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바보가 있었다. 그는 어느 철학자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세상은 내 의식 속에만 존재한다. 내가 눈을 감으면, 세상도 사라진다."
바보에게 그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그는 그 말을 몸소 시험해보았다.
정말로 눈을 감으면 눈앞의 모든 것이 사라졌다. 잠이 들면 세상은 완전한 무(無)로 돌아갔다.
그에게 세상은 자신의 의식이라는 스크린 위에서 상영되는 영화와 같았다.
그 스크린을 끄면 영화도 함께 끝난다고, 그는 진심으로 믿었다.
혼자 있을 때도 곧잘 그 믿음을 확인해보곤 했다. 눈을 감았다 뜨고, 다시 감았다 뜨고...
세상은 매번 얌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마치 자신이 보는 순간에만 존재하기로 약속한 것처럼.
어쩌면 그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현자들이 물어온 질문과 다르지 않았다.
우리가 본다고 믿는 것은 정말로 거기 있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 자신이 만들어 낸 것인가.
다만 바보는 그 어려운 질문에, 아주 실용적인 방식으로 자기만의 답을 내려버렸을 뿐이었다.
그날부터 바보에게 세상이 있고 없고는, 자기 눈꺼풀 하나에 달린 아주 간단한 문제였다.
어느 날, 바보는 인적 드문 골목길에서 깡패 서넛과 마주쳤다.
"가진 거 다 내놔."
험악하게 생긴 한놈이 다가서며 다시 으름장을 놓았다.
"좋은 말로 할 때 다 내놔."
바보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오히려 천연덕스럽게 되받았다.
"너희들, 내가 눈 한 번 깜박하면 다 사라질 텐데. 그래도 덤빌래? 아예 이 자리에서 지워 줄까?"
깡패들은 서로 눈치를 주고받았다. 이런 협박은 처음이었다.
한 놈이 코웃음을 치며 주먹을 쥐었다. 그 순간, 두목이 손을 들어 그를 막았다.
그리곤 두목이 고개를 숙이며 공손히 말했다.
"알겠습니다. 저희들이 잘못했습니다. 가시죠."
바보가 유유히 골목을 빠져나간 뒤, 부하가 물었다.
"저런 힘도 없어 보이는 놈을 왜 그냥 보내줍니까?"
두목이 낮게 말했다.
"내가 이 바닥에서 어떻게 안 죽고 살아남았는 줄 아냐."
"..." "안목이다." 부하는 여전히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이었다.
두목은 그 얼굴을 보며 씩 웃을 뿐, 더 설명하지 않았다.
두목은 바보가 협박할 때 바보의 눈을 유심히 쳐다 보았다.
그가 읽은 건 바보의 말이 아니라, 그 말을 하는 바보의 눈빛이었다.
보통의 협박은 이해타산에서 나온다.
손해를 볼까, 다칠까 재는 눈치가 어딘가엔 남기 마련이다.
그런데 바보의 협박에는 그 계산이 없었다. 상식과 논리가 통하지 않는,
오직 자신만의 세계관에 대한 광적인 믿음뿐이었다.
두목은 오랜 세월 이 바닥에서 구르며 무엇이 가장 위험한지를 알고 있었다.
진짜 위험한 건 힘 센 놈이 아니라, 이쪽 셈법이 통하지 않는 예측 불가능한 놈이라는 것을.
미친 사람은 건드리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그것이 이 바닥에서 가장 현실적인 지혜였다.
어쩌면 두목은 아주 잠깐, 이런 생각마저 스쳤을지도 모른다.
'저놈의 우주에서는 정말로, 눈 한 번 감으면 우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바보는 그렇게 터무니없는 믿음 하나로 역설적인 힘을 얻은 셈이었다.
그 논리는 우스웠지만, 그 믿음이 풍기는 순수함과 절대성은 눈앞의 주먹마저 무력화시켰다.
두목의 안목이란, 상대가 얼마나 세냐를 재는 눈이 아니었다.
상대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를 알아채는 눈이었다.
어쩌면 세상은 자신만의 확고한 믿음을 가진 자와, 그 믿음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자에게만
가끔 그 속내를 슬쩍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의 팝송> Moonlight Shadow / Dana Winner
Moonlight Shadow는 마이크 올드필드(Mike Oldfield)가 1983년도에 발표했다.1953년생으로 영국 출신의
싱어송라이터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과 그리움을 달빛 속 그림자에 담아낸 곡이다.
존 레넌의 죽음을 노래했다는 소문도 있으나 확인되지 않았다. 원곡은 Maggie Reilly가 불렀다. 여러가수가
리메이크했다. Dana Winner 버전이다.https://youtu.be/z4LEo1isbpE
첫댓글 "두목의 안목이란, 상대가 얼마나 세냐를 재는 눈이 아니었다.
상대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를 알아채는 눈이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정말 안목이 있는 두목이었습니다.
눈빛이 틀린 바보를 협박해야 나올 것이 하나도 없지요.
손만 더럽히는 것이니 걍 보내주는 것이 옳지요.
맞는 말씀입니다.
감사합니다. 시니방장님.
와~~
그렇지! 그렇지!
몇 번이나 탄성을 지르며
읽었습니다.
어른이 읽는 동화 시리즈,
너무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음자리님.
좋은 하루되세요...
아주 오랫만에 카페에 들어와 좋은글 찾아 읽습니다
깊은 뜻과 생각을 해봐야되는 단어가~~
-내 의식 속에만 존재하는 세상을 시작하여
-눈을 감으면 모든게 사라지는 현실
-협박은 이해타산을 따지지만
-계산없는 협박엔 자신만의 세계관에 대한 광적인 믿음
-가장 현실적인 지혜는 예측 불가능 한 사람은 건드리지않는게 상책
-터무니 없는 믿음이 역설적인 힘을 얻게되고
-상대가 어떤 세상을 살고있는지를 알아채는 안목
-믿음이 풍기는 순수함과 절대성이
*결국 세상의 본 모습을 보여주고 보게된다는~
깊은 의미를 추정해 내게 만듭니다ㅎ
동화라고 하기에는 너무 깊은 뜻이 담겨있네요 땡큐!
이전의 동화도 차츰 읽어봐야 겠어요
근 두달동안 한국에서 록키 방문한 친지들과 돌아댕기느라
카페 들어올 시간이 없었거등요
이제 조용한 혼자의 시간을 즐기느라
천천히 세상 소식을 둘러봐야겠어요ㅎ
친지들 안내해 주느라 바쁘셨네요...
잊지않고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캔디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