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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름다워(127) - 황금빛으로 물드는 가을을 따라
가을이 깊어가는 좋은 때, 동문들과 단풍이 물드는 소백산자락을 돌아보고 친지들과 갈대밭 우거진 순천만을 다녀왔다. 하늘은 푸르고 산야는 황금물결의 아름다움이 가득한데 리비아의 철권 독재자 카다피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독재자들이 걷는 비참한 말로에 예외가 없는 것을 아직도 미망에 사로잡힌 아류들이 깨칠 날은 언제일까? 한편 산악인 박영석과 일행들이 히말라야의 험준한 산중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하였다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아무쪼록 무사히 구조되기를 빈다.
동문카페에 올린 가을나들이 글을 살펴보자.
뜻 깊게 보낸 신성회의 가을나들이
제1일 산과 호수가 아름다운 녹색 쉼표, 단양
가을이 짙어가는 좋은 때, 신성회원들이 즐거운 가족나들이를 가졌다. 10월 19일(수) 오전 8시, 강남고속터미널에서 16명의 회원들이 동양고속 우등버스에 올라 경부고속도로 죽전방향으로 출발하였다.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미리 준비한 떡과 과일들을 나누어준다. 이를 챙기느라 노고가 많은 윤두원 부회장과 강인자 여사에게 감사하는 마음이다.
20여 분후 죽전간이정류장에 도착하여 미리 나와 기다리고 있는 분당, 용인지역에 거주하는 회원(5명)들을 태우고 첫 목적지인 충청북도 단양 쪽으로 향하였다. 곧이어 다다른 신갈인터체인지에서 영동고속도로로 접어들어 용인휴게소에 잠깐 쉬었다가 풍광이 수려한 단양에 도착하니 오전 11시가 가깝다. '대한민국 녹색쉼표, 단양'이라는 구호처럼 중부내륙지방에 자리 잡은 단양은 산과 호수가 잘 어울리는 천혜의 명승지로 경관이 빼어날 뿐 아니라 국내굴지의 시멘트 공장이 여러 개 들어선 광산업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처음 찾은 곳은 널리 알려진 고수동굴, 일행들 가운데 이전에 몇 차례 들른 분들이 있는데 나는 처음 찾는 곳이라서 더 흥미 있게 동굴내부를 살펴보았다. 동굴을 찾을 때마다 수억 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고요와 흑암의 적막함 앞에 덧없이 짧은 세월을 스쳐가는 나그네 인생의 무상을 되새긴다.
비좁은 통로를 오르락내리락하며 30여 분간 동굴의 오묘한 모습들을 살피고 밖으로 나오니 오전 11시 반, 동굴 앞 주차장에 늘어선 상가의 금강산식당에서 이른 점심을 들었다. 점심메뉴는 메기매운탕, 밑반찬들이 깔끔하고 시원한 막걸리를 곁들인 매운탕 맛이 개운하다. 건배사에서 박성득 회장은 있는 것 아까지 말고 죽기 전에 다 쓰자는 '다죽회'가 있다며 남은 때에 잘 쓰고 즐겁게 보내자고 덕담을 건넸다.
점심 후에 첫 번째로 들른 곳은 단양 8경의 상징으로 손꼽히는 도담 3봉과 그 이웃에 있는 석문이다. 도담 3봉은 단양읍에서 가까운 남한강 상류의 풍광이 아름다운 강 속에 세 개의 바위가 다정한 친구처럼 나란히 서 있다. 강원도 정선에서 굴러왔다는 이 바위들은 가운데 큰 것이 남편봉, 그 앞쪽은 아내봉, 뒤쪽은 첩봉이라고 부른다나.
광장처럼 넓은 주차장 가장자리에는 야외음악당이 운치 있게 꾸며져 있고 그 옆으로 산등성에 있는 정자까지 200여계단의 가파른 언덕길을 많은 이들이 오르내린다. 일행 중 일부는 강변에서 호수를 바라보며 망중한을 즐기는 사이에 발걸음이 가벼운 회원들과 함께 산등성의 정자를 지나 동양에서 가장 크다는 구름다리형태의 바위구멍으로 강 건너 들판을 바라볼 수 있는 석문까지 다녀왔다. 백여 년 전에 한국을 찾은 영국인 비솝이 이곳을 찾아보고 경관이 아름다운 명소라고 해외에 소개한 곳이기도 하다.
