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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과 글로벌 포퓰리스트의 횡포.
선경 정해균
2025년 9월 22일 월요일
◐민주주의와 영웅 주의.
(2016년은 미국에서 포퓰리스트가 출현하기에 적합한 사회적 환경이었다. 제조업에 종사하는 백인노동자들은 대부분 일자리를 잃었다. 설상가상으로 해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나는 이민자들 수에 백인들은 위기 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 트럼프라는 부동산개발업자 출신의 포퓰리스트가 혜성같이 나타나 보호무역주의에 인종주의 옷을 입혀 “America First” 라는 신상품을 출시했다.)
정치 체재에 있어서 민주주의의 대립 항이 ‘독재’ 라면, 이데올로기의 측면에서 민주주의의 대립항은 ‘영웅 주의’ 이다.
영웅주의의 극단적인 표현인 ‘메시아주의’는 피지배인민이 자신의 힘으로 역사를 헤쳐 나가는 것을 포기하고, 영웅의 힘으로 자신의 곤궁함과 피폐함을 해결하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정치적 메시아 주의는 현재의 고통을 잠시 잊게 해 줄뿐, 그 궁핍함을 근본적으로 해결 해 주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다.
... 우리는 어떤 사람이 뛰어난 지도자라 하더라도 그 사람 자체를 숭배하거나 그에게 무조건 복종해서는 안된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계량적 척도는 영웅을 숭배하는 추종적 대중의 숫자와 반비례하며, 자신의 생활에 관한 정책을 스스로 결정하려는 주권적 시민의 숫자와 비례한다. .. 영웅을 숭배하는 추종적 대중이 많을 수록 다양한 이견은 갈등과 충돌로 귀결된다.
-김현철 지음 〈지배당한 민주주의(르네상스) 182-183쪽
◐포퓰리즘과 민주주의.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와 양가적 관계에 있다. 이는 포퓰리즘이 민주주의적인가 또는 반민주적인가라는 질문에 어느 하나도 대답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 포퓰리즘이 민주주의 정치의 일부로 존재하고 민주주의에 (어느정도)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것이 인민주권의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인민이 정치적 권력과 정당성의 기원이고 정치는 인민의 의지를 구현해야 한다는 믿음에 기초하며, 인민의 정치라는 민주주의 약속이 흐릿해 질 때 그것에 이의를 제기 하면서 등장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퓰리즘이 민주주의의 위협요인으로서 민주주의 정치에 주변부에 머무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인민의 의지를 절대적이고 단일한 것으로 상정하여 근대 민주주의 주요 요소인 헌정주의,대의제 원칙, 다원주의 등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 포퓰리즘과 민주주의의 양가적 관계에 대한 이해는 오늘날 전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포퓰리즘의 대두와 확산을 명확히 파악하고 그것을 올바로 대처하는 출발점이다. 이 현상을 단순히 포퓰리스트 특유의 감성자극적 정치, 도발적 언행, 거짓선동 또는 우둔한 유권자의 선택에 따른 결과로 치부한다면 포퓰리즘의 성공을 정확히 진단 할 수 없을 것이다. 적어도 그것은 부분적으로 결함 있는 기존 민주주의 정치에 대한 반작용의 결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포퓰리즘에 내재된 민주주의 적 성격을 들여다 볼 수 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 서는 포퓰리스트들이 왜 민주주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유권자들에게 다가 서는지, 기존 민주주의 정치에 실망한 이들이 왜 포퓰리스트의 주장에 매혹 되는지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포퓰리즘의 민주주의 기능성을 과대 평가 해서는 안된다. 포퓰리즘에 내재된 반민주주의 성격이 민주주의를 침식하고 언제든 권위주의를 불러 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포퓰리즘의 민주주의적 가능성을 과대평가해서는 안된다. 포퓰리즘에 내재된 반민주의적 성격이 민주주의를 침식하고 언제든 권위주의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포퓰리즘이 기존 민주주의 의 정치 결함을 노정 시키고 그것을 개선하는데 기여한다 하더라도 이 위험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더 많은 민주주의이지 결코 포퓰리즘이 아니다.
--김주호 경상국립대 교수의 논문 〈포퓰리즘과 민주주의 양가적 관계 이해하기〉. 이 논문은 〈시민과 세계 2019년 하반기 호〉에 실린 것으로 연구모임 사회비판과 대안에서 출간한 논문집 〈가정 폭력과 포퓰리즘(Domestic Violence and Populism)〉에서 재인용 했습니다.
◐포퓰리즘의 기원과 좌우파 포퓰리즘.
☞포퓰리즘의 기원.
