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전력이 약해질수록, "2군 선수를 올려보자"는 팬들의 열망이 강해지게 마련입니다. 팀이 연승가도를 달리면 <누구 2군으로 내리고 대신 누구를 올리자>는 글이 그만큼 적을 수 밖에 없겠죠.
저는 올해 초, 타이거즈 김상현 선수를 인터뷰 했습니다. 그때 김상현이 이런 말을 했죠. 1군과 2군은 정말 종이 한 장 차이라고요. 사실, 이건 다른 선수들도 많이 했던 얘깁니다. 예전에 장종훈 코치도 그랬죠. "나는 세광고 시절부터 줄곧 4번타자였다. 그저 성실하게 노력해서 성공한 연습생 신화로 포장되는 게 부담스럽다"라고요.
저는, 1군과 2군의 차이가 수비나 변화구 대처능력 또는 제구력보다, 그저 <운>에 의해 결정나는 경우도 많다고 봅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운이라는 건, 로또를 맞는 그런 <행운>말고, 소속팀의 포지션별 선수구성 관련 운을 말합니다.
아래 한 회원님께서 김강석 선수 얘기를 해주셨죠. "내야수로 뛰었고 야구도 잘 하는데, 구단에 고만고만한 2루수가 많아서 그 재능을 살려보려고 외야 전업을 시도했으나 잘 풀리지 않아 다시 내야로 돌아온" 얘기 말입니다. 바로 이게 1군과 2군을 가르는 차이라고 봅니다. 베어스의 내야수 이대수-김재호는 야구를 못해서 2군이 아니라 손시헌-오재원-고영민과 같이 뛰니까 2군인 겁니다. 수비가 좀 뛰어나고 맞추는 능력이 있으면 3루로 돌려볼 수도 있지만 베어스 핫코너는 김동주죠. 1루엔 최준석과 이성열이 있고요. 이게 바로 그 선수의 <운>입니다. 직장인은 회사를 고를 수 있지만 선수는 고를 수 없으니 아마 보통 사람보다 더 억울할 수는 있겠습니다.
여러분, <좌재현 우동주>라는 말 혹시 기억 하십니까? 1992년에 유행하던 얘긴데, 신일고 좌타자 김재현과 배명고 우타자 김동주를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두 선수는 각각 LG-OB에 입단해 지금까지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죠.
그러면 혹시 <좌승엽 우승관>이라는 말도 아시나요? 이건 1994년에 유행하던 말입니다. 경북고 4번타자 이승엽과, 대구상고 타격의 달인 김승관을 일컫는 말이었죠. 이 두 선수의 운명이 어땠습니까? <나란히 삼성에 입단해> 이승엽은 국민타자가 됐고 김승관은 지금 어디서 뭘 하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두 선수 모두 거포 1루수였습니다. 하지만 기회는 이승엽이 먼저 받았습니다. 김승관은 데뷔 2년째에 1군에 잠깐 올라와 타율 .280에 2루타 11개를 기록했지만 결국 기회를 오래 받지 못했습니다. 이승엽 때문(?)입니다. 지명타자로 나설 수도 있었겠지만 사자네엔 양준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자리는 없었습니다.
김승관은 2군에 내려가 그 해 타격왕과 타점왕을 휩쓸었고, 여러 차례 홈런왕에 올랐습니다. 남부리그에서 2년 연속 홈런왕을 따내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는 1군에 설 수 없었습니다. 얄궃은 운명이죠. 이건 그 선수 잘못도 아니고, 감독 잘못도 아닙니다.
기회를 준다. 이게 참 힘든(?) 말인 것 같습니다. 또 팬들의 입장과 덕아웃의 입장이 다른 부분도 많고 말이죠. 팬들이 보기에는 <왜 1군에 올려서 기회를 주지 않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덕아웃에서 생각하는 기회는 아마 좀 다를 겁니다. 감독과 코치는 마무리훈련-스프링캠프-청백전-연습게임-시범경기를 통해 계속 선수들을 관찰합니다. 청백전과 연습게임이 선수들에게 곧 기회인 셈이죠. 감독은 거기서의 경기력을 바탕으로 전력을 구상합니다. 시즌 개막 즈음에는 이미 그 계산이 끝난 후고요. 그 계산에서 어떤 공백이 생겨야 다른 대안을 마련하는 겁니다. 한대화 감독이 누구만 예뻐해서 그런 게 아니라 다른 감독도 다들 그렇죠. 김태균도 장종훈이 다쳐서 1군에 올라왔고, 장종훈도 선배 유격수가 다쳐서 출전 기회를 잡았듯이 말입니다.
