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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전국책(戰國策)』은 전국시대 책사들의 일을 기록한 책이다. 이 책에 기록된 것은 악(惡) 뿐이다. 일부러 선(善)을 빼놓고 악을 드러낸 것은 아니지만, 자기의 견해라고 단언하며 선이라고 한 것은 악일 뿐이다. 술수를 쓰고 농간을 부리니 몹시 어질지 않고, 종용하고 과장하니 몹시 의롭지 않고, 탐욕을 부리고 아첨하니 몹시 수치를 모르는 짓이다. 그런데 모두 ‘군자가 말하기를’이라고 단언하면서 ‘능력 있다’ ‘지혜롭다’ ‘현명하다’라고 하였으니, 어찌 이렇게 거꾸로인가? 유세하는 무리는 기회를 틈타 변화에 순응하여 시속의 기호에 영합하고 권세와 이익을 도모하는 자들이니, 그들의 말이 이와 같은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夫所謂策書者, 記戰國策士之事, 而所記惡而已. 非故闕善而著惡, 所斷之曰已見而曰善者, 惡而已. 陰陽捭闔, 不仁之甚者, 慫惥譸張, 不義之甚者, 貪瑣讒諂, 無耻之甚者, 而咸以君子曰斷之, 而曰能曰知曰賢, 何其悖哉? 游說之徒, 乘機殉變, 以中時好而睹勢利者, 其言無恠其如此.
-정범조(丁範祖, 1723~1801), 『해좌집(海左集)』 권37 「전국책설(戰國策說)」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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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살 난 아들이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사족(蛇足)’이 뭐냐고 물었다. “사족이란 건 말이야. 옛날에 누가 먼저 뱀을 그리는지 내기를 했는데, 어쩌고저쩌고……. 그러니까 쓸데없는 짓을 하면 안 된다는 말이야.” 그런데 아들의 대답이 뜻밖이었다. “뱀한테 다리가 있으면 왜 안 돼요? 난 다리 달린 뱀을 그릴 거에요!”
나는 이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그렇다. 뱀에게 다리가 있는 게 그렇게 큰 죄인가? 고래에게 날개가 있으면 어떻고 호랑이에게 뿔이 있으면 또 어떤가.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 모자로 보이는 어른들은 다리가 있으면 뱀이 아니라고 하겠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선조의 지혜라는 미명 하에 아이들의 상상력을 짓밟고 획일적인 사고를 강요했던 것은 아닐까. 아들의 질문은 이른바 고사성어라고 하는 것들이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고사성어는 대부분 중국 전국시대의 산물이다. 전국시대가 어떤 시대인가.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더 가지기 위해 아들이 아비를 죽이고 신하가 임금을 죽이는 시대 아닌가. 전국시대의 고사성어는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전국시대 책사(策士)들의 권모술수에서 나온 것이다. 그 권모술수를 모은 책이 바로 『전국책』이다.
『전국책』은 고사성어의 보고이다. 화사첨족(畵蛇添足), 어부지리(漁父之利), 교토삼굴(狡免三窟), 삼인성호(三人成虎), 망양보뢰(亡羊補牢), 그리고 요즘 유난히 자주 거론되는 호가호위(狐假虎威) 역시 『전국책』에서 나온 고사성어이다. 이밖에 전화위복(轉禍爲福), 백발백중(百發百中), 사분오열(四分五裂), 부국강병(富國强兵) 등 일상용어로 굳어진 표현들의 출전도 『전국책』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이 고사성어들은 대개 세파에 닳고 닳은 노회(老獪)한 늙은이의 음흉한 처세술이다. 화사첨족은? 튀지 말고 그냥 남들 하는 만큼만 하라는 말이다. 어부지리는? 남 좋은 일 시키지 말고 굿이나 보면서 떡이나 먹으라는 말이다. 교토삼굴은? 항상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두라는 말이다. 모두 난세의 생존전략이다.
고사성어가 인간과 사회의 적나라한 속성을 보여 주는 것은 사실이다. 일종의 처세술로 쓸모가 있다는 점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것이 인생의 지침이 되면 곤란하다. 권모술수를 인생의 지침으로 삼을 수는 없지 않은가.
『전국책』에 대한 조선시대 문인들의 평가가 부정적이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한백겸(韓百謙)은 『전국책』을 두고 “난세의 문장[亂世之文]”이라고 하였고, 임숙영(任叔英)은 “온갖 속임수의 근본[百誕之本]”이라고 하였으며, 윤행임(尹行恁)은 “사람을 속이고 풍속을 병들게 하는 말[欺人病俗之言]”이라고 하였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더 가관인 것은 논평이다. 『전국책』의 곳곳에는 ‘군자가 말하기를[君子曰]’로 시작되는 논평이 삽입되어 있는데, 읽어보면 전혀 군자답지 않은 논평이다. 과거 시험을 위한 글짓기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많이 읽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배우기에 썩 바람직한 내용이 아니라는 사실은 다들 알고 있었다. 『전국책』이 지니는 시대적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전국책』 말고 다른 동양고전은 어떨까? 도덕적인 내용으로 가득 찬 『논어』, 『맹자』, 『명심보감』 따위는 괜찮지 않을까? 하기야 『명심보감』을 가르치는 게 인성 교육의 첩경인양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보편적인 진리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책들도 시대적 한계에 얽매여 있기는 마찬가지다.
유교 경전의 근본적인 존재 이유는 사회의 위계질서를 재생산하는 데 있다. 경전에 실려 있는 공자와 맹자의 말이 처음부터 그런 의도에서 나온 것은 아니지만, 유교 경전이 수천 년 동안 체제의 논리로 이용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유교는 체제 수호를 위한 이념이며 유교 경전은 체제에 순종할 것을 요구한다.
고전 연구를 업으로 삼는 필자가 고전 읽기의 순기능을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고전의 내용은 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고전은 어디까지나 그것이 만들어진 시대의 산물로서 시대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 점을 무시하고 고전만 읽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말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책을 읽을 때 중요한 것은 수용이 아닌 비판이다. 고전 읽기는 고전의 시대적 한계를 비판적으로 인식할 때 비로소 효과를 발휘한다. 고전의 내용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과거로의 회귀에 불과하다. 차라리 읽지 않는 것이 낫다. 고전 읽기는 비판적 독서가 가능해진 뒤에 시작해도 늦지 않다.
아무리 세상을 사는 데 도움이 된다지만 아이에게 권모술수부터 가르치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현실이라는 미명 하에 이해관계를 따지는 법부터 배운다면 그것은 교육이 아니다.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껏 상상할 수 있는 자유이다. 나는 아이에게 고사성어를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
글쓴이장유승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선임연구원
주요 저·역서
- 『현고기』, 수원화성박물관, 2016
- 『일일공부』, 민음사, 2014
- 『동아시아의 문헌교류 - 16~18세기 한중일 서적의 전파와 수용』, 소명출판, 2014(공저)
- 『쓰레기 고서들의 반란』, 글항아리, 2013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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