라고 한다.
동부해안은 9세기 부터 15세기까지 이슬람, 인도 상인들의 노예무역의 주 거점지로 16세기에 잠시 포르투갈이 정복하였으나 이후 오만세력이 처들어와 포르투갈인들을 축출하고 잔지바르를 거점으로 삼고 해안 지대를 정복하였다고 한다.
이후 독일이 침공을 하여 독일령 동아프리카 식민지로 전락하였으나 1919년 1차 세계대전에 독일이 패하면서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탕가니카 공화국이 1961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뒤이어 잔지바르가 이슬람왕국으로 독립했지만 1964년 1월에 현지 흑인들이 아랍인 왕조를 뒤엎으면서 잔지바르 공화정이 수립되었으나 탕가니카 공화국과 합병하여 탄자니아 라는 국명이 탄생되었으며 국기도 두 나라의 국기를 합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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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에서 다르에스살람의 거리는 550킬로미터로 구글에서는 열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나온다. 교통수단은 아루샤에서 다르에스살람으로 가는 정기버스를 예약을 하여 가는데 우리나라의 직행버스처럼 중간 중간 들러서 승객을 태우고 간다.
통로의 좌측은 우리 일행전체(가이드포함해서 28명으로 처음에는 22명이었으나 늦게 합류한 사람 두 명과 킬리만자로에서 합류한 사람 세 명)가 앉고 우측은 일반 승객들이 앉아서 간다.
짐을 들고 나와서 버스를 기다리는 일행들
행선지가 적혀 있는 버스..아루샤에서 모시를 거쳐 다르에스살람으로 간다고 되어 있다.
아침 8시 경에 모시를 출발해서 다르에스살람의 숙소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7시로 열 한 시간 버스를 타고 갔다. 여행이라는 것이 한 군데 있는 것이 아니고 이동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비행기를 타든 버스를 타든 여행의 여정이 길면 일정 중의 1/3 이상을 길에서 보내게 된다. 이 여정도 여행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버스를 타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이 되어야 한다.
차창에 지나가는 풍경들이나 중간 중간 만나는 마을과 시장들 그리고 사람들....
그곳의 산천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여행의 목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제 춤을 추면서 예배를 보던 교회인데 십자가만 없다면 누가 교회라고 하겠는가...헐~~
킬리만자로 산으로 가는 마랑구로 가기 전에 남쪽으로 방향을 돌리게 된다...직진을 하면 동쪽 인도양이 나온다.
길가에 보이는 풍경들
버스가 정차를 하면 먹을 것을 파는 사람들이 창문옆으로 온다.
옥수수밭과 양철지붕...비행기에서 보면 네모난 지붕이 반짝반짝 빛난다....산이 보이는 것을 보아 왼쪽편이다.
알로에 같이 생겼는데 알로에는 아닌데 이런 밭이 몇 시간 동안 가는 길에 끝없이 펼쳐져 있다.
우리나라 시골의 모습과 비슷하다.
두 시간 쯤 지나서 키후리오라는 마을에 잠깐 쉬어서 화장실을 들르고...
화장실을 갈 때는 돈을 줘야 한다. 2실링인가???
지나가는 길에 보이는 풍경들
산아래 마을과 소떼들...
야자나무가 있는 마을...지금까지 야자나무를 본 적이 없었는데...
철로가 보이는데 구글지도에서 보니 아루샤에서 탕가와 다르에스살람으로 연결되는 철도이다.
길가에 보이는 바오밥나무
다르에스살람으로 오는 길에 보이는 여성들 중에는 히잡을 쓰거나 차도를 입은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 이 지역이 독일이 진출하기 전에 아랍인들이 점령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버스는 남쪽으로 계속 내려오는데 왼쪽에는 작은 산맥과 그 언저리에 있는 마을들이 보이고 오른쪽에는 사바나와 스텝지역이 계속 이어지다가 산맥의 끝자락을 지나면서 해안가로 내려가게 된다.
버스를 타고 내려오면서 보이는 풍경들이 케냐에서 보던 풍경들보다는 더 사람이 살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큰 도시는 보이지 않고 작은 마을과 작은 시장들이 보이며 그리 덥다는 생각을 해 보지 않았는데 해안가 쪽으로 해발이 낮아지면서 더워지기 시작한다.
점심을 먹기 위해서 쉬는 곳에 있는 노점 과일가게...버스도 승객들이 점심을 먹을 수 있도록 쉬어간다.