저는 <공정한 기회>라는 게 1군 출장수를 선수에게 똑같이 나눠주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비시즌 기간 동안 선수들이 치르는 숱한 훈련과 연습게임이 바로 기회죠. 솔직히 감독은 올 시즌, 지금 이 경기를 이기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팀을 운용할 여유, 솔직히 없습니다. 왜냐하면 3년 후나 4년 후에 여전히 한화이글스 감독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개중에는 젊은 선수를 잘 기용하는 감독도 있지만, 그건 감독이 후배 선수를 아끼는 마음에 기회를 많이 준 게 아니라 그 감독 성향이 젊고 어린 선수를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그 젊은 선수가 야구를 다른 동료보다 더 잘해서입니다. 그게 이 바닥 현실입니다.
결국 선수들이 이를 악무는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가 알아서 살아 남아야 되는 겁니다. 너무 냉정한 말처럼 들리지만, 그게 이 사회의 룰이고 법칙입니다. 이건 선수 뿐만 아니라 다른 직업을 가진 사회인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얘기입니다. 정말 잘 할 자신이 있는데도 그 일을 할 기회가 없는 사람은 프로야구단의 2군 선수 뿐만이 아닙니다. 서울대 경영학과 나와서 MBA과정 수료했어도 원하는 회사에 신규채용이 없으면 일할 기회가 없는 겁니다. 막말로 저도 앞으로 10년 쯤은 이 일 더 할 수 있지만, 회사에서 다른 인재를 원하면 나가야 되는 겁니다. 억울하지만, 이 세상이 생겨먹은 거 자체가 그렇습니다. 합리적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현실이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2군 성적이 좋아도 1군에 잘 못 올라가고, 학교 다닐 때 학점이랑 TOEIC이 아무리 좋아도 대기업에서 나를 뽑아주지 않는 그런 현실 말입니다.
제가 남보다 유난히 더 좋아했던 선수는 장종훈-정민철-김태균 뿐입니다. 다른 선수는, 현재 1군 주전이든 2군에서 기량을 연마하든, 저한테는 똑같습니다. 현재 주전인 선수를 굳이 옹호할 이유도, 주전을 꿈꾸는 선수에게 '너는 아직 안돼'라고 얘기할 이유도 전혀 없다는 얘기입니다.
1군이든 2군이든, 다들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뛰어주길 바랄 뿐입니다. 누가 유별나게 편애해서 자기만 경기에 내보내주지는 않겠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그 자리에 설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는 건 사실이니까 말입니다. 아울러, 팬들도 <기회>에 대한 우리 입장과 덕아웃의 입장은 좀 다를 수 있다는 걸 한번 쯤 생각 해보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항상 좋은 글...1번 선발님 때문에 야구를 보는 시야가 넓어지는 것 같네요..다른 이야기지만 한화가 어여 2군 시스템에 좀더 신경쓰고 돈도 더 많이 풀었으면 하는 바램인데...언제쯤 이루어질려나요?...에혀...오늘도 한화 파이팅입니다~!
백번 생각해도 맞는 말씀이군요...역시 1번선발님...
우리나라는 그래서 트레이드 활성화를 시켜야 하는데 김승관 참으로 운도없고 구단선택을 잘못한케이스죠 작년 김상현
도 기아로 가서 포스발휘할수 있었고 우리도 미국처럼 몆년동안 1군에 있지못하면 다른구단으로 갈수 있는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하는데 아쉬울뿐이죠 장성호도 기아에서는 쓰지않으면서 틀드도 안해주고 얼른 이런모순이 바뀌어야 재능있는
선수도 살고 인적자원이 모자라는 우리야구도 발전하지않을것으 생각됩니다
아 정말 좋은글이네요.. 흠;
지기님의 필력은 과히 알아줄만 하네요...음 실력도 중요 하지만(기본이겠죠) 무엇보다 1군에 간만에 승선해서 기회 받았을때 확실하게 눈도장 받는자가 선택된자 이고 기회를 내것으로 만드는 일이 곧 운 이자 실력이죠 아무리 감독 코치가 안보는 곳에서 훨훨날면 뭐합니까 선택 받을때 강한 임펙트 심어주는거 그것만이 살길이죠...야구도 사회 생활과 똑같다고 생각 합니다 운도 따라야 하고...
음 정말 좋은글이네요. 운칠기삼이라고했던가요 운이 7 실력이 3이라고 항상 그랬던거 같은데 실력만큼 운도 중요하다는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