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은 하나님이 직접 다스리는 신정정치에서 왕정 정치로의 전환을 이야기합니다. 사무엘상은 옛 이스라엘이 지파 중심적 부족사회에서 중앙집권적 왕정 사회로의 전환을 이야기합니다. 가나안과 주변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사무엘상의 주 내용은 사사시대 이스라엘의 전적인 타락, 이것을 회복하기 위해 사무엘, 다윗을 보내 이스라엘을 회복하는 이야기입니다.
특별히 전반부인 1~7장은 사사시대의 마지막 시기를 배경으로 합니다. 놀라운 것은 첫 인물이 사무엘과 다윗이 아니라 한나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질문하게 됩니다. 왜 곧바로 사무엘, 다윗 이야기가 아니라 한나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일까요?
한나의 가정은 평범하지 않습니다. 레위에게는 세 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게르손, 고핫, 므라리입니다. 제사장 직분은 둘째인 고핫에게 이어집니다. 고핫의 아들이 아므람, 이스할입니다. 아므람의 아들이 아론, 모세입니다. 제사장의 직분이 고핫 – 아므람 – 아론에게 이어집니다. 아론의 아들은 엘리에셀, 나답, 아비훗, 이다말입니다. 나답과 아비훗은 성전에서 다른 불을 사용하여서 죽임을 당합니다. 제사장 직분은 엘리에셀에게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비느하스를 통해 제사장 가문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갑자기 제사장을 바꾸십니다. 이다말을 통해 제사장직을 바꾸십니다. 이다말의 후손이 바로 엘리입니다(민수기 4:28, 33). 후에 엘리에셀 자손을 통해 대제사장직이 회복되는데, 그가 사독입니다. 결국 엘리 제사장은 가문으로 보면 훌륭합니다.
반면에 한나의 가정은 어떠할까요? 이스할을 통해서 반역한 고라가 태어납니다. 고라 자손을 일부 남기는데, 이들이 하나님 앞에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그중의 하나가 한나의 남편 엘가나입니다. 엘가나에서 사무엘이 태어납니다. 엘리 제사장과 비교하면 엘가나(한나)는 문벌, 족보, 자랑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사무엘은 합법적인 대제사장직임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사무엘은 훌륭한 대제사장직임을 수행합니다.
한나 이야기는 드보라 사사 이야기와 극한 대조를 이룹니다. 드보라 사사도 한나도 에브라임에 속한 여인입니다. 하지만 드보라는 정치적 영향력과 사법적 지도력과 예언 활동에 있어서 월등합니다. 드보라는 이스라엘의 네 번째 사사로서 에브라임 산지 라마와 벧엘 인근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며, 종려나무 아래서 백성을 재판했습니다(사사기 4:4-5). 납달리 출신 바락을 군대장관으로 삼아 가나안 왕 야빈과 그 군대장관 시스라의 군사들을 다볼 산 인근 기손 강 전투에서 괴멸시켜 이스라엘을 압제자들의 손에서 구원하고, 40년간 태평성대를 이루었습니다(사사기 4:6-7, 14-16). 사사기 5장에 나오는 “드보라의 노래”는 구약에서 가장 오래된 노래 중 하나로 꼽힙니다.
반면에 한나는 믿음의 여인으로, 기도하는 여인으로, 지극한 모성의 온화한 어머니로 그려집니다.
왜 사무엘상은 사무엘, 다윗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나라는 여인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일까요? 하나님 사람으로서의 능력은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이 앞에서 보이는 태도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입니다.
엘리는 그 출신 때문에, 직무 때문에 “영적인 권한”을 가졌지만, 그는 실제로는 “영적인 실패자”입니다. “영적인 실세”는 누구입니까? 에브라임 시골 촐신으로 사회적으로 무력한 한 여인입니다. 그 여인은 가문도, 사회적인 지위도, 영향력도 없습니다.
하지만 한나는 믿음의 여인입니다. 여호와를 향한 온전한 믿음의 진정한 능력을 갖춘 여인입니다. 한나는 유일하게 하나님에게 서원하고 그 서원을 지킨 여인입니다. 유일하게 구체적으로 기도하는 모습(“팔랄”, 사무엘상 1:10, 12, 26~27, 2:1)으로 나오는 여인입니다. 한나의 기도는 구약성경에서도 무척 긴 기록에 속합니다. 게다가 한나의 기도는 여인이 여호와의 이름을 가장 많이 발음한 경우로 기록되었습니다(18회).
하나님 앞에서 가문도, 사회적인 지위도, 영향력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 앞에서 보이는 태도입니다. 결국 그것이 하나님을 움직였고, 하나님이 한나의 기도에 응답하게 되었고, 그 응답으로 낳은 아들이 그 유명한 사무엘입니다.
한나의 가정은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남편 한 명에 아내가 둘입니다. 즉, 한나(“은혜로운 여인”)와 브닌나(“진주?”)입니다. 하지만 이 가정은 신앙이 있었습니다. 사무엘상 1:1절을 보면 이름들이 소개됩니다. “엘가나”라는 이름은 “하나님이 소유했다”라는 의미입니다. “여호람”은 “하나님의 긍휼”이라는 의미입니다. “엘리후”라는 이름은 “하나님이 그들의 여호와 되신다”라는 의미입니다. “도후”라는 이름은 “겸비하고 낮아져서 함께 하신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이 거기 계실 뿐만 아니라 여기에도 같이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숩”은 “풍성한”, “넘치는”의 의미입니다. 한나의 가정이 믿음의 가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한나의 가정은 신앙의 가정입니다. 3절을 보면 “이 사람이 매년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예배하며 제사를 드렸는데”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삼 대 절기, 즉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이 되면 성전에 올라가서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출애굽기 23:7). 유월절은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에게 감사드리는 절기입니다. 칠칠절은 하나님의 풍성한 소출, 그리고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날을 감사함으로 드리는 절기입니다. 하나님 생명의 법이 나에게 있고, 하나님이 풍성하게 해 주신 은혜에 감사함으로 드리는 절기입니다. 초막절은 모든 사람이 장막에 머물므로 장차 이루어질 영원한 장막, 즉 새 예루살렘을 소망하는, 하나님과 연합되는 풍성함을 기대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한나의 가정에 문제가 있습니다. 불임입니다. “잉태하지 못하는 몸”(아카라)입니다. 유독 성경에는 불임의 역사가 많이 나옵니다. 사라(창세기 11:30), 리브가, 라헬(창세기 29:31), 한나가 불임입니다. 불임의 여성을 통해서 위대한 신앙의 인물이 태어납니다.