아침에 준비한 음식들을 식탁에 준비하고
일행들도 나름대로 과일도 사고 점심먹을 준비를 한다.
충무김밥처럼 만 김밥과 반찬들 그리고 보온병에 들어 있는 것은 누릉지이다.
현지인들이 신기한 듯 쳐바본다.
차에서 먹을 과일을 사는데...다시 한 번 깨달은 것이 우리나라에 있는 과일은 사지 않는 것이 정답이다....자두는 별로 맛이 없었다.
길가에 보이는 풍경들...아래로 내려갈수록 길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슬람종교인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버스에는 처음부터 도착할 때까지 중국의 영화와 태국영화 인도영화 그리고 아프리카 뮤직비디오를 틀어주는데 아쉽게도 한국영화나 케이 팝 같은 것은 없다.
여행을 하면서 지도를 들고서 지금가고 있는 곳이 지도의 어디쯤인지를 보면서 가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될 것이지만 요즈음은 핸드폰에서 실시간으로 이동하면서 작은 마을이라도 지명까지 보여주니 참으로 좋은 세상이다.
한 가족이 다르에스살람까지 가는데 아이들이 있어서 꼬마를 우리쪽 사람들이 데리고 와서 한참 같이 놀았다.
버스 정거장에서 잠시 쉬는 동안에 보이는 풍경...
방망이 같이 생긴 것은 본래 마사이족들이 들고 다니는 오링가라는 것이다 참고로 마사이들이 들고 다니는 지팡이는 은구디라고 부른다.
히잡을 쓴 사람은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기독교인이거나 토속인으로 이 나라는 종교갈들이 없다고 한다.
지대가 계속 낮아지면서 이런 모습이 한참 계속된다.
해안지대에 가까와 지면서 열대과일인 파인애플들이 많이 보인다....이들이 입고 있는 것은 차도르이다. 히잡 차도르 니캅 부르카로 뒤로 갈수록 가리는 정도가 심해진다.
침대를 길에서 판다.
좌측은 신문인데 오른쪽은 아마도 기름 같기도 하고....
하교하는 아이들...히잡을 쓴 여학생도 있고...무슬림(이슬람을 믿고 있는 사람들)여성들은 반드시 히잡을 쓴다.
왼쪽은 야자열매이고 오른쪽은 숯이다.
앞에 보이는 큰 카무는 망고나무로 몇 백년씩 됨직한 망고나무가 무지하게 많다.
드디어 마르에스살맘지역에 도착하고...그런데 길이 막혀서 숙소까지 가는데 두 시간이 더 걸렸다.
모시에서 다르에스살람으로 가는 길
아프리카 동부에 있는 국가로 정식국명은 '탄자니아 연합공화국'이다.
수도는 두 군데가 있는데, 다르에스살람(Dar es Salaam)이 실질적 수도이지만 법적인 수도는 도도마(Dodoma)이다.[3]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대륙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 보츠와나, 나미비아, 케냐, 가나 공화국, 잠비아등과 함께 정부의 기능이 비교적 정상적으로 작용하고,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이 겪고 있는 민족, 종교간의 분쟁도 없어, 정치적, 사회적으로 안정되어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물론 심각한 빈부격차와 사회간접자본 부족, 위생/보건 열악, 아동 영양실조등과 같은 여러가지 내부 문제등도 안고 있긴 하지만 소말리아, 남수단, 라이베리아, 콩고민주공화국,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에리트레아, 짐바브웨 등 내전과 폭력, 종교 분쟁, 민족 분쟁, 잦은 쿠데타와 독재자들의 독재 통치등 정치적 불안과 억압이 끊이지 않는 등 국가로서 제 구실조차 못하고 있는 아프리카 지역의 여러 파탄국가들에 비하면 아프리카 대륙 중에선 그나마 안정되고 평화로운 국가인 것은 확실하다.9세기 부터 15세기까지 이슬람, 인도 상인들의 노예무역의 주 거점지였다. 16세기에 잠시 포르투갈이 정복하였으나 이후 오만세력이 처들어와 포르투갈인들을 축출하고 잔지바르를 거점으로 삼고 해안 지대를 정복하였다. 이후 독일의 공격을 받고 독일령 동아프리카 식민지로 전락하였다. 독일이 물러간 뒤 영국의 지배를 받았으며 탕가니카[4] 공화국이 1961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뒤이어 잔지바르 술탄국으로 독립했지만 1964년 1월에 현지 흑인들이 아랍인 왕조를 뒤엎으면서 공화정이 수립되었고 곧이어 탕가니카 공화국과 합쳐지며 지금의 탄자니아 연합 공화국이 되었다. 탄자니아(Tanzania)라는 국명은 탕가니카(Tanganyika)와 잔지바르(Zanzibar)를 합쳐서 지은 것이며 현재의 탄자니아의 국기도 두 나라의 국기를 합쳐서 제정된 것이다.