포퓰리즘이라는 용어는 1890년대 미국 남서부 농촌 지역 소작인과 자작농 사이에서 확산된 사회경제적 불만족을 등에 지고 출현한 ‘인민당 (People’s party)’의 활동을 계기로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에 러시아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나로디니키(Narodniki)세력의 농촌 개혁 운동 나로드니체스트보(Narodnichestvo)또한 포퓰리즘 현상의 기원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포퓰리즘 현상이 중요한 이유.
포퓰리즘 현상이 중요한 이유는 이현상이 사실은 대중이 새롭게 정치적으로 구성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대중이 정치적으로 새롭게 태어나서, 늘 주어진 답안중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답을 찾아 써 내려 가는 계기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게 때문에 포퓰리즘은 늘 똑 같은 답안만 제시하던 기성정치세력들에게는 가장 위협적인 현상일수 밖에 없다. 반대로 이런 틀에 박힌 답안지와 기성정치세력에 실망한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가장 열정적인 정치참여의 계기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포퓰리즘이 불안을 동반하는 이유.
포퓰리즘 현상이 카리스마적 지도자에게 열광하고, 언론에 대한 무조건 신뢰를 거부하고, 제도적 기대감보다 거리에서 직접 향동하고, 불공정과 부정의에 대한 적대감을 거침없이 드러내기 때문이다.
☞좌파와 우파 포퓰리즘.
우파포퓰리즘은 자유민주주의 제도가 포용할 수 있는 가치와 주체를 최소화 하기 위해서 ‘배제의 논리’ 를 강조하고, 이를 위한 제도를 강요한다. 이민자, 난민, 성소수자 등을 대하는 우파 포퓰리즘의 태도는 이를 분명히 한다. 하지만 좌파포퓰리즘은 자유민주주의 제도의 원래 가치였던 모든 이 들의 자유와 평등을 급진적으로 확장하려 한다.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이민자(immigrant) 기표는 서구사회를 좌우로 나누는 상징이 되고 있다. 외국인 혐오는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 여러 유럽에서 나타나는 우파 포퓰리즘의 핵심이다. 반면 좌파 포퓰리즘은 민족이나 인종을 앞세운 외국인 혐오에 강력히 저항한다.
….포퓰리즘을 하나의 합의된 의미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도전 받는 입장, 도전하는 세력의 입장 혹은 소위 좌나 우의 입장에 따라 그 정의는 달라 질 수 있다. 도전 받는 입장에서 이 용어는 ‘복지 포퓰리즘’, ’경제 포퓰리즘’, ‘교육 포퓰리즘’등 보수세력의 권력 비판논리로 많이 사용됐다.
포퓰리즘이 부정적 의미를 품고서 상대를 비난할 때 사용하는 용어가 될 수 있었던 역사적 맥락은 냉전이 심화된 1950년대 미국의 매카시즘(McCarthysm), 그리고 소련사회주의의 연방붕괴, 동구사회주의 국가의 자본주이 시장으로 편입, 동서독 통일이라는 격변기를 통과한 1990년대 유럽보수세력의 급부상에서 찾을 수 있다. 포퓰리즘은 이후 주로 반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인 대중 선동으로 기존 자유민주주의 체재를 위협하는 병리적 현상으로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됐다고 볼 수 있다.
-상탈 무페지음 〈좌파포퓰리즘을 위하여〉에 부록으로 실린 글 이성원의 ‘민주주의와 포퓰리즘’에서 발췌 인용.
◐포퓰리스트의 10가지 특징.
포퓰리스트들은 나라마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나 공통점은 아래와 같다.
1. 포퓰리스트는 복잡한 문제에 터무니없이 간단한 해법을 제시한다.
2. 포퓰리스트는 ‘우리’와 ‘그들’로 나눈다.
3. 포퓰리스트는 불안을 부추긴다.
4. 포퓰리스트는 스스로를 민주주의의 마지막 구원자라고 생각한다.
5. 포퓰리스트는 다른 정치인을 무시하고 경멸한다.
6. 포퓰리스트는 정적을 향해 수사 협박을 한다.
7. 포퓰리스트는 분위기를 부추기려고 도발한다.
8. 포퓰리스트는 언론을 경멸한다.
9. 포퓰리스트는 음모론을 퍼트린다.
10. 포퓰리스트는 스위스 국민투표를 원한다.
