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부활하던 날 아침, 예수의 사도들이 느낀 감정은 무엇이었을까요?
또 예수가 홀연히 떠나버렸을 때, 그들의 감정은 어떠했을까요?
그들이 느낀 감정이 어떠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곳에서 교회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떠난 뒤, 그들은 자신들이 방금 전에 겪은 일의 의미에 대해,
예수가 자신들에게 이야기 하고자 했던 것에 대해,
또 이제 자신들이 해야 할 일에 대해 말입니다.
Caravaggio - 십자가에 못박힌 성 베드로
교회의 역사가 시작한 곳은 바로 로마입니다.
그것은 네로 황제 시절 순교한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가 제국의 수도인 로마에 도착한 시기와 일치합니다.
로마에서 일어난 성 베드로의 선교 활동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거의 없지만,
어쨋든 그는 로마에서 순교를 합니다.
그러나 예수와 같은 형벌을 받을 수 없었던 성 베드로는 머리가 아래로 향하는 십자가형을 요구했죠.
Giuseppe Maria Crespi - Baptism 1712
일찍이 교회는 세례성사, 성찬성사, 고해성사 등 신도들이 꼭 치러야 할 성사를 체계화하였습니다.
여기에 혼인성사와 신부 신품성사 등 특정인에게 혹은 특정 상황에서 행해지는 두 가지 성사를 추가하였죠.
몇 방울 물을 뿌리는 의식에서 물에 담그는 의식까지 다양한 형태의 의식을 따르고 있지만,
세례는 세례 요한에 의해 치러진 예수의 세례를 근원으로 하고 있죠.
전통에 따르면 세례는 태어난 지 며칠이 지난 신생아에게 치르던 의식이었습니다.
Giuseppe Maria Crespi - Confession 1712
고해성사가 등장한 것은 종교개혁에 대항한 카톨릭의 반 종교 개혁운동이 일어난 때부터이며,
이때부터 고해성사를 주제로 한 종교화가 등장합니다.
하지만 '회개'라는 이름으로 고해성사는 오래 전부터 행해지고 있었죠.
380년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이교와 아리우스파 그리스도교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명렬하게 탄압했습니다.
성부, 성자, 성신의 삼위일체를 믿는 사람들만 그리스도교로 간주한 것이죠.
이렇게 강압적인 방법으로 그리스도교를 확장하던 황제는
어느날 자신의 부하를 죽인 마을을 찾아가 대량학살극을 벌입니다.
교회는 황제의 행동을 탄핵했고, 황제는 회개하고 다시 영성체를 받았죠.
모든 성사중에서 고해성사는 가장 많은 논쟁을 유발했습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는 고해성사의 해악을 다음과 같이 비난했습니다.
'루이 11세는 잔학한 일을 벌인 뒤 고해성사를 한다.
고해성사는 마치 미식가들이 식욕을 증진하기 위해 먹는 약과 같다'
고야 - 고행행렬
고해성사와 떼어 놓을 수 없는 고행은 때로 비정상적으로 느껴집니다.
하지만 중세에 고행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죠.
육체적인 고행을 추종하는 이들이 생겨날 정도로 고행의 개념은 극단적으로 해석되었습니다.
스스로 채찍질하는 고행자들의 모습은 대부분 다비드 왕의 고행,
막달라 마리아 혹은 성 제롬의 고행등 유명한 고행의 일화로 성스럽게 그려졌습니다.
그러나 왜곡된 고행 문화는 스페인의 고행 행렬이나
사도-마조키스트적인 잔혹한 모습으로 노골적으로 그려지기도 했죠.
보티첼리 - 성 제롬의 마지막 성체 배령
그리스도교의 핵심 성사인 성찬식은 종교 도상학의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빵과 포도주의 축성을 주제로 성자들의 성찬식 장면은 화가들이 자주 인용한 주제이죠.
아이의 첫 번째 성체배령 장면은 부모에게 둘러싸인 아이의
첫번째 초상화를 그릴 수 있는 기회로 인기였습니다.
니콜라스 푸생 - 임종 성채 배령
죽어가는 이의 마지막 성찬식은 강제가 아니지만,
교회는 상황이 허락하는 한 이 마지막 성찬식을 치를 것을 적극적으로 권합니다.