오후 1시 넘어 도담 3봉에서 출발하여 소백산자락의 강변을 돌아 충주호를 배편으로 돌아보는 선착장에 도착하니 오후 2시가 가깝다. 일행 모두 왕복 12,000원의 꽤 비싼 승선료를 내고 유람선에 올라 한 시간가량 단풍이 물들어가는 산자락을 휘돌아 단양 8경의 하나인 구담봉과 옥순봉 등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선상유람을 즐겼다. 호수가 낮은 언덕에는 퇴계 이황을 연모했다는 관기 두향의 무덤이 수 백 년 세월을 견디며 아름다운 옛 사랑이야기를 속삭여준다. 어미가 약간 꼬부라지는 특이한 억양으로 주변경관을 설명하는 선장의 말투를 흉내 내며 다음날까지 일행들이 즐거워한다.
한 시간여 시원한 강바람을 쐬며 선상유람을 마치고 버스에 올라 경상북도 영주군 풍기읍에 있는 숙소, 우정교육센터로 향하였다. 단양과 영주는 소백산을 사이에 두고 인접한 지역, 영주시는 소백산자락의 풍기지역에 관광위락단지를 개발하고 있다. 3년 전에 가족들과 함께 2박 3일간 단양, 영주, 안동지방을 둘러보았는데 그 사이에 위락시설이 들어서는 등 지역마다 특성을 살려 관광인프라를 확충하는 노력들이 확연하게 눈에 띈다.
오후 4시경에 숙소에 도착한 일행들은 부근의 대형온천장에서 한 시간 넘게 몸을 풀고 6시경에 인근에 있는 식당으로 이동하였다. '풍기인삼순대'라는 옥호의 음식점에서 청국장과 순대를 곁들여 저녁식사를 하고 저녁 7시 넘어 숙소인 우정교육센터에 여장을 풀었다. 온천개발지역에 자리 잡은 우정교육센터는 2009년에 개관한 6층으로 된 꽤 큰 최신시설인데 각종 세미나와 교육프로그램은 물론 직원들의 휴식처로 사용되고 있다. 대부분 우정사업본부의 전신인 체신부의 근무경력이 있는 일행들은 고향을 찾아 온 듯 반가운 마음이다. 여러 회원들이 편하게 묵을 숙소를 마련하느라 애쓴 박성득 회장께 감사의 박수를 보냈다.
제2일 선비의 정신이 깃든 영주
둘째날인 10월 20일 새벽 5시, 소백산자락의 둘레길을 산책하려는 일행들이 대기 중인 버스에 올랐다. 10여분 거리에 있는 희방사집단시설지구의 국립소백산공원관리사무소에서 내려 희방계곡을 따라 희방사로 올라가는 자연생태산책로에 들어서니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아 그대로 나아가기가 쉽지 않다. 되돌아 나와 포장도로를 걸어 희방사입구에 이르니 사찰로 통하는 비포장도로의 오르막길이 보인다.
일행들 가운데 일부는 뒤에 남고 걷기에 소질이 있는 여섯 명이 가파른 오르막길을 따라 희방사까지의 산행에 동참하였다. 산자락에 걸려 밝게 빛나는 별빛을 따라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새벽공기를 가르는 산행이 경쾌하다.(소백산이 별을 관측하는데 적절한 곳인 듯, 연화봉에는 천문대가 세워졌다.) 남성들은 모두 경로대상이나 여성들은 아직 경로대상연령에 이르지 않은 분들이 여럿인데 그 구분이 이렇게 산길을 걷는데서 갈리는구나. 경로들이여, 분발하라.
두 시간여 소백산자락 걷기를 마치고 숙소에 돌아오니 로비에 '소백산행'이라는 시가 적힌 큰 사진이 걸려있다. 작자의 이름이 김정숙이어서 옆에 있는 동명이인의 김정숙 님에게 언제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썼느냐고 농담을 건네며 문장을 훑어보니 우리가 걸었던 느낌을 잘 표현하였다.
