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 나는 이렇게 쓴다>
애도의 방식
10·29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다음 날
무등산 천왕봉의 가슴 시꺼멓게 타버렸다
풍경의 여백, 그 순간을 포착하는 힘
김완
역사적으로 인류에게는 유목민의 유전자가 내재해 있다. 나 역시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늘 어딘가를 쏘다니고 싶어 한다. 여행 중에서 만나는 풍경들은 바람과 시간에 따라서 그 풍경과 계절을 열기도 하고 닫기도 하고 지우기도 한다. 낯선 풍경 앞에서 늘 새로운 에너지를 느낀다. 여행에 따르는 설렘과 적당한 결핍이 또 다른 우주를 만나게 하기도 한다. 여행은 관념적으로 내 머릿속에 있던 풍경과 이미지를 가슴으로 발바닥으로 뜨겁게 전달해준다. 낯선 풍경을 만나는 길 위에 서면 니체의 ‘모든 중요한 것은 길 위에 있다’라는 말이 정말 살아 꿈틀대는 시간이 된다. 여행에서 만나는 낯선 풍경이나 사물들이 좋은 시나 디카시적 소재로 특별한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일상에서 쉽게 만나는 소소한 풍경이나 사물들도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시나 디카시의 좋은 소재가 될 수 있다.
디카시는 무엇인가? 학생들에게 강의는 즐겁게 잘할 수 있지만, 막상 내가 디카시를 쓸 때는 아직도 서툴고 미흡하다. 내가 시인이어서 그럴까? 디카시에 대한 실습이 부족한 것일까? 사진으로 무엇인가 알 것 같은 기운이 들 때 그러면서도 그것이 다는 아닌 듯할 때 디카시는 탄생한다. 그 사진에 부족한 무엇을 짧은 문자로 채워 넣어 완전체가 되게 하는 것, 그것이 좋은 디카시가 아닐까? 어떤 풍경이나 사물이 독특한 방법으로 나에게 말을 걸어온 것이 아닐까 싶어질 때, 그리하여 질문이 만들어지는데 그게 더러는 시로 더러는 디카시로 태어나는 것은 아닐까? 어떤 이야기에 대한 대답을 슬쩍 비껴가면서 조금 부족한 대답(=문자) 대신 이미지로 보여주는 것, ‘언어로 못다 드러낸 여백’이나 ‘언어화되지 않은 풍경의 여백’의 순간을 포착하는 힘이 필요하다. 디카시를 어떻게 쓰느냐고 물으시면 “풍경과 사물들의 말을 받아 적는다”라고 말하고 싶다.
“풍경이 나에게 말을 걸었고, 나는 다만 빠르게 받아 적었을 뿐이다.”라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말처럼, 시(詩)나 디카시는 풍경과 사람 사이에 교감이 일어날 때 태어납니다. 그렇지만 아름다운 풍경만으로는 시 혹은 디카시가 되지 않습니다. 시인이란 생의 무질서와 상처를 끊임없이 풍경으로 바꾸려고 하는 자입니다. 풍경과 사람, 사람과 사람 그리고 세상이 어우러져 공명(共鳴)을 불려 일으킬 때, 좋은 시(詩)나 디카시는 태어납니다.*
「애도의 방식」은 2022년 10월 29일 159개의 불꽃이 소멸한 이태원 골목을 생각하며 쓴 디카시이다. 광주의 영혼(靈魂) 같은 어머니와 같이 높고 큰 산인 무등산이 보여주는 애도의 문장이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다음 날은 일요일이었다, 왜 우리 사회에 이런 대형 재난이나 참사가 많을까? 대구 동구 지하철 참사,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우리 사회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무등산 새인봉에 올라갔다. 그때 멀리 보이는 무등산 최고봉인 천왕봉(=1,187m)이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이런 풍경을 내게 안겨 주었다. 잊지 않겠다고 약속한 뒤, 살아남은 자의 책임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피해자의 꿈을 물어봐 주세요’, ‘당신을, 당신의 죽음을 기억하겠습니다’라는 포스트잇에서 시작한 끝나지 않는 애도의 다른 방식인 디카시인 것이다.
* 김완. 나의 시, 나의 시론: 「말이 세상을 향해 화이부동(和而不同)할 때」,『시와시학』, 2022년 봄, 217쪽을 조금 수정.
시인 김완(金完) 약력
광주광역시 출생
2009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지상의 말들』, 『바닷속에는 별들이 산다』, 『너덜겅 편지』 등이 있다.
2018년 제4회 송수권 시문학상 남도시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