가능하다면 마지막 고해성사와 병자성사가 함께 진행되죠.
화가들은 흔히 성자의 모범이 될 만한 마지막 순간을 화폭으로 옮겼습니다.
니콜라스 푸생은 그리스도교의 모든 성사를 연작으로 그렸습니다.
종교적인 색채를 강하게 띠지 않으면서 비교적 단순하게 마지막 순간을 담은 작품들은
아픈 이들의 이마에 기름을 바르는 도유성사 집행 장면을 보여주죠.
사제들은 안수를 한 다음 기도를 드리고 하나님의 강복으로 거룩해진 기름을 병자들에게 바릅니다.
이 예식으로써 병자는 악마의 유혹과 죽음의 번민에서 벗어나 참회의 완성을 이룰 수 있었죠
도미니크 디 미켈리노 - 단테와 신곡
연옥이란 지옥도 아니고 천국도 아닌, 지옥과 천국 사이에 존재하는 곳으로
지옥에 가지 못하는 죄인들이 천국으로 가기에 앞서 정화의 시간을 가지는 곳입니다.
연옥의 출현은 교회의 해결되지 않은 가장 큰 논쟁거리 중 하나입니다.
연옥의 개념은 사실 산 자들이 죽은 자의 운명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내용을 바탕으로 합니다.
1439년 피렌체 공의회는 죽은 자는 연옥의 형벌을 통해 그들의 영혼을 정화할 수 있고,
연옥의 형벌을 면하기 위해서는 헌금하고 기도해야 한다고 구체화했습니다.
연옥론은 면죄부 논쟁으로 치달았고, 연옥론을 거부하는 개신교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연옥을 표현한 작품들 역시 논쟁거리가 될 수 밖에 없었죠.
연옥은 형벌을 받는 장소지만 지옥과 달리 열린 공간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연옥을 그린 작품에는 죄인들을 선택해 천국으로 인도하려는 성모와
가브리엘 천사의 모습이 자주 나타납니다.
또 다른 영감의 원천은 단테의 <신곡>입니다.
단테의 <신곡>에는 연옥에 대한 최고의 묘사가 들어 있고,
단테는 자비롭지 못한 교황들이 연옥에 머무르는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신곡>의 성공은 필사화가들뿐만 아니라 들라크루아나 모네와 같은 작가들에게까지 많은 영감을 주었고,
작품의 주제로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Ambrogio Bergognone -
Madonna and Child, St Catherine and the Blessed Stefano Maconi
고대 그리스인들이 '뮤즈'라고 부르는 학예의 여인을 그리스도교는 17세기에 들어서면서
좀더 섬세한 방법을 통해 영적인 존재로 변화시켰습니다.
아폴론과 뮤즈가 살았다는 파르나스 산은 이제 이상적으로 아름다운 여인들이 사는 곳으로 변했죠.
역사학자 루이 질레는 천사의 근원은 미덕을 나타내는 그리스의 뮤즈라고 했습니다.
13세기에 이미 성 토마는 미덕을 자비, 희망, 신앙의 3대 신학적인 관점의 덕과 용기, 정의, 현명, 절제의
4가지 기본적인 덕으로 나누어 체계화 했습니다.
화가들은 이러한 덕목을 알레고리의 힘을 빌려 인간적인 모습으로 변화시켜 화폭에 옮겼습니다.
교회 천장화로 자주 그려진 신앙을 상징하는 뮤즈는 숭고한 배경 속에서
십자가, 천사, 성령의 비둘기 등 많은 상징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또한 여성으로서 신성한 뮤즈임을 나타내기 위해 성모가 자주 등장했죠.
이 작품들 속에는 성모를 향한 숭배가 담겨 있습니다.
루카스 크라나흐 - 자비
자비는 내면적이고 개인적인 희망보다 작품의 주제로 쉽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알레고리화나 상징화라는 이름으로 많은 화가들은 자비를 드러내는 행위를 그렸죠.
가난한 이들을 위해 온정을 나누고, 병자와 죄수들을 찾아가고,
전염병을 치료하는 등의 모든 형태의 자비는 때로는 익명의 인물의 모습으로,
때로는 유명한 성자의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이러한 나눔의 행위는 그리스도교들의 신앙심의 표현이며, 희망과 자비의 행위입니다.
첫댓글 즐감하고갑니다 많이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