합병 이전의 잔지바르의 국기는 술탄제를 폐지한 뒤에 1964년 잔지바르 인민 공화국 시기에 제정된 국기였으며, 지금도 잔지바르의 기로 계속 쓰이고 있다. 다만 지금 쓰이는 기는 탄자니아 연합공화국의 일원임을 나타내기 위해 왼쪽 위에 탄자니아의 국기를 작게 붙여 넣은 것이다.
원래 친북 성향이던 잔지바르의 영향 때문에 그를 승계한 탄자니아도 친북이었기 때문. 1992년은 소련 붕괴 이후 한국과 탄자니아가 수교한 해이다. 이 나라에 올두바이 협곡(The Olduvai Gorge)이라는 곳이 있는데 인류의 발상지로 여겨지는 곳이다. 이 협곡에서 여러 종류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화석을 비롯한 초기 인류의 화석이 출토되었다. 아울러 최초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화석이 발견된 곳은 남아프리카이다. 그 뿐만 아니라 지구의 온갖 흔적이 남아있다. 선캄브리아대부터 구석기 시기까지 각 시기 별로의 화석과 퇴적층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어 지구의 박물관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플라밍고의 주요 서식지이며 '죽음의 호수'라고도 불리는 나트론 호수도 탄자니아에 있다
주변국과 달리 내부문제가 상대적으로 덜하기 때문에 탄자니아의 경제성장률은 아프리카 국가 전체를 통틀어도 상당히 우수한 편이다. 연간 6% 정도를 꾸준히 유지하는 수준. 뛰어난 경치와 자연환경, 괜찮은 내정과 경제성장으로 해외관광객도 상당히 찾아오는 편으로, 이곳에서 노후를 보내러 오는 이들도 심심치 않게 있는 모양. 식량 사정도 의외로 나쁘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시골에서는 수도시설도 없고, 마을 하나에 우물 한개 정도이고, 그나마 우물이 말라버리면 옆마을까지 몇 킬러미터를 걸어서 물을 길으러 가야하는일도 흔하다. 그리고 농업시설은 열약하기 그지없어서, 우기때 에만 농사를 할수 있고 그나마 품종들도 개량되지 않아서 수확도 많지 않는 품종들이다.
경제가 성장하는 국가가 으레 그렇듯 빈부격차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하여튼 2012년 추정 1인당 GDP는 674$로 주변국보다 특별히 잘 살지는 않지만 1990년 1인당 GDP가 176$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top 5에 들었음을 생각하면 상당히 발전한 편이다. 당시 탄자니아와 비슷한 수준이었던, 그리고 탄자니아와 같이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말라위나 시에라리온은 아직도 세계 최빈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경과 인접한 일부 도시 지역은 IT기술의 영향을 어느정도 받은 편이나, 아직 그 수준은 열악하다. 그래도 외국인을 위한 호텔이나 부유층 가정집은 TV를 비롯하여 컴퓨터, 엘레베이터, 자동차 등의 현대적 시설을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TV, 모니터, 에어컨은 삼성전자나 LG전자, 자동차는 토요타, 엘레베이터는 OTIS 등의 상표가 점령하고 있는 것처럼 현대식 시설은 대부분 외제인 경우가 많은데, 이 말은 가전제품들 대부분이 자국의 공업으로 생산된 것 보다는 수입품이거나 해외 자본의 진출로 생산된 것들이 대부분이라는 뜻이다. 게다가 수공업으로는 만들 수 없는 철,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진 생활 필수품이나 잡동사니 같은 경우에는 중국산의 비중이 상당히 높다. 세계 어디에서든 발견할 수 있는 메이드 인 차이나 하지만 중국산에도 서열은 있는 법. 그야말로 조악하기 그지없는 형편없는 품질의 쓰레기급 물건들이 이 나라에서 유통된다. 한국에서 보던 중국제와는 차원이 다른 대륙의 뒤통수다.
