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과 같이 고모부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모두가 자기 생각에 빠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없다.
어머니는 구치소에서 고생하실 아버지 생각
고모부는 변호사를 선임하는 문제와 재판에서 어떻게 해야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
작은아버지는 법 없이도 살 형님에게 생긴 불상사에 대한 불안과 앞으로 진행될 일에 대한 걱정
경숙은 변호사까지 선임하여야 한다면 앞으로 아버지의 일이 어떻게 될 것인가, 동생은 학교에서 공부 잘하고 있나 하는 걱정으로
집에 도착하여 고모부가 그런 말씀을 하신다.
“이 서방이 자기도 모르게 횡령 사건에 연루된 모양입니다. 횡령한 사람이 그 돈의 일부를 이 서방에게 주었답니다. 그 돈을 받을 때 이 서방이 무슨 돈이냐고 물었더니 연말 결산하고 이익이 많이 남아 추가 보너스로 나온 것이라며 주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횡령한 돈 중 일부라는군요.”
“얼마나 받았다고 하던가요?”
“총 횡령한 돈이 2억인데 이 서방이 받은 돈은 팔백만 원이랍니다.”
“작년 연말에 보너스라고 가져온 돈이 그것이었군요.”
어머니의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응답이다.
“하지만 이 서방은 횡령한 돈인 줄 모르고 받은 것이니 재판은 받겠지만 교도소는 안 갈 겁니다. 또 가지 않게 해야지요. 너무 걱정마세요.”
그렇게 말씀하시고 고모부는 변호사 선임하는 것을 알아본다며 광주로 가시고 작은아버지는 하루 더 머무시고 순천에 벌려 놓은 일 때문에 내려가야 해서 오래 못 있지만 의논할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연락만 하면 올라오겠다고 하시며 내려가셨다.
고모부의 도움으로 이름 있는 변호사가 선임되었고 두 달 후에 집행된 재판에서 아버지는 주 범죄자가 아니고 받은 돈 8백만 원도 횡령된 돈인 줄도 모르고 받았다는 정상이 참작되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으로 풀려나셨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일이 이렇게 다행스럽게 된 것은 고모부의 힘이 컸다.
유능한 변호사를 선임하고 법조계의 아는 사람들에게 부탁도 하셨다.
두 달 동안 어머니는 거의 매일 아버지를 면회하러 가시고 또 고모부와 같이 변호사 사무실에 다니시며 아버지의 변호와 관련된 일을 보시느라 분주한 생활을 하시어 경숙이 회사에 다니며 틈틈이 집안 살림을 돌보아야 했다.
특히 고3인 남동생이 아버지의 일로 충격을 받지 않도록 배려해야 했다.
남동생은 과묵한 편이어서 말은 하지 않지만, 아버지의 일로 마음고생을 심하게 앓고 있어 그것을 위로하고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다독이는 것도 경숙의 몫이었다.
물론 경숙도 아버지의 일로 걱정이 많았다.
일이 잘못되어 아버지가 징역을 살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아버지같이 선한 사람을 죄인이 되게 횡령에 끌어들인 사람이 원망스럽고 울분도 끓었지만 속으로 삭일 뿐이다.
아버지의 사건으로 정신을 다른 곳으로 돌릴 여유가 없어 김정수 청년과의 혼담은 자연스럽게 없었던 일이 되었다.
출소하신 아버지는 자연 농협 조합장을 못 하시게 되고 연세로 해서 새로운 직장에 일자리를 잡는다는 것도 어려워 집에서 쉬시게 되고 재판과 구치소에 계시는 동안 아버지 뒷바라지하느라 중류 정도의 가정이라고 생각했던 가정형편도 상당히 어려워져 가정의 경제를 경숙이 책임지게 되었다.
아버지는 내년부터 지금까지 남에게 주어 농사를 짓던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조그만 땅으로 농사를 지시겠다고 계획하고 계시지만 집안이 경제적으로 안정될 때까지는 경숙이 가정을 이끌어 가야했다.
당장 내년에 대학을 가야 하는 남동생의 입학금이 문제였다.