'소백산행
앵초꽃 산나리가 먼 눈에 밟혀오면
잊었던 추억 하나 망울을 터트려서
신새벽 바람을 지고 소백산에 오른다.
산안개 감싸않은 허리춤 더듬으면
밟히는 낙엽들도 고운 가락 퉁겨내고
솔향기 아득해지는 무아지경에 헤멘다.
오른만큼 낮아지는 비로봉 하늘이고
발치에 구름일랑 노송에 맡겨두고
천년의 주목 속에서 생각 하나 깨운다.'
아침 8시에 전날 저녁을 든 풍기인삼순대식당에서 우거지해장국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오전 10시에 숙소를 나서 풍기읍내에 있는 인견매장에 들렀다. 여성회원들이 먼저 남자들의 팬티를 몇 장씩 사더니 더러는 겉에 걸치는 여성의류들을 사기도 한다. 송봉자 님은 어머니의 간병 때문에 애쓰는 친구에게 전해주라며 아내에게 가볍고 멋진 점퍼를 선물하기도. 아름다워라, 드림팀의 돈독한 우정이여.
10시 반 경 인견매장에서 나와 영주시 순흥면에 있는 소수서원으로 향하였다. 소수서원은 1542년에 풍기군수 주세붕이 고려시대의 성리학자 안향을 제향하기위해 세웠는데 그 이듬해 조선최초의 강학서원으로 알려진 백운동서원이 문을 열었다. 단양군수를 역임한 퇴계는 풍기군수를 지내기도 하였는데 그의 주선으로 명종임금으로부터 1550년에 조선최초의 사액서원으로 발돋움하였다. 서원을 둘러보며 이곳에 배향된 안향이 순흥 안씨이고 그 후예가운데 안중근의사도 들어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순흥이 한 때 도호부가 있던 큰 고을이라는 것도 처음 듣는 이야기다. 서원을 세운 풍기군수 주세붕이 개성보다 앞서 풍기에서 인삼재배를 시작하였다니 학문과 목민에 두루 업적을 남긴 셈이다.
서원 이웃에 선비촌이 들어서 있는 등 영주시가 이곳을 선비의 고장으로 내세워도 손색이 없는 것을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인식하였다. 유학의 터전인 성균관대학을 나온 우리들도 선비의 후예들임을 되새기며 서원 입구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기념촬영을 하였다. 서원을 찾는 이들 가운데는 세 살짜리 어린이들과 고등학교 여학생도 섞여 있고 대구에서 온 중학교의 자모들도 눈에 띈다. 서원의 이름인 소수는 무너져가는 교학을 바로 세운다는 뜻이라니 자라나는 새싹들과 그 어머니들도 참된 교학의 이념과 올바른 선비정신을 일께는 기회로 삼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서원주변에는 오래된 소나무들이 곧은 기개를 상징하는 듯 늠름하게 들어서 있고 서원으로 들어가는 초입에는 500년 수령의 은행나무 두 그루가 긴 세월의 풍상을 이겨낸 늠름한 자태로 이곳을 찾는 이들을 품는다. 우리들도 선비의 올곧은 정신과 거목의 넉넉한 마음으로 혼탁한 세상과 어려운 이웃을 껴안으면 좋으리라.
소수서원과 이웃의 선비촌을 한 시간 여 돌아본 후 북쪽방향에 있는 부석사로 향하였다. 가는 길의 주변에 주렁주렁 매달린 사과밭이 널려 있고 인삼재배단지도 꽤 많이 눈에 띈다. 천년고찰 부석사에 이르니 낮 12시, 사찰경내로 들어서니 올라가는 길목에 노랑 잎으로 물든 은행나무들이 멀리서 찾아온 일행들을 황금빛 물결로 반긴다. 조금 더 오르니 단풍들이 은은하게 제 빛을 발하고.
각종 문화재가 많기로 전국 5대 사찰에 든다는 부석사에는 한국에서 가장 오랜 목조건축물로 알려진 무량수전을 비롯하여 국보도 여러 개가 있다. 3년 전에 이곳을 찾았을 때 적은 기록을 살펴본다.