이동통신도 어느 정도 보급된 상태인데, 아프리카의 국토 특성상 고지서를 집집마다 혹은 멀리 떨어진 마을마다 보낼 만한 시스템이 적합하지 않아서 후불제보다는 요금을 선불로 내는 형태로 핸드폰을 운용한다. 이는 이동통신을 운용하고 있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겪고 있는 공통된 현상이며, 이 덕분에 진흙이나 갈대로 지어진 집에서 나온 창과 방패를 든 마사이족 전사의 목에 걸려있는 핸드폰을 목격할 수도 있다.
선불로 내는 방식은 대리점에 가서 현금을 내고 충전하는 방식과 일반 소매점에서 보차(vocha)를 사서 충전하는 방식이 있다. 보차는 영어 voucher에서 파생된 외래어인데 즉석복권처럼 동전으로 가려진 부분을 긁으면 일련번호가 나온다. 각종 공과금을 낼 수도 있고 항공권까지 결제할 수 있어 모바일 결제 시스템이 보편화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음식은 아랍과 페르시아, 인도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인도나 아랍권에서 즐겨먹는 음식을 탄자니아식으로 변형시킨 요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주식으로는 우갈리[5] 라 불리는 옥수수떡이나 왈리라고 불리는 쌀밥, 은디지라 불리는 바나나를 먹으며 이중에서 우갈리를 특히 많이 먹는다. 가격도 싸고 즉석 레토르트 식품급으로 해먹기도 쉽다고 해서 많이들 해먹는다고 한다.[6] 물론 몇세대전만 해도 사정이 많이 달라서 쌀이나 바나나를 주식으로 먹는 경우도 많았지만 쌀과 바나나의 가격이 오른데다가 쌀로 밥을 해먹기에는 귀찮기 그지 없기 때문에 어쩌다 먹는 음식으로 변한것. 인도에서 먹는 빵인 짜파티[7]도 먹으며, 영국의 영향으로 꼬치구이(미시카키)나 닭튀김에 감자튀김도 곁들어 먹기도 한다.
보통 우리나라에서는 육질이 부드러운 고기를 으뜸으로 쳐주는 반면에 탄자니아에서는 고기가 질겨야 "이거 고기가 씹을 만하네."라는 인식이 강해, 멋모르고 식당에서 소고기로 된 음식을 시킬 경우 굉장히 질기디 질긴 음식이 나온다. 이는 비단 소고기뿐만 아니라 닭고기도 영계가 아닌 다 자란 닭[8]으로 조리하다 보니 고기 양은 많지만 잘못 조리된 경우 식사시간 내내 턱 아프게 씹어야한다.
탄자니아에서 자주 먹는 음식으로 '냐마초마'라고 있는데 이건 양, 염소, 소와 같은 동물의 고기를 썰어서 숯불에 굽는 것이다. 양고기와 염소고기는 다 자란 개체를 잡아 조리하기에 고기 특유의 누린내가 좀 난다. 비교적 싼 가격에 상당한 양을 준다. 저녁 무렵 길거리 여기저기서 팔아 쉽게 접할 수 있다. 또한 탄자니아 현지의 술인 꼬냐기[9]와 함께 먹으면 상당히 괜찮은 술안주가 된다.
무슬림이 35%나 되는 나라이기에 돼지고기는 접하기 힘들다. 대형마트에 가서 스팸과 같은 햄을 구입하려 해도 대부분 소고기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이런 햄들은 맛도 흉악하고 쉽게 부서진다. 도마에 놓고 썰어도 부서질 정도. 물론 기독교나 아프리카 토착 신앙을 믿는 비이슬람 신자 주민들을 상대로 마트나 노천시장에서 돼지고기를 팔기도 하고 여행객들 대상으로 하는 레스토랑에서는 종종 돼지고기 요리를 볼 수 있는데 어느정도 급이 되는 곳으로 가면 돼지냄새도 잘 잡고 육질도 부드러운 요리를 내온다. 하지만 가격이 양에 비해 비싼 편이니 탄자니아 여행을 가게 되면 닭고기나 커리 종류를 먹자.
맥주 강국인 독일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영향 때문인지 맥주도 먹을 만하다. 킬리만자로와 세렝게티, 사파리, 우후루, 은도부, 발리미 같은 자국산 맥주 브랜드들이 현지 맥주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킬리만자로 맥주가 가장 맛있다고.