동생은 집안 형편을 생각하고 대학을 포기하고 직장을 얻겠다고 하는 것을 경숙이 책임지고 입학금과 등록금을 마련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동생을 달랬다.
상황이 이렇게 되어 그 후 3년 동안 결혼을 할 생각을 못했다.
간간이 집에서 적령기를 넘기지 말고 결혼하라고 부모님이 말을 하셨지만, 형편이 어려운 가정을 뒤로하고 결혼할 수는 없어 결혼을 미루어 왔다.
구치소를 나오신 다음 해부터 아버지는 계획대로 남을 주었던 땅으로 농사일을 시작하셨지만, 직장 생활만 하시어 농사일을 잘 모르시는 상태에서 시작하신 것이어서 그해에는 농사 결과가 좋지 못했다.
그런 아버지의 농사가 자리를 잡는 데는 3년이 걸렸고 그래서 그동안 경숙은 집안을 돌보아야 했다.
3년이 지나간 어느 가을날 동창회에 나갔던 경숙은 가벼운 충격을 받았다.
그 동창회는 고등학교 때 다정했던 친구 7명이 따로 만나는 모임으로 일 년에 두 번 봄과 가을로 나누어 만나는 모임이다.
그 모임의 친구들은 대부분 시집을 가, 빠른 사람은 애들이 둘인 친구도 있고 경숙과 다른 친구 한 사람 이렇게 둘만 아직 미스다.
그런데 이번 가을 모임에는 남편들을 데리고 부부 동반으로 만나기로 했다.
처음에 경숙은 짝이 없어 참가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친구들이 ‘이번 모임은 결혼이 늦은 너희 올드 미스들 시집보내기 위해 하는 것으로 우리가 남편들을 동원해서 너희들 중매를 서게 하기 위해 진작 그런 모임을 계획하다가 이번에 억지로 그런 모임을 만들었는데 네가 참석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냐’며 ‘꼭 참석해라 네가 참석 안 하면 어렵게 만든 모임을 무산시키겠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해 망설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참석했다.
그렇게 참석한 그 모임에 한 친구의 남편으로 나온 사람이 몹시 눈에 익었다.
처음에는 그 사람의 외모가 다른 사람에게 친숙해 보이는 형인가 보다고 여기다가 아무래도 그런 것만 같지 않아 이상하다고 생각하다 번개처럼 떠오른 기억으로 그 남자가 자기와 잠시나마 혼담이 오가던 김정수 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것을 알고 나니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음이 이상해진다.
아버지의 사건이 없었더라면 자기와 부부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사람.
누군가가 놓친 고기가 더 크다던가 키도 훤칠하고 사진보다 더 잘생긴 것 같고 자기 처에게 대하는 태도도 꽤 따듯하고 섬세하다.
그러나 김정수는 전연 경숙을 모르는 눈치다.
아버지의 사건이 터지자 고모부가 이쪽 사정을 이야기해서 일정이 취소되어 김정수 본인에게는 말도 전해지지 않은 모양이다.
실은 경숙이도 아버지의 일로 그때 거론되었던 중매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 어떻게 종결되었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
한 참 지난 후에야 그런 일이 있었지 하고 생각했을 정도이니까.
경숙은 자꾸 정수에게로 가는 자기의 시선을 의식하고 더 앉아있기가 민망하고 쑥스러워 붙잡는 친구들의 손을 뿌리치고 바쁜 일이 있는 것을 잊었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일어나 나왔다.
경숙은 거리로 나오며 자기가 그 사람과의 만남이 이루어졌으면 결혼을 했을지, 결혼했다면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을지, 어떻게 그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결혼하는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궁금해하며 사람은 각기 자기 나름대로 타고난 운명이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지 말자고 해도 기분이 가라앉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늦가을 찬바람이 자꾸 마음이 쓸쓸한 경숙의 소매 속으로 파고들어 일찍이 집으로 돌아가서
모임에 간다고 하더니 웬일로 이렇게 일찍 들어오느냐고 물으시는 어머니 말씀에 아무 대답도 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첫댓글 즐~~~~감!
무혈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햏복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