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길을 걷다보면 우리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광경도 볼 수 있다. 즉 거리의 시계들이 가리키는 시각이 모두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하루에 딱 두번만 정확히 맞는 시계와 하루에 한반도 맞지 않는 시계들이 자주 눈에 띈다. 서로 다른 시각들이 동시에 공존하기 때문에 로마를 영원의 도시라고 부르는 것일까?
로마의 주요 성당 앞이나 광장 한가운데에는 뾰족한 돌탑이 세워져 있다. 고대 로마인들은 이것을 오벨리스쿠스라고 했고, 현대의 이탈리아어로 오벨리스코 영어로는 어벨리스크라고 하는데 그 어원을 따져보면 작은 투창이라는 것이다. 사실 멀리서 보면 뾰적한 창처럼 생겼다.

사진] 포폴로 광장의 오벨리스크
로마의 중심가에서 길을 걸을 때 시야가 끝날 만한 곳에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다. 오벨리스크가 보이는 길을 그냥 휑하게 뚫려 있는 것이아니라 적당히 닫혀 있는 공간이 되기 때문에 먼 거리도 그렇게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또 로마의 좁은 골목길에서는 길을 잃기가 쉬운데 멀리 오벨리스크가 보이면 방향감각을 되찾게 되며, 오벨리스크에 의해 발검음이 인도되다가 눈앞에 시야와 가슴을 한껏 열어주는 광장이 펼쳐지기도 한다.

사진] 오벨리스크
현재 로마에는 오벨리스크가 13개가 있으니 본산지인 이집트보다 더 많은 셈이다. 로마에 있는 오벨리스크는 크기가 모두 달라서 작은 것은 3m도 안되는 것이 있는가 하면, 큰 것은 30m도 넘는 것도 있다. 오벨리스크는 거대한 통돌로 만들어져 표면에는 파라오의 업적이 새겨져있는데, 이집트 사람들은 태양신의 상징이자 불멸의 상징으로 오벨리스크를 신전 입구 양쪽에 세웠다.
오벨리스크가 로마에 첫선을 보이게 된 것은 기원전 10년의 일이다. 아우구스투스는 이집트 정복 20주년을 기념하여 이집트의 헬리오폴리스에서 오벨리스크 두개를 몰래 들여왔는데, 이국적 풍미가 넘치는 진귀한 수입품은 로마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아우구스투스 이후 후세의 황제들은 이집트에서 오벨리스크들을 마구잡이로 뽀아내어 로마로 들여왔다. 칼리굴라 황제는 아예 이집트 아수안의 황강암 채석장에서 직접 돌을 잘라내어 오벨리스크를 만들고 특별 수송선으로 로마에 운반해 올 정도 였다.
자료]콜로세움이 무너지는 날이면, 조선일보 생활미디어(주), 정태남,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