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됨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계급 제도, 사회적인 차별, 피부색,
인종, 지위, 재물, 가문 및 영달을 근거로 하여 사람들이 차별하는 것을 어떻게 보실 것인가?
연합의 비결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들의 평등 사상에 있다.
모든 분열, 불화 및 차별의 근본 원인은 그리스도에게서 이탈되는 데 있다.
그리스도는 모든 신자들의 매력이 이끌려야 할 핵심이시며 우리가 그 핵심에 가까이 접근하면 할수록
우리는 감정, 동정심, 사랑 및 예수님의 품성과 형상으로 자라는 일에 서로 공감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차별 대우하는 일이 없으시다.
예수님께서는 세속적인 허식의 무가치함을 아셨고 그러한 허식적인 과장에 대하여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으셨다. 영혼의 존엄성, 품성의 고상하심 및 원칙의 고결함을 갖추신 주님께서는
세상의 헛된 풍조를 훨씬 초월하고 계셨다.
비록 선지자는 주님을 가리켜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곤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사 53:3)고 묘사하였으나 주님께서는 세상의 고귀한 인물들 중에서도
가장 고귀하신 분으로 존경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만일 주님께서 저들의 호의를 받으시기 위하여 자신을 낮추셨다면 인간 사회의 가장 우아한 계급의 인사들이
주님을 모셨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인간의 칭찬을 원치 않으셨으며 모든 인간적인 영향에
관계없이 행동하셨다. 천국의 명예와 영광을 버리시고 세속적인 화려함을 소유한 일이 없으시며
사치에 방종하지 않으셨고 아무런 화려한 장식을 달지 않으셨으며 다만 겸비의 생애만을
유지하신 주님께 있어서 재물, 지위, 온갖 세속적인 계급및 인간적인 위대성의 구별 등은
모두 다 너무나도 사소하고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가난에 쪼들리고 생활 염려에 억눌리며 수고에 지친 비천한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저들의 시련을
이해하지 못하시며 저들이 받는 환경의 압력을 알지 못하시며 저들의 궁핍과 슬픔을 동정하실 수 없는 분처럼
생각해야 할 만한 아무런 이유와 모본을 주님의 생애에서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주님의 겸비하신 일상적 생애의 낮은 수준은 주님 자신의 비천한 출신과 환경에 조화되는 것이었다.
무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생명과 영광의 주님께서 가장 비천한 생애를 맛보시기 위하여
굴욕적인 생애를 사셨으므로 아무도 자기 자신이 주님의 돌보심에서 제외되었다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당신 자신에게 모든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게 하셨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을 편애하여 사귀며
다른 모든 사람들을 도외시하기 위하여 소수의 사람을 선택하여 접근하지 않으셨다.
보수주의적 사상이 자기 동료들과의 접촉을 차단해 버릴 때 특히 이러한 일이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스스로 공언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발견될때 이것은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시게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신성과 연합하게 될 때에 어떠한 완전한 인성을 이룰 수 있는지 그 모본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자비와 동정심과 사랑을 나타내 보이심으로
위대성의 새로운 국면을 세상 사람들에게 증거해 보이셨다. 또한 그분께서는 인간에게 하나님께 대한
새로운 해석을 주셨다. 주님께서는 인류의 머리로서 자비와 공의를 화목시킨 의를 드러낸
거룩한 정부의 원리 가운데 있는 교훈들을 인간에게 가르치셨다.
자비와 공의를 화목시키는 일에 있어서 죄와의 어떤 타협도 없었으며 공의의 어떤 주장도 무시되지 않았다.
자비와 공의는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으로서 각기 제정된 위치가 있는데 자비는 그 자체의 온화하고
관대한 기질을 소멸함이 없이, 또는 그 자체의 동정적인 특성을 상실함이 없이 회개하지 않는
완고한 죄인을 벌하는 데 그 기능을 행사할 수 있으며
공의는 그 자체의 성실성을 범하지 않고 회개한 죄인을 용서하는 일에 그 기능을 행사할 수 있다.
(1기별2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