커피의 생산국으로도 유명하다. 탄자니아산 커피는 일명 킬리만자로 커피로 불리며, 세계적인 문호인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즐겨 마셨던 커피로 알려져 있다. 쓴맛과 신맛이 잘 어우러져 있는 깊은 맛이 특징이다. 탄자니아 여행을 가게 되면 커피 원두도 좋지만 인스턴트 커피 또한 평이 몹시 좋고, 가격도 굉장히 착하므로 여행선물로 제격이다. 여행갔다가 귀국할 때 짐에 자리가 많다면 가급적 꽉꽉 채워 오자. 커피 좋아하는 사람에게라면 칭찬받기 딱 좋다. 다만 프림이나 설탕 없이 캔에 들어있는 인스턴트 커피의 입자가 굉장히 곱고 맛도 진해서 잘못 타면 엄청나게 쓴 맛이 되니 주의하자. 마실 때 우유를 살짝 타서 마시면 은은한 향과 묵직한 맛이 매우 일품.
해산물도 풍부하지만 대부분을 해외 수출로 돌리느라 국내에서 소비되는 해산물들의 질은 무척 나쁘다. 씨네21에서 탄자니아의 해산물 관련 다큐멘터리를 소개한 바 있는데, 좋은 건 죄다 수출하느라 현지 어부들은 그야말로 썩은 물고기같은 최저질 해산물이나 먹는 형편이라고 한다. 이 다큐멘터리가 해외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자 여러 국가가 탄자니아산 해산물 수입을 검토하겠다고 나섰다. 이에 탄자니아 정부가 어부들과 외국인들의 접촉을 막으려고 하여 어부들이 집단 파업 및 시위까지 벌인 적이 있었다.
관광업도 가치가 높은데, 노예 무역의 거점지이자 산호로 만들어진 구시가지가 있는 잔지바르 섬과 위에 써있는 올두바이 협곡, 그리고 광활한 사바나 지대에 위치하고 케냐와 국경을 맞댄 세렝게티 국립공원까지 잠재적으로 관광 국가로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앞으로 탄자니아에 계속된 인프라 확충이 있다면 관광업도 기대할 만 하다.
기독교 30%, 이슬람 35%, 토착신앙 35% 추산. 아프리카에서 기독교와 이슬람이 대등한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나라 중엔 내전에 안 휘말린 나라가 거의 없는데다 토착신앙까지 있으니 비율상으로만 보면 내전에 휘말려도 이상할 게 없었으나, 국부 줄리어스 니에레레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모두를 포용하는 정책을 펼쳐 지금은 모두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 그 덕에 이슬람 공휴일[10]과 기독교 공휴일[11]이 모두 공존하고 있다. 대신 크리스마스가 토요일, 일요일이어도 공휴일이 연장되지 않는다.
아프리카 남동부에서는 드물게 무슬림이 꽤 많은 나라이다. 이는 탄자니아가 백 년이 넘게 아라비아 동남부 오만의 이슬람 왕조가 존재한, 더불어 남동부에서 거의 유일한 이슬람 국가였던 잔지바르 술탄국(Usultani wa Zanzibar) 때문이다.
서구권과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청에서 온 선교사들의 영향으로 상당한 숫자의 기독교도[12]가 있다. 전통적 무슬림들, 토착 신앙 신자들의 공존과 부족 간 문제, 독자적인 역사와 주체의식을 가진 잔지바르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이웃 나라와 달리 내전 문제에 휘말리지 않은 것을 보면 신기할 정도.
단 잔지바르에서는 다수를 차지하는 무슬림과 소수종교들 간의 갈등이 심심하면 터져나온다. 실제로 2015년 대통령 선거때 가톨릭 신자인 대통령이 당선되자 잔지바르애서는 폭동까지는 아니지만 며칠동안 데모가 일어났었다. 탄자니아 역시 독립 초기 잔지바르의 분리독립 움직임이 있었으나 니에레레 정부의 끈질긴 설득과 '탄자니아인' 의식(Ujamaa-우자마) 전파를 통해 평화롭게 문제를 봉합했다.
첫댓글 잘보았습니다.
참 잘쓰셨네요.
수고하셔습니다.
여행 참 많이 다닙니다.
작년에 이천사백만명이 해외여행을 했다고 하네요.
오천만명 인구 에요.
그중 일본에 팔백만명이 갔다고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