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뿌리, 호박고구마의 고마움
김철경
우리네 삶에서 고구마를 구황작물로 여겨왔다. 「구황/ 救荒」이라는 뜻은 흉년, 비상 상황에서 빈민을 구해 준다는 뜻이다. 가뭄, 흉년으로 기근이 심할 때, 가난한 사람들은 굶주림을 벗어나기 위해서,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감자, 고구마, 옥수수, 토란, 칡 등의 뿌리와 열매 등을 먹으며 살아왔다. 우리나라 역사 자료에도 『구황본초/ 救荒本草』, 『구황촬요/ 救荒撮要』, 『황정대개/ 荒政大槪』 등 많이 있다. 외국의 구황작물에는 카사바, 야콘 등이 있다. 남아메리카 페루, 에콰도르가 원산지인 감자가 남아메리카, 유럽 등지에서는 대표적인 구황작물이었다.
고구마는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 등 열대지역에서 기원전 6000~8000년경 재배가 시작된 것으로 추정이 된다. 고구마와 감자는 16세기에 스페인 탐험가에 의해 처음 유럽으로 도입되어, 18~19세기 굶주린 유럽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주식(主食)이 되었다. 고구마는 유럽기후에서 재배하기 어려워서, 고구마보다 감자가 더 널리 퍼졌다. 역사는 늘 환경의 선택을 따른다.
나는 어린 시절에 물고구마와 밤고구마 중에서, 밤고구마의 포슬함을 좋아했다. 당시에는 값이 싸서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요즈음은 세상이 달라졌다. 고구마도 비싸졌고, 종류도 다양해졌다. 요즈음은 「호박고구마」라고 불리는, 속이 노란 고구마를 즐겨 먹는다. 나이가 들다 보니, 밤고구마보다 물고구마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런데, 다음날 외출하게 되는 날에는, 고구마를 먹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몸이 정직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고구마를 먹고 나면, 장 속 미생물의 활발한 움직임으로 발효가 잘되지만, 사람의 소화효소로는 완전 분해가 되지 않는 난소화성 탄수화물, 라피노스(Raffinose), 프락토올리고당(FOS, Fructo Oligo Saccharide) 등이 소장(小腸)에서 흡수되지 못하고, 대장(大腸)까지 내려가서 혐기성 발효(anaerobic fermentation)를 하면서, 수소, 이산화탄소, 메탄, 황화수소가 발생하는데, 황화수소 냄새가 유독 독하다.
왜 나만 고구마를 먹고 나면, 가스 발생을 많이 하는가. 같은 고구마를 먹어도 누군가는 조용하고, 나처럼, 누군가는 폭발적이다. 생화학을 공부하고, 강의한 나로서도 다시금, 생체 내 생화학 반응을 살펴보곤 한다. 이것은 장내 미생물 구성 차이 때문이다. 메탄 생성균이 많으면, 가스 축적이 더 되고, 발효균이 활발하게 작용하면 가스 생성이 증가하게 된다.
주변에 암으로 고생하는 분들에게, 구황작물인 고구마를 권해 본다. 하지만, 가스 발생이 심해서 주저하기도 하지만, 고구마의 특별한 항암작용이 널리 알려져 있기에, 주변 환자들에게 권하곤 한다. 고구마의 항암작용 핵심 성분은 베타카로틴, 안토시아닌, 클로겐산이다. 베타카로틴은 비타민A로 전환되어서, 세포 분화를 촉진하여 비정상 세포인 암세포 성장을 억제시킨다. 클로로겐산은 AMPK(AMP-activated protein kinase) 활성화로 세포 에너지 스트레스를 유도하여 암세포 성장을 억제시키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 염증과 산화 스트레스를 줄여 암세포가 자랄 토양을 말려버리는 것이다. 요즈음 병원에 가면, 의사가 주기적으로 「염증지수」를 검사하는데, 이것은 이런 맥락에서 하는 것이다. 땅속의 뿌리는 암이 자랄 토양을 말린다. 고구마는 배를 채우는 음식이 아니라, 환경을 바꾸는 생화학적 장치이다. 고구마 뿌리에는 안토시아닌이 숨 쉰다.
자색 고구마의 안토시아닌은 활성산소를 줄이고, NF-κB signaling pathway를 억제하여 염증성 사이토카인을 낮춘다. NF-κB signaling pathway는 ‘염증과 생존’을 켜는 스위치다. 켜지면 세포는 싸울 준비를 하고, 오래 살아남으려 한다. 그러나 그 불이 꺼지지 않으면, 병이 된다. 염증은 암의 토양이다. 토양이 메마르면, 씨앗은 자라지 못한다.
결국 하나로 모인다. 염증을 낮추고, 산화를 줄이며, 과잉 성장을 억제하는 것. 병원에서 염증 수치를 반복해 검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보이지 않는 불을 꺼야, 병은 물러난다. 문학은 이 단순한 진실을 오래전에 말해 두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월든』에서 이렇게 적었다. “단순함, 단순함, 단순함.” 삶을 살리는 길은, 늘 복잡하지 않다. 성경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땅이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신토불이, 내 땅에서 재배한 채소 잎, 열매, 뿌리를 제철에 섭취하는 것이 건강 유지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생명을 살리는 것은 결국, 땅에서 난 것이다. 땅속에서 자란 시간은 정직하다. 급하지 않다. 과장하지 않는다. 한 조각의 고구마를 먹는 일은 나쁜 세포의 속도를 늦추는 일이다. 과열된 생명에 냉정을 돌려주는 일이다. 암은 빠르게 자란다. 그러나 생명은 원래, 천천히 깊어진다.
우리나라 사람은 노년 건강과 관련하여서는 암과 치매를 가장 걱정한다. 내 나이도 암과 치매를 걱정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오늘도 건강, 생명을 지켜주는 「호박고구마」를 먹으며, 스트레스 없는 즐거운 마음을 지녀본다.
『에세이스트』 123호 「등단」 (2025년 9월), 에세이스트 이사
『청향문학』 제1회 「신인상」 수필부문 수상 (2025년 11월), 청향문학 운영위원
『문학세계』 제8회 작가상 수필부문 「본상」 수상 (문학세계, 381호, 2026년 4월)
첫댓글
귀한 수필 「생명 뿌리, 호박고구마의 고마움」은
구황작물인 고구마의 역사적 가치와
생화학적 효능을 인문학적 성찰로 연결한 인상적인 秀作이다.
감상 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