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선택할 수 있을까요? 이건 내가 사는 것이 아니야, 그래서 세상을 하직하기로 결정합니다. 누가? 자기 자신이. 물론 이해는 합니다. 그러나 삶 자체를 본인이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죽음도 선택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원칙이라 생각합니다. 생명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사명처럼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살아야 할 의무만 있습니다. 불공평한가요? 무엇이? 왜 나에게 이런 삶을 살아야 할 의무가 있단 말인가? 그 이유는 모릅니다. 왜냐하면 삶 자체가 나의 이유 때문에 주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주신 분의 목적만 있다는 말이지요.
맞습니다. 삶은 참으로 불공평할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는 편안한 삶이 주어지고 누구에게는 힘든 삶이 주어집니다. 다시 말하지만 본인의 선택이 아닙니다. 소위 요즘 말로 ‘흙수저’ ‘금수저’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말입니다. 선택이 아니라 운명이지요. 그러나 그 운명을 저주하며 살 것인가 그 운명을 새롭게 만들면서 살 것인가 하는 것은 본인의 선택입니다. 인생 속에는 끊임없는 ‘왜?’가 있습니다. 그 질문에 주눅이 들어 미처 도전하기도 전에 주저앉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겨내며 산다고 누가 뭐라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생 승리’로 찬사를 보낼 것입니다. 불공평을 이겨내고 자기 인생을 새롭게 만들 수 있는 기회로 다듬으면 어떨까요?
잘 나가던 젊은 사업가 윌 트레이너, 어느 날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전신마비가 됩니다. 그 좋아하던 여행, 온갖 스포츠가 이제는 한갓 허상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머리만 살아 있습니다. 몸은 자기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치료의 길이 없다는 의학적 결론에 아무런 희망도 없습니다. 희망이 없는 삶, 그야말로 무의미하지요. 이건 내가 아니야, 이렇게 꾸려갈 수는 없는 일이지. 자고 일어나면 그 고통에서 하루가 시작됩니다. 왜 깨어나야 하는가? 내가 아닌 삶을 언제까지 지속해야 한단 말인가? 하루하루가 그야말로 고통의 연속입니다. 오로지 보는 것만으로 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 말입니다.
그래서 결론지은 것입니다. 부모님과도 상의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6개월의 시한부 삶을 약속했습니다. 더 이상 참고 견딜 수는 없다, 그러니 조용히 떠나갈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스위스로 가서 안락사를 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아마도 그 나라에서만 허락이 된 모양입니다. 1년 6개월을 버텨왔고 이제 딱 반년이 남은 것입니다. 그 동안도 여러 간병인이 있었지만 아마도 간병인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물론 힘을 쓰는 일은 남자 간병인이 합니다. 그러나 잔심부름을 해주는 여성 간병인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모집합니다. 그리고 마침 직장을 잃고 일터를 찾는 루이스가 급한 터에 그 자리로 도전합니다. 경험도 없고 촌티 나는 젊은 아가씨, 오로지 가족들의 생활비가 필요하기에 일단 부딪쳐 보는 것입니다.
이미 이러저러한 사람들을 경험하였습니다. 기댈 것도 없고 기대고 싶지도 않고, 그런 상태에서 또 새로 간병인이 등장했습니다. 관심도 없고 말도 붙이고 싶지 않습니다. 더구나 대단한 사람도 아닌 사람에게까지 동정의 눈길을 받는다는 것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런 태도로 대하니 루이스도 한 주간 일을 하는데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이렇게 해서라도 돈을 벌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하루가 한 달 만큼이나 길게 여겨졌습니다. 환경은 어렵습니다.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지요. 그 상황에서 동생이 위로와 격려를 해줍니다. 언니는 할 수 있어.
아무튼 이제 얼굴도 익숙해집니다. 여전한 수다가 줄기는 했지만 이 남자의 눈에 차츰 들어옵니다. 촌티 나는 복장에 어설픈 유머 게다가 우물 안 개구리 삶, 도무지 자신의 세계와는 다른 사람입니다. 그것이 오히려 이 남자의 동정을 사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차츰 가까워집니다. 몸이 부자유스럽다고 움직일 수 없는 것은 아니지요. 전동휠체어로 어디든지 갈 수 있습니다. 게다가 자기 말대로 머리는 제정신입니다. 그래서 할 것 다하며 지내기로 합니다. 사랑했던 애인의 결혼식장까지 가서 축하해줍니다.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는 배신감, 억울함 등등 마음이 복잡하고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루이스가 곁에 있고 나서 마음은 한결 여유가 생겼습니다. 루이스에게 말해줍니다. 내가 아침에 눈을 뜨는 이유는 당신 때문입니다.
정신은 맑고 순수하고 한없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자기 세계에 갇혀 있는 이 자그마한 아가씨가 가엾기도 하고 예쁘기만 합니다. 어떻게든 맘껏 하늘을 날아볼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루이스는 윌이 어떤 계약을 하였는지 알게 됩니다. 왜 6개월 단기계약을 했는지도 알게 됩니다. 아무리 부모님과도 상의가 된 것이라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입니다. 동생 말대로 살인이지요. 사실 어머니도 아들 윌의 마음이 그 사이에 바뀌기를 기대하며 기다린 것입니다. 그런데 윌의 결심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기한은 다가옵니다. 무엇을 더해 줄 수 있다는 말인가요? 마지막까지 사랑해주고 옆을 지켜주는 일입니다.
두 사람의 만남은 서로를 새롭게 만들어줍니다. 그것이 사랑의 힘이겠지요. 그리고 사랑은 가까이 있는 사람과 만들기 쉽습니다. 아름다운 변화, 사랑의 힘입니다. 영화 ‘미 비포 유'(Me Before You)를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