불임은 개인적인 어려움입니다. 아울러 관계적인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브닌나가 한나를 격분하게 하고 괴롭게 했습니다. 6절을 보면 평상시뿐만 아니라, 7절을 보면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그러하였습니다. 7절에서 브닌나의 행동을 묘사하는데 미완료형 동사인 “타크이센나”를 사용함으로써 그녀의 비열한 행위가 지속해서 반복되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레위기를 보면 화목제를 드리고, 그 제사 지냈던 것을 가지고 나눠 먹게 되어 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식사와 잔치는 신앙의 의미입니다. 브닌나는 이때 반복적으로, 계속해서 한나를 격분시키었습니다.
한나의 행동은 어떠했습니까? 10~11절을 보면 한나는 이 상황에서 기도합니다. 10절을 보면 “마음이 괴로워서”라고 말씀합니다. “마음”은 “영혼”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직역하면 “영혼의 쓰라림 안에서”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이 어구는 아이가 죽은 상실을 겪는 사람(룻기 1:13, 20, 열왕기하 4:27, 스가랴 12:10)이나 개인적으로 육체적 고통을 크게 겪는 사람(욥기 3:20, 7:11, 10:1, 이사야 38:15)이 느끼는 심리적 고통을 말합니다.
기도의 내용을 보면 아주 솔직하고 정직합니다. 한나 기도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큰 소리를 내어서 기도 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법궤를 지키던 엘리 제사장이 술에 취해서 주정 비슷하게 하는 것으로 오해한 것을 보면 그렇습니다.
13절을 보면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라고 말씀합니다. 원어대로 직역하면 “자기의 마음에다 대고 말하였다”입니다. 그녀가 자신의 마음에 관심을 기울였고, 마음으로 기도했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우리의 기도가 마음에 대고 하는 기도입니까?
14절을 보면 엘리 제사장이 “술을 끊어라”라고 말합니다. 이것에 대한 대답이 15절입니다. 15절을 보면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한나의 속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이다”입니다. 원어대로 직역하면 “나는 영혼(마음)이 굳어진 여자이다”입니다. “슬픈”이란 말은 원어를 보면 “딱딱하다”, “어렵다”, “굳었다”라는 의미입니다. 얼마나 한나의 마음이 힘들면 “굳어진다”, “딱딱하다”라고 표현을 하였겠습니까?
다른 하나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 뿐이니”입니다. 한나의 속마음, 그 굳어진 마음을 어떻게 했습니까?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했다”입니다. “심정”이란 말은 “마음”, “영혼” 또는 “자기 자신”으로서 “전인격”을 의미합니다. “통했다”라는 말은 “쏟았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15절을 원어대로 사역을 하면 “주님 저는 마음이 굳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제 마음(영혼, 제 자신)을 쏟았습니다”입니다. 그 굳은 마음을 하나님께 쏟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굳은 마음을 쏟습니까? 아니면 깊은 곳에 숨기거나 두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런데 한나는 하나님께 쏟습니다.
한나의 기도에 하나님은 엘리를 통해 응답하십니다. 17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라고 말씀합니다. 한나는 이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18절을 보면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었더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가 되자 사무엘을 낳게 됩니다. 또한 때가 되자 서원한 대로 엘리 제사장에게로 데려와서 나실인으로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사무엘이 민족 신앙, 역사를 회복하는 귀한 일을 담당하게 됩니다.
한나는 자신의 마음이 세상으로 인해 굳어지게 되었을 때, 마음이 슬퍼지게 되었을 때, 고난이 자신을 휘감았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아는 여인입니다. 바로 그때가 굳은 마음(영혼, 자신)을 하나님 앞에 쏟아야 하는 때입니다. 그런 한나를 보고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한나가 자신의 약속을 지키는 자리에까지 나아갑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민족을 회복하고 구원하십니다.
27~28절을 원어대로 사역하여 보면 “내가 이 아이를 위해 기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나의 구하는 바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나 또한 그를 일평생 여호와께 구하여 얻은 자가 되게 하리니 그가 여호와를 위해 구하여진 자가 될 것입니다”입니다. 이 기도는 한나가 사무엘을 성소에 바치면서 한 말입니다. 핵심은 “하나님께서 주셨으니 나 또한(웨감 아노키)드릴 것입니다”입니다. 하나님께 소원한 바를 얻고 또 그 얻은 것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한나의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회적인 지위, 신분, 영향력을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태도를 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도 우리의 솔직하고 진솔한 내용을 보십니다. “주님 저는 마음이 굳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제 마음(영혼, 제 자신)을 쏟았습니다”입니다. “그 굳은 마음을 하나님께 쏟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굳은 마음을 쏟습니까? 마음에 두거나 숨기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대고 하는 진솔하고 솔직한 기도, 그리고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와서 쏟는 기도를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소원한 바를 얻었을 때는 그것을 다시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