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주 閔泳珠(1923~2021)】 "광복군 제2지대에서 복무"
1923년 8월 15일 중국 상하이(上海) 프랑스 조계에서 아버지 민필호(閔弼鎬)와 어머니 신창희(申昌喜) 사이에서 2남 4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본관은 여흥(驪興)이다. 아버지는 경술국치 직후 상하이로 망명하여 중국 정부의 기관과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고, 어머니는 신규식(申圭植)의 외동딸이다. 신규식의 외손녀가 된다.
어려서 상하이에서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다니다가, 1932년 4월 윤봉길의사의 의거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함께 항저우(杭州)로 옮겨갔다. 항저우에서 소학교를 졸업하고 혜흥여자중학교(惠興女子中學校)에 다녔다.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가족들과 함께 임시정부가 있던 후난성(湖南省) 창사(長沙)로 갔다. 창사에서 형수여학교(衡粹女學校)에 다니다가, 1938년 7월 임시정부와 함께 광저우(廣州)로 피난하였다. 이후 임시정부가 계속 이동하자 아버지가 근무하고 있는 구이린(桂林), 월남 하노이, 쿤밍(昆明) 등을 거쳐 1940년 치장(綦江)에 도착하여 다시 임시정부에 합류하였다.
1940년 9월 17일 충칭(重慶) 가릉빈관(嘉陵賓館)에서 거행된 광복군총사령부성립전례식에 여군으로 참석하여, 총사령 이청천(李靑天)에게 광복군기를 헌정하였다.
충칭에서 대공직업학교(大公職業學校)와 의훈고등학교(懿訓高等學校)를 다녔다. 1942년 1월부터 1943년 3월까지 임시정부 내무부에서, 1944년에는 주석판공실(主席辦公室)에서 근무하였다. 당시 주석판공실 주임은 아버지 민필호가 맡고 있었다.
1945년 초 광복군총사령부 심리작전연구실에 배속되어 충칭의 방송국에서 국제방송을 통한 선전활동을 전개하였다. 같은 해 4월 광복군 제2지대장 이범석(李範奭)의 비서가 되었다. 이범석은 미국의 전략첩보기구인 OSS와 공동으로 국내진입작전을 추진하기로 하고, 토교대(土橋隊)에 수용되어 있던 한국광복군훈련반 출신들을 데려가기 위해 충칭에 왔었다. 이때 비서직을 요청받아, 김준엽(金俊燁)· 장준하(張俊河)· 노능서(魯能瑞) 등과 함께 시안으로 가서 광복군 제2지대에서 복무하였다.
그 해 6월 함께 근무하던 학도병 출신 김준엽과 결혼하였다. 시안에서 일제의 패망 소식을 들었고, 9월 말 충칭으로 돌아갔다.
1946년 5월 중국 정부 내정부(內政部) 직원들을 따라 목선을 타고 충칭을 출발하였다. 남경(南京)에 도착하여 주화대표단(駐華代表團) 부단장을 맡고 있던 아버지를 만났다. 주화대표단은 임시정부의 주중대사관과 같은 것이었고, 교포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과 귀국을 알선하는 일을 수행하였다. 남편 김준엽이 남경 중앙대학 대학원에 다니게 되면서 함께 머물렀다가, 1949년 1월 25일 김준엽과 함께 귀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표창·1977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