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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것이 시대가 변하면서 무당과 굿은 ‘미신’으로 전락하기에 이르렀다. 종교적인 측면에서는 배척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지난 4월 강화도 하점면 신봉리에 서해안풍어제(중요무형문화재 82-2호) 전수관 ‘금화당’의 문을 연 김금화 만신은 “종교적 차원에서 배타적으로만 보지 말고, 우리 전통문화를 계승·발전시키는 차원에서 바라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해안풍어제는 황해도 해주와 옹진, 연평도 지방에서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바라며 벌이는 마을행사다. 배연신굿과 대둥굿이 있는데, 배연신굿은 배주인이 배의 안전과 고기를 많이 잡길 바라며 치르는 것이고, 대동굿은 마을 주민들이 모여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며 매년 정월이나 2·3월에 벌이는 마을 행사다. 배연신굿이나 대동굿 모두, 신이 내린 무당이 ‘굿’을 하며 제를 지내는 것이지만, ‘재미’를 더한 마을사람들의 ‘대동놀이’와 다름없다.
‘굿’을 종교적 차원에서만 바라보지 말아달라는 김금화 만신의 설명은 바로 여기에서 그 이유를 담고 있다.
‘굿’은 우리의 고유한 정신문화이고, 예술문화라고 역설한 그는 “한국에서 배타적으로 바라보는 무당과 굿을 오히려 다른나라에서 애정과 관심을 더 보인다”며 얼마전 다녀온 카톨릭의 성지 로마에서도 찬사를 받는 등 외국공연 때마다 그 나라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놀라울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들은 “한국에 가 당신을 찾아가려면 어디로 가야하나”란 질문을 던졌고, 이에 그들을 맞이해 한국의 문화와 음식을 알릴 수 있는 공간을 찾게된 것이 지금의 서해안풍어제 전수관이다.
오랫동안 바라기만 할 뿐, 선뜻 행동으로 옮기기는 어려웠다. 인천시내에는 장소 또한 마땅한 곳이 없었다. 그러다 지난해 3월 강화도 하점면 신봉리에서 첫 삽을 떴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그 해 7월 전수관의 문을 열고, 이어 9월 세계 샤머니즘 학술대회를 치렀어야 했다. 시나 정부의 지원도 없이 무려 10억원이나 되는 사재를 털어 시작한 일은 그러나 시공사와 하청업체가 잇따라 종적을 감추면서 차질을 빚었다.
겨우겨우 1년만에 건물의 외형을 갖추고 문을 열었지만, 계획은 크게 어긋났다. 전수관 2층에 마련하려던 박물관은 아예 손도 대지 못했고, 전수관 뒤에는 옹벽을 세우지 않아 위험하기까지 하다. 준공은 아직 나지도 않았다. 정신이 사나우니 터마저 나쁘게 보였고, 모시는 신을 탓하기만 했다.
전수관을 개관하고, 마음을 가다듬어 보니 나쁘게만 보이던 터가 그리 좋을 수 없었다. 김금화 만신은 는 “어려움을 전해들은 지인들이 십시일반 도움을 주었다”며 감사의 말을 잊지않았다.
그는 전수관이 단지 전수관으로 그치지않길 바란다. 서해안풍어제가 세계에 우리 문화를 알리는 좋은 도구로 활용되길 바라고, 전수관도 그렇게 자리하길 기대한다. /김주희기자 blog.itimes.co.kr/kimjuh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