'부석사는 통일신라시대의 고승 의상대사가 터를 잡은 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고려시대인 1016년에 중창하였다고 하나 1358년에 불이 나서 1376년에 다사 지었다는 기록이 1916년의 해체공사 때 발견 되었다고 한다)된 목조건물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신라 형식의 돌 기단 위에 호석을 다듬어 놓고 그 위에 배흘림기둥을 세운 정면 5칸, 측면 3칸의 국보 18호인 무량수전을 비롯하여 국보 17호인 무량수전 앞 석등(통일신라시대 석등으로 가장 아름답고 우아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국보 19호로 의상대사가 기거했다는 조사당 등 문화적 가치가 높은 보물들이 많이 있다.
부석사의 이름은 일찍이 의상대사가 중국에 건너가 수도할 때 그를 연모한 선묘낭자가 귀국하는 의상대사를 붙잡으려 바다가로 달려왔으나 이미 배가 떠난 후라 그대로 물속에 뛰어들어서 고혼이 신령이 되어 그의 귀국길을 안전하게 인도하고 의상대사가 부석사를 창건할 때 방해하는 잡신들에게 큰 돌을 띄어 이를 물리친 데서 연유하였다니 아름답도다, 사랑의 힘이여!'
전날 충주호에서 연모했던 퇴계가 죽은 후에 스스로 세상을 떴다는 관기 두향의 묘를 살펴본데 이어 부석사에서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며 목숨을 던지고 고혼이 되어서도 사랑하는 연인의 무사귀환과 그가 심혈을 기울여 짓는 사찰의 창건을 위해 헌신하는 여인의 고귀한 사랑을 되새기노라니 눈앞의 명리에 목숨 거는 사나이들의 비좁은 소견이 부끄러워진다.
부석사 경내의 중간 정문에 태백산부석사라고 쓴 현판이 있는데 대웅전이 있는 곳의 표지판에는 봉황산부석사라고 씌어 있다. 대웅전 앞으로 멀리 펼쳐진 웅장한 산자락들은 소백산 줄기들이고. 내려오는 길에 스님에게 물으니 대웅전 뒤의 주산이 봉황산이어서 봉황산부석사라고 하는데 태백산 줄기가 이곳까지 뻗쳐 있어서 태백산부석사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부석사에 온 것이 세 번 째, 계절 따라 시간 따라 느낌이 다르고 보는 관점 따라 아는 것도 다르구나.
사찰탐방을 마치고 내려오니 오후 1시, 사찰입구에 식당들이 여러 개 문을 열고 손님을 맞는다. 전날에 이어 식당의 선정은 버스기사의 몫, 우리 행사에 여러 차례 동행한 임광현 기사가 정한 자미가식당에서 산채정식으로 점심을 들었다. 솜씨가 좋은 어머니의 대를 이었다는 젊은 아낙의 손님맞이가 약간 딱딱한 느낌이다. 임광현 기사도 예전 같지 않다고 여기는 듯. 음식점의 기본은 친절과 맛이 제대로 담겨야 하는 것 아닌가? 장사하는 이들이여, 너무 쉽게 돈 벌려 하지 마세요.
오후 2시경 버스에 올라 다시 풍기읍으로 향하였다. 홍삼제조창 방문과 오전에 들른 인견매장에 교환물목이 생겨서. 먼저 찾은 곳은 홍원인산제조창, 홍삼을 발효하여 특허제품을 생산하는 민간기업이다. 공장에 들러 홍삼의 발효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유익하였으나 제품을 판매하는 홍보 전략에 동원된 것이 약간 께름하다. 견물생심이라, 제품의 성능이 탁월하다고 들으면 혹하기도 하는데 예정에 없이 거금을 지출하는 일은 지양하여야 하지 않을는지, 3년 전 호남지방 여행 때 난데없이 나타난 홍보요원에게 이끌려 구례산동의 산수유공장에 간 일이 떠오른다.