- 안루트비히 지음 〈도대체 포퓰리즘이 뭐야?〉 (비룡소, 전은경 옮김)
◈선경의 독서 노트◈
정치시장의 구조를 경제사장과 마찬가지로 공급 측면과 수요 측면으로 나누어 생각 할 수 있다. 정치시장의 공급 측면에서 선출직에 나가는 공직후보의 경우 대개 재원조달에 대한 구체적인 안도 없이 공약을 남발하는 것이 대세이다. 그래야 정치 수요자내지 소비자인 다수 유권자들의 주목을 받아 그들의 대리인으로 뽑힐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으로 둔갑하는 이유 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대개 정치 시장의 수요자인 유권자의 경우 정치 상품인 공직후보자의 우열을 판단하는데 기울이는 노력이 개인이 경제활동의 일환으로 주식시장에서 투자할 유망 종목을 고를 때 들이는 시간만큼 충분히 할애하지 않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여긴다. 그 이유는 (내가 아니더라도 더 잘 아는)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하겠지 그리고 설령 잘못된 선택을 했을 경우라도 그 피해는 당사자만이 아닌 국민전체가 부담한다는 위험부담의 분산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임기가 끝나고 다음 선거 때 다른 사람을 뽑으면(교체하면) 무방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다시 말하면 수요자들이 정치 시장에서 정치상품에 대한 정보를 경제시장 또는 소비시장에서 처럼 개인적으로 요모조모 면밀하게 검토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합리적 무지 또는 합리적 무관심(Rational Ignorance)라고 한다. 이는 정치시장 수요자인 유권자들의 가장 중요한 행동패턴이다. 엉성하게 닫힌 방충망을 통과하여 모기가 침입하여 마치 당연한 권리 처럼 그 방에 사는 무고한 사람을 불시에 괴롭히는 현상과 비슷하다면 지나친 비유일까요!?
포퓰리즘과 포퓰리스트를 분별하는데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즉 언론 매체가 제공하는 기사를 정독하고 세상을 깊게 읽는 힘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디어 리터러시가 정치시장에서 정치수요자 내지 정치 소비자의 구조적인 결함인 ‘합리적 무관심 내지 무지(Rational ignorance)’현상을 다소 완화해줄 것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 한다.
앞에서 설명한 포퓰리스트가 한나라의 지도자가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요. 미국의 현직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횡포가 세계를 상대로 아침저녁으로 지금 적나라하게 전파를 타고 생중계되고 있다. 우방에 대한 강압적인 투자 요구, 방문기술자에 대한 이민당국의 체포와 국금, 치졸한 전문가 비자 거래 행위 등,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행위를 자행하는 몰가치의 거래 형 대통령을 포퓰리스트라고 부르는 것도 과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 막 100일이 지난 이재명 대통령도 중도 국민들의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극좌와 극우는 서로 자기 편이 집권하지 않으면 상대방을 ‘독재’ 라고 부르기 때문에 그들의 불평과 불만은 일정부분 상투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중도파(Swing Voter)의 인식이 어떤 판단을 내리면서 바뀌느냐 에 따라 향후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여론 향배에 영향을 미칠 변수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경우 자국의 경제문제를 다른 나라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면서 고율 관세 부과를 전가의 보도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대미투자를 일시불로 입금하라고 다그치고 있다. 최근에는 전문직 취업 비자 (H-1B) 발급수수료를 100배나 인상한 10만 달러로 높이면서 미국 기업과 외국인 직원들이 panic 상태에 빠졌다. 예측 불가한 행동에다 아침저녁으로 언행이 왔다 갔다 하니 우방국가의 원수라고 존경하고 신뢰할 구석이 손톱만큼도 보이지 않는다.
오늘 필자는 대한민국 시민의 한사람으로서 실례를 무릅쓰고 도널드 미국 트럼프대통령의 광적인 갑질을 이솝우화의 ‘늑대와 새끼 양’ 이야기를 차용하여 그 부당함을 매우 따끔하게 지적하고자 한다.
“늑대가 물을 마시기 위해 개울가로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마침 개울 아래 쪽에서 새끼 양 한 마리가 물을 마시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늑대는 배도 고프던 참이어서 새끼양을 잡아먹어야 겠다 고 생각하고 천천히 다가 갔습니다.
“너 이놈, 이곳은 모든 동물들이 물을 마시는 곳인데 어째서 이렇게 흑 탕 물을 일으켜 물을 못 마시게 하느냐.”
하며 늑대는 트집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늑대님, 저는 개울 아래서 물을 마시기만 했지 개울속에 들어가지도 않았어요. 그리고 제가 있는 곳은 늑대님 보다도 아래에 있기 때문에 흙탕물이 있었다고 해도 그 위쪽에 물이 흐려질 까닭은 없어요.’
새끼양이 무서워하면서도 모두 옳은 말만 했기 때문에 늑대는 할말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늑대는 또다른 트집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그 말은 맞는다고 치고, 네가 작년에 우리 아버지에게 욕을 하고 도망쳤지?’
‘아니 예요. 늑대님. 저는 태여 난지 얼마되지 않았어요. 작년에는 태여 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어요.’
새끼양의 침착한 대답에 말문이 막힌 늑대는 새끼양에게 달려 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하는 말은 전부 너를 정당화시키는 애기로 구나.
내가 너를 잡아먹는 것도 정당한 일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