인견매장을 거쳐 풍기인터체인지에서 중앙고속도로에 오르니 3시 20분, 예정시각보다 약간 늦었다. 중앙고속도로를 거쳐 원주에서 영동고속도로를 지나 신갈에서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여 강남터미널에 6시 경에 도착하는 스케줄인데 오는 도중 여주에서 교통사고가 있어 길이 막힌다는 소식이다. 코스를 바꿔 영동고속도로 대신 경춘고속도로로 우회하여 가평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가 남양주시, 하남시를 지나는 길을 경유, 강남터미널에 오후 6시 10분에 도착하였다.
오가는 도중 버스 안에서 송봉자 회원이 씩씩한 모습으로 건강하고 유쾌한 삶에 유익한 이야기들을 해주어서 고마웠고 김정숙 회원이 청아한 음성으로 각도 아리랑을 구성지게 불러서 즐거웠다. 박경만 회원이 들려준 '누구라도 할 일이면 네가 하리라. 언제라도 할 일이라면 지금 하리라. 어차피 할 일이면 더 잘 하리라'는 삶의 경구도 좋았고. 내가 복사해서 준 '추풍에 실려 고풍을 느끼다'는 영주를 소개한 여행안내 자료와 카페에 실은 '미리 가본 중부내륙지방 답사기'도 도움이 되었는지요?
강남고속터미널에 도착한 일행들은 10층에 있는 포석정음식점에서 청국장과 된장찌개로 조촐하게 저녁식사를 함께 하였다. 사정상 나들이에 참석하지 못한 이영섭, 최종석 회원부부와 이명희 님이 합석하여 더욱 반가웠다. 백남근 회원의 반려인 이명희 님은 빵과 과일로 식사 전, 후식을 챙겨 와서 감사하다. 지난 7월, 과천 서울대공원모임 때는 맛있는 두텁떡을 가져왔었지요?
송년 모임을 12월 8일에 갖자고 결정한 후 일어서니 7시 20분, 그때 만나 영화도 보고 식사도 하며 좋은 시간을 갖기로 하고 헤어지는 발걸음들이 가볍다. 광주까지 내려가는 발걸음이 무거울까 마음을 써준 명희 동생이 호남고속터미널까지 배웅해주어서 먼 길 가는 내 발걸음도 덩달아 가벼워졌다.
저녁 8시에 출발한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와 광주의 집에 도착하니 자정이 가깝다. TV를 켜니 리비아의 철권 통치자 카다피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는 뉴스가 특보로 나오고 산악인 박영석이 히말라야에서 50시간 넘게 연락두절이라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진다. 사랑하는 회원님들이여, 풍성하고 향긋한 가을 기운을 듬뿍 받아서 항상 건강하고 보람된 날들로 나아가시라.
추신,
동문들의 가을나들이 이틀 후인 토요일(10월 21일)에 순천만과 벌교의 태백산맥 문학관을 다녀왔다. 3년 전, 동문들의 호남지방나들이 때 들렸던 순천만에서는 10월 20일부터 24일까지 '2011순천만 갈대축제'가, 22일과 23일에는 '제2회 순천만 갈대길 걷기대회'가 열리고 있어서 친지들과 함께 걷기행사에 참여한 것이다.
70만평의 빽빽한 갈대밭과 끝이 보이지 않는 800만평의 광활한 갯벌로 이루어진 순천만은 세계5대 연안습지 가운데 하나인 생태계의 보고다. 3년 전에 신성회원들과 함께 올랐던 용산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갯벌과 갈대숲이 하늘이 내린 정원처럼 아름답다. 두 시간여의 걷기를 마치고 20km 떨어진 벌교의 '외서댁 꼬막나라(3년 전에 점심을 한 곳)'에서 꼬막정식을 들었다.(그때는 10,000원이던 음식 값이 13,000으로 올랐다.)
점심 후 인근에 있는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을 돌아보며 영주의 부석사가 태백산 줄기의 한 자락에 자리 잡았는데 그 끝자락이 이곳 벌교까지 뻗친 것을 깨친다. 문학관 외벽에 작가가 쓴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는 글을 음미하면서 우리들의 일상도 인간에게 기여해야 할 